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삼상 30:1-6
오늘은 2014년도 마지막 주일이다.
다음 주일에 우리는 2015년 새해를 맞이하는 신년감사예배를 드릴 것이다.
이 마지막 주일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은 다윗의 시글락 위기이다.
시글락은 사울왕을 피해 다윗의 망명 시절 블레셋 왕 아기스로부터 받은 아주 작은 성이었다.
1년 4개월 동안 머물렀던 곳이다(삼상27:7).
이 시글락 위기는 다윗에게 있어서 긴 고난생활의 마지막 위기였다.
이 위기가 있은 다음에 원수 사울왕은 전쟁에서 죽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도 죽게 된다.
다윗은 헤브론에 올라가 드디어 왕이 된다.
1 시글락 위기는 모든 재물과 처자식을 잃는 시련이었다.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사흘 만에 시글락에 이른 때에 아말렉 사람들이 이미 네겝과 시글락을
침노하였는데 그들의 시글락을 쳐서 불사르고 거기에 있는 젊거나 늙은 여인들은 한 사람도
죽이지 아니하고 다 사로잡아 끌고 자기 길을 갔더라”(삼상30:1-2)
위기를 일으킨 자들은 아말렉 사람들이었다.
사울이 아말렉을 진멸하지 않음으로 그들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윗이 얼마 전에 자신들을 침략했던 것에 대한 보복이기도 했다.
위기와 시련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손길과 역사가 보인다.
재물은 다 불살랐지만 젊거나 늙은 여인들은 한 사람도 죽이지 아니하고 다 사로잡아 갔다.
한 사람도 죽이지 아니하고 사로잡아 갔다는 표현 가운데서 하나님의 섭리를 본다.
다윗은 아말렉을 칠 때 모든 사람을 칼로 쳤다.
그들이 시글락에 대해 똑같이 보복하지 않은 것은
하나님이 그들을 억제하고 마음을 움직였다는 것 외에 다른 설명이 있을 수 없다.
사람들의 마음을 붙잡고 계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일반 은총 가운데 하나님은 역사를 통치하고 이끌어 가신다.
사람들은 재앙이 닥칠 때 그 재앙의 현실만을 보지,
그 원인인 그들과 조상들이 지은 죄들을 보지 못한다.
그 시련과 재앙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손은 개입하셔서
죽을 자는 죽게 하고 살 자는 남게 하신다.
“너희 땅은 황폐하였고 너희의 성읍들은 불에 탔고 너희의 토지는 너희 목전에서
이방인에게 삼켜졌으며 이방인에게 파괴됨 같이 황폐하였고 딸 시온은 포도원의 망대 같이,
참외밭의 원두막 같이, 에워 싸인 성읍 같이 겨우 남았도다”(사1:7-8).
이것은 하나님이 택한 백성 이스라엘이 재앙으로 망할 때의 마지막 모습이다.
이것은 부패하고 타락한 인류의 마지막 모습이기도 하다.
이것은 한 생애를 열심히 살았던 사람들의 마지막 모습이기도 하다.
돈을 하나님보다 더 귀하게 여기고, 세상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한 사람들의 마지막 모습이다.
이 모습은 하나님의 일보다도 자기의 일만을 더 생각하고
하늘의 일보다는 땅의 일만을 구하며 산 사람들의 마지막 모습이기도 하다.
이 모습은 하나님이 참고 또 참으시면서 회개하기를 기다리시는 기회를 일생동안 활용 못하고
마지막 맞이할 모습이기도 하다.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 원수로 행하느니라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빌3:18-21)
땅의 일만을 생각하여 이룬 영광은 부끄러운 것이요 그들의 하나님은 배요 결국은 멸망이다.
그러나, 하늘에 있는 시민권으로 구원하는 자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며
결국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시는 분의 진짜 영광을 누리는 사람들이 있다.
시글락 성이 원수들이 쳐들어 와서 타 불에 타버린 것은
이제 하나님께서 다윗과 그 백성들이 의지하던 것들을 다 태워 버린 것이다.
