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딤전 2:1-7
경건과 단정함이 없다면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할 수가 없다.
“모든 경건과 단정함으로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라”(딤전2:2)
많은 부와 재물이, 높은 지위와 권력이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주는 것이 아니다.
경건은 하나님께 대한 올바른 경배를 말하고, 단정함은 모든 사람들에 대한 선한 행위를 말한다.
경건과 단정함이 우리의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보장한다는 것을 기억하자.
경건과 단정함은 함께 하고 분리할 수 없다.
하나님을 올바르게 공경하지 않는 사람이 사람들에게 단정하게 곧 정직과 선을 행하지 못한다.
그리고 단정하고 정직하지 못한 사람은 참으로 하나님께 경건하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은 번제를 위한 도둑질을 미워하시기 때문이다.
이웃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지만,
이웃 사랑은 먼저 하나님 사랑이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다.
세상이 사랑 타령을 하면서도 관계가 공허하고 깨지는 것은 하나님 사랑이 선행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웃 사랑의 돌판에 새겨진 여섯 계명은
하나님 사랑의 돌판에 새겨진 네 계명이 선행되고 충족될 때 지켜 행할 수 있다.
성령으로 거듭나고 회심한 사람이 하나님을 마음을 다해 사랑하고 안식일을 지킨다.
그리고 그 사랑으로 부모를 공경하고 이웃과 관련된 계명들을 실천할 수 있다.
모든 율법과 계명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요약된다.
그것은 다른 말로 경건과 단정함이다.
하나님께 경건 없이 사람에게 단정함 없다.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사랑을 말하는 사람이 이웃에게 단정하거나 정직함이 없다면
그 사람의 하나님께 대한 경건은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단정함은 경건을 보증하고 증거하고, 경건은 단정함의 열매를 낳는다고 할 수 있다.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살려고 한다면 모든 경건과 단정함으로 살아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과 사람에 대한 우리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입술로 거짓을 말하지 말고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며 그것을 따르라고 한다.(벧전3:10,11)
경건과 단정함으로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는 것,
“이것이 우리 구주 하나님 앞에 선하고 받으실만한 것”이다.
그리스도의 복음이 이것을 요구한다는 것이고,
우리 구주 하나님 보시기에 이것이 선하고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라고 하신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기도 생활을 해야 하고,
하나님과 중보자를 알아야 하고,
믿음과 진리 안에서 전파하는 스승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다.
1. 기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딤전2:1-2)
그리스도인은 기도의 특권과 의무를 가진 사람들이다.
그리스도인만이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는 특권이 있고 의무를 가진 사람이다.
“긍휼하심과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4:16)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 없어도 제 힘만으로 살 수 있다고 무언중에 장담하는 사람이다.
기도의 무릎을 꿇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은 시련과 고통을 주는 데도 못 알아 듣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가 호흡을 계속하고 있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인 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 자신을 위해서 기도해야 할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한다.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엡6:9)
악을 피하기 위하여 간구와 선을 얻기 위한 기도와
다른 사람들을 위한 도고와 이미 받은 긍휼을 위한 감사를 해야 한다.
기독교는 같은 길을 걷는 사람들뿐 아니라 모든 사람을 위해 기도하도록 가르친다.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라고 권면하고 있다.
당시에 이 사람들은 기독교를 핍박하고 훼방하는 장본인들이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을 돌리시고 그들을 인도하시고 이용하시어
우리가 고요하고 평안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해주시기를 기도해야 한다.
그들과 협력하여 출세하고 부자가 되고 명예와 권세를 얻으라는 것이 아니다.
해방 되고 미군 군정 시절에 군정 책임자가 미국 유명 신학교에서 박사 학위 받은
H 목사와 K 목사를 불러서 협조를 구했다고 한다.
H 목사는 협력하고 도움을 받아 대형 교회를 짓고 큰 교단을 이루었다.
