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드 존스

로이드 존스는 근본주의자인가?/ 로버트 포프

강대식 2015. 5. 31. 05:51

 

1950년대 후반에 쓴 글에서 제임스 패커는 복음주의 세계에 근본주의자라는 단어가 신학적인 욕이 되었으며, “욕의 중요한 특성은 --- 단어 자체의 의미가 아니라 이 말을 통해 표현되는 감정이라고 경고했다. 이 단어는 북미 개신교도들에 의해 처음 사용된 단어로서, 이들의 어떤 교리를 핵심적이라고 명명하기 위해 처음 쓰였다. 하지만 곧 그 용도가 바뀌어서 어떤 특정한데, 주로 부정적인 반응을 대중에게서 불러일으키는 데 이용되었다는 사실이다. 1955더 타임즈에 실린 존 스토트가 보낸 편지에는 근본주의라는 단어가 모든 성경 비판에 대한 고집스런 반대, 영감에 대한 기계적 견해, 그리고 성경에 대한 지나치게 문자 그대로의 해석을 묘사한다는 주장이 들어 있다. 실제로 20세기 말 즈음에 이 단어는 종교적 독단주의, 또는 이데올로기에 뿌리박은 권위주의와 동의어가 되어 버렸다. 그 결과 특히 영국 교계 안에서는 자기 자신을 스스로 근본주의자라고 부르는 사람이 아무도, 혹은 거의 없어졌다. 이 단어는 어떤 개인이나 단체에 꼬리표를 붙여 이들에게 접근하는 것이 위험함을 경고하는 역할을 한다.

 

마틴 로이드 존스는 일생 동안 이런 식으로 부당하게 분류되었다. 사람들은 로이드 존스에게 근본주의자이며 광신자라는 낙인을 찍었다. 특히 에큐메니컬 운동에 대한 확고한 반대 입장과 성경의 권위에 대한 강한 믿음이 그렇게 여겨졌다. 이 꼬리표는 로이드 존스를 시대를 거스르며, 기독교 신앙에 대해 부분적이고 퇴보적인 지식만을 전하는 악한 세력으로 폄하하는 데 사용되었다.

 

근본주의자 강령은 없지만, 초기에는 무엇이 근본적 교리인지 결정하는 데 똑같은 점들이 강조되는 경향이 있었다. 두 가지 예를 들면, 하나는 근본: 진리에 대한 증언(The Fundamentals: A Testimony to the Truth)이라는 책에 수록된 90편의 에세이 시리즈다. 다른 하나는 1910년에 북미 장로교 회합이 한 선언으로서 기독교 신앙의 근본적인 요소들이 무엇인지를 알려 준다. 이 둘 사이에 연속되는 요소가 있다. 이들이 얘기하는 근본 요소들에는 성경의 영감과 권위(정확무오성), 그리스도가 동정녀에게 잉태됨, 기적의 역사적 실제성, 그리스도의 속죄적이고 특히 대속적인 죽으심, 그리스도의 육체적 부활, 그리스도의 인격적이고 종말적인 재림이 포함된다.

 

20세기가 펼쳐지며 이 근본주의라는 단어는 특정한 사회-정치적 입장을 취하는 자들, 즉 사회가 부패했다고 보며 세상을 하나님의 계획에 맞게 변화시키기 위해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한다고 선지자적으로 촉구하는 자들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다. 미디어 시대에서 실제로 방송 뉴스의 주요 제목이 되는 것은 이들의 동기가 아니라 바로 이들의 행동주의다. 미국에서 근본주의자들은 성경의 정확 무오성을 믿는 믿음을 통해서가 아니라 낙태 반대라든지 진화론 반대, 그리고 이슬람 과격주의에 대한 시위 같은 행동들을 통해 훨씬 더 정체성이 알려진다. 로이드 존스는 어떤 경우에도 정치적 저항에 관여하는 일은 삼갔다. 각각의 기독교인이 시민으로서의 의무와 공공의 사명감을 다해야 하나, 교회가 독점적으로 져야 할 책임은 복음의 선포와 영혼 구원이라는 입장을 지지했다.

 

로이드 존스는 성경이 일차적으로 세계역사에 대한 책이 아니라, 인간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에 대한 계시라고 주장했다. 성경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계시다. 성경은 그저 사건을 차례로 열거해 놓은 책이 아니라 이 사건들을 설명해 주는 책이고, 우리가 어떻게 이 사건들을 구속사의 거대 담론 가운데 이해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는 책이다. 성경은 절대적 권위가 있다. 구속에 대해서는 성경은 유일하고 권위적인 계시였다. 그리고 절대적인 진리였다. 로이드 존스는 성경의 완전 축자 영감설을 지지했다. 생각뿐 아니라 실제의 기록, 더 나아가서 특정한 단어들까지 영감을 받는 것이다. 성경의 단어 하나 하나가 모두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되었다는 것이다.

