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계시
(행 14:15-17) 15 이르되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 우리도 여러분과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런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으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함이라 16 하나님이 지나간 세대에는 모든 민족으로 자기들의 길들을 가게 방임하셨으나 17 그러나 자기를 증언하지 아니하신 것이 아니니 곧 여러분에게 하늘로부터 비를 내리시며 결실기를 주시는 선한 일을 하사 음식과 기쁨으로 여러분의 마음에 만족하게 하셨느니라 하고
Ⅰ ‘어떻게 하나님을 알 수 있는가?
성경 교리에 대한 연구 또는 기독교 교리에 대한 연구는 분명히 궁극적으로 위 질문과 관계가 있습니다. 욥이 “내가 어찌하면 하나님 발견할 곳을 알꼬”(욥 23:3)라고 표현한 것처럼, 이 부르짖음은 인간의 심령에 존재하는 질문입니다. 우리는 모든 인류에게 ‘하나님을 느끼는 의식’이 있다는 사실을 당연하게 받아들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근원적이고 본유적인 무엇인가와 싸우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 의식, 이 하나님에 대한 느낌은 인간들에게 축복이 되기도 하고 괴롭히기도 합니다. 그리고 모든 인간은 의 의식을 피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알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두 가지 가능한 길
1 우리가 우리 자신의 노력과 탐구로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역사의 맨 처음부터 인간들은 이렇게 하나님을 추구해 왔습니다. 이렇게 갖고 있는 본능적이고 직관적인 느낌을 좇는 형태는 다양합니다. 사람들은 ‘내적인 빛(inner light)’에 대해 말하며 우리가 해야 하는 모든 일은 그 빛과 그 빛의 인도를 따라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신비주의자들과 그 밖의 많은 사람들이 따르는 길이 바로 이 길입니다.
‘만일 하나님을 알기 원하다면 당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자신에게 빠져 들어가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의 내면에는 궁극적으로 하나님께 인도하는 내적인 빛이 있다. 지식은 필요 없다. 이 빛과 이 빛의 인도에 자신과 자신의 능력들을 복종시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필요 없다.’
현재 이 직관적인 방법은 우리에게 매우 낯익은 방법입니다. 사람들은 수많은 형태들을 갖고 있고, 현대 세계의 많은 사교 종파들에서 볼 수 있습니다.
2 이성과 지혜와 명철에 기초한 방법입니다.
사람들은 자연과 피조물로 시작하여 거기에서 추론을 말합니다. 그들은 그 과정의 결과로 자신들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도달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역사를 관찰하고 역사의 과정을 추론함으로 하나님을 믿는 신앙에 이를 수 있다고 말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순수한 이성의 추리 과정에 몰입하는 것이 하나님에게 이르는 길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이에 대한 기독교의 답변은 무엇입니까?
이에 대한 기독교의 답변은 필연적으로 실패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점을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고전 1:21). 그런데 바울이 이 말을 헬라인들 즉 철학적인 가르침에 익숙한 고린도인들에게 했다는 것이 의미심장합니다. 바울이 이렇게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여전히 하나님을 찾기 위해 인간의 사상과 이성에 의지하고 있습니다.
두 가지 이유에 있어 이런 방법들로 인간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이를 수 없습니다. 첫째 이유는 하나님 자신의 본성입니다. 즉 하나님의 무한하심, 하나님의 완전무결한 인격과 특성들 그리고 하나님의 완전한 거룩하심, 이 모든 하나님의 본성은 본질적으로 당연히 이성의 추리나 직관에 의해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이르는 것을 불가능하게 합니다.
두 번째 이유, 즉 죄악의 상태에 있는 인간들은 인격과 본성을 추가할 때 인간의 방법들로 하나님의 지식에 이르는 것은 두 배로 불가능하게 됩니다. 인간의 정신은 너무 작아서 하나님에 이르거나 하나님을 이해할 수도 없고 하나님을 깨닫지도 못합니다. 타락으로 인해 인간의 모든 기능들과 능력들이 죄와 선척적인 악의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을 우리가 이해할 때 인간의 노력에 의해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이르는 것은 완전히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가정을 버리는 것으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진실로 하나님을 알고자 하는 유일한 소망은 하나님께서 은혜로 자신을 우리에게 계시하는 것을 기뻐하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독교는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다고 가르칩니다. 성경은 이에 대해 우리에게 말씀해 줍니다. 따라서 우리가 함께 상고해야 할 첫 번째 교리는 성경의 계시에 대한 교리입니다.
Ⅱ 계시란 무엇입니까?
계시는 하나님께서 자신에 대한, 즉 자신의 본성, 행위, 뜻과 목적에 대한 진리를 전달하시는 행동입니다. 계시는 이 모든 것의 장막을 벗기는 행동도 포함됩니다. 즉 우리로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가리고 있던 장막을 열어젖히는 행동입니다.
