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라일

존 라일, 「곧은 길」, 제3장, 실천적 신앙 (김영희 강의안2)

강대식 2015. 6. 8. 05:55

 

3 장 실천적 신앙

 

내어버린 은이라 칭하게 될 것은”(6:30)

잎사귀 외에 아무것도 없더라”(11:13)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요일 3:18)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3:1)

 

우리의 신앙은 실제적이어야 한다. ‘실제적인신앙은 내적이며, 견고하며, 본질적이며, 고유한 것이며, 살아 있으며, 영속적인 것이다. 실제에 대한 결핍은 현 시대에 있어서 신앙의 현저한 특성을 이루고 있다.

 

1. 신앙에 있어서 실제의 중요성을 보여주고자 한다.

 

많은 사람들은 실제의 중요성을 충분히 확신하고 소유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들의 심성의 선함을 의심하면 그들은 무자비하고 가혹하고 비판적이라고 말을 한다. 저는 사람들에게 실제적이지 못한 것은 그리스도인들이 조심해야 하는 가장 큰 위험이라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다. 성경으로 눈을 돌리고 신앙에 있어서 실제의 중요성과 실제적이지 못한 것의 위험에 대해 부정해 보라.

 

1)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것을 살펴보자

씨 뿌리는 자의 비유, 곡식과 가라지의 비유, 그물의 비유, 두 아들의 비유, 결혼예복의 비유, 두 건축자의 비유, 달란트의 비유, 혼인잔치의 비유, 므나의 비유, 열 처녀의 비유들은 공통적으로 하나의 주된 주제를 가지고 있다. 이것들은 신앙에 있어 실제와 실제 아닌 것의 차이에 대한 현저한 특성을 나타낸다. 이것들은 모두 실제가 아니며, 온전한 것이 아니며, 진실한 것이 아닌 기독교적 신앙에 대한 위험성을 보여 주는 것이다.

 

2) 서기관과 바리새인에 관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살펴보자.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23:33) 이 엄청나고 강한 표현에서 무엇을 깨닫는가? 창녀나 세리보다도 더 도덕적이고 점잖은 사람들에게 그렇게 신랄한 단언들을 우리의 은혜롭고 자비로우신 주님께서 사용하셨다는 것은 어찌된 일인가? 무절제한 방탕과 육체적 정욕에 대해 스스로 복종하는 일은 그 일을 버리지 않는 한, 그것이 파멸에 이르는 죄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위선과 실제적이지 못한 일을 가장 불쾌하게 생각하신다.

 

3) 하나님의 말씀 속에 표현된 허울을 발견하지 못하는 한,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가지는 특성인 은혜는 거의 효력이 없다는 놀라운 사실을 살펴보자

참된 신자는 외적으로 어떤 특징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실제적이지 못한 회개가 있다. 사울, 야합, 헤롯, 가롯 유다는 죄에 대해 대단히 비통해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실제적으로 구원에 이르는 회개는 한 적이 없다. 실제적이지 못한 믿음이 있다. 사마리아 성에 마술사 시몬도 믿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옳지 않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실제적이지 못한 거룩이 분명히 있다. 가롯 유다의 외적인 삶은 그가 주님을 배반하는 시간까지 다른 사도들과 같이 올바른 것이었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는 그는 도적이었고 반역자였다. 실제적이지 못한 사랑과 자비가 있다. 마음으로는 전혀 사랑하지 않으면서 입으로는 사랑을 말할 수 있다. 실제적이지 못한, 거짓으로 꾸며진 겸손, 형식적인 예배, 형식적인 기도도 분명히 있다. 이러한 것들은 기독교적 신앙이 단지 유명무실하며, 형식적이며, 실제적이지 못하며, 속된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를 명백히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신도들은 교리에 관해서 생각하지 않으며, 느끼지 않으며, 주의하지도 않으며, 아무것도 아는 바가 없다. 이러한 신도들의 신앙이 실제적인 기독교적 신앙인가? 그 신앙은 교회주의이며 더 이상 아무것도 아니다. 가끔 순수한 복음에 대해 상당한 애정을 고백하는 신자들을 보게 되는데, 그들은 자신들의 믿음의 건전함을 떠들어대며 이교도들에 대해 날카로운 비난을 가한다. 이들은 유명한 설교자들을 열심히 쫓아다닐 것이며, 복음의 구절에 정통하고 중요한 교리도 거침없이 말할 것이다. 이런 이들을 공적인 모임에서나 교회에서는 경건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들은 신앙적인 조직과 신문지상에 열중하고 있거나, 이교도들조차 부끄러워하는 일을 가끔 행할 것이다. 그들은 진실치 못하며, 정직하지 않으며, 이기적이고 야비한 속임수를 쓰는 것이다. 현대의 많은 신앙부흥 운동가들의 신앙이 얼마나 실제적이지 못하는가? 허울뿐인 신앙고백자들을 양산하고 있다. 이들의 신앙은 요나의 박 넝쿨과 같은 것으로 뿌리도 없고 생명력도 없다.

