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확대된 사역
“오늘날의 최대의 비극은 세상이 마귀의 손에 붙잡혀 있는데도 불구하고 기독교 교회가 지루하고 느리고 무겁게 움직이고 있다는데 있습니다. 기독교 교회는 문제점을 파악하기 위해 위원회를 조직하고, 다양한 상황을 검토할 기구를 만들고, 중간 및 최종 보고서를 요구하는데, 살펴볼 만한 결과를 얻기까지는, 1년 아니 어쩌면 여러 해가 걸립니다. 세상은불타고 있고 사람들은 지옥으로 가고 있으며 마귀는 도처에서 날뛰고 있는데, 교회는 이러고 있습니다!”
마틴 로이드 존스
북 웨일즈 존 포웰 패리의 증언
1930년 초기에 북 웨일스로 설교하러 가는 일은 로이드 존스의 정규 사역의 한 부분이 되었다. 1931년 10월에 [복음주의자]는 앵글시 여러 지역의 설교를 통한 로이드 존스의 “활력 있고 본질적인 사역이 큰 감동”을 일으켰다고 지적했다. 특히 렉섬 근방의 로스에서 종종 설교를 하게 되었는데 이 지역은 1904년에 부흥이 일어났던 곳이었다. 그곳에 존 포웰 패리는 광부로 1904년에 회심했는데, 그때는 19살 젊은 나이였다. 그러나 이후 세월동안 패리는 지역 채플에서 영적 도움을 별로 받지 못했고, 그래서 로이드 존스의 설교를 들은 것을 이웃에게 아주 강렬한 인상을 갖고 전했다.
“박사의 설교를 들었을 때 그 설교는 제가 오랫동안 들어보지 못했던 바로 그 설교였습니다. 로이드 존스는 확신과 거룩한 담대함을 갖고 말씀을 전한 아주 겸손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풍겼습니다. 설교를 듣기 위해 원근각처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었지만 목사들은 별로, 아니 사실은, 전혀 동조적이지 않았습니다. 로스에서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일어난 변화와 비교되는 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하지만 그때의 변화는 이 변화와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등을 돌린 변화였고 현대주의가 홍수처럼 밀려들어왔는데, 특히 1차 세계 대전 이후에 그랬습니다.”
존 포웰 패리는 또 그때 로이드 존스의 설교에서 당시에는 아주 드물었던 특별한 강조점을 지적했는데, 그것은 죄의 끔찍한 속성을 강조한 것이었다.
“ 렉섬에서 고린도전서 2장에서 본문을 취해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는 제목으로 전한 설교를 기억합니다. 로이드 존스는 제가 알고 있던 많은 현대주의 목사들을 포함하여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습니다. 그때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설교자에 대해 동조하지 않았습니다. 존스는 그들이 모르고 있고, 또 믿지 않았던 것에 대해 설교했지만, 그들은 박사가 권위를 갖고 말한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J. J. 모건의 로이드 존스 설교 분석
북 웨일스 전역에서 이처럼 목사들이 그의 설교에 동조하지 않았지만, 칼빈주의 메서디스트 목사요 순회 설교자인 J. J. 모건은 곧 로이드 존스에게 다음과 같은 격려의 편지를 보냈다.
“저는 목사님의 설교를 ‘보배’ 저울에 달아보았습니다. 물론 이 저울은 천국의 저울은 아니므로 저울의 눈금이 가리키는 것에 따라 일희일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1. 재미를 위한 목적에 빠지지 않음: 95%. 일부 극적인 상황에 지나치게 공을 들임. 2. 회중의 구미를 맞추려는 목적에 빠지지 않음: 100%. 3. 자신의 똑똑함을 과시하려는 목적에 빠지지 않음: 99%. 4. 매너리즘에 빠지지 아니함: 95%. 가끔 오른손 엄지와 검지로 뺨을 만지는(무의식적으로) 경향이 있음. 핵심을 찌르는 말임을 의도적으로 강조하기 위해 얼굴을 약간 비트는 버릇이 있음. 5. 가청도: 100%. 6. 설교길이; 월요일은 100%, 수요일은 99%. 7. 세련되지 못한 표현에 빠지지 않음: 99%. 8. 단순함: 99%. 9. 예리함: 100%. 10. 열정: 100%. 11. 영성. 이 부문은 저울에 달아보지 않겠습니다. 그래야 몰드와 같은 곳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는 데 도움이 될테니까요.”
