설교

6/29 주일설교, "형통하는 길"

강대식 2014. 6. 29. 15:01

본문: 여호수아 1:7-9

 

1. 율법을 다 지켜 행해야 한다

 

사람들은 성공해서 인생이 평탄하고 형통하기를 원한다.

자식들을 일류학교에 들어가게 할려고, 있는 힘 없는 힘을 다 동원한다.

그리고는 또 대기업 사원, 공무원, 의사, 판사 검사, 교수, 정치인, 연예인 스포츠맨들을 꿈꾼다.

 

이 성공을 위해서 본인과 자식들이 애쓰는 모습을 보면 애처롭기까지 하다.

그러나 성공하는 사람들은 소수이고, 성공하더라도 그 성공이 그리 오래 가지 못한다.

성공했다고 자타가 인정하는 유명 기업가, 연예 스포츠맨들의 자살들이 우리를 놀라게 한다.

 

그런가 하면, 실패한 사람들은 열등감과 우울증에 시달리고 폐인이 되거나 자살을 기도한다.

그놈의 성공이 뭔지 하며 신세 타령들을 하고 살맛을 잃어버린다.

마약과 술들에 빠져들고 향락과 오락과 도박들에 뛰어들어 몰락의 길로 간다.

 

돈과 소유, 권력과 명예들이 인생을 좌우한다고 생각하면

그걸 얻기 위해 사람들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게 된다.

그것이 하나님이 되고 우상으로 떠받들게 된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목숨을 다해 그것을 쟁취할려고 한다.

나도 한 번 큰소리 치고 보란 듯이 살아보겠다는 것이다.

그것이 흐름이고 대세이니까, 그 가치관과 사고방식에서 벗어난다는 것이 참으로 어렵다.

 

그런데, 그 길이 성공의 길이 아니고 패망의 길이라는 것을 역사가 증거하고 성경이 증거한다.

나만은, 내 가진 것만은, 예외로 오래 갈 줄 알지만, 그렇지가 않다.

역사는 말할 것도 없고, 한 때 자리에 올랐던 사람들이 지금은 어떤 모습으로 있는가만 봐도

알 수 있는 일인데, 오직 욕망과 야망의 깃발을 향해 달음질친다.

 

진짜 성공, 진짜 형통을 모르면, 가짜에 매달려 패망과 멸망의 길로 갈 수 밖에 없다.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는 법이다.

성공을 바라보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성경은 진정한 성공, 일시적이 아닌 오래 가는 형통하고 평탄하게 되는 길을 말씀하고 있다.

세상이 말하는 성공과 어떻게 다른지를 알고 성경이 말씀하는 성공의 길로 가시기 바란다.

성경이 말씀하는 성공은 욕망과 야망의 추구가 아니라 정도(正道)의 삶의 결과이다.

 

성공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의 목적이 되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게 되고 과정의 정도(적법절차)를 무시하게 된다.

그런데 정도 없이 건너뛴 계단들은 반드시 드러나고 댓가를 치르게 돼 있다.

 

청문회에서 낙마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그 댓가들이 얼마나 참혹한지는 역사가 증명하고 성경이 증거하고 있다.

솔로몬과 사울은 오랫동안 왕권을 누렸지만, 그 과정의 불법으로 인하여 망하고 말았다.

 

이 세상을 창조하고 통치하고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무시하고

그분이 정한 법도를 무시하고 성공한 사람들은 하나 같이 비참한 멸망으로 끝이 났다.

역사도 원칙(법도)을 지킨 개인과 조직, 나라와 민족이 오랜 번영을 누렸다고 증거하고 있다.

 

세상의 참다운 원칙과 법은 어디서 나왔느냐?

하나님으로부터 또한 성경에서 나온 것을 알 수 있다.

그 원천을 무시하고서는 세상이 아무리 원칙과 법을 얘기해도 그것은 공염불에 불과하다.

 

저는 젊은 날을 진리를 추구하느라 다 보냈는데, 주님 품으로 돌아와 깨달은 것이 있다.

진리는 하나님과 성경 없이는 제대로 알 수도 없고

그 진리의 원천이고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성경 없이는 그 진리를 살 수도 없다는 것이다.