1 하나님께서 자신을 계시하시는 두 가지 주된 방법
첫째는 우리가 일반계시(general revelation)라고 칭하는 것이고, 또 한 가지는 특별계시(special revelation)입니다. 그러면 먼저 일반 계시를 살펴봅시다.
일반 계시
일반계시란 무엇일까요? 앞에서 어떤 사람들이 자연을 관찰함으로 추론의 과정에 의해 하나님께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하였습니다. 그런데 성경도 어느 정도 여기에 동의합니다.
1] 피조물과 자연
성경은 하나님께서 일반적으로, 우선 피조물과 자연을 통해 자신을 계시하셨다고 우리에게 말합니다.
로마서 1:19-20절에서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동일한 요점에 진술은 사도행전 14: 17, 15 ; 17:24절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 모든 말씀들은 하나님께서 피조물과 자연에 자신의 표적들, 자신의 흔적들을 남기셨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상기시킵니다. 따라서 성경 전체를 통해 하나의 주제로흐록 있는 메시지는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시 19:1)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은 그 자체가 하나님의 계시입니다. 이것이 일반 계시의 첫 번째 정의입니다.
2] 섭리(providence)
일반계시의 두 번째는 섭리(providence)입니다. 섭리는 이 세상에 있는 만물의 질서, 만물의 보존, 만물을 유지시키는 것으로 계절들, 비와 눈과 농작물들의 결실이 모두 하나님을 나타낸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3] 역사
일반계시의 세 번째는 역사입니다. 세상의 모든 역사는 하나님의 계시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일반 계시가 충분하지 못하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일까요? 죄 때문입니다. 만일 죄인이 아니라면 인간들은 피조물과 섭리와 역사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기적과 역사를 보는 이성의 과정을 통해 하나님께 도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죄로 인하여 인간들은 그럴 수 없습니다. 사실 고의적으로 그렇게 되는 것을 피합니다.
바울은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롬 1:21-23)고 말합니다.
피조물 등에서 받는 증거는 인간들이 하나님 앞에서 악을 행할 때 핑계를 할 수 없게 하는 데 충분합니다. 그러나 죄 가운데 있는 인간들에게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전달하기에는 충분하지 못합니다. 피조물과 섭리와 역사는 하나님께서 전능하시다는 사실과 창조주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쳐 줄 수 있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어떤 소망이 있는가?
특별 계시
그 대답은 성경이 말하는 두 번째 유형의 계시에서 발견될 수 있고 그 계시를 특별 계시라고 칭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성경에서 발견하는 특별계시는 아주 특별하고 한정된 목적을 갖고 있습니다. 그 목적은 하나님의 성격, 하나님의 본성, 특별히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 가운데 계시되는 하나님의 성격과 본성을 우리에게 계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특별한 지식은 오직 성경을 통해서만 주어진다
성경의 이 점에 독특한 주장을 합니다. 즉 성경이, 오직 성경만이 하나님에 대한 이 특별한 지식을 우리에게 준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 기록이 하나님 자신에 대해, 그리고 인간과 관련하여 하나님의 모든 자비로운 구원의 목적에 대해 하나님이 특별하게 계시한 기록이라고 스스로 주장합니다. 이것은 인류의 위대한 종교적 탐구가 아닙니다. 위대하시고 영원하신 하나님이 장막을 걷고 그분 자신에 대한, 그리고 그분의 위대하고 은혜로운 목적들에 대한 통찰과 지식을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의 주제입니다. 그것이 성경의 메시지를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는 길을 잃게 됩니다.
Ⅲ 성경에 나타난 특별 계시의 방법
1 신적 현현
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신적 현현(theophany)-하나님의 나타나심, 하나님의 다양한 임재하심-을 통해 사람들에게 자신을 계시하시는 것을 기뻐하셨다고 말합니다. 출애굽기 33장을 보면, 하나님은 모세에게 그의 요청을 들어주셔서 그에게 자신의 영광을 보여 주겠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임재가 너와 함께 할 것이다.” 하지만 모세는 담대해져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 그러자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나를 얼굴을 맞대고 보지는 못할 것이다. 그렇게 나를 보고 살 수 있는 자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내 영광을 너에게 계시하겠다.”
신인동형론(anthropomorphism)
영원한 영이신 하나님이 인간의 용어로 말씀하시기 위해, 그리고 인간의 방식으로 행동하시기 위해 자신을 낮추셔야 했다는 말씀입니다. 그분은 자신의 손으로 모세를 덮으시고 나서 지나가셨고, 모세는 하나님의 등 부분만 보도록 허락받았다고 나와 있습니다. 이것은 엄청난 진술입니다. 위대하시고 영원하신 하나님이 사람들이 그 분에 대해 무언가 알 수 있도록 하나님을 잠시 볼 수 있게 허락하셨다는 것입니다.
