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드 존스

[스크랩] 로이드 존스 평전1 11 가정같은 교회

강대식 2015. 8. 10. 15:29
11 가정 같은 교회

샌드필즈의 교회의 특징들

샌드필즈 교회에 새로 들어온 많은 교인들은 나이와 배경이 서로 크게 달랐기 때문에 어느 정도 불협화음은 불가피했을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1930년대 초기에 수많은 외부 방문객들이 샌드필즈 교회의 핵심 특징 가운데 하나로 교인들 간의 친밀함과 상호 의존관계의 수준이 특별히 높았다고 말한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비록 아주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 갓 태어난 아기들이었지만 자기들의 새로운 위치에 대해 생소함을 느끼지 않고, 즉시 한 가족에 속해 있다는 연합 의식은 본능적이었다. 그것은 복음으로 말미암아 잉태된 새 사람, 새 생명, 새로운 성품, 새로운 피조물의 특성의 결과로 나이와 배경과 상관없이 역사하였다.

또한 새로 회심한 자들이 특히 공통적으로 보여 준 함께 모이는 데 열심을 내는 현상은 사실은 교회 전체의 두드러진 특징이었다. 전진 운동의 총감독인 R. E. 리스 목사는 1931년 여름 어느 주일에 샌드필즈 교회를 방문했던 사실에 대해 설명한다.

‘나는 예배를 드리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폭발적으로 느꼈다. 그러나 주일 오후에 약 80명 정도가 참석한 성경공부 모임에서도 똑같이 하나님의 영광으로 보고 즐거워한 것을 기억한다. 그들, 곧 80명의 수준 높은 성도들은 마틴 로이드 존스가 아니라 나와 함께 있었다.“

이후 얼마 안 되어 엘리세우스 하웰스도 비슷한 지적을 했다. 그는 [이 골레아도]에 샌드필즈 교회의 기도와 교제 모임에 대한 기사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모임들은 시간이 길기로 유명하다. 왜냐하면 어느 모임이든 두 시간 안에 끝나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춥고 폭풍이 부는 겨울철 저녁에 160명에서 200명 정도의 교인이 참석하는 것을 보았다. 아주 깊은 기쁨의 물결이 출렁거렸지만 우리가 보통 느끼는 즐거움은 거의 없었다. 때로는 15명에서 20명 정도의 교인이 그룹으로 참여하기도 했는데, 법을 너무 잘 지켜 악인은 그 안에서 사는 것이 불가능하고, 은혜는 너무 충만해서 율법주의자는 그곳에서 위선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불가능한 분위기가 쉽게 파악된다.”

이상의 글을 읽은 한 목사 독자가 이 글에 특이한 사실이 담겨 있음을 발견하고 교단 신문의 독자투고란에 편지를 썼다.

“제가 보기에 존스의 교인들은 외부의 신앙 집회는 전혀 맛보지 못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 모임들은 두 시간 안에 끝나는 경우가 드물다니 말입니다.’ 웨일스에서 두 시간 동안 신앙 집회를 가질 준비가 되어 있는 다른 교회가 있습니까? 보통 집회가 1시간을 넘어가면 사람들은 불평합니다. 모든 교회가 샌드필즈 교회와 같아야 할까요, 아니면 다양함을 인정해야 할까요?”

이 투고자는 만약 샌드필즈 교회가 본보기로 간주되어야 한다면 나머지 다른 교회들이 따라가려면 ‘대혁명’을 필요로 할 것이라고 자신의 의견을 계속 피력한다. 그런데 그가 모르는 것이 있다. 그는 샌드필즈 교회의 주중 모임의 출석율과 지속 시간이 ‘맛보는’ 것보다 훨씬 더 깊고, 오순절 후에 매일 교리와 교제의 연합 속에 들어간 사람들이 겪는 경험과 유사한 어떤 것이 결과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토요 형제사랑 모임