 

킹 제임스 번역에 대해 그는 말했다. “이 번역가들은 모두 정통 교리를 믿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성경이 오류가 없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었으며 성경을 최고의 권위라 여기고 성경에 복종했다. 다른 번역본에는 이와 같은 사람들이 없었다.” 좀 더 현대적인 다른 번역본들은 19세기에 일어난 성경 비판과 자유주의신학에 오염되었으며, 이로 말미암아 믿을 만하지 못했다. 로이드 존스는 바로 이 비판을 표준개역성경(RSV)을 향해 가했다. 이 번역을 맡았던 번역가들이 가졌던 선입견에 대해 열심히 경고했다. 로이드 존스는 복음이 칭의, 성화, 속죄, 구속과 같은 단어를 통해 가장 적절하게 표현될 수 있다고 믿었다. 이와 같은 단어와 개념들이 없는 번역은 필연적으로 불충분한 번역이며, 이런 결함은 바로 인간의 마음이 성경의 계시를 고칠 만한 능력이 있다는 견해에서부터 생겨난 것이었다. 자유주의신학이 이들의 번역에 스며 나온 것이다. 이는 하나님이 주시는 영감이 아닌 인간의 이데올로기에 의존했으며, 인간의 영혼에 대한 말씀의 심판이 아닌 말씀에 대한 인간 정신의 비판을 담고 있었다.

 

로이드 존스는 성경이 오랜 시간(1600)에 걸쳐 기록되었고 많은(40명이상) 저자들이 기록했지만, 절대 모순이 없고 단 하나의 교리교훈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다. 성경은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라는 단 하나의 사건을 구성하고 있으며, 따라서 구원에 대해 우리가 알아야 하는 모든 것을 담고 있다. 그래서 성경은 전적으로 다 믿어야 하거나, 그렇지 않다면 전적으로 믿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로이드 존스는 성경에 기록된 모든 사건이 역사적인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로이드 존스는 창조 이야기와 자신이 말하던 확립된 과학적 사실은 충돌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사실, “창세기 1장에 나온 창조 순서는 현대 과학자들이 우리에게 과학적으로 설명해 주는 순서와 일치한다.” “과학자들도 우리 모두와 같이 오류와 실수투성이다”. “사실 과학자들이 오늘날 가장 자기주장이 강한 사람의 한 부류다. 독단주의는 확실히 설교단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진화는 단지 이론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진화론을 진리라고 믿고 전파하는 것은 하나님을 반대하는 종교의 독단주의에 지나지 않았다.

 

1970년 웨일스의 시인이자 방송인인 아네이린 탈판 데이비스와 했던 텔레비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성경 해설가입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의견과 이론과 생각을 외치는 것이 설교자의 역할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설교자의 역할은 성경의 메시지를 해석해서 분명히 밝혀내는 것입니다. 또한 가능한 한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방식으로 결론의 필연성을 증명해 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존 브렌처는 오점을 고치고 진리를 수호하는 일은 로이드 존스의 습관이 되었는데, 이런 습관이 가져온 위험은 로이드 존스가 마지막에 가서는 모든 실질적인 면에서 자신을 무오하게 여기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는 자기 자신을 거룩한 진리의 선포를 소명으로 삼은 겸손한 성경 강해자로 보았다. 바로 이 점이 로이드 존스로 하여금 웨스트민스터 교회를 교회 공동체보다는 설교 장소로 유지하게 했으며 또한 어쩌면 로이드 존스의 사역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면을 만들어 냈다. 로이든 존스 일생의 사역에 다른 어떤 면들보다 더 많은 논란을 일으킨 부분은 아마도 세상, 교회 그리고 동료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비판적인 자세였을 것이다. “무엇이 진정한 기독교인지에 대한 너무 많은 혼란이 비극적으로존재하고 있으며 세상이 기독교에 귀 기울이려 할 때도 들리는 것은 혼란스러운 소리일 뿐인데, 그 주된 이유는 바로 교회가 예수님의 대속적 죽으심을 인간 구원의 방법으로 선포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로이드 존스는 자신의 사역이 이런 경향을 바로 잡는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했으며, 이런 이해는 불가피하게 그를 분리주의적 교회론으로 이끌었고 기본적인 기독교 메시지에 초점을 두지 않는다는 이유로 에큐메니컬 운동에 반대하게 했다. 로이드 존스는 기독교에 필요한 것은 커다란 교회가 아니라 순전한 교회라고 주장했다. “긴 기독교 교회의 역사를 훑어보면 영적으로, 그리고 교리적으로 일치했던 소수 몇 명이 교회 안에 있었을 때가 교회가 가장 교회다웠고 하나님 가장 많이 사용하셨던 때임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서유럽에 단 하나의 교회가 있었을 때, 교회는 어떻게 되었는가? 오히려 암흑 시대가 되었다.”

