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5/31 설교, 그만해도 족하니

강대식 2015. 5. 31. 14:19

 

본문: 3:23-29

 

1. 준비하며 때를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모세가 여호와께 간구한 때는 그 때에”,

여호수아를 후계자로 세우고, 하나님의 약속을 들려준 때였다.

그 때에 내가 여호수아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두 왕에게 행하신

모든 일을 네 눈으로 보았거니와 네가 가는 모든 나라에도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행하시리니

너희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친히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라 하였노라”(3:21-22)

 

지나온 날들에 하나님이 하신 일을 보면 앞으로 하나님이 하실 일을 알 수 있다.

요단 동쪽에서 바산 왕 옥의 땅과 헤스본 왕 시혼의 땅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정복하게 하셨다.

이 두 왕에게 행하신 모든 일을 여호수아의 눈으로 보았다.

 

네가 가는 가나안 땅 모든 나라에도 여호와께서 이렇게 행하실 것이다.

그러니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친히 너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다.

 

하나님은 역사의 현장을 직접 다스리시고 하나님의 구원 목적을 향하여 운행하신다.

그 일을 사람을 통하여 하신다.

모세를 썼고 이제는 여호수아를 쓰고자 하신다.

 

하나님은 사람을 역사와 섭리 속에서 준비케 하여 쓰신다.

모세는 왕궁에서 40, 광야에서 40년 준비케 하여, 출애굽 40년의 역사를 감당케 하셨다.

요셉도 가정에서 17, 노예생활 감옥생활 13년을 준비케 하여, 30세부터 110세까지 쓰셨다.

우리도 준비 기간이 있고 쓰시는 기간이 있음을 믿자.

아브라함은 75세 때에 부르셨고, 모세는 80세 때였다.

요셉과 다윗은 30세 때 쓰셨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고 하나님의 때가 중요하다.

그 때와 기한은 오직 하나님의 주권에 속하여 우리는 알 수가 없다.

우리의 종말과 연한도 알 수가 없다.

 

우리는 신실하시고 자비하신 하나님을 믿고 그분의 섭리 속에서 오늘을 살 뿐이다.

과거에 하신 일을 보고 앞으로 하실 일을 약속으로 바라보고 소망하고 인내할 뿐이다.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너희 각 사람이 동일한 부지런함을 나타내어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러 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 되게 하려는 것이니라”(6:11-12)

 

하나님이 과거에 하신 일과 약속을 붙들고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러야 한다.

지금 놓여진 환경 때문에 실망하거나 낙심하지 말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

때가 이르매 거둘 것을 믿어야 한다.

그 하나님의 때까지 게으르지 말고 변함없는 부지런을 유지하고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아야 한다.

 

2. 쓰임 받았으면 넘겨줄 줄 알아야 한다.

 

너는 여호수아에게 명령하고 그를 담대하게 하며 그를 강하게 하라

그는 이 백성을 거느리고 건너가서 네가 볼 땅을 그들이 기업으로 얻게 하리라 하셨느니라”(3:28)

 

하나님은 여호수아를 모세 밑에서 40년 동안 그의 시종으로써 훈련 받으며 준비하게 하셨다.

그리고 때가 되니 하나님은 모세의 리더십을 여호수아에게 넘기게 하셨다.

모세는 순종하였고, 여호수아를 담대하게 하고 강하게 하여 리더십의 바톤을 넘겼다.

 

여호와의 종 모세가 죽은 후에 모세의 수종자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이 모든 백성과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그 땅으로 가라고 하셨다.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을 약속하셨고 그렇게 하셨다.(1

 

인류 역사는 왕권이든 무슨 권력이든 너무 오래 갖고 있으면 부패하고 망하는 것을 보아 왔다.

그래서 지도자를 뽑는 선거를 고안하고, 임기를 정하였다.

그런데도 그 자리에 올라가면 내려 올 줄을 모른다.

장기집권 독재를 하다 본인도 비극적인 종말을 고하고, 나라와 민족도 쇠망하게 한다.

 

모세가 구하는 것은 그의 장기집권을 구하는 것이 결코 아니었다.

주 여호와여 주께서 주의 크심과 주의 권능을 주의 종에게 나타내시기를 시작하셨사오니

천지간에 어떤 신이 능히 주께서 행하신 일 곧 주의 큰 능력으로 행하신 일 같이 행할 수 있으리이까

구하옵나니 나를 건너가게 하사

요단 저쪽에 있는 아름다운 땅, 아름다운 산과 레바논을 보게 하옵소서”(3:24-25)

 

우리는 우리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확실히 알고 신뢰하고 의지하여야 한다.

주의 크심과 주의 권능을 주의 백성들에게 나타내시는 분이시다.