우리가 이미 언급한 토요일 밤의 형제사랑 모임보다 이 교회에서 일어난 일을 더 분명히 보여 주는 모임은 없을 것이다. E. T. 리스는 수십ㅜ명의 남성들이 이 모임에 “은혜와 영적 지식 안에서 자라 가는 것에 명백한 관심을 갖고 출석한” 것을 생생히 기억한다. 그들은 주일에 설교자를 통해 “저는 여러분 가운데 어느 누구도 강단에서 제가 전하는 말씀에 의존하는 자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라는 말을 수시로 들었다. 그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생각하고 읽고 기도해야 했고, 형제사랑 모임에서 토론을 위해 준비된 질문들은 그들이 설교자의 권면에 어떻게 순종했는지를 잘 보여 주었다.

형제사랑 모임에서 항상 중심은 성경이었다. 그러나 1927년 랭게이토를 처음으로 탐방하고 난 다음부터는 교회 역사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게 되었다. 그 다음 해부터는 남 웨일스, 서 웨일스, 중 웨일스의 트레베카, 랭도베리 그리고 펨브룩셔 지역(이상의 지역은 각각 18세기 교회 지도자들 곧 하웰 해리스, 윌리엄 윌리엄스, 하웰스 데이비스의 활동 무대였다.)과 같은 영적 관심 지역들을 실제로 탐방했다. 이 탐방(야유회)은 항상 그들이 보았던 것과 관련된 강연을 듣고, 더 깊은 지식을 제공하는 책들을 소개받는 것으로 끝났다.

형제사랑 모임의 구성이 다른 교회 모임의 구성과는 전혀 달랐다는 사실이 주목할 만하다. 왜냐하면 종종 호기심 때문에 다른 교회나 기독교와는 상관없는 배경을 가진 방문자가 이 모임에 참석했기 때문이다. E. T. 리스는 이렇게 회상했다.

“온갖 의견을 갖고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참석했습니다. 개신교들만이 아니라 무신론자들도 있었습니다. 한두 명의 철저한 칼빈주의자 옆에는 사도파나 오순절파와 같은 단체에 속한 사람들이 앉아 있었습니다. 우리는 희한한 혼합체였고, 때로는 상황이 아주 격렬해지기도 했습니다!”

이 모임에 모든 정치적 질문은 거부되었다. 로이드 존스가 정치적 논쟁을 허용했다면, 즉시 공동체에 속한 많은 사람들의 귀를 잃어버렸을 것이다. 대신 램지 맥도널드를 구세주로 생각한 사람들에게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시 146:3)라는 일반 원칙을 권면하는 것으로 만족했다. 정치적 해결책을 믿고 형제사랑 모임에 자주 나왔던 한 사람이 급기야는 인생 문제에 대한 유일한 해결책이 있는데, 그것은 신약 성경에서 찾아야 한다고 고백하게 되었다.

형제사랑 모임은 대체로 열기가 넘치고 무척 진지했다. E. T. 리스가 이 모임에서 영적 영향력 다음으로 종종 받은 자극은 참석한 사람들에게 지성이 요구되는 것이었다. “저는 저녁 7시 15분과 대략 9시 사이에 벌어진 논쟁에서 높은 교육수준을 느끼고 깜짝 놀라곤 했습니다. 대학의 계절 학기 강좌와 방불했습니다.” 여흥으로서의 성격은 전혀 없었다. 반대로 일반적으로 교회 활동과 연관되어 있지 않은 지도자에 대한 엄격함의 요소가 있었다.

토요일이나 수요일 밤에 발표하는 사람들에 대한 로이드 존스의 예리하게 꿰뚫는 분석이야말로 이 모임들의 백미였다. 소심한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었고, “말이 많은 사람”은 자제시켰다. 이에 대해 설명하면서 엘리세우스 하웰스는 다음가 같이 말했다.