 

로이드 존스는 교리에 있어서 자유주의신학과 타협했다고 여겨지는 교회에 대해 굳건히 반대했다. 이 이유 때문에 영국 성공회를 강하게 비난했으며 그와 다른 교회론을 가지고 있던 복음주의자들과의 연계를 끊었다. 이뿐 아니라 196610월 웨스트민스터 중앙 홀에서 열린 전국복음주의회의에서 했던 로이드 존스의 악명 높은 촉구, 즉 로이드 존스가 봤을 때 교리적으로 혼합됐다고 여겨지는 교단들에서 복음주의자들이 분리되어 나와야 한다는 촉구도 이와 같은 이유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 외침은 의로운 남은 자들에게 끝까지 순전함을 유지하고, 불순전한 대다수에게 오염되지 말며, 이들에게서 분리되어 나오라고 호소하는 외침이었다. 로이든 존스는 성경 구절을 사용해 이 입장을 강조했다. 예로는 두 사람이 뜻이 같지 않은데 어찌 동행하겠으며”(3:3),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고후6:17)가 있으며 심지어는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부터 다른 음성이 나서 이르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가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18:4)는 구절도 있다.

 

또한 요한복음 17장을 면밀하게 설명했다. 여기서 로이드 존스는 예수님이 자신을 따르는 자들의 연합에 대해 말씀하신 것은 자신의 신성에 대한 진정한 믿음을 나눴던 이들에게 하신 말씀이었으며 물리적이 아니라 영적으로 연합했던 자들이 대상이었다고 강조했다. 이런 점은 로이드 존스에게 진정한 교리가 얼마나 중요했는지를 다시 한번 보여 준다. 로이드 존스에게 기독교인이란 성경에 보호되어 있는 하나님의 계시의 핵심적 진리들을 함께 나누는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로이드 존스의 이 두 가지, 즉 복음을 대속으로 설명하는 데 타협이 없었다는 점, 그리고 성경의 정확무오성을 옹호하며 성경을 무조건적으로 믿지 않으면 믿음이 의심된다고 주장한 점, 어떤 이들에게는 다른 무엇보다 더 로이드 존스를 근본주의자로 보이게 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보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

 

마틴 로이드 존스는 근본주의자였을까? 로이드 존스는 기독교인이라면 반드시 믿어야 할 몇 가지 필수적인 교리가 있다고 분명히 주장했으며, 이 필수 교리들을 믿지 못하는 자들의 믿음의 진정성을 의심했다. 정확무오한 성경이 증거하는 성육신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이루신 대속이 로이드 존스의 체계에서 가장 중요한 교리였던 것으로 보인다. 로이드 존스가 강조했던 점들은 북미의 초기 근본주의자들이 가지고 있던 생각을 그대로 반영하는 듯이 보이는데, 로이드 존스 자신도 자신의 입장이 초기 근본주의와 같지만 후기 근본주의와는 대립된다고 공적으로 표명한 바 있다. 로이드 존스가 순전한 교리를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서 초기 근본주의 운동의 진정성을 지지했으며, 그래서 후기의 투쟁적인 근본주의에서 거리를 둔 것이었다는 설명이 가능해진다. 분명 투쟁적인 근본주의는 교리적으로 타협한 교회에서 나오라는 로이드 존스의 분리주의와 학문 세계, 특히 학문적 신학에 대한 로이드 존스의 불신과 공통점이 있다. 아마 이 점이 로이드 존스가 근본주의자였다는 주장을 뒷받침해 주는 요소가 아닌가 한다.

 

그러나 우리가 명심해야 할 점은 로이드 존스가 근본주의라는 용어를 거부했으며, 대신 복음주의라는 용어를 수용했다는 점이다. 존스는 1970년 텔레비전 인터뷰에서 당신은 근본주의자입니까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흥미로운 대답을 했다. “다른 여러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는 이 용어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전 제 자신을 보수적 복음주의자라고 부르는 것을 더 좋아하지요. 그 주된 이유는, 제 생각에 미국에서 이 용어가 잘못 사용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 보수적 복음주의자입니다.

 

로이드 존스는 문자주의적이며 사고하지 않는 자들로 묘사했던 근본주의자들을 자신의 입장과 구분해 냈고, 자신은 합리적이거나 최소한 깊은 사고가 반영된 입장을 위한다고 변호했다. 여기서 우리는 로이드 존스가 자신을 문자주의자로 보지 않았으며 성경을 해석할 때 사고와 논리의 역할을 중요시했다는 점을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그렇지만 사고와 논리의 역할은 제한되어 있었다. 사고와 논리는 결코 성경의 주인 노릇을 할 수 없었다. 대신 사고와 논리는 성경을 방어하는데, 더 정확히 말하면 복음주의적 신경을 성경적으로 변호하는 데 사용해야 했다.

 

이 모든 논의는 로이드 존스를 복음 진리의 강해자라고 칭송하는 자들과 로이드 존스가 위험하고 편협한 근본주의자라고 여기는 자들 사이에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현재도 여전히 의견의 불일치가 존재함을 나타내 준다. 이는 로이드 존스에게는, 또한 로이드 존스의 지지자와 반대자들이 보이는 양극화 현상에는 뭔가 이해할 수 없고, 심지어 수수께끼같은 면이 여전히 남아 있음을 암시한다.

 

- 엔드루 아더스톤 외, 로이드 존스를 말한다, PP 311-3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