세상이 날로 악해지고 혼란스러운 근본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다.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을 이끌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이다

1:7-8)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믿을 수 없는 세상이나 사람이 하는 말씀이 아니다.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생의 생사화복을 다 주장하시고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거짓말을 하실 수 없고 약속을 반드시 지키시는 우리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이다.

 

모세가 명령하고 기록한 율법이라고 한 것은 지금은 신구약 성경을 말한다.

성경대로 살면, 성경이 기록한 대로 지켜 행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게 된다고 하신다.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고 하신다.

 

성경은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법도를 다 지켜 행하라고 하신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지 않고서는 그분의 법도를 살 수 없다.

예수님도 말씀을 지켜 행하는 사람이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하셨다.

 

시편 1편도, 복있는 사람은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는 사람이라고 하였다.

그가 하는 모든 일이 형통하리로다하였다.

 

여러분, 여러분의 인생 길과 가정과 사업이 평탄하고 형통하기를 원하시는가?

그러면, 성경을 붙들고 즐거워하고 거기 기록한 대로 다 지켜 행하기를 힘쓰시기 바란다.

그 성경을 내 신앙과 삶의 기준과 표준으로 원칙으로 삼고

거기서 하라고 하는 것은 행하고 하지 말하고 하는 것은 행하지 말기 바란다.

 

2. 성경을 주야로 묵상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아야 한다

 

성경에 기록한 대로 다 지켜 행할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다.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묵상하는것이다.

우리가 성경대로 살지 못하는 이유와 원인을 말씀해 주고 있다.

 

성경의 말씀이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고 주야로 그것을 묵상해야 마음에 새겨지고 행하게 된다.

성경의 말씀이 입에서 떠나고 그것을 주야로 묵상하지 않으면

다른 것이 입에 붙고 그것을 주야로 묵상하게 된다.

 

성경은 들으라 이스라엘아!” 하신다.

들을려면 입으로 말해야 한다. 그것을 즐거워해야 자꾸 입으로 말하게 된다.

입으로 말해서 들은 것을 행할려면 우리가 그것을 주야로 묵상해야 한다.

 

입으로 말하고 주야로 묵상한 것을 사람을 행한다.

사람은 마음에 있는 것을 입으로 말하고 주야로 묵상한다.

그 마음에 있는 것, 그 마음을 다해 사랑하는 것을 바꿀려면,

우리는 거꾸로, 성경을 입으로 말해서 듣고, 그것을 주야로 묵상해야 한다.

 

성경을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고 주야로 묵상하는 방법을 이렇게 말씀한다.

이스라엘아 듣고 삼가 그것을 행하라

그리하면 네가 복을 받고 네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허락하심 같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네가 크게 번성하리라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아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6:3-9)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이런 노력과 실행을 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말씀에서 떠나 우로나 좌로 치우치게 되는 것이다.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하나님의 말씀이 입에서 떠나고 사람의 말이 입에 붙고 그것을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게 되어 있다.

정치판에서 우파와 좌파가 싸우듯이 교회와 목사들이 우파와 좌파로 갈려 싸우고 있다.

 

그 입에서 나오는 말들을 보면, 그들이 주야로 무엇을 묵상하는지, 마음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대충은 알 수 있다.

바리새인들은 마음 속엔 탐욕과 방탕이 가득하면서도 입으로는 의로운 척은 다하였다.

 

주님은 이러한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라고 하셨다.

외식과 불법이 가득한 자들이라고 하셨고, 회칠한 무덤과 같다고 하셨다.

맹인된 인도자여,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낙타는 삼키는도다”(23:24)고 하셨다.

 

순전한 말씀에서 떠나면 그것은 말씀을 혼잡하는 것이고, 그것은 거짓을 설교하는 것이다.

그것이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는 것이다.

거짓 선지자들을 분별하고 삼가야 한다.

 

양의 옷을 입고 나아오나 노략질하는 이리 떼들을 열매를 보고 알아야 한다.

철학과 속임수인지, 미혹된 영과 귀신의 가르침인지를 분별해 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로나 좌로 치우치게 되고 말씀을 떠나게 된다.