[더 킴릭 타임스]의 기사
당시 카마던의 워터 스트리트 채플에서 설교를 한 다음에 한 기사가 1932년 4월에 [더 킴릭 타임스]에 실렸는데, 이 긴 기사의 필자는 진정한 복음전도자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며 이렇게 말했다. “저는 그의 설교를 듣고 나오면서 이 사람이 능력을 갖고 있다는 것, 인격을 구비했다는 것, 천국을 위해 영혼을 구원하는 데 참으로 진실한 열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확신했습니다. 교파를 막론하고 모든 교회에서 오늘날 강단은 로이드 존스와 같은 복음전도자를 필요로 합니다.”
목사들에게 경고함
1932년에도 [더 몽고메리셔 익스프레스 앤 래드너 타임스]는 “그 유명한 설교자, 에버라본의 마틴 로이드 존스 박사”라는 제목으로 긴 기사를 실었다. “목사들에게 경고함”이라는 부제목아래 이 기사는 일부 동료 목사들이 읽으면 이 설교자를 싫어할만한 내용을 담고 있다.
로이드 존스는 야고보서에 나타나 있는 참된 신앙에 대한 설명-“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을 언급하고, 계속해서 이 돌봄이 요구된 의무의 전부는 아니라고 지적했다.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일신론자와 무신론자도 얼마든지 그렇게 할 수 있으니까요.”
완전한 돌봄의 방법은 선을 행할 뿐만 아니라 선을 행할 때 우리의 영혼을 잃지 않는 것이다. 로이드 존스는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는 말씀을 목사들에 대한 경고로 느꼈다. 사역과 활동을 너무 많이 하다 보니 지쳐서 설교를 준비할 여력이 없는 목사들이 훨씬 더 중요한 일을 등한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목회사역을 감당하기 위한 진정한 필요
그런 의미에서 목회 사역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연구가 필요하다는 것이 로이드 존스의 가장 깊은 신념 가운데 하나였고, 그의 일상적인 삶의 가장 큰 특징 가운데 하나였다. 당시 로이드 존스에게 성경 다음으로 자극을 준 것은 아마 조나단 에드워즈의 작품이었을 것이다.
런던에 살 때 로이드 존슨 한 웨일스인 목사에게 목회를 준비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책이 무엇인지 물었다. 이때 추천받은 책 가운데 하나가 A. C. 맥기퍼트가 쓴 [칸트 이전의 개신교 사상]이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조나단 에드워즈라는 이름을 처음으로 접하게 되었다.
“그때 저는 저의 목회 조언자에게 에드워즈에 대해 물었지만 전혀 알고 있지 못했습니다. 여기저기 찾아다니다 결국은 1929년에 카디프에 있는 서점에 들려 1834년 판 에드워즈 작품 2권을 찾아내어 구입했습니다. 저는 이 책들을 곧장 해치웠고, 문자 그대로 읽고 또 읽었습니다.”
1920년대 후반에 로이드 존스는 아침마다 주요 신학 작품을 거의 일정하게 읽는 것으로 연례 휴가 기간 계획표를 짜게 되었다. 로이드 존스의 딸, 엘리자베스의 어린 시절 추억가운데 하나는 수영복을 입고 혼자 해변의 풀장을 들락달락 하면서 놀고 있는 동안 아버지는 짙은 회색 옷에 구두와 양말과 모자를 다 갖춰 입은 정장 차림을 하고 바위에 기대고 앉아 책을 읽고 있던 장면이었다.