2 언약의 사자
또한 성경에서 ‘언약의 사자’라는 말을 매우 자주 발견하게 됩니다. 언약의 사자에 대한 모든 언급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주님은 성육신 이전에 이 세상에 나타나셨습니다. 성육신 하신 것은 아니었지만, 나타나신 것입니다. 주님은 계시를 주시기 위해 특정한 모습을 취하셨습니다. 기드온은 이런 계시를 받았습니다. 삼손의 부모 역시 그들을 믿음을 강하게 하기 위해 이런 신적 현현을 보는 특권을 누렸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수없이 자신을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셨습니다.
3 직접적인 말씀
그 다음에 하나님은 직접적인 말씀을 주심으로 은혜롭게 자신을 계시하시기를 기뻐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무한히 넓고 심오한 일을 다루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하나님의 음성이 이 세상에 들렸다고 말합니다.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서 그 음성을 들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물론 모세에게 율법을 주실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다시 들렸습니다. 우리는 계시 문제 전체에 대해 생각할 때 하나님의 음성을 다루어야 하며, 깊고 진지하게 묵상하고 숙고해야 합니다. 이같이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시고 음성을 들려 주신 다른 예들을 스스로 생각해 보고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4 기적과 표적과 기사
다음에 다룰 것은 하나님이 기적과 표적과 기사들을 통해 자신을 계시하시기를 기뻐하셨다는 사실입니다. 구약과 신약 모두에서 이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구약의 기록된 기적의 예로 모세가 바로 앞에서 행한 기적과 홍해가 갈라진 기적, 또한 엘리사 같은 하나님의 종들이 행한 기적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이런 일들은 기적이었으며, 기적은 언제나 하나님의 권능을 드러내고, 따라서 하나님 자신을 드러냅니다. 하나님은 율법을 주실 때와 같이 특별한 상황에서는 천둥과 번개를 일으키셨고, 산을 불타오르게 하기도 하셨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계시이며 나타나심이었습니다. 그분은 자연과 피조물에게 놀라운 일들을 행하셨습니다.
그리고 신약에 이르러서는 우리 주님의 기적들을 보게 되는데, 그 기적들의 주된 기능은 계시였습니다. 또한 초대 사도들 및 초대 설교자들이 이런 기적을 행했던 것은 하나님이 그들의 복음을 증거하셨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그들이 복음을 전파했으며, “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과 및 자기의 뜻을 따라 성령이 나누어 주신 것으로써 그들과 함께 증언하셨느라”고 기록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하나님은 그들이 자신의 종이며, 복음이 참된 것임을 확언했습니다. 물론 다른 모든 기적보다 뛰어난 기적은 위대하고 웅대한 부활의 기적입니다.
우리는 이런 기적들과 관련해서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는 말을 자주 보게 됩니다. 그들은 두려워했습니다. 그들은 경외함으로 가득 찼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들은 기적이 하나님의 권능의 표현임을 알았고, 그리하여 하나님 자신의 성품과 존재를 엿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5 꿈과 환상
하나님이 때로 꿈과 환상을 통해 자신을 계시하시기를 기뻐하셨다는 것입니다. 욥기 33장 15-16절입니다. “사람이 침상에서 졸며 깊이 잠들 때에나 꿈에나 밤에 환상을 볼 때에 그가 사람의 귀를 여시고 경고로써 두렵게 하시니.” 하나님이 꿈과 환상을 통해 말씀하신 일이 얼마나 많았었는지요! 우리 주님의 어머니인 마리아의 남편 요셉이 꾼 꿈들을 기억할 것입니다. 그리고 구약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하나님이 끊임없이 이같이 말씀하신 것을 보게 됩니다. 이런 환상과 꿈을 통해 하나님은 백성에게 특정한 것을 하라고 말씀하시거나 그분이 하시는 일들에 대해 경고하셨고, 그 결과로 그들은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것들은 계시였고,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증거였습니다.
6 영감(inspiration)
이것은 가장 중요한 문제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실 수 있음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게 하시고,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어 이해하게 하시며, 이런 특별한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주십니다. 궁극적으로 영감은 예언의 완전한 기초입니다. 그러므로 영감을 주심으로서 하나님은 다시 한 번 자신을 계시하십니다. 즉 자신에 대한 진리와, 자신이 계시다는 사실, 그리고 자신이 무엇을 하실 것인가를 계시하시는 것입니다.
