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9 장 목회 사역의 다양성
“(6)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7)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8)혹 위로하는 자면 위로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롬12:6-8)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 여기서 섬김(ministry)은 ‘봉사’보다 제한적인 의미로 ‘일상적인 경영’의 섬김을 나타낸다. 고전12:28의 은사 목록 중 ‘돕는 것’ 이라는 말이 같은 것을 표현하고 있다. 설교자나 교사의 특별한 기능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교회의 일반적인 행정의 일을 의미한다. 은사를 열거하는 바울의 목록 중에 예언의 은사 다음에 열거되고 있다. 여기서 사도는 중요한 요점을 강조하고 있다. 사람들은 예언의 은사는 놀라운 것으로 취급하고 다른 은사는 멸시하려는 태도를 가지기 쉽다. 교회에서 이 은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자주 발견한다. 이것이 여러분의 은사라면 그것을 활용하라. 그러한 은사를 받은 것을 하나님께 감사하며, 이 은사를 사용하는 것이 몸된 교회가 조화롭게 작용하는 데 있어서 핵심적임을 깨달으라.
“가르치는 자는 가르치는 일로” - 교사들은 직접적인 영감의 결과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가르침 받은 결과로 지금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연구하고 책을 읽으라는 권면을 받는다.(딤전4:14-16) 가르침의 은사를 받은 사람들은 책을 읽는 능력뿐만 아니라 읽은 것을 이해하고 추가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렇게 얻은 지식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주는 은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학자나 분야에서 뛰어난 권위자, 글을 잘 쓰는 사람이라도 자기들의 지식을 말로 전달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교사의 임무는 믿는 자들을 세워 주고, 믿음 안에서 그들을 견고히 확립시켜 주는 것이다. 사도는 가르침의 은사를 받았다면 교사로서 활동하고 그 일에만 전념하라는 것이다.
“혹 권위하는 자면 권위하는 일로” - 가르침과 권위(권면)의 차이는 가르침은 일차적으로 ‘이지’에 호소한다. 그러나 권위는 마음과 의지를 더 다룬다. 어떤 의미에서 권위는 가르침 다음에 오는 것으로 먼저 진리를 제시하고 그 다음에 권위는 그 진리를 부각시켜 주는 것이다. 저는 모든 설교가 권면이나 종용으로 끝나야 한다고 믿는다. 권위할 때, 용기를 북돋아 주거나, 책망하거나, 일깨워 주거나, 자극을 주거나, 적용토록 하거나, 기도하도록 요청하는 것이다. 권위는 가르쳐 준 진리를 그리스도인의 삶 여러 국면에서 적용시켜 주는 것이다.
가르침과 권위를 구분할 수 없을 때 곤란에 빠져들기 쉽다. 제임스 프레이저라는 유명한 설교자가 이웃 교구의 한 사역자로 인해 고통스러워 했다. 그 사역자는 능력이나 다른 무엇으로 보더라도 프레이저와 비교될 사람이 아니였음에도 권위의 은사를 가지고 있어 사람들이 그 교회로 가곤하여 더 성공적인 목사처럼 보였다. 그것은 이 구분을 하지 못한데 기인 된 것이다. 흔히 권위하는 자는 교사들이 앞서 무엇을 행하지 않을 경우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권위의 은사가 더 황홀하고 유익해 보일 수도 있지만, 서로 비교하지 말아야 한다. 두 은사 모두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다. 사도가 여기에서 말하고 있는 것은 만일 너희의 은사가 권위의 은사라면 바로 그것을 행하라는 것이고, 권위의 은사가 자신을 교사로 만들 것이라고 상상하지 말라는 것이다.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 원어는 “주는 자는”으로 되어 있다. 그것은 교회의 기금으로 주는 것이 아닌 개인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주는 것도 다른 은사와 마찬가지로 은사이며, ‘성실함’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나팔을 불지 말라---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마6:1-4) ‘성실함’은 동기가 순전해야 한다는 것이고, 주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 또한 교회와 지체들의 유익을 위해서 구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 교회에서 어떤 형태로든 다스리거나 주관하는 일을 하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이는 형제를 돌보는 일이고 특히 장로들이 그 몫을 담당하게 되어 있다. 사도는 직분의 차원에서 다루고 있지 않고 은사로 다루고 있다. 다스리는 자들이 말씀과 그 교훈에는 수고하지 못하는 자들이 있다. 그런 은사를 가진 자는 자기가 받은 은사임을 인식하고 거기에 자신을 온전히 전념시켜야 한다.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무리를 치되 부득이함으로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를 위하여 하지 말고 오직 즐거운 뜻으로 하며 맡기운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오직 양무리의 본이 되라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면류관을 얻으리라”(벧전5:2-4)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 긍휼을 베푼다는 것은 고난당하며 침체당한 사람들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다. 롬 16:1에서 언급되는 뵈뵈는 긍휼을 베푸는 사람의 한 실례이다. 바울은 딤전 5:10에서 “선한 행실의 증거가 있어 혹은 자녀를 양육하며 혹은 나그네를 대접하며 혹은 성도들의 발을 씻기며 혹은 환난당한 자들을 구제하며 혹은 모든 선한 일을 좇은 자라야 할 것이요” 긍휼을 베푸는 은사 속에 그 모든 것이 포함되어 있다. 만일 그 은사를 가지고 있다면 “즐거움으로 그 일을 하라”고 말하고 있다. 율법주의적인 방식으로 긍휼을 베풀지 말라는 것이다. 기계적으로 그 일을 해내거나 의무감으로가 아닌 전심으로 밝고 행복한 마음으로 그 일을 감당하라는 것이다. 여러분이 바른 방식으로 긍휼을 베풀고 있다면 많은 설교보다도 휠씬 더 좋은 선을 행할 수 있는 것이다.
사도가 이 대목에서 계속 강조하는 것은 사람이 어떤 은사를 가졌든지 있는 힘을 다해서 그 은사를 활용하라는 것이다. 은사를 가졌다면 그 은사는 놀라운 것이고 가치 있는 것이며 본질적인 것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다른 사람을 쳐다보지 말라. 오직 주님만 쳐다보라. 여러분이 지체로 되어 있는 그 한 몸에 붙어 있는 모든 지체들을 함께 유익하게 하는 일만을 바라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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