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라일

[스크랩] 존 라일, 「곧은 길」, 제4장, 기도는 거룩의 비결이다 (강의안3)

강대식 2015. 6. 8. 09:04

4 장 기도

 

항상 기도하고”(13:1)

각처에서 남자들이...기도하기를 원하노라”(딤전 2:8)

 

기도는 실천적 신앙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주제이다.

1. 기도는 인간의 구원에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받는다는 것을 강력이 주장한다. 그러나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지 않고서 구원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성경에서 보지 못했다. 진실하게 마음으로 원하지 않으면서 입술로만 구원을 말하는 사람이 죄사함을 받았다는 것 또한 찾아볼 수 없다. 성경을 읽는 것, 설교를 듣는 것이 구원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아니다. 학식이 없고 장님일 수도 있고 듣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기도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스스로 회개하여야 하고, 스스로 그리스도께 의탁해야 하며, 스스로 하나님께 말하고 기도해야 한다. 구원이 마침내 완성될 때, 성도들은 한 목소리로 그리고 한 마음으로 영광스러운 노래를 부를 것이다. 그 노래에는 어떤 불협화음도 없을 것이다. 우리는 기도의 훈련을 충분히 받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찬양의 축제에 합당한 자가 되지 못할 것이다. 요컨대 기도 없이 산다는 것은 하나님 없이 사는 것이며, 은혜도, 소망도, 천국도 없이 사는 것이다.

 

2. 기도하는 습관은 참된 그리스도인의 특징이다.

생명의 최초의 신호로 호흡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거듭나게 될 때 최초의 행위는 기도하는 것이다. 성경에 경건한 사람들의 특징으로서 아버지를 부르며”(벧전1:17),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고전1:2)이라는 것을 찾아 볼 수 있다. 성경 시대 이후에 살았던 많은 훌륭한 그리스도인들의 삶을 살펴보면, 한 가지 공통점은 모두 기도하는 사람들이었다. 열의도 없이 위선적인 기도를 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기도하지 않은 사람은 아직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주장한다. 기도하지 않은 사람은 정말로 죄인임을 느낄 수 없고, 거룩함을 추구할 수도 없다.

진심으로 기도할 때에는 성령이 함께 한다. 주님께서는 참된 회심의 가장 훌륭한 증거로서 기도를 말씀하셨다. 아나니아를 다메섹에 있는 사울에게 보낼 때 아나니아에게 저가 기도하는 중이다”(9:11)라는 것 외에는 사울의 회심에 대한 어떤 다른 증거도 말하지 않으셨다. 믿음의 최초의 행위는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다. 믿음과 영혼의 관계는 호흡과 생명에 대한 관계와 같다. 살아 있는 사람이 호흡하지 않은 것을 상상할 수 없듯이 믿는 사람이 기도하지 않는 것도 상상할 수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에 관해서 말할 수 있는 것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여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3. 신앙에 있어서 개인적인 기도만큼 무시되고 있는 의무도 없다.

기도를 해야 한다는 것은 하나님과 우리의 영혼 사이의 은밀한 계약이다. 그러므로 아무도 보지 않는다고 해서 무시해 버리기 쉽고 하지 않고 남겨두게 하는 유혹이 많다. 저는 많은 사람들이 전혀 기도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그들은 죽어가는 동물처럼 살고 있다. 영혼이 없는 피조물처럼 행동한다. 그들의 생명과 호흡과 그 밖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는데도 하나님께 할 말이 없다. 기도를 단순히 의미를 생각하지 않고 기계적인 단어의 나열로 생각하며 중얼거리는 사람이 있다. 입술을 움직이고 혀를 움직인다 할지라도 진실이 담겨 있지 않은 내용에 대해서 하나님은 귀를 기울이시지 않는다. 즉 그것은 기도가 아니다.

육적인 마음은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 인간의 마음의 소원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이며, 하나님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것이다. 그의 감정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아니라 공포일 뿐이다. 왜 사람들은 죄인임을 느끼지도, 영적인 갈구도, 믿음도 없는 상태에도 기도해야만 하는 것인가? 그들은 넓은 길을 걸어가고 있으며, 그래서 기도하는 사람이 드물다고 말하는 것이다. 기도하는 것과 죄를 행하는 것은 결코 동일한 마음에서 나올 수 없다. 기도는 죄를 소멸시키고 죄는 기도를 못하게 한다.