이 시기에 로이드 존스가 읽은 다른 주요 작품으로는 1928년에 뱀프턴 강좌의 하나로 발행한 커크의 [하나님의 비전]이었다. 훗날 로이드 존스는 이 강좌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이 강좌는 제게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커크는 하나님을 찾는 것에 대해 다루면서 사람들이 하나님을 찾는 다양한 방법들을 다루었습니다. 그는 이 방법들을 다루면서 역사적으로 중세의 신비가들, 이후의 신가들 등으로 다루었고, 단초를 제공하는 책으로 보았습니다. 이 책은 풍부한 배경을 제공했고, 저를 생각하는 자로 만들었고, 성경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었고 수도원 운동 및 운둔주의와 같은 운동들의 위험성을 보도록 이끌었습니다.”
아 존 맥닐이여!
당시 많은 사람들이 존 맥닐을 당대에 가장 위대한 설교자로 꼽았다. 하지만 로이드 존스는 이 견해에 동조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 스코틀랜드 출신 목사는 사람들의 구미를 맞추는데 큰 능력을 갖고 있었고, 위트로 듣는 자들이 엉뚱한 곳에 정신을 쏟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맥닐은 매우 능력 있는 설교자였기 때문에 그건 정말 비극이었다. 맥닐은 엄청난 역사를 일으킬 수 있었지만, 어리석게도 기발한 말 몇 마디 던져주는 것으로 끝났다. 맥닐은 유머 사용을 정당화하기는커녕 오히려 파멸을 초래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로이드 존스는 설교에 있어서 재미와 유머는 “본질상 모든 인간의 영혼들의 심각한 상태, 곧 그들이 잃어버린 존재이고 영벌의 위험 속에 있으며 그 결과 구원이 절대로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데 어울리지 않다는 것이 그의 평생의 신념이었다.”
예상치 못한 지역에서 사역하다
로이드 존스는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설교자로 부르실 때 다른 일은 하지 말고 설교만 하라고 부르신다고 확신했다. 그래서 그는 의학계와 결별해야 한다고 확신했다. 사실 로이드 존스는 톨벗항 지역에서 의학적인 이유로든 사회적인 이유로든 동료 의사들을 접촉하는 일이 전혀 없었다.
그런데 얼마 후 상황은 근본적으로 바뀌게 되는 일이 일어났는데, 마을에는 데이비드 리스라는 의사가 한 명이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카멜 웰시 메서디스트 채플의 집사였고, 그의 형제 일티드 리스는 그 지역 약제사였다. 그런데 이 형제가 중병에 걸렸고, 아무도 그를 위해 할 수 일이 없었다.
그때 베단을 통해 성령께서 일하시기 시작했는데(일티드 리스를 만나야 한다는 감동), 존스는 무시한다. 이틀 후에 의사 두 명이 사택으로 찾아와 ‘일티드 리스 씨를 만나주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그날 밤 존스는 그 골짜기로 가서 설교할 수밖에 없었다. 환자의 집에 도착하기 전에 정확히 환자에게 무엇이 문제인지 알아 차렸다. 따라서 차가 일티드 리스 씨의 집 밖에 도착해서 차 문을 열었을 때 로이드 존스는 내리지 않았다.
이에 스완지에서 온 고문 의사가 존스를 보면서 ‘안 내리십니까?’라고 묻자. ‘예 내릴 이유가 사실 없습니다. 그를 만날 필요가 없습니다.’ ‘도대체 무슨 말입니까?’ ‘그 환자는 호지킨스 병(림프절종)의 펠-엡스타인 열형질환을 앓고 있습니다.’ 결국 들어가 충분히 검사해 본 결과 로이드 존스의 진단이 옳은 것으로 확인되었고, 이후로 그 두 의사는 가능한 처방을 듣기 원했다.