 

2. 자신의 신앙이 실제적인지 증명할 수 있는 약간의 시험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당신의 마음속에 자신이 교회에 다닌다면 모든 것이 올바르다는 상식적인 생각을 없애버리라. 진실로 찾고자 한다면 이것보다 더 멀리 더 높이 더 깊게, 그리고 높이 바라보아야 한다. 이것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 당신의 삶의 문제이다.

1) 당신의 신앙이 실제적인 것인지 알고 싶다면, 당신의 속사람 안에 자리 잡고 있는 그 장소로 시험해 보라 - 머리로 생각하는 신앙으로는 충분치 않다. 입술의 고백하는 신앙으로는 충분치 않다. 또한 감정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당신의 신앙이 실제이고 성령에 의해 주어졌다면 신앙은 당신의 마음속에 있어야 한다. 신앙은 사랑을 지휘해야하고 의지를 이끌어 나가야 한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당신의 신앙이 실제적인 것인지 진실된 것인지 의심하는 것이 지당하다.

 

2) 당신의 신앙이 실제적인 것인지 알고 싶다면, 당신이 신앙으로 인해 느끼는 죄에 대한 감정을 시험해 보라 - 기독교적 신앙은 죄를 결점이나 불행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인간의 동정이나 연민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기독교적 신앙은 죄를 하나님의 저주와 분노를 마땅한 것으로 본다. 죄를 모든 슬픔과 불행의 원천으로 보며 저주받은 것이라고 본다. 무엇보다도 속죄하지 않는 한 우리는 죄로 말미암아 영원히 파멸하게 될 것을 알고, 죄와 맞서 싸우고 미워하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당신의 신앙이 실제적인지 의심하는 것이 지당하다.

 

3) 당신의 신앙이 실제적인지 알고 싶다면, 당신의 신앙이 가지는 그리스도에 대한 느낌을 시험해 보라 - 실제적인 신앙은 구속자요, 구원자요, 제사장이요, 친구요, 중보자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신뢰와 사랑, 기쁨, 평안을 가지며 그리스도가 없이는 전혀 희망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한다. 그렇지 않다면 당신의 신앙이 실제적인지 의심하는 것이 지당하다.

 

4) 당신의 신앙이 실제적인 것인지 알고 싶다면, 당신의 마음과 삶에 있어 신앙의 열매를 시험해 보라 - 기독교 신앙은 항상 열매로 나타난다. 마음속에서 회개, 믿음, 소망, 자비, 겸손, 영성, 자기 부정, 용서, 절제, 정직, 인내로 나타난다. 그렇지 않다면 당신의 신앙이 실제적인지 의심하는 것이 지당하다.

 

5) 당신의 신앙이 실제적인지 알고 싶다면, 은혜 받는 수단에 대한 당신의 느낌과 습관을 시험해 보라 - 당신은 주일이 근심되고 거북한 날인가? 아니면 기쁘고 마음을 새롭게 하는 날인가? 설교에 대해, 찬양에 대해 그리고 성찬에 대한 당신의 느낌과 태도는 어떠한가? 기도로 하나님과 대화를 하거나 성경을 규칙적으로 읽는 것이 평온하게 만드는 본질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가? 이런 수단들이 당신의 영혼에 필요치 않다면 당신의 신앙이 실제적인지를 의심하는 것이 지당하다.