 

4. 기도는 가장 크게 용기를 북돋아주는 신앙의 행동이다.

기도는 하나님의 편에서는 얼마든지 쉽게 할 수 있도록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다”(14:17). 기도하지 않는 자는 아무런 변명도 할 수 없다. 예수의 이름은 우리가 기도하는 데 있어서 부족함이 없는 수단이다. 하나님께서는 누구라도 그 이름으로 하는 기도는 들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이것을 생각해 본다면 이 또한 대단한 격려가 아니겠는가?

예수께서는 그 자신의 전지전능한 중보로 우리의 기도를 향기롭게 하신다. 아담의 불쌍한 자손들이 하는 기도는 그 자체는 보잘 것 없는 것이지만 주 예수의 손에 의해서 대단한 가치가 있게 된다. 주 예수는 사랑과 은혜를 원하는 모든 사람들이 호소하도록 항상 듣고 계신다. 그들을 돕는 것이 예수의 임무이다. 그들이 하는 기도가 예수를 기쁘게 한다. 이것을 생각해 본다면 이 또한 커다란 용기를 주는 것이 아니겠는가?

우리가 기도할 때 성령이 우리의 연약함을 도와준다. 우리의 연약함을 돕는 것이 성령이 하는 특별한 임무이다. 성령은 그의 도움을 구하기만 한다면, 우리로 하여금 말할 수 있게 한다. 성령은 우리에게 살아 숨 쉬는 생각과 말을 줄 것이다. 틀림없이 주의 백성들의 기도는 누군가에 의해 듣게 되기를 기대할 수 있다. 이것을 생각한다면 이 또한 커다란 격려가 아니겠는가?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지극히 크고 귀중한 약속이 있다. 한밤중의 친구의 비유와 끈질긴 과부의 비유로 말씀하신(11:5, 18:1)것과, 7:7-8, 21:22, 14:13-14 같은 성경구절은 기도하라는 격려가 아니라면 이 말씀들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11:5, 18:1) 기도는 불가능하고 힘이 미치지 못하는 것들을 성취한다. 기도는 불과 하늘과 땅과 물위에서 승리했다. 기도는 홍해를 건너게 했고, 바위에서 물과 하늘에서 만나를 가져왔으며, 태양을 멈추게 했고, 하늘로부터 불을 가져왔다. 스코틀랜드의 메리 여왕조차도 나는 만 명의 군사보다도 존 낙스의 기도가 더 두렵다라고 말했다. 이것을 생각해 본다면 이 또한 얼마나 커다란 격려인가?

신앙생활에 필요한 어떤 단계를 거치기 위해서 기도만큼 필요한 것이 있겠는가? 지옥에 있는 마귀에게 기도문을 활짝 열어놓는다면, 그들은 즐겁게 들어가 지옥마저도 기쁨으로 가득 차게 될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그러한 영광스러운 커다란 격려를 무시한다면 마지막으로 어디서 숨을 곳을 찾겠는가?

 

5. 열심히 기도한다는 것은 거룩하게 되는 비결이다.

하나님의 군대 안에서 가장 앞선 자와 가장 뒤쪽에 있는 자 사이에 대단한 격차가 있다. 모두 똑같이 선한 싸움을 하지만 그 중에서 보다 더 열심히 싸우고 있는 자들이 있다. 회심의 순간부터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는 주님의 백성들이 있다. 그들은 어린 아이와 같이 젖만 원하고 단단한 음식은 싫어하며, 말씀은 배웠지만 기초적인 낮은 수준에 머물러 그 이상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들의 떡은 항상 마르고 곰팡내가 나며, 그들의 신발은 항상 낡아 기운 것이며, 그들의 옷은 항상 낡아 찢겨져 있다.(9:4-5)

반면에, 항상 계속해서 발전하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있다. 그들은 더욱 은혜 받게 되며, 믿음이 더 하며 더욱 강해진다. 그들은 신앙이 실제적임을 보여줄 선한 증거를 갖게 될 뿐 아니라 열심히 일한다. 그들은 선을 행할 뿐 아니라 선을 행하는 데 있어서 결코 낙심하지 않는다. 그들은 넘어지면 다시 일어선다. 그리고 항상 스스로를 가련하고 무익한 종이라고 생각하며,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들은 세상의 이기적인 사람에게도 칭송을 얻는다.