로이든 존스는 그들에게 호더 경이 이 질병을 치료할 수 있고 회복은 할 수 있으나 결국은 죽게 되는 치명적인 질병의 하나라고 말해주었다. 알티드 리스 씨는 런던으로 후송되었고, 이후의 경과는 정확히 샌드필즈 목사가 예고한 대로 진행되었다.
로이드 존스는 이 사건 속에서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사건은 마을의 화제가 되었고, 그 결과 로이드 존스는 이전에는 거리가 멀었던 사람들과 새로운 관계를 맺게 되었다. 며칠 후에 톨벗 항의 주도적인 의사 하나, 곧 옥스퍼드 대학 출신의 의학 박사가 찾아와 “자기 이름은 필립스”라고 소개했다. “괜찮다면 우리가 당신을 무시한 것에 대해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고자 합니다!” 필립스는 의학적으로 런던밖에서 자신이 인정한 유일한 사람임을 인정했다. 이로 인해 사람들이 로이드 존스에게 의학적 조언을 구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제는 지역 의사들이 거의 대부분 기꺼이 동의해 주었기 때문에 조언을 구하는 일이 크게 증가했다.
제한적이었지만 어쩔 수 없이 다시 의학계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이런 경우들이 교회 밖에서 일어났을 때 로이드 존스는 사례를 받았고, 이 사례를 일정하게 샌드필즈 헌금으로 제공되었고, 이 돈은 결국 예배당 채무를 청산하는 데 중요한 재원이 되었다.
에버라본 사람들 사역스토리
그런데 로이드 존스의 의술을 가장 빈번하게 필요로 하는 곳은 상대적으로 가난한 노동자 계층이 주로 거주하는 에버라본 사람들이었다. 비록 건강이 회복된 그들을 보는 것보다는 그들에게 영원의 길로 이끄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을 누구보다 깊이 자각했음에도 불구하고, 의사로 활동하던 여러 해 동안 단련되었고 기독교적 경험을 통해 강화된 로이드 존스의 자연적인 연민의식은 몸을 살피는데 본능적으로 작용했다. 영혼과 육체는 반드시 구별되는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영혼과 육체가 함께 고침 받는 경우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일찍 부모와 사별해 삶이 슬픔으로 가득 찬 세 자매가 있었는데, 이 자매들 가운데 위의 두 자매가 샌드필즈 교회 예배에 출석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첫째는 얼마간 신앙적 관심이 있었지만 둘째 자매는 마지못해 억지로 출석했다. 막내는 병자로 침상에 누워 지냈다. 결국 로이드 존스는 막내 자매를 만나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방문하자 “마치 마귀가 바라보는 것처럼” 보였다. 진찰결과 육체적으로는 사실상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을 확신하고, 점차 좋아질 것이라고 말해 주었다. 이윽고 막내 자매는 큰 언니의 부축을 받고 교회에 나와 석 달 만에 회심하고 완전히 나았다! 그녀의 회복은 결국 신앙에 무관심했던 둘째 자매에게 영향을 미쳐, 세 자매가 모두 건강한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로이드 존스 개인간증
샌드필즈 교회에서 사역 초기에 로이드 존스는 바돌로매 병원에서처럼 담배를 피웠는데, 매일 10개 피 정도 피웠다. 특별한 의료문제에 대해 곰곰 생각할 때에는 본능처럼 담배를 피워 물었다. 어느 날 저녁 정말 수수께끼 같은 병을 앓고 있는 한 여성을 만나고 목사관으로 돌아온 로이드 존스는 의자에 몸을 던지며 베단과 대화하며 그 여성의 병에 대해 생각하고자 했다.