 

언급한 다섯 가지의 사항으로 판가름하되 공정하고 솔직히 시험해 보라. 만일 당신의 마음이 옳지 않다면 빨리 발견할수록 좋을 것이다.

 

3. 맺는 말(적용)

 

1) 첫 번째로 적용시켜 주기를 바라는 단어는 하나의 물음표이다.

자신의 기독교 신앙은 실제적이고 참된 것인가? 아니면 이름뿐인 신앙인가? 당신이 생명을 사랑하고 있다면 현재 당신 앞에 놓인 문제를 외면하지 말라. 모든 진실이 밝혀지는 날이 오고야 만다. 확신하건대 현재 당신의 상태를 발견하고 회개하는 것이, 회개할 여지도 없는 내세에서 너무 늦게 발견되는 것보다는 훨씬 나은 것이다. 당신의 손에 성경을 놓으면 잘 나타날 것이다. 그때에 실제적이지 않은 부분을 찾아낼 결심을 하라.

 

2) 두 번째로 적응시켜 주기를 바라는 단어는 경고이다.

진리는 하나님의 속성이다. 당신은 잠시라도 순수하지 않고 참된 것이 아닌 모든 것을 하나님이 몸서리치도록 싫어하신다는 것을 부인할 수 있는가? 마지막 심판 날에 허울뿐인 신앙을 가진 것으로 알려지는 것보다 무지한 이교도로 알려지는 것이 나은 것이다. 그런 신앙은 소멸해 버릴 것이며, 파괴될 것이며, 조수의 영향을 받지 않는 뭍에 올려 지거나 모래톱 위의 난파선처럼 그 주인을 떠나게 될 것이다. 그런 신앙은 위안이 가장 절실한 때에, 환난의 시기에 그리고 죽음의 침상에서도 위안을 주지 못할 것이다.

 

3) 세 번째로 적용할 단어는 충고이다.

양심의 괴로움을 느끼는 자들에게, 신앙을 소홀히 다루거나 희롱하는 것을 그치고, 정직하고 완전하게 온 마음을 다하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추종자들이 되기를 충고한다. 그에게 당신의 구세주, 치유자, 제사장, 친구가 되어 달라고 간구하라. 당신이 영혼을 주께 맡기기만 한다면, 그리스도께서는 어떠한 많은 죄로부터라도 당신을 깨끗하게 하실 수 있다. 그러나 주께로 오는 사람들에게 주 예수는 실제적이고 정직하고 참됨을 요구하고 계신다. 당신의 회개가, 믿음이 연약할지 모르나 실제적이게 하라. 그러면 은혜로부터 영광에 이르는 여행 중에 당신의 영혼과 함께 할 것이다.

 

4) 마지막으로 적용할 단어는 격려이다.

용맹스럽게 십자가를 지고, 충실히 그리스도를 따르려는 모든 이들에게 말한다. 굽히지 말고 끝까지 하라고 격려하며 역경과 반대로 인해 동요되지 말기를 바란다. 당신과 함께하는 적은 수의 사람들과 당신에게 반대하는 많은 사람들을 발견할 것이다. 가끔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거나 극단주의라는 말을 듣게 될지도 모른다. 이런 종류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말라. 앞으로 나아가라.

인간이 완전하고 충실히 진실하고 정직하게 그의 마음을 다하여 해야 하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그의 영혼에 관한 일이다. 비방해서는 안 되고, 되는 대로 해서도 안 되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자신의 구원을 이루는 큰 일이다.(2:12) 세상에서 인간이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는 것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일이다.

 

우리의 삶은 빠르게 지나가고 있다. 금년이 생애의 마지막일지 누가 알겠는가? 항상 준비하는 자가 되고 싶다면, 실제적이고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하라. 세속적이 되지 말라. 오직 실제만이 시련을 견딜 수 있는 시기가 급히 다가오고 있다. 하나님께로의 실제적인 회개, 주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실제적인 믿음, 마음과 삶에 있어서 실제적인 거룩함, 이러한 것이 마지막 날에 홀로 이 세상 풍조를 견딜 수 있는 것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다음과 같이 엄숙하게 말씀하셨다.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너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7:2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