그러나 K 목사는 목사가 그런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고 딱 거절하고
일체의 도움을 받지 않고 작은 교회를 개척하고 야간 신학교를 운영하며 작은 교단을 이루었다.
두 분 다 이미 하늘나라에 가셨는데 어떤 분의 상급이 클 것인지 하나님의 말씀이 증거한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 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하느니라”(마6:1)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2)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희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4)
영국의 윌리암 틴데일은 왕의 허락 없이 영어 성경을 처음으로 번역하였다가 화형을 당하게 되었다.
불에 타 죽으면서 그는 기도했다(1536년).
“주여, 잉글랜드 왕의 눈을 열어 주소서”.
틴데일이 기도한 ‘잉글랜드 왕’은 헨리 8세였다.
그가 죽은 겨우 2년 후인 1538년에 왕은 다음과 같은 명령을 했다.
“사람이 성경을 읽거나 듣는 것을 일절 방해하지 말고, 도리어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바로 그 살아 있는 말씀과 같은 것을 읽도록 분명하게 자극하고 북돋우며 권면해야 한다”
그리고서는 이 목적을 이루고자 영어 성경을 모든 교회에 비치하라는 법령을 공포했다.
가톨릭 신자들은 충격을 받았다.
한때는 나무에 묶어 놓고 불태워 죽여야 했던 일이 별안간 장려하는 행위가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대체로 이 법을 열광하며 받아들였고, 성 바울 성당에도 영어 성경을 여섯 권 비치했다.
이제는 푸줏간 주인과 빵집 주인이 성경을 토론하고 확신을 갖게 되고 반론을 제기하기도 했다.
우리가 경건과 단정함으로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기 위해
나라의 통치를 책임진 자들이 도움이 되도록 우리는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다.
우리는 자신과 아는 사람들뿐 아니라 모든 사람을 위하여 기도와 간구와 도고와 감사를 해야 한다.
예레미야는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유대인들에게 편지했다.
“너희는 내가 사로잡혀 가게 한 그 성읍의 평안을 구하고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라
이는 그 성읍이 평안함으로 너희도 평안할 것임이라”(렘29:7)
2. 경건과 단정함을 위해서는 하나님을 알고 중보자를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대속물로 주셨으니 기약이 이르러 주신 증거니라”(딤전2:5-6)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성경을 통해 모르면 내가 만든 우상을 섬길 뿐이다.
성경을 즐거워하고 주야로 묵상하라고 하신 뜻을 마음에 새겨야 한다.
성경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특별히 열어 보여주시기 위해 성령의 감동으로 쓰여진 책이다.
성경을 읽지 않고 연구하지 않는 사람들이 신비 체험을 따라가고 이단 사설에 빠지는 것이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고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다.
하나님은 오직 유일한 한 분이시되 성부 성자 성령 세 위격으로 계신다.
어떻게 세 인격이시면서 한 분이신지에 대해서는 우리의 이성으로가 아니라 믿음으로 알 뿐이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다.
카톨릭은 지금까지도 마리아와 성인들을 중보자로 하여 기도하고 있다.
중보자가 되려면 중보의 제물이 되어야 한다.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대속물로 주셨으니 기약이 이르러 주신 증거니라”(딤전2:5-6)
그리스도는 기약이 이르러 주신 증거가 되셨던 대속자이시다.
구약 시대에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받으실 영광을 미리 증언한 것이었다(벧전1:10-11)
기약이 이르러, 때가 되어, 주신 증거로 그리스도께서 대속자로 오신 것이다.
사도들도 이를 전하였고, 천사들도 살펴보기 원하는 것이었다..
대속물 또는 화목제물 희생제물이 없이는 거룩한 하나님과 화해하거나 화목할 수 없다.
그것은 구약 내내 희생제사의 제물을 통해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바였다.
그 희생 제물, 화목 제물, 대속물이 되시기 위해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으로 오신 것이다.
죄인들이 자기들의 죄 때문에 의당 받아야 할 형벌과 지옥을 그분이 대신 받으셨기에 대속물이시다.