그런데 담배 갑을 열었으나 의외로 한 개 피도 들어 있지 않았다. 담배를 찾을 때까지 더 이상 대화를 나눌 수 없었다. 안절부절 못하는 남편을 보고 베단은 가정부를 통해 담배를 빌려 오도록 했지만 공교롭게도 그 사람마저 비축해 둔 담배가 없는 상황이 되었다. 이제 그는 꽁초를 찾아 피우는 것 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었다. 마침내 꽁초를 한 모금 빨았을 때 평소 맛이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로 자신이 정말 부끄럽게 느껴졌다.
직후에 로이드 존스는 요한복음 8장 32절에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이 설교를 준비하는 가운데 불현 듯 화살처럼 ‘너는 자유하지 못하잖아!’라는 자각을 하게 되었다. 그는 담배에 의존하는 것을 그리스도인에게 무가치한 일이라고 확신했다.
로이드 존스가 이 문제와 “무시무시한 씨름”을 하던 2, 3주 동안에 대해, 베단은 남편이 침체에 빠져 있는 것을 본 유일한 경우였다고 말한다. 이후에 그리스도인으로서 로이드 존스는 자신이 속박 속에 있지는 않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하루에 한 개피 만 담배를 피우기로 결심했고, 1930년 4월 1일까지 실천했고, 이후에는 담배를 완전히 끊었다.
그렇지만 로이드 존스는 담배를 피워서는 안 된다고 설교한 적이 없었고, 담배 피는 습관을 당연히 죄로 보는 사람들 편을 들지도 않았다. 그러나 담배를 피우지 않고 더 큰 자유를 누렸고, 동시에 샌드필즈 교인들이 그리스도의 사역을 위해 헌금할 때 가져야 할 마음가짐의 특징인 자기부인의 정신을 더 충분히 가질 수 있게 되었다. 혹독한 경제 침체 속에서도 샌드필즈 교회의 재정상태는 그것을 증명한다. 교회의 연간 경상 비용이 약 500-600파운드(약 90-110만원)였고 교인들이 자유롭게 헌금한 액수는 거의 배에 가까워 교회 부채를 청산했을뿐 아니라 선교비를 더 이상 받지 않게 되었다.
정신질환에 대한 새로운 관심
바로 이 시기에 정신 질환에 대한 문제가 새롭게 로이드 존스의 관심을 끌게 되었다. 당시 의학계에서는 이미 강하고 고통스런 ‘죄책감’을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할 신경증의 한 형태로 거의 보편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사실 로이드 존스가 의사를 포기했을 때, 바돌로매 병원의 의사들은 그가 “정신병”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는 견해를 숨기지 않았다.
물론 의학적인 관점에 따르면, 로이드 존스는 진짜 정신질환과 그 괴로운 증상들에 대해 잘 알고 있었고 정신과의 도움을 받는 것의 가치와 필요성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당시 로이드 존스는 정신병자로 치료받고 있던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 가운데에는 다만 영적 질병에 걸려 있는 경우라고 믿을 사람도 있었다. 이런 자들에게는 영적 치료책 외에 다른 도움은 있을 수 없었다.
“어느 날 한 사람이 더 젊은 한 사람과 함께 크게 흥분한 상태로 목사관 문 앞에서 서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문으로 가서 보니 정말 대단히 흥분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키가 크고, 머리는 온통 헝클어진 상태에 있고, 완전히 자제력을 잃고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종교에 대한 집착 때문에 치료받으려고 6주간 입소햇던 요양원에서 방금 탈출한 것입니다. 그는 정말 절망적으로, 자기 머리를 쥐어뜯고 있었고 완강한 힘으로 저를 붙잡았을 때 두려운 마음이 들었고, 저를 눌러 뭉갤 수도 있었습니다. 정말 힘이 셌고 제정신이 아니었습니다.”
“ 이 사람은 1904-1905년의 웨일스의 부흥 당시 회심했습니다. 이 결과 술취함에서 벗어났고 훌륭한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부분적으로는 변화의 결과로 사업도 번창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여러 해가 지나자 약간 무감각하게 되었습니다. 영적 쇠퇴가 시작되자 처음에는 세속화 된 모습을 보여주었고, 결국은 옛날처럼 술을 마시고 완전히 타락한 자가 되었습니다.”