“로이드 존스는 필요에 따라 인터뷰를 하거나 상담을 하거나 책망을 하거나 합니다. 윌리엄스가 다니얼 롤런드에 대해 하는 말이 그대로 존스에게도 해당됩니다. ‘누구든 하나님의 은혜의 길에서 떠나 방황하면 그는 그들의 오류를 밝혀 줌으로써 다른 사람들이 그 오유를 범한 자를 경계의 눈으로 보게 한다.’ 윌리엄스(펜티셀린 출신)는 죄인들을 책망하는 행위를 칭찬했습니다. 왜냐하면 책망이 간과되면 가라지를 자라게 하는 것이고, 율법 없는 복음은 죄악을 조장한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지성과 양심의 상태에 대해 날카로운 질문 속에 모든 경우에 틀림없이 부드러운 복음의 능력을 적용시키는 아주 희한한 조화를 우리는 이곳 로이드 존스의 모임 속에서 보았습니다. 만약 칼빈이 제네바에서 철근으로 다스렸다면, 또 하웰 해리스가 그의 큰 예배당에서 아주 엄정했다면, 로이드 존스는 이 점에서 똑같이 엄격했습니다. 그러나 로이드 존스 안에 특별한 엄격함이 들어 있다면, 또한 비교할 수 없이 풍성한 부드러움도 들어 있고, 어떤 선조도 로이드 존스가 자신을 통해 회심한 자들의 사랑을 받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을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풍성하고 놀라운 사랑

만일 요한일서에서 강조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자녀에 대한 사랑이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모든 사람의 표지가면, 샌드필즈 교회에 풍성한 사랑의 증거가 있었다는 사실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또한 회심한 모든 사람이 자기들에게 진리를 가르쳐 준 설교자에 대한 각별한 헌신을 보여 주었다. 그들은 모두 로이드 존스를 각별한 애정을 담아 “박사님”이라고 불렀다. E. T. 리스만이 아니라 그들 전체가 그들의 목회자와 함께 섬기는 것을 특권으로 여겼고, 그래서 가능할 때마다 그와 함께 하고자 했다.

통상적으로 하나나 그 이상의 사람들이 존스가 주중에 다양한 지역으로 방문 설교를 하러 갈 때 섬기러 동행했다. 그런데 비록 그들은 당시에는 그것을 깨닫고 있지는 못했을지 몰라도, 사실 로이드 존스가 종종 이들을 동반한 것, 특히 길동무로 삼은 것은 오히려 그들을 돕고 용기를 주기 위해서였다. 기차 여행을 할 때 로이드 존스는 대체로 독서할 수 있는 시간을 얻기 위해 혼자 가는 것을 더 좋아했다. 베도우와 다른 많은 사람들은 이런 기회를 통해 로이드 존스와 인격적 교제를 나눔으로써 신앙이 더 강화된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목사인 존스와 교인들 간에 이런 결속력에 대해서는 말할 것이 많이 있었다. 왜냐하면 아주 다양하게 그 증거나 나타났기 때문이다. 로이드 존스의 생일과 같은 날에 횟미한 조지 젠킨스에게서 존스는 12월 20일에 생일 카드를 받았는데, 이 일은 젠킨스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한 번도 빠지지 않고 행해졌다. 부두 안내인이라는 좋은 직업에도 불구하고 지독한 술주정뱅이였던 또 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회심한 후에 벽난로 앞 장식에 세 개의 사진을 붙여 놓았다. 첫 번째 사진은 그리스도인이 되기 전에 옛날 친구가 찍은 것으로 가로등 기둥에 외롭게 기대고 서 있는 모습이 담겨 있다. 두 번째 사진은 어느 성령 강림 주간 월요일에 주일 학교 야유회에 참가한 해변에서 로이드 존스 옆에 앉아 있는 그의 모습이 담겨있다. 반면에 세 번째 사진은 현재 교회와 복음을 중심으로 살고 있는 그의 말쑥하고 말끔하게 면도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각 사진은 아래 부분에 제목처럼 이렇게 적혀 있었다.

