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라일

진리 없는 평화는 거짓 평화이며, 마귀의 평화일 뿐이다/ 존 라일

강대식 2014. 10. 26. 22:26

안디옥 교회에서 바울이 베드로를 책망한 것은 평화를 잃는 것보다 진리를 잃는 것을 더 두려워해야 하며, 따라서 진리를 위해 힘써 싸워야 한다고 가르치고자 했다. 오늘날 우리는 바울의 행동을 본받아야 한다. 요즘 사람들은 평온한 삶을 살아갈 수만 있다면, 신앙과 관련된 모든 문제를 용인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논쟁이라 일컫는 것을 끔찍하게 싫어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당파심이라고 일컫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한다.

 

그러나 사실 그들은 그런 모호한 표현이 무슨 의미인지조차도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저 그들은 평화를 유지하기에 급급하다. 그들은 설사 진리가 희생되더라도 모든 일이 순조롭게 흘러가기만을 바란다. 그들은 겉으로 평화와 질서가 유지되어 만사가 순조롭고 평온하기만 하면, 다른 것은 모두 포기해도 괜찮다는 듯한 태도를 취한다.

 

그런 태도는 엘리야를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왕상18:17)로 생각했던 아합이나 예레미야의 입을 막기 위해 그를 감옥에 가둬 놓았던 유다의 방백들의 태도와 조금도 다를 바가 없다. 아마도 이런 사람들은 바울이 틀림없이 안디옥에서 경솔하고 무분별하게 행동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우리는 아무것도 섞이지 않은 그리스도의 순수한 복음, 곧 사도들이 가르친 복음 외에 다른 것이 사람들의 영혼을 이롭게 하리라 기대해서는 안 된다. 교회 안에서 순수한 진리를 보존하기 위해서는, 평화가 깨지고 분쟁이 일어나고 분열의 위기가 닥치는 등 어떤 희생이 뒤따르더라도 기꺼이 감수해야 한다. 죄를 용납해서는 안 된다. 복음의 단순한 메시지를 더하거나 빼는 행위를 단호히 거부해야 한다.

 

바리새인들은 모세의 자리에 앉은 권위 있는 교사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진리를 위해 그들을 엄히 책망하셨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라고 말씀하셨으며, 마태복음 23장에서는 이런 표현을 무려 여덟 번이나 사용하셨다. 감히 누가 주님이 잘못하셨다고 비난할 수 있겠는가?

 

바울은 진리를 위해 형제인 베드로를 엄히 책망했다. 순수한 교리가 훼손된다면 화합이 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감히 누가 바울이 잘못했다고 비난할 수 있겠는가? 아타나시우스는 진리를 위해, 곧 그리스도의 신성에 관한 순수한 교리를 지키기 위해 세상에 맞서 당시의 많은 교회들과 논쟁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감히 누가 그가 잘못했다고 비난할 수 있겠는가?

 

루터는 진리를 위해 자신이 몸담고 있는 교회의 단합을 깨뜨리고, 교황과 그의 행위를 엄중히 비판함으로써 새로운 개혁의 기틀을 마련했다. 감히 누가 루터가 잘못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100년 전에 휫필드와 웨슬리는 진리를 위해 당시의 무기력한 도덕적 설교를 비판하고, 출교당할 것을 뻔히 알면서도 영혼들을 구원하기 위해 거리와 골목으로 나갔다. 감히 누가 그들이 잘못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 진리 없는 평화는 거짓 평화이며, 마귀의 평화일 뿐이다. 복음 없는 화합은 가치 없는 화합이요, 그런 화합은 지옥의 화합일 뿐이다. 그런 화합을 좋은 것인 양 내세우는 사람들에게 미혹되어서는 안 된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10:34).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 말씀을 잊지 말라. 주님은 에베소교회를 칭찬하시면서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내 것과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2:2,3)라고 말씀하셨고, 두아디라교회를 책망하시면서 자칭 선지자라는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2:20)라고 말씀하셨다.

 

평화라는 제단 위에 진리를 조금이라도 희생시켜서는 안 된다. 절대 그런 죄를 짓지 않도록 주의하라. 절대 그런 죄를 짓지 않도록 주의하라. 유대인들은 구약성경의 사본에서 잘못된 글자가 하나라도 발견되면 그 사본 전체를 불살랐다. 우리는 성경의 일점일획이라도 잘못되게 하지 않으려는 그들의 태도를 본받아야 한다. 그리스도의 온전한 복음에 미치지 못하는 것은 그 무엇이라도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 존 라일, 거짓에 속고 있는 교회에게, pp 162-1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