 

그들이 거룩한 생활을 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그 차이점은 무엇인가? 거의 대부분의 경우에 개인적으로 기도하는 습관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다수의 사람들은 두드러지게 거룩하게 되는 일이 오직 소수의 사람들만 추구할 수 있는 특별한 은사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께 회개할 때, 그가 거룩한지의 여부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방법을 얼마나 열심히 사용했는가에 달려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신자들이 거룩하게 되었던 방법은 바로 개인적으로 성실하게 기도하는 습관이라고 자신 있게 주장한다. 위대하게 살았던 하나님의 종들의 생애를 살펴보라. 어떤 순교자들도 개인적인 기도 없이 하나님과 동행한 예를 성경에서 찾아볼 수가 없다. 기도는 곧 능력이다. 가장 많이 기도하는 사람에게 성령께서는 가장 많이 감화를 주신다. 기도는 마귀와 넘어지게 하는 죄에 대한 확실한 치료책이다. 우리는 그리스도 앞에 엎디어 우리를 괴롭히는 마귀를 끌어내어 지옥으로 되돌려 보내기 위해서 그리스도께 기도해야만 한다. 기도의 가치를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6. 기도를 소홀히 하는 것은 타락의 큰 원인이다.

훌륭한 신앙고백을 한 후에도 신앙생활에서 다시 뒤로 후퇴하는 것이 있다. 베드로가 그러했던 것처럼 감정이 격한 동안에만 큰 소리로 신앙을 고백하다가, 시련의 때에는 주님을 부인해 버린다. 사도를 따르다가 세속으로 되돌아가버린 데마처럼 되어버릴 수도 있다. 타락하는 것은 비참하고 슬픈 일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지옥이다.

마음이 패려한 자는 자기 행위로 보응이 만족하겠고 선한 사람도 자기 행위로 그러하리라”(14:14)

 

타락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일반적으로 개인적인 기도를 소홀히 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기도하지 않고 하는 모든 것은 영적으로 마비되는 상태에 도달하는 단계이며, 그 지점에서 하나님께서는 기도하지 않는 자에게 큰 실패를 맛보게 하신다. 이러한 까닭으로 롯은 망설이게 되었고 삼손은 마음이 침착치 못하였으며 솔로몬은 우상을 섬기는 아내를 얻게 되었다. 베드로는 깨어 기도하라는 주님의 경고를 무시하다가 유혹의 한 순간에 주님을 부인해 버린다. 그들은 개인적으로 타락한 후에 공공연하게 타락하게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타락하기를 원치 않는다면 기도하는 일을 잊지 말라.

 

7. 기도는 행복과 만족감을 구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우리는 슬픔이 만연한 세상에 살고 있다. 죄가 세상에서 사라질 때까지는 누구도 슬픔에서 벗어날 수 없다.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하고 관계를 맺는 모든 것들이 근심의 원천이다. 우리의 애착이 커질수록 고통은 더욱 깊어진다. 슬픔 많은 세상에서 즐겁게 살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이겠는가? 기도로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습관이야말로 최선의 방책이라고 생각한다.(50:15, 55:22, 4:6-7, 5:13) 기도로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일은 성경에 나타난 모든 성도들이 실행했던 일이다.

기도로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은 신자들을 때때로 슬프게 하는 무거운 짐을 벗어버리는 것이다. 하나님께 근심걱정을 말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삼손이 가사의 성문에서 하셨던 것처럼 그들이 쉽게 그 고통을 견디어 낼 수 있게 하신다. 스스로 자신을 지키기로 결심한다면 메뚜기조차도 짐이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12:5) 우리와 똑같은 사람처럼 33년을 사셨던 우리의 친구이신 예수께서는 믿고 호소하는 자들이 어떤 처지에 놓여 있든지 간에 우리를 행복하게 하실 수 있다. 마음의 평화를 주시고, 만족함을 주시며, 위로를 주시며, 기쁨도 주신다. 기도하는 모든 사람에게 아낌없이 주는 것이다.