그것들에 연연하고 집착하는 한 진정한 축복과 영광, 왕의 축복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의 축복은 내가 애지중지 쌓아 논 것에다 더 얻어 주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고 보물은 땅에 쌓지 말고 하늘에 쌓으라고 하신다.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해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게 될 날이 오게 된다(갈6:8).
우리는 금이나 은 같이 없어질 것으로 구원받지 않았고 그것으로 살지 않는다.
그리스도인은 떡으로만 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
금이나 은보다 더 귀한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고 사람의 영혼이다.
시글락 위기에서 재물과 소유는 다 불에 탔지만 사람들은 하나도 상하게 하지 않은 것은
재물보다 소유보다 사람의 생명이 영혼이 더 귀한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재물이 권력이 명예가 살려주고 구원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마16:26)
사도 바울은 주님을 만나고서 모든 것을 배설물처럼 버렸다고 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빌3:7-9)
이 말씀에는, 내게 유익하던 모든 것을 해로 여기고 배설물로 여기지 않고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 수도 없고, 얻을 수도 없다는 교훈이 깔려 있다.
그리스도를 알기 위해 책 한 줄 안 읽고, 무엇 하나 잃을 줄 모르는 사람이
어찌 그리스도를 알고 그리스도를 얻을 수 있겠는가? 하고 있다.
2 시글락 위기에서 사람들은 다윗을 돌로 치는 것으로 보복할려고 했다.
“다윗과 그와 함께 한 백성이 울 기력이 없도록 소리를 높여 울었더라 ---
백성들이 자녀들 때문에 마음이 슬퍼서 다윗을 돌로 치자 하니”(삼상30:4-6)
참 모질고 독하고 악하고 어리석은 것이 위기를 당한 사람의 마음이다.
부하들만이 아니라, 다윗도 두 아내를 다 잃은 사람이다.
함께 울 기력이 없도록 소리를 높여 울었던 사람들이
함께 미래에 소망을 두고 모여 동거동락하던 사람들이 실컷 울고나서
마음 먹고 나선 일이 지도자 다윗을 돌로 쳐죽이자 였다.
이 모든 재앙이 다윗 때문에 일어났다고 생각한 것이다.
애초부터 아말렉을 자극하지 않았어야 했다.
수비 병력도 남기지도 않은 채 분별없이 떠난 잘못이 다윗에게 있었다.
우리도 이와 같이 하기가 쉽다.
이와 같이 하는 일이 현실에서 얼마나 많이 일어나고 있는가?
재앙이나 위기가 닥치면, 긴 원인과 근본적 원인은 생각도 해볼려고 하지 않고,
우선 눈에 보이는 가까운 원인자에게 모든 책임을 뒤집어 씌워서
분노와 앙갚음을 쏟아 붓고 위로 받고 만족하고자 한다.
독일이 일차 대전에서 지고 전쟁 배상액과 경제 파탄에 시달리고 있을 때
히틀러가 나타나 그 원인을 유대인들에게 돌리고
그들을 처형하는 것으로 그들의 비참함과 분노에 대한 희생양으로 삼았다.
아둘람 굴에서 시작해서 시글락에 까지 따라 와서 동거한 부하와 백성들은
다윗 덕에 출세하고 잘 살 것을 기대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것은커녕 있던 것마져 다 불타고 아내와 자식들까지 다 잃었으니
실망하고 절망한 나머지 극도의 격분에 휩싸이고 말았다.
격정은 통제되지 않으면, 어리석고 유치하고 불합리한 재앙을 낳고 만다.
다윗에게 있어서 부하들의 반란과 반역은 참으로 견디기 힘든 쓰라린 시련이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다윗이었지만 이 시련은 참으로 가혹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 시련은 사실은 하나님께서 다윗을 굳건하게 세우기 위한 마지막 시련이었다.
그러기까지, 사울은 다윗을 사랑하는 나라로부터 쫓아내었고,
블레셋 사람들은 그들의 진으로부터 쫓아내었다.