이 대속물로 하나님의 공의가 충족되심으로 하나님도 의로우시고 우리도 의로워지는 길이 열린 것이다.
이 십자가의 대속 진리를 믿는 자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그의 의의 옷을 입혀 주신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입은 그리스도인을 의롭다 하시고 자녀 삼아 주셨다.
그래서 우리의 중보자는 자기를 대속물로 주신 오직 한 분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이다.
마리아고 성자고 교황이고 갖다 붙이면 중보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인하여,
우리는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겨”졌다.(골1:13)
하나님과 우리는 화목하게 된 것이다.
이 대속의 교리가, 성령의 역사로, 우리의 마음을 치고 사로잡을 때,
사람들은 비로소 자기가 죄인인 것을 알고, 하나님을 대적한 죄를 알고 그 죄를 회개하게 되고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영접하고 믿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진정한 회심인 것이다.
우리 주님이 달려 돌아가신 십자가에 대한 믿음과 감격과 감사와 헌신이 없다면,
그는 교인은 될지 몰라도 그리스도인으로서는 아직 출발도 출생도 하지 못한 것이다.
그러한 감격과 감사가 희미해졌다면, 첫 사랑을 회복해야 한다.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계2:4-5)
예수 그리스도가 나를 위해 죽으셨으면, 그 진리를 믿고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면,
이제 우리의 생애는 그분을 위한 생애가 되어야 한다.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은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롬14:7-8)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우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셨다.(벧전2:21)
그래서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제자들인 것이다.
3. 믿음과 진리 안에서 전하는 스승이 되어야 한다.
“믿음과 진리 안에서 내가 이방인의 스승이 되었노라”(딤전2:7)
‘믿음과 진리 안에서’라 하고 있다.
진리이기 때문에, 진리와 함께, 우리는 믿는 것이고,
또한 믿음이 없다면 진리는 공허하고 오히려 해악을 끼친다.
믿음은 우리가 믿는 의지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믿는 대상이 바르고 옳고 분명해야 한다.
우리는 진리이신 하나님을 믿고 그분의 계명인 진리를 믿는 것이다.
진리이신 하나님과 진리인 말씀을 믿는 믿음이 없이는 내가 가진 모든 지식이 무용지물인 것이다.
사도 바울은 자기에게 유익하였던 모든 지식을 배설물로 여기고 버렸다고 했다.
왜냐하면 그 지식으로 하나님을 대적하고 진리이신 그리스도와 그의 은혜를 대적했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신 복음의 진리로 생명을 낳아야 한다.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가 복음으로써 너희를 낳았다’고 했다.(고전4:15)
먼저 내 생명을 낳고 이웃의 생명을 낳도록 도와야 한다.
생명을 낳는 데는 해산하는 수고가 따라야 한다.
구원은 생명을 낳고 키우는 문제인데 너무 쉽게들 생각하고 해산의 수고를 하지 않는 것이다.
주님의 생명으로 우리의 생명을 주셨기에 우리는 이 생명을 낳고 키우는 데 해산의 수고를 해야 한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신다.(딤전2:4)
구원 받는다는 것은 곧 복음 진리를 아는 데 이르는 것이다.
구원을 얻게 하는 하나님의 정해진 방법이 곧 진리를 알고 믿는 것이다.
이 복음 진리를 전하는 자가 있어야 듣고, 믿음이 생기게 하는 것이 전도이다.
우리도 주님과 바울, 초대 교회 성도들을 본받아, 이 복음 진리를 전파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믿음과 진리 안에서 우리 이웃 이방인들의 스승이 되어야 한다.
더 이상 진보에 이르지 못하고 항상 초보에만 머무는 어린 아이에서 벗어나야 한다.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 데로 나아가라고 하신다.(히6:2)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나도 힘을 다해 수고를 해야 한다.(골1:29)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여 우리의 성숙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해야 한다.(딤전4:15)
“내 사랑하는 자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고전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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