천지간에 어떤 신도 주께서 행하신 일 곧 주의 큰 능력으로 행하신 일 같이 행할 수 없다.

 

출애굽의 역사 속에서 이스라엘과 나라들에 하나님이 큰 능력으로 행하신 일은

세상에서 불러내 구원의 역사 속에서 우리와 나라들에게 동일하게 행하시는 일임을 믿어야 한다.

우리에게 영원한 나라를 기업으로 주시고 영원한 영광을 함께 누리게 하셨다.

 

이 땅에서도 우리는 그 영광과 축복의 맛을 보고, 주의 성실함을 맛보아 알게 되고,

이 땅에서도 천국을 누리고 살다가 영원한 영광의 나라에서 영원한 천국을 살게 될 것이다.

이 땅에서도 하나님은 섭리와 계획 가운데서 우리를 이끌고 눈동자 같이 보호하심을 믿으라.

 

모세가 원하는 것은, 건너가게 하셔서 요단 저쪽에 있는 아름다운 땅과 산을 보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모세가 백성들을 위해서 하는 기도는 다 들어주셨지만 하나님은 자기를 위한 간구는 들어주지 않으셨다.

그의 간구를 거부하신 데에는 심판의 요소가 있었고, 또한 진노의 요소도 있었다.

 

여호와께서 너희 때문에 내게 진노하사 내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26)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서 죄를 보실 뿐 아니라 그것에 대해 심히 불쾌히 여기신다.

진노하셔서 고난의 징계를 주시기도 하시고 받을 축복과 은혜를 거부하시기도 하신다.

 

순종하는 자에게 은총의 표적도 주시지만, 거역하는 자에게 진노의 증표도 주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 받았지만 두렵고 떨림으로 이뤄가야 할 구원이 있다.

우리의 인격과 삶에서 주님을 닮고 주님의 향기를 풍겨야 할 의무가 있다.

 

주님의 십자가의 공로로,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았으면, 이제는 성화를 이루어가야 한다.

축복과 영광은 성화의 열매이고 상급이지, 탐심과 뛰는 발의 결과가 아니다.

원함으로도, 달음질로도 얻을 수 없는 것이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이다.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9:16)

하나님은 은혜로우시고 부드러우시며 사랑을 베푸시는 아버지이시다.

그러나 그분은 그의 자녀들이 곁길로 빠질 때에 화를 내시며

그들이 바라고 구하는 많은 것들을 주시지 않으시는 것이다.

 

너희 때문에 내게 진노하셨다고 모세는 말씀한다.

그에 대해 시편 106편을 이렇게 해설하고 있다.

그들이 또 므리바 물에서 여호와를 노하시게 하였으므로 그들 때문에 재난이 모세에게 이르렀나니

이는 그들이 그의 뜻을 거역함으로 말미암아 모세가 그의 입술로 망령되이 말하였음이로다”(32,33)

 

므리바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물이 없다고 원망 불평할 때에

하나님은 반석에게 명령하여 물을 내라고 하였는데,

모세는 반석을 두 번이나 지팡이로 치면서 내가 하는 것처럼 망령되이 말하였다.

반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하고

모세가 그의 손을 들어 그의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치니”(20:10-11)

 

그것이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않은 죄라고 하셨다.

이로 인하여 아론도 모세도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였다.

네 형 아론이 돌아간 것 같이 너도 조상에게로 돌아가리니 이는 신 광야에서 회중이 분쟁할 때에 너희가 내 명령을 거역하고 그 물 가에서 내 거룩함을 그들의 목전에 나타내지 아니하였음이니라 이 물은 신 광야 가데스의 므리바 물이니라”(27:14)

 

또한 그 시점에서 모세를 죽게 하시는 것은 그들의 죄에 대한 책망이요 형벌이기도 하였다.

또한 모세라 할지라도 허물에 대해서는 징계를 받는다는 것을 보고서 경고를 받게 함이기도 하였다.

어느 때든 감정적이고 불신앙적인 말로써 하나님을 거스르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교훈이기도 했다.

 

푸른 나무에게 이같이 하거든 마른 나무에는 어떻게 하리요?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은 어떠하며

또 의인이 겨우 구원을 받으면 경건하지 아니한 자와 죄인은 어디에 서리요”(벧전4:17-18)

 

모세는 여호와의 온 집에 충성한 종이었으나 그의 마지막 간구한 것은 받지 못하였다.

다윗도 밧세바와의 첫 아들을 살려달라고 금식하여 구하였지만 받지 못하였다.

그러나 히스기야는 죽음을 선고받고도 울며 기도하여 수명을 15년 연장을 받기도 하였다.

 

모세는 그러한 경우가 아니었지만, 기도하며 우리가 명심할 것이 있다.