아말렉 사람들은 그의 성을 약탈하고 불태우고 아내들을 포로로 끌고 갔다.
이제는 그의 신임을 받던 자들이, 함께 떡을 먹던 자들이 발꿈치를 들고 돌로 칠려고 한다.
큰 믿음은 이러한 가혹한 연단을 각오해야 한다.
하나님께 크게 쓰임 받는 사람들은 참으로 가혹한 연단을 거치는 것을 본다.
모세도 자기 백성을 위해 결단했지만 애굽왕 바로에게 모든 것을 잃고 쫓기는 신세가 되었다.
요셉은 간음죄를 피할려다 억울한 감옥살이를 해야 했다.
그러나 다윗이 극한 상황에 떨어진 것은 그가 보좌에 오르기 직전의 마지막 시련이었다.
이 시련은 다윗이 보좌로 나아가는 문이 열리는 데 필요한 최후의 일격이었다.
여명이 동터오는 직전이 가장 어두운 법이다.
사람들은 큰 시련이 닥치면 이제 이것으로 끝나나부다 하는 생각부터 하게 된다.
그러나 그것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여는 열쇠 같은 것이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한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전10:13)
3 시글락 위기에도 다윗은 하나님을 힘입고 용기를 얻었다.
“다윗이 크게 다급하였으나 그의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더라”(삼상30:6)
다윗은 처지가 크게 다급한 상황이었지만,
부하들처럼 격정을 토하거나 보복할려고 하지 않았다.
부하들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두려움에 빠지지도 않은 것으로 보인다.
다만 그의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을 뿐이었다.
다윗은 하나님의 능력과 섭리를 믿었고, 그분의 공의와 선하심을 믿었다.
낮추셨다가 높이시는 하나님의 방법을 믿었고,
자신에게 약속하신 왕권의 축복을 믿었다.
시련을 주신 하나님께서 그 목적을 달성하시면 이 위기가 해결된 것임을 믿었다.
여호와를 자신의 하나님으로 삼는 자들은 최악의 상황에서도 위로와 격려를 받을 수 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어떤 일이 일어나든지 하나님 안에서 스스로 위로하며 격려해야 한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룰 것을 믿어야 한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느니라”(롬8:36-39)
어떤 시련도 기근도 적신도 위험도 칼도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섭리 가운데 있는 일이고
그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넉넉히 이긴다는 것이다.
어떤 시련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는 것임을 확신하라고 하신다.
우리 주님은 산상수훈에서 의를 위하여 박해와 시련이 올 때 “복이 있다” 하시고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하셨다(마5:10-12)
하늘에서 큰 상을 받으려면 의를 위한 고난과 시련은 필수 과목이고 과정이다.
(그러나 죄를 지어 매맞는 것이면 무슨 칭찬이 있겠는가?)
그래서 야고보 사도도 시련에 대해 말씀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약1:2-4)
베드로 사도도 시련에 대해서 말씀을 한다.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벧전1:6-7)
확실한 믿음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다고 한다.
정말 주님으로부터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을려면 시련의 때에 확실한 믿음을 보이는 것이다.
다윗은 시글락의 극도로 위험한 위기 가운데서도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어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살아 생전에 얻게 되었다.
하나님은 시련 가운데서도 굳게 서는 다윗의 믿음을 보고
잃은 것들을 다 되찾게 해주시고 드디어 약속하신 왕위에 오르게 하셨다.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위기는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는 관문인 것이다.
다윗에게 시글락 위기는 모든 것을 잃는 것 같았지만
믿음으로 통과하자 그가 보좌에 오르는 마지막 관문이 되었다.
고난과 위기는 잠깐이요 영광은 영원하다.
그 고난이 우리를 온전하게 굳건하게 강하게 터를 견고하게 위한 하나님의 손길이고 은혜이다.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 권능이 세세무궁하도록 그에게 있을지어다 아멘”(벧전5:10-11)
한 해의 마지막이 고난의 마지막이 되고 새해는 영광과 축복의 시작이 되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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