 

말씀의 기갈이 온다고 이미 예언하셨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8:11)

 

목사들은 거짓을 설교하고 권력으로 다스리기를 좋아하고 교인들은 그것을 좋아하는

놀랍고 무서운 일들을 교회 안에서 겁 없이 하고 있다.

그들의 성경 해석과 신학들이 얼마나 타락하고 세속화되었는지는

성경을 바로 전한 종교개혁자들과 청교도들의 설교와 가르침들을 보면 확연히 알 수 있다.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않을려면,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 순전한 말씀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 순전한 말씀을 즐거워하고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묵상해야 해야 한다.

 

성경을 사랑하시라. 손에서 입에서 멀리 떠나지 말게 하라

그 말씀을 듣고 행하는 길만이 우리 인생 길을 평탄하게 하고 형통하게 한다.

우로나 좌로 치우치는 거짓 설교와 가르침들을 분별하고 과감하게 버리라

 

그들은 세상 지혜로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고

말씀을 사는 훈련과 연단 없이 믿기만 하면 하라는 대로 하기만 하면 형통하게 된다고 한다.

유병언식의 가르침들이 교회에 난무하고 탐심이 지배하고 결국은 몰락의 길로 가고 만다.

 

일시적이고 불법적인 형통이 우선은 잘 되는 것 같지만,

결국 악인의 형통은 풀이 베임같이 푸른 채소가 쇠잔함 같이 풀의 꽃같이 떨어지고 만다.

눈 앞의 것이 아닌 영원한 것에 우리의 인생을 걸기를 바란다.

 

말씀을 떠나서, 하나님을 무시하고서, 인생에 형통과 평탄은 있을 수 없음을 확신하기 바란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지 않고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는 것을 명심하라.

그 말씀이 우주 만물을 창조하였고 그 말씀이 세상을 다스리고 그 말씀이 인생을 심판한다.

 

그 말씀을 즐거워하고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묵상하기 바란다.

그 길만이 우리 인생 길을 평탄하게 하고 형통하게 길임을 확신하라.

 

3. 강하고 담대해야 한다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1:9)

 

성경에 기록한 대로 다 지켜 행할려면, 우리 마음이 강하고 담대해야 한다.

그 어떤 위기와 어려움이 닥칠지라도 놀라지 않고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어디로 가든지 나와 함께 하신다고 약속한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고 믿어야 한다.

 

그 위대한 모세는 죽고 이제 이스라엘을 인도할 책임이 모세의 시종 여호수아에게 주어졌다.

하나님은 그에게 성경대로 다 지켜 행할 것을 명령하시고 그 형통의 축복을 약속하였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강하고 담대하라고 하시는 것이다.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도 작은 여호수아(여호와는 구원이심, 예수와 꼭 같은 이름)들이다.

우리를 과거에 인도하던 모세는 죽었다.

이제 일어나 우리도 약속하신 기업의 땅을 향해 강하고 담대한 마음으로 가야 한다.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고 말씀이 인도하는 길을 따라 담대하게 가야 한다.

두려워하고 놀라는 사람들은 갈 수 없는 길이다.

이 길은 십자가를 통과하는 길이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쉽고 빠른 길을 찾아 많은 사람들이 가는 넓은 길은 멸망으로 끝이 나고 만다.

어렵고 힘든 길이어서 적은 사람들이 가는 좁은 길은 생명으로 형통으로 인도하는 길이다.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을려면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도 받아야 한다.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얻을려면 잠시 받는 고난의 경한 것을 통과해야 한다.

우리 주님 오셨다가 가신 길을 우리도 본받아야 한다.

베들레헴 말구유에서 나시고 갈릴리에서 어부와 세리들을 제자로 삼으시고

제도권의 불신앙으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영광의 보좌에 오르셨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12:2)

 

베드로 사도도 그 길을 이렇게 말씀한다.

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그러나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벧전2:19-21)

 

이 길을 갈려면 강하고 담대해야 한다. 두려워하지 말고 놀라지 말아야 한다.

성경을 즐거워하고 주야로 묵상하지 않고서는 형통의 길은 없다.

거짓 목사들과 신학자들의 가르침을 따라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