이런 상태로 몇 년을 보냈는데, 외적으로는 잘 나가 부자가 되었다. 그런데 갑자기 아무런 경고도 없이 자신의 위치의 실상에 대해 생각하고,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물론 회심하지 않고 이런 일을 저질렀을 때 어느 것이 더 나은지 몰랐다. 그래서 용서받았지. 그땐 좋았어. 그러나 지금은 빛을 거역하고 죄를 범했다. 그렇게 행하며 사는 동안 나는 진리를 알고 있었다. 더 나은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지. 그러니 이제는 더 이상 용서받지 못할 거야.’
그래서 그의 염려는 더 커졌고, 담당 의사는 그의 증상을 종교 집착증의 하나로 진단해 요양원으로 보냈다. 그런데 거기서 다양한 치료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증상이 나아지기는커녕 더 악화되었다.
이상의 묘사가 보여 주는 것처럼 로이드 존스는 그 사람은 철저히 영적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성경적 관점에 따라 이야기를 시작하여 구원의 확신에 대한 참된 기초에 대해 말해 주자 크게 흥분했던 이 사람은 어린아이처럼 서서히 평온을 되찾았다.
물론 단번에 완전히 회복된 것은 아니다. 한 주 남짓 후에 외관상으로는 이전과 똑같이 괴로운 모습을 하고 다시 목사관을 두드렸다. 다시 한 번 성경의 진리로 권면했고, 이전보다 훨씬 수월하게 진리를 새롭게 의존하게 되었다. 이런 방문은 그가 그리스도의 사랑을 확신하고 완전히 새롭게 되어 더 이상 도움이 필요 없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이런 경험을 통해 로이드 존스는 상담에 있어서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원리를 확신하게 되었다. 실제적인 육체 질환이나 정신 질환을 영적 치료책을 갖고 고치려고 시도하는 것이 치명적인 것처럼 영적 질환을 순전히 정신적인 병으로 앓고 있는 사람에게나 유용할 수 있는 치료법으로 고치려고 시도하는 것 역시 똑같이 치명적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이 두 부류의 사라들이 보여 주는 증상은 아주 유사할 수 있는데, 그러면 어떻게 도움을 요하는 고통 속에 있는 사람들이 어떤 부류에 속해 있는지 분별할 수 있을까?
로이드 존스의 결론은 이렇다. 거듭난 사람 속에서 죄의식과 확신의 결여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고통을 가진 사람, 다시 말해 영적인 원인에 의해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에게는 성경의 진리와 약속에 대한 정확한 적용이 고통을 해결하는 합당한 대응이라는 것이다. 이런 대응은 효과가 즉각적이거나 전체적이지 않을 수 있으나 세심한 목회자는 그 효과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반면에 그리스도인이라고 믿을 만한 이유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런 식으로 성경을 적용해도 고통을 제거하는 데 아무 효력이 없는 사람의 경우에는 정신과 의사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 시점에서 로이드 존스가 영적 치유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갖고 있었는지 논하는 것은 시기상조일 것이다. 그러나 로이드 존스가 전한 가장 강력한 복음 전도 설교 가운데 일부는 복음서와 사도행전에 기록된 것처럼 치유의 이적과 죽은 자의 부활에 기초를 두고 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로이드 존스는 의사로서는 질병과 죽음의 비참함을 면밀히 확인했고, 복음전도자로서는 영혼을 변화시키는 데 있어서 가장 영광스런 능력이 이런 사례들 속에서 질병과 죽음에서 육체를 구원한 능력과 똑같은 능력이라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을 자랑으로 여겼다.
어떤 사람은 병거, 어떤 사람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시 20:7)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갈 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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