기도하는 사람들은 행복하게 되는 것이 그들이 처한 상황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상태에 달려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기도는 우리가 겪는 시련이 아무리 힘들다 하더라도 견딜 수 있게 한다. 기도는 시련을 견디어내도록 도와줄 사람을 불러올 수 있다. 기도는 가는 길이 막힐 때 출구를 찾게 한다. 기도는 미래의 가능성이 암담해졌을 때 희망의 빛을 비추어 줄 수 있다. 기도하는 사람들은 광야에서 방황하는 하갈이 근처에 흐르는 샘물을 찾을 수 없었던 것과는 달리 길을 찾게 된다.

 

8. 맺는 말(적용)

1) 기도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당신이 매우 위험한 상태에 처해 있다고 경고한다. 기도는 신앙생활에 가장 단순한 행위이다. 어린 아이는 배고프면 운다. 배고픈 거지도 구걸하기 위해서 손을 내밀 뿐이지 훌륭한 말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 가장 무지한 사람조차도 마음만 있다면 하나님께 말을 하게 될 것이다. 어떤 장소라도 은밀한 골방이 될 수 있으며 벧엘이 될 수 있다. 기도할 시간이 없다고 말하는 것도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기도하지 않는 자여, 당신은 누구이며 무엇이길래 하나님께 아무것도 구하지 않는가? 죽음과 지옥과 어떤 계약이라도 맺었는가? 사람들이 오 주여! 주여! 문을 열어주소서라고 크게 기도할 때가 오겠지만 그때는 이미 때가 늦어 많은 사람들이 바위야 우리에게 떨어져라 언덕아 우리를 덮어라라고 외치게 될 것이다.

 

2) 진심으로 구원을 갈망하는 자이지만 어떠한 절차를 따라야 하며 어디서부터 시작하는지를 알지 못하는 자에게 말하고 싶다.

모든 건물에도 첫 번째 돌을 놓아야 하고 첫 번째 망치질이 있어야 한다. 성령이 사람의 마음에 나타나기 시작할 때는 언제이겠는가? 그때는 기도로 하나님을 향하여 자신의 마음을 처음으로 쏟아놓을 때이다.

바로 이 순간 은밀한 장소를 찾아서 주 예수 그리스도께 영혼을 구원해 달라고 간구해야 한다. 주님께 당신 자신의 언어로 기도하라. 아플 때 의사에게 어디가 아픈지를 얘기하듯이 영혼이 고통을 느낀다면 무엇을 이야기해야 하는지 알 수 있다. 더듬거리거나 표현력이 부족하다고해서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 어머니는 아이의 옹알이도 알아들을 수 있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신음소리, 한숨 소리가 무엇을 뜻하는지도 알고 계신다. 믿음과 진정으로 계속해서 기도하면 응답은 틀림없이 올 것이다.

3) 기도하고 있는 사람에게 말하고자 한다.

우리 기도의 중요성과 그 방법에 대해 신중히 고려해야 한다. 당신이 때때로 무릎 꿇고 기도할 때가 아니라면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1:21)라는 바울의 말을 결코 이해할 수가 없을 것이다. 저는 아직도 우리를 괴롭히지 않는 기도는 의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에게 전혀 즐겁지 않은 기도가 하나님을 가장 기쁘게 한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우리가 깨달아야 할 한 가지 사실은 기도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기도를 할 때에는 하나님에 대한 존경과 겸손한 마음이 중요하다. 자신이 어떤 존재인가를 잊어서는 안 되며, 하나님을 향하여 이야기하는 것이 얼마나 엄숙한 일인가를 잊어서는 안 된다. 아브라함은 티끌과 같은 나”(18:27)라고 고백했고, 욥도 나는 미천하오니”(40:4)라고 고백했다.

 

영적인 기도의 중요성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기도가 하나의 형식이 될 때 영적인 기도가 될 수 없다. 매일 가장 적절한 단어와 성경에 기초를 둔 간구를 많이 말하는 습관에 젖어 있을 수 있다. 우리가 하는 기도의 표현과 내용은 성령으로 가득 채워지기를 간구해야 한다.

 

기도를 규칙적으로 하는 것이 중요하다. 무질서는 죄의 두드러진 결과이다. 기도가 하루의 일과 중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시간을 구별하라.

 

인내심을 가지고 기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도하지 않으려는 변명은 만들지 말라. 번제가 드려지는 것처럼 날마다 꾸준히 기도해야 한다.(4:2, 살전5:17) 아침과 저녁에 하는 기도는 하루 종일 짧게 하는 기도로 연결된다. 꾸준히 기도했기 때문에 실패한 그리스도인은 한 사람도 없다.

