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1:16-17)
바울이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첫째, 복음이 좋은 소식이라는 데 있다. 둘째, 복음은 구원을 가져온다는 점이다. 셋째, 그것이 하나님의 구원방식이기 때문이다.
사도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네 번째 이유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 복음 자체가 하나님의 능력이다. 복음은 하나님께서 우리가 마땅히 무엇을 해야 하는지 말씀하시는 그런 것이 아니다. 또한 복음이 구원에 관하여 행하신 일의 진술만도 아니다. 복음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구원을 준비하셨으며, 어떻게 그 구원을 계획하시고 산출하셨으며, 어떻게 그 구원을 우리 속에서 이루어 나가시는지를 말하고 있다. 복음은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방식이다. 복음은 우리 속에서 구원을 산출하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다른 말로 복음은 우리 속에 계신 하나님이시다.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그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엡1:19-20).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빌1:6).
구원이란 우리 속에서 복음을 방편으로 하여 역사하는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뜻이다. 구원에 대한 바울의 개념은 총체적인 구원, 철저한 구원이다. 곧 복음은 위대한 능력으로서, 그 능력은 하나님의 ‘선택하시는’ 능력이다. 그 능력은 하나님의 능력 있는 ‘부르심’이다. 그것은 의롭다하시는 능력이고, 중생케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거룩케 하시며, 영화롭게 하실 능력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언제나 자신들 스스로의 힘으로 구원하려고 애써왔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다 헛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있었던 것이 또 있게 될 것이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지키기만 한다면 자신들을 구원할 수 있다고 말한다. 율법은 믿음을 낼 수 없으나 복음은 믿음을 낼 수 있다(롬8:3). 율법은 어느 누구도 구원할 수 없다. 율법으로는 죄를 깨닫는다(롬3:20).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은 지식이 아니라 ‘능력’이다. 율법을 아는 지식이 나로 하여금 율법을 지키게 할 수 없다. 이 복음은 그런 일을 해내고 성공해낸다. 복음은 결코 실패할 수 없다. 로마서 8장에서 그 점을 크게 강조하고 있다.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롬8:31-33). 어느 순간에도 복음이 그러한 최종적인 결론을 향하여 일하고 있으며, 결국 그러한 최종적인 결과를 산출할 수 있기 때문에, 바울은 이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이 하나님의 역사가 사람 속에서 시작되면 아무것도 그것을 막지 못한다. 우리로 하여금 하늘로 들어가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나와 나의 신실함에 달려 있지 않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일이나 장래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8:38-39).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듭났다(살전2:13, 약1:18, 벧전1:23). 거룩하게 함과 깨끗하게 함이 다 말씀으로 이루어진다(요17:17, 엡5:25-26)). 그러므로 바울이 이 복음 자체가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말할 때 그 모든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주의해야 할 것은 사도가 말씀의 단순한 기계적인 ‘문자’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고후3:6). 여러분이 바른 것을 말할 수 있지만 여러분이 말하는 그 바른 것이 죽어 있을 수도 있다. 사람들은 복음의 단순한 문자만을 전할 수가 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다. 바울은 “사람의 지혜와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복음을 전했다고 말한다. 그 모든 진술들을 보면, 하나님께서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위하여 해놓으신 모든 일,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의 모든 부요가 복음의 말씀을 통해서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에게 임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그 일을 행하시는 방식이다.
‘능력’의 헬라어가 ‘역동적’이라는 뜻이 있고, 또다른 뜻은 ‘처방’이라는 뜻으로도 흔히 사용하였다. 복음, 말씀은 처방전이다. 바울은 여기서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과 같다. “내 주머니에 있는 처방전을 난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난 그것이 무엇을 해낼 수 있는지 알기 때문이다. 난 전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빚진 자다. 나는 어떤 무서운 질병의 고통으로 신음했던 사람과 같이 느낀다. 의사나 명의에게 찾아 갔지만 그러나 소용이 없었다. 다른 나라에까지 가며 최선을 다했지만 조금도 차도가 없었다. 결국 다른 어떤 의사를 만나게 되었다. 그는 나의 고통에 대해 모든 것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는 처방전을 써주며 약을 먹으면 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그렇게 했더니 나는 완전히 나았다.” 나는 그 처방전을 가지고 있다. 내가 당했던 같은 고통을 당하고 있는 사람에게 나는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사도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다섯 번째 이유는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 모든 사람들을 위한 복음이라는 데 있다. 복음이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해당된다고 말한다. 율법을 가졌든 가지지 않았든 어떤 사람도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었다. ‘첫째는 유대인에게요’라고 말하는 것은, 누구보다도 유대인이 더 중요해서가 아니라 순전히 역사적(시간적)인 관점으로 유대인을 먼저 거론한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들이었으므로 복음이 먼저 그들에게 출발하여 전파되어야 한다. 유대인도 다른 누구와 똑같이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목사님은 우리들을 죄인으로 보고 설교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저는 주일학교를 나왔습니다. 복음은 우리에게 해당되지 않습니다. 예배당에 한 번도 오지 않은 사람들에게 설교해야하지 않겠습니까?”라고 말하는 것에 대해여 대답은 “첫째는 유대인에게요”라는 말이다.
모든 사람이 복음을 필요로 한다는 것은 복음은 모든 사람들을 위한 소망을 선포한다고 말한 것이다. 그 점 때문에 하나님께 감사한다. 복음에 관해선 어느 사람도 절망적인 사람은 없다. 그것은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이다. 구원받기에 불능일 정도로 죄인인 사람은 없다. 여기에 이 복음의 영광이 나타난다. 얼마나 위안이 되고 위로를 주는가? 사도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이 놀라운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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