마음에 죄악을 품은 자들은 주께서 들을 리가 없고(66:18),

사람이 귀를 돌려 율법을 듣지 않으면 그의 기도도 가증하다(28:9)는 것이다.

 

마음엔 죄악을 품고 살면서, 하나님의 말씀은 귀로 듣기 싫어하면서, 제 요구는 들어달라?

뭔가 앞뒤가 안맞는 것 같지 않은가?

하나님께 책망할 것이 없도록 살면서 담대히 구해야 하지 않겠어요?

 

3. “그만해도 족하니하시면 족한 줄 알아야 한다.

 

그만해도 족하니 이 일로 다시 내게 말하지 말라 너는 비스가 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눈을 들어 동서남북을 바라고 네 눈으로 그 땅을 바라보라 너는 이 요단을 건너지 못할 것임이니라”(3:26-27)

 

그만해도 족하니 이 일로 다시 내게 말하지 말라.

엄히 명하여 모세의 마음을 진정시키신 것이다.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우리가 바라는 것을 주시지 않아도 그분이 은혜 주시면 그걸로 족한 것이다.

 

그만해도 족하니. 네가 바라는 모든 것을 이 세상에서 다 누리지 못해도, 하나님을 네 아버지로 모시고 천국을 네 기업으로 소유하고 있으니, 이것으로 만족하라. 하나님 한 분으로 족하도다

이런 뜻일 수 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요단을 건너가는 것은 허락하지 않으셨지만,

의인의 간구를 들으셔서 보기 원하는 산과 땅을 눈으로 보게는 하셨다.

모세에게 비스가산 꼭대기에서 가나안을 바라보도록 해 주실 것을 약속하셨다.

 

모세는 비록 그 땅을 소유하지는 못하였지만, 그 땅을 바라볼 수는 있었다.

봄으로써 그에게 만족을 주고 약속한 땅에 대하여 선명하고도 유쾌한 생각을 가질 수 있게 하셨다.

대충 바라보게 하신 것이 아님을 신명기 마지막 장에서 우리는 알 수 있다.

 

모세가 모압 평지에서 느보산에 올라가 여리고 맞은 편 비스가 산꼭대기에 이르매 여호와께서

길르앗 온 땅을 단까지 보이시고 또 온 납달리와 에브라임과 므낫세의 땅과 서해까지의 유다 온 땅과 네겝과 종려나무의 성읍 여리고 골짜기 평지를 소알까지 보이시고”(34:1-3)

 

망원경도 없던 시대에 망원경으로도 볼 수 없는 가나안 땅 전체를 한 눈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셨다.

모세는 죽을 때에 나이 백이십 세였으나 그의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다.

가나안 땅을 볼 수 있도록 그의 눈을 형형하게(광채가 나며 빛나다) 하셨는지도 모른다.

 

그만해도 족하니.

우리가 믿음 생활하면서 꼭 기억해야 할 하나님의 말씀이다.

우리가 욕심으로가 아니고 선한 뜻으로 간절히 바라는 것들이 있다.

 

저도 간절히 하나님께 구하는 것이 있다.

황폐해진 이스라엘처럼 된 한가족교회를 다시 일으켜 세우고

청교도 신학으로 가르치는 청교도 아카데미를 세우는 것이다.

 

오직 순전한 말씀으로, 성령의 부으심으로, 성결한 삶으로, 이 둘을 세우는 것이 간절한 소원이다.

수만 채우는 부흥이 아니라,

성령을 부어주심으로, 거듭남과 회심의 부흥으로, 성결한 삶의 응답으로 세우는 것이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그만해도 족하니하시면 접고 은혜에 만족하면서 떠나가야 한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그리 아니하실지라도하면서 불속에 들어가는 길을 택했다.

바울은 자기 육체에 주신 가시를 떠나게 해달라고 세 번 간구하였지만, 하나님께서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이 한 말씀에 크게 기뻐하고 자기의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였다.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의 약한 데서 온전하여지고 머무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고후12:10)고 하였다.

그만해도 족하니”,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와 간구를 하면서 꼭 기억해 두어야 할 말씀이다.

하나님이 결코 우리를 버리지도 않으시고 떠나지도 않으신다고 약속하신다.

그러니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족한 줄로 알라고 하신다.

 

땅의 것을 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면 모든 것을 더하신다고 하신다.

바울은 어떠한 형편에 있든지 자족하기를 배웠다고 한다.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4:11-13)

 

우리도 이렇게 고난을 통해 일체의 비결을 배울 수 있기를 바란다.

풍부할 때도 궁핍할 때도 흔들리지 않고 지혜롭게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이다.

그러다가 하나님이 때가 되어 능력 주시면 우리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모세의 40년 광야 생활의 상징인 그의 지팡이가 하나님의 지팡이가 되어 능력을 발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