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자기의 십자가를 지시고 해골(히브리 말로 골고다)이라 하는 곳에 나가시니”(요19:17)
그리스도께서 자신이 못 박힐 십자가를 짊어지고 골고다로 걸어가시는 모습을 보라.
거듭나서 민감한 영적 감각을 가지고 있는 성도들에게는
이 장면이야말로 거룩한 교훈을 가장 많이 담고 있는,
그리고 심금을 울리는 가장 감동적인 장면으로 다가올 것이다.
이 장면은 그리스도께서 얼마나 심한 굴욕을 당하셨는지를 보여 준다.
그러나 동시에 죄인들을 향한 그리스도의 사랑이 얼마나 깊은지도 보여 준다.
또한 이 장면은 온 우주의 왕이신 하나님의 아들이 얼마나 철저히 자신을 낮추셨는지를 보여 준다.
그러나 동시에 이 장면은 그리스도의 은혜가 얼마나 광대한지도 보여 준다.
당시 로마제국에서 시행되던 십자가 사형 제도의 관례에 따르면,
십자가에 못 박힐 죄수가 자기가 못 박힐 십자가 나무 형틀을 짊어지고 사형장까지 걸어가야 했다.
사형수의 입장에서 보면 이것은 가장 혹독한 형벌 중의 하나였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이 형벌을 순순히 감당하셨다.
예수님의 어깨에 잔인한 사형 형틀을 올려놓았던 로마 군인들은
자기들이 사형시킬 그 사형수가 사실은 자기들의 창조주라는 사실도 전혀 생각할 수 없었다.
이처럼 예수님은 자기 자신을 희생하심으로써 죄인들을 구원하시는 일에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치셨다.
예수님은 자신이 못 박혀 죽으실 나무를 친히 창조하시고 기르셨다.
또 예수님은 저주받은 나무에 자신을 잔인하게 못 박을 로마 군인들을 세상에 태어나게 하셨고,
어릴 적부터 기르셨다.
아, 죄인들을 향한 예수님의 사랑의 깊이를 어찌 다 말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이렇게 고백할 수밖에 없다.
“오, 주님.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랑을 다 합친다 해도
주님의 사랑에 견줄 수 없습니다.
주님의 사랑은 주님의 존재처럼 영원합니다.
주님은 영원 전부터 갈보리의 십자가를 보고 계셨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비참하고 참혹한 것인지를 다 알고 계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우리를 구원하시는 일에 아무런 망설임 없이 뛰어들었고,
자신의 목숨을 내주심으로써 죄인들을 구원하시는 계획을 바꾸지 않으셨습니다.
아무런 가치 없는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으셨지만,
주님 자신을 구원하는 일은 한사코 거절하셨습니다.”
- 옥타비우스 윈슬로우,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pp 4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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