“잃어버렸을 때”, “발견되었을 때”, “구원받았을 때.”

때때로 이런 사람들의 몇 마디 말은 그들의 감정을 깊이를 그대로 보여 주었다. 완전히 근본적으로 변화된 삶을 살았던 조지 젠킨스에게 몇 년 후 런던에서 죽음이 임박했을 때 샌드필즈에서 옛날 친구가 찾아왔다. 이때 노인이 첫 번째로 했던 질문 가운데 하나는 “그리스도 안의 자기 아버지”에 대한 것이었고, 이어서 “바울보다 그가 더 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대는 그런 사람을 가졌는가!
그대는 그런 교인을 가졌는가!
그대는 그런 영적 자녀를 가졌는가!
이런 관계는 복음으로 말미암아 맺어진 관계이며,
복음이 아니면 이런 관계는 상상할 수조차 없다.
이는 복음을 가진 자의 영광이며 자랑이며 특궈이며,
또한 우리가 복음에 헌신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주여!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아비가 되게 하시며,
그리스도 안에서 복음으로 자녀를 낳게 하소서!

(고전 4:15)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버지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가 복음으로써 너희를 낳았음이라

더 놀라운 것은 샌드필즈 교회의 교제가 목사와 교인들 간의 관계보다 훨씬 더 컸다는 것이다. 샌드필즈 교회는 정말 완벽한 가족 공동체였고, 지금 회중석을 가득 채우고 있는 사람들의 한 때 깨어진 요소들의 배경이 어떠하든 간에, 진시로 공동체에 “속하기” 위해 요구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그리스도에 대한 공통의 사랑이 전부였다.

사도행전 4장 32절의 내용을 모든 면에서 문자적으로 따르지는 못했지만, 샌드필즈와 예루살렘 간의 유사점은 실로 컸다.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행 4:32).”

J. J.

형제사랑 모임의 많은 역사들이 대중의 눈에는 숨겨져 있었다. J. J. 라는 사람의 경우는 다른 사람들의 경우에 대한 전형적인 본보기였다. 그는 그리스도인이 되기 전 대부분의 돈을 계속 술을 마시는데 탕진했다. 그의 집은 문자 그대로 휘청거렸다. 계단의 난간은 불을 때기 위해 다 뜯겨 나간 상태였고, 욕탕은 석탄 창고로 사용되었다. 이 사람이 자기 선생에게 자기 아버지의 회심으로 말미암아 저녁식사에서 진수성찬을 먹었다고 열심히 자랑하던 아들들의 아버지였다. J. J. 는 집이 부서진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고민하고 있었다. 특히 집이 교회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어서 더욱 그렇다.

그러던 어느 날 새로 사귄 그리스도인의 친구의 하나인 E. T. 리스와 함께 톨벗 항을 걷고 있었을 때, 마을 서기인 감독청 직원인 토머스씨를 만났다. 토머스는 이렇게 말했다. “오, 이 사람이 샌드필즈 교회에서 회심한 사람 가운데 하나군요. 그렇죠?” 이에 리스씨는 “에, 토머스 씨, 바로 이 사람이 새로 태어난 사람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리고 자기 친구의 집 문제에 대해 한 마디 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은 리스는 계속 해서 이렇게 말했다. “서기님, 이제 이 사람은 새사람입니다. 지금 새집을 필요합니다. 이것이 순서 아닙니까? 새사람에 새집 말입니다! ‘옛 사람’을 위한 새집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 날에 충분한 계약금을 걸고, 이후 주간 납입금에 대한 약속을 준수를 은행이 보증하는 것을 조건으로 양도 저장 제도에 따라 언제든지 집을 구입할 수 있다는 약정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 구입 희망자가 필요한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는 능력이 전혀 없었다. 그러나 교회 서기와 로이드 존스가 계약금을 지불하고, 주간 납입금을 반드시 지키겠다는 보증을 했다. 책상 뒤에서 담당자가 지역 은행 가운데 한 곳에서 E. T. 리스와 로이드 존스가 ‘당신이 말하는 대로 이 회심한 자를 위해’ 보증을 서겠다는 말을 들었을 때, J. J.의 놀라움은 극에 달했다. 곧 새 집이 구입되었다. 이후로 이 ‘새’ 사람의 납입금은 그 집이 그의 소유가 될 때까지 지체된 적이 없었다.