 

열렬하게 기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성경에 있는 기도에 대한 표현은 울부짖는 것이며, 두드리는 것이며, 씨름하는 것이며, 힘쓰고 애쓰는 것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마음이 차갑거나 졸리고 무기력하지 않은 상태를 의미한다. 야곱의 기도(32:26), 다니엘의 탄원(9:19), 예수님의 기도(5:7)가 좋은 예이다.

 

믿음을 가지고 기도해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 믿음과 기도의 관계는 깃털과 화살의 관계와 같다. 믿음이 없이 하는 기도는 목적을 달성할 수가 없다. 기도할 때 간절하게 약속을 원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그 약속을 붙잡아야 하며 여호와 하나님이여 이제 주의 종과 종의 집에 대하여 말씀하신 것을 영원히 확실케 하옵시며 말씀하신 대로 행하사”(삼하7:25)라고 말해야 한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야곱, 모세, 다웟의 습관이었다. 또한 배를 바다로 보낸 상인처럼 기도한 후에 응답을 기대해야 한다. “기도로 구한 것에 대해 무관심할 때보다 기도에 더 진실치 못한 증거는 없다”(트레일)

 

담대하게 기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대담한 기도는 모세가 하나님께 이스라엘을 멸망시키지 말라고 했던 바로 그것이다.(32:12) 이스라엘 자손이 아이 사람 앞에서 패배하였을 때 하던 여호수아의 기도이다. 루터의 기도는 마치 사랑하는 아버지와 친구와 더불어 말하는 것처럼 희망과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한다.

 

충분히 기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주님께서는 바리새인의 기도를 비유로 훈계하셨지만, 어쨌든 오늘날에는 믿는 자들이 너무 적게 기도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들은 하나님께 고백할 것도, 애원할 것도, 감사할 것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은 바라는 것만큼 가지지 못한다고 불평한다. 그들이 가지지 못하는 것은 기도할 때 죄를 부리며, 속임수를 쓰며, 마음이 편협하며, 서두르며, 아주 작게 기도하고 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궁핍한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궁핍하게 살고 있다. 우리는 이스라엘 왕이 대여섯 번 땅을 쳐야 했을 때 세 번만 치고 주저한 것처럼 행동하고 있지는 않는가?(왕하13:18-19)

 

구체적으로 기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야곱이 형 에서를 두려워했을 때 했던 기도처럼 그가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이야기했다.(32:11) 주인 아브라함의 아들인 이삭을 위해 신붓감을 찾고 있을 때 엘리에셀도 이와 같이 구체적으로 정확하게 표현했다. 어린 아이가 곤란한 처지에 있지만 아버지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을 때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주님 앞에서는 어떤 비밀도 감춰서는 안 되며, 모든 심정을 주님께 말해야 한다.

 

기도할 때 중보의 기도가 중요하다. 우리의 마음 속에 전 인류를 품도록 노력해야 한다. 복음을 전파시키는 모든 기계의 바퀴는 우리가 하는 기도로 매끄럽게 된다. 이렇게 한다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하신 것처럼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 앞의 대제사장으로 그의 백성을 대언하신다. 주 예수와 같이 된다는 것은 얼마나 큰 특권인가? 만약 내가 교회의 회중들을 선택할 수 있다면 기도하는 회중을 택하겠다.

 

감사의 기도를 해야 한다. 감사의 내용이 없는 기도는 참된 기도라고 할 수 없다.(4:6, 4:2) 우리가 영적인 빛이 있는 땅에서 살 수 있고,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할 기회가 있는 것도 하나님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가능한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 때문에, 영원히 참아내시는 하나님의 인자하심 때문에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을 찬양해야 한다. 사도 바울은 감사하지 않고서는 그의 편지를 쓸 수 없었다.

 

기도할 때는 신중해야 한다. 기도는 영적인 맥박이요, 영적인 체온계이다. 우리의 실천적 기독교의 중요하며 골격이 되며 중추가 되는 것이 바로 개인적인 기도에 달려 있다. 하나님과 이야기하려고 했던 마음을 방해하거나 기도를 잊게 하는 장소, 모임, 회합 등을 항상 조심해야 한다.

 

출처 : 청교도 아카데미 PBA
글쓴이 : 김영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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