Ⅳ 특별 계시를 통해 알려진 하나님의 구원
1 성경은 하나님의 구속적 행동을 보여준다
하지만 결국 이 특별 계시의 문제 중에서도 우리가 하나님의 구속적 행동에 대한 성경 기사라고 지칭할 수 있는 부분이야말로 크고도 위대한 부분입니다. 하나님의 계시 중 이보다 더 중대한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노아에게 자신을 보이셨습니다. 자신을 계시하신 것입니다. 노아에게 자신을 계시하신 것입니다. 노아에게 자신이 무엇을 하실 것인지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하신 일을 홍수와 세상에 대한 심판, 그리고 노와와 여덟 가족을 방주 안에서 놀랍게 구원하신 일을 통해 행하셨습니다. 이것은 놀라운 계시의 행동일 뿐 아니라 동시에 구원의 위대한 행동이었습니다. 이 가족을 제외한 고대 사회 모두가 정죄를 받고 멸망당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사건은 구원과 구속의 일부분이었습니다. 이 사람들을 구별한 것은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아들이 이 세상에 오신 것에서 절정에 이른 구원과 구속 역사의 일부분이었습니다.
또한 아브라함과 모세의 부르심과 그의 생애에 일어난 사건들을 통해서도 놀라운 방법으로 주어진 계시가 나타났습니다. 지금까지 예로 든 것들은 모두가 필수적이고 중요한 사건들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가장 중요하 사실, 모든 역사의 초점, 인류의 모든 과정의 중심점에 이를 때 이 모든 사건은 빛을 잃고 하찮은 것처럼 보입니다.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갈 4:4-5)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계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구원계시의 중심
히브리서 기자가 말한 것처럼, 옛적에 하나님은 생각과 환상을 통해 여기 저기에서 조금씩 말씀하셨지만, 그러만 이제는 광채요 영광이시며, 궁극적인 계시이시며, 위대한 구속 행위의 본질이신 자기 아들 안에서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특히 우리 주님과 관련해서는 부활을 또 하나의 위대한 구속 행위로 강조해야 합니다. 부활은 예수님의 사역의 충분성을 선포하고, 하나님께서 만족하셨음과 인류가 구원받을 수 있음을 알리고 계시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순절 성령강림
마찬가지로, 오순절 성령강림의 날로 포함시켜야 합니다. 불의 혀가 사람들에게 임했을 때 일어난 일은 모두 하나님의 위대하신 구속 행동의 일부였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성령께서 자신의 위대하고 영광스러운 일, 곧 이미 이루신 구속을 적용하시기 위해 교회에 임하신 중대한 행동이었습니다.
2 구원에 대한 계시는 오직 성경에만 주어졌다
바르트 신학과 복음주의 신학의 차이에 대해 관심이 있는 분들을 위해 이 점을 강조하고자 합니다. 바르트 신학은 하나님께서 그들이 ‘명제적 진리’라고 부르는 것을 계시하셨다는 사실을 부인합니다. 명제적 진리란 성경에 내가 받아들이고 믿을 수 있는 진리와 교리에 대한 진술들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명제적 진리를 계시하셨다는 것, 성경에 하나님이 계시하신 진리의 명제들이 있다는 것을 주장합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율법을 주시면서 매우 놀라운 방식으로 명제적 진리를 계시하셨습니다. 율법의 목적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이 제시하신 법도대로 살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율법의 일차적 기능은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성품을 보여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하나님이 하나님이기 때문에 율법대로 살아야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율법을 주심으로 자신에 대해 가르치셨던 것입니다. 더욱이 하나님의 약속이 특별히 다윗에게 주어진 사무엘하 7장은 구약에서 가장 중요한 장 가운데 하나입니다. 예언과 하나님에 대한 가르침,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대한 가르침, 그리고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가르침을 담고 있는 예언서들 역시 장래 일의 계시의 일부이며 전달된 진리입니다.
신약 성경에서 우리는 신약 성경의 권위를 믿는 우리의 믿음의 근거를 확실히 볼 수 있습니다.
그 진리는 주님이 요한복음 16장에서 약속하는 대로 하나님이 성령을 통해 사도들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에서 하나님의 가장 위대한 구속 행동에 대한 기록을 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는 이 행동들에 대한 하나님의 해설, 하나님의 주석, 구원의 방법 자체와 그 방법에 대한 하나님의 설명이 주어졌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오직 성경에만 이 계시가 있을 뿐 다른 곳에서는 없다고 주장합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계시하시지 않는다면 나는 하나님을 알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분은 자신을 계시하셨고, 그 계시는 이 성경책에서 찾아야 합니다. 내가 보든 보지 못하든 그 계시는 여기 있습니다. 계시는 주어졌습니다. 이제 제기되는 문제는 내가 이 책을 신뢰할 수 있는가, 이 책이 말하고 주장하는 것을 믿을 수 있는가. 이 책의 주장들을 믿고 그 권위에 나 자신을 복종시킬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계속해서 성경의 권위와 신빙성에 대해 논의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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