존스부인의 특별한 경험

복음이 교회 가족 안에서 실제적인 성과를 거두도록 만든 다른 방법들은 수없이 많았다. 이 가운데 일부 방법들 속에는 로이드 존스 부인이 관련되어 있었다. 이 시기에 초기에 겪었던 영적 어려움이 이미 지나간 일이 되었기에 존스 부인은 남편처럼 다른 사람들을 보살피는 일에 깊이 종사하고 있었다. 그런데 비록 그녀가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믿음을 강화시켜 그녀의 미래의 섬김을 준비시킨 한 가지 특별한 경험이 있었다. 존스부인은 하나님의 용서에 대한 확신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바다에서 불어오는 강한 남서풍 때문에 처음 에버라본에 온 두 사람이 어떻게 끝장이 날 것인지 상상까지 해 가면서 계속 두려움에 떨었다!


“남편이 없었던 어느 날 밤 홀로 아기와 함께 있었는데, 바다에서 아주 강한 돌풍이 불었습니다. 갑자기 두려움이 엄습하여 침대 속에 뛰어 들어가 벌벌 떨며 무서움과 공포에 휩싸여 있었습니다. 만일 조수가 밀여와 빅토리아 로드를 강타한다면 아기와 함께 어떻게 피할 수 있을까? 결국은 안전히 힘이 빠져 절망감 속에서 침대 밖으로 나와 무릎 꿇고 기도했습니다. ‘주님, 이게 현실이라면, 주님이 진실로 계시고 제 기도에 응답하신다면, 제발 제게 평안을 주시고 모든 두려움을 쫓아 주소서.’ 그렇게 기도했을 때 모든 두려움이 사라졌고, 제 마음은 온전한 평안으로 흘러넘쳤습니다. 저는 더 이상 질풍과 조수를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답니다. 완전히 구원받았고, 2분만에 잠이 들었습니다.”

이 문제가 다른 사람들에게는 작은 문제였을지 모르지만, 존스부인에게는 엄청난 큰 문제였다. 기도가 응답되었을 때 그녀는 깊이 감사했다. 심지어는 로이드 존스도 아내를 크게 괴롭혀 온 골칫거리가 끝났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1927년 목요일 오후에 모이는 “자매사랑” 모임이 이미 조직되어 있었다. 그러나 회심한 여성들들이 많아지자, 빅토리아 로드 57번지 목사관 거실에서 작은 성경공부반을 시작했다. 영적 도움을 원하는 여성들의 수가 늘어나자 모임 장소를 교회로 옮겼다. 그런데 존스 부인은 새로 회심한 여성들에 대한 실제적인 도움은 가르침을 통해 베푸는 도움 외에도 많이 있었다.

회심이후의 실제적인 문제들

샌드필즈 교회에서 사도 시대의 정신이 진실로 나타났지만 초대 교회를 수놓았던 잘못이 없지 않았던 것 역시 사실이었다. 회심한 많은 사람들이 나쁜 습관을 갖고 대부분의 인생을 살았고, 영적 지식이 거의 없었으며, 회심에 대해 가족들의 지지나 동정을 거의 받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많은 난관에 부딪혀 싸워야 했고, 또 반드시 승리한 것도 아니다. 급성장한 신약 성경의 교회들처럼 샌드필즈 교회의 상황도 서로 짐을 져주는 교인 전체의 상호 보살핌이 요구되었다. 로이드 존스는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라는 갈라디아서 6장 1-5절을 본문으로 설교했다.

“그것이 바울의 법칙입니다. 우리는 가족, 곧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한 가족입니다. 만일 한 형제가 넘어지면 전체 가족이 그 일로 고통을 받고 쇠약하게 됩니다. 한 지체가 시궁창에 떨어질 때 이 교회도 똑같이 시구앙에 떨어집니다. 이때 우리는 그를 따라 시궁창으로 내려가 그를 끄집어내야 합니다. 언젠가 여러분이 시궁창에 빠진 당사자가 될지 알 수 없습니다. 그때 교회가 다가와 여러분을 끄집어낸다면 큰 기쁨이 될 것입니다. 이 실족한 사람에게서 등을 돌이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닙니다. 그렇게 하면 세상이 여러분을 비웃을 것이고, 이에 대해 여러분이 아무리 태연한 얼굴을 하고 있다고 할지라도 세상은 그것을 알아차릴 것입니다.”

이 설교는 1929년 2월 3일에 전해진 것으로, 이후에 나타난 증거는 교인들이 이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였지를 잘 보여 주었다. 함께 짐을 졌고, 마귀의 온갖 시험에 직면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각별한 보호가 필수적으로 요청되었다. 어떤 이들은 구원을 확신했지만 다시 일시적으로 어둠 속으로 뛰어 들어가곤 했다. 예를 들면 늙은 ‘스태퍼드셔 빌’, 곧 그가 불러 주기를 원했던 윌리엄 토머슨 항상 변함없이 새 생명에 대한 황홀한 기쁨을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처음으로 그는 주의 만찬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그만 청천벽력과 같이 불현 듯이 찾아온 생각에 그만 실족하고 말았다. 여러 해 전 젊은이로 한 술집에서 벌어진 논쟁에 참여했을 때 주 예수 그리스도를 사생아라고 주장한 적이 있었다. 오래전에 그의 뇌리에서 사라졌던 이 기억이 갑자기 되살아났는데, 이 생각으로 갑자기 하늘문이 닫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의 근심과 비참함은 거의 극에 달했다. 그가 다음날 아침 침대에서 좀 더 일찍 일어난 것은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으리라는 일말의 희망 때문이었다. 존스부인의 말을 들어보자.

“매우 이른 아침에 목사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너무 이른 시간이라 존스와 저는 함께 문으로 갔습니다. 우리는 문을 열었을 때 보게 된 장면을 결코 잊지 못할 것입니다. 가련한 윌리엄 토머스가 비참하고 절망적이고 수시에 가득 찬 모습으로 서 있었습니다. 존스는 그가 용서받았다는 사실을 납득시키기가 쉽지 않았다. 그가 자신에게서 먼저 보았던 것은 자신의 죄의 크기가 전부였습니다. 그러나 사랑으로 그리고 인내하며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그가 진시로 용서받았다는 사실과 이 엄청난 죄가 다른 모든 죄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보혈로 깨끗이 씻겨 나갔다는 사실을 깨닫게 했습니다. 그 결과 그는 고침 받아 회복되었으며 그의 영혼의 어둔 밤은 물러갔습니다.”

이보다 앞서 윌리엄 토머스는 이미 다른 시험에서 구원받은 적이 있었다. 이것은 다른 돌료 교인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문제점을 뒤에 남겨 놓았지만 교회에 큰 기쁨을 안겨주었다. 회심하고 난 후에 그는 듣기를 많이 하고 말하기는 적게 함으로써 교회에서 겸손한 태도를 보여주었기 때문에 그가 오랜 세월 사용해 온 나쁜 언어 습관과 아직 싸우고 있다는 사실을 노출시키지 않아다. 의도적인 것은 아니었지만 욕설이나 독설 없이 말을 사용하는 것은 넥타이나 풀을 먹인 칼라처럼 그에게는 생소했다. 다시 존스부인의 증언을 들어보자.

“그는 정말 어쩔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나쁜 습관을 절대로 그만둘 수 없었습니다. 사실 그는 말을 내뱉고 난 후에야 잘못 이라는 것을 알았고, 이 끔찍한 말과 욕이 자신의 입술에서 튀어나왔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에 대해 넌더리를 내고 수치를 느꼈습니다. 그리고 절망과 비참으로 얼어붙었습니다. 그런데 구원은 이렇게 일어났습니다. 그가 아침에 일어나 입을 옷을 찾았는데, 양말이 없습니다. 그는 침실 문을 열고 아내에게 ‘내 양말을 찾을 수 없는데, 그 새끼 어디 있지?’라고 외쳤습니다. 그는 자기가 한 말을 듣고 곧 절망의 늪에 빠져 엎어지더니 ‘오 주여, 제 혀를 깨끗케 하소서, 오, 주여, 저는 욕을 하지 않고는 양말을 한 짝도 찾을 수 없습니다. 제게 긍휼을 베풀어 주소서. 깨끗한 혀를 주소서.’ 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침대에서 일어났을 때, 그는 하나님이 자기 스스로는 절대로 할 수 없었던 일을 자기에게 행하신 것을 알았습니다. 그의 기도, 곧 그의 고뇌의 외침이 하나님께 상달되어 응답을 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한평생 욕설이나 더러운 말 또는 독설이 입술에서 다시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 그의 간증이었습니다.
삶으로의 복음 전도

이 시기에 로이드 존스는 먼저 신약성경에서 확인한 진리를 이 당시의 경험을 통해 확고부동하게 확신하게 되었다. 이 진리는, 곧 복음전도는 그리스도인이 교회에서 알려지고 누리게 되는 삶의 질에 결정적으로 좌우된다는 사실이었다. 샌드필즈 지역사회에 선전을 하거나 조직적으로 방문을 한 적이 없었다. 얼굴이 확 달려져 보이는 교인들의 삶의 방식이 있었을 뿐이다.

어떤 교인도 ‘개인 전도’에 대한 강의를 받은 적도 없고, ‘복음을 전하는 법’에 대해서도 들은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음전도는 사람들의 상황이나 기질이 다른 것만큼 자발적이고 자연스런 방법으로 아주 다양하게 행해졌다. 삶을 통한 복음전도가 이루어졌다. 또한 회심한 자들은 죽음을 통해서도 복음을 증언했다. 윌리암 놉스의 치가 공동묘지로 옮겨지던 날 시장은 숨을 죽이고 사람들을 조용히 지켜보았다. 교회 목사의 인도로 운구되는 관 뒤에서 다수의 교인들이 불평 한 마디 없이 5킬로미터나 되는 긴 거리를 따라가는 장면을 본 사람들은 놉스에게 진정한 가정이 있었다는 사실을 의심할 수 없었다. 윌리엄 토머스는 양쪽 폐렴으로 죽어가고 있었다. 그 장면 속으로 들어 가보자.

“윌리엄 토머스는 어딘가 멀리 있었지만 인사와 기도에 반응했습니다. 그는 분명히 온전한 평안 속에 있었고, 노인의 악하고 포악한 인생의 모든 증거는 이제 어린아이같이 변한 얼굴에서 사라졌습니다. 몇 분이 지났고, 그렇게 한 시간 이상이 자났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고통스런 거친 숨소리가 멎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노인의 얼굴이 변모되어 밝아지더니 광채가 났습니다. 만면에 아름다운 웃음을 띠고 마치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환영하듯 열심히 팔을 벌리며 일어나 앉으려고 했고, 그와 함께 그는 ‘성도들이 죽지 않고 영원히 왕 노릇 하는 순전한 기쁨의 나라’로 갔습니다.‘


출처 : 청교도 아카데미 PBA
글쓴이 : 박성수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