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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로이드존스 교리강해1 3장 성경의 권위

강대식 2016. 2. 17. 13:19
제3장 성경의 권위

이제 우리는 성경이 자신에 대해 어떻게 말하는가하는 문제를 상고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 문제를 고찰하고자 하는 것은 이것이 성경적 순서대로 교리를 살펴볼 때 필수불가결한 과정이기도 하지만, 기독교 신앙의 관심 있는 모든 사람의 궁극적인 목적과 목표는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려면 하나님이 자신을 계시하시기를 기뻐하셔야 한다는 사실을 살펴보았습니다. 창조와 역사와 섭리에서만 계시하신 것이 아니라 그 이상으로 계시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 책, 성경에 기록된 방식으로 자신을 계시하셨으며 성경은 하나님의 자기 계시에 대한 기록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이 그 일을 하신 여러 가지 다양한 방식을 성경에 따라 살펴보았습니다.

우리가 성경의 증거를 받아들일 수 있는가? 성경을 권위 있는 것으로 여길 수 있는가?

여기서 분명 위와 같은 필연적 의문과 질문을 제기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계시에 관한 권위 있는 진술은 오직 여기, 성경에만 나타나 있다는 우리 복음주의 개신교 그리스도인들의 주장이 정당함을 어떻게 입증할 것인가? 왜 우리는 교회나 전통이나 어떤 종류의 ‘내적인 빛’, 혹은 우리 자신의 이성이나 이해력이 아닌 성경에 의지하는가? 그러므로 우리는 이것이 정당함을 증명해야 하며, 그 방법이 성경이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입니다.

먼저 성경 자체를 살펴보는 것을 강조합니다. 성경의 교리를 다루려면 성경에 집중해야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항들도 논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른 논증을 인용할 수도 있고, 또 그렇게 하는 것이 신학의 영역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성경 교리를 적극적으로 해설하는 일만 하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명확하고 한정된 목표를 마음에 두십시오.

Ⅰ 계시와 영감

성경이 주장하는 바는 성경이 하나님의 계시의 기록이라는 사실만이 아닙니다. 그보다 더 나아가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주장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을 받은 것이라고 주장하며, 성경의 권위는 이 하나님의 영감에 기초합니다. 여기서 계시와 영감의 차이를 마음속에 분명히 정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둘은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성경에 있는 모든 것이 계시는 아닙니다. 그러나 성경의 모든 것은 영감을 받은 것입니다.

계시는 하나님이 자신을 드러내 보이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전도서나 죄 많고 불경건한 사람들의 말이 기록된 부분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이런 진술들 속에는 전혀 계시가 담겨 있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성경은 이 모든 진술이 영감을 받아 기록된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런 진술들은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 더 많이 알도록 도와주지 않습니다. 또한 우리가 하나님의 대한 지식을 얻는 데도 전혀 도움이 안 됩니다. 그 안에 하나님이 자기를 나타내신 계시라고는 하나도 없습니다. 하지만 성경이 주장하는 바는 성경에 담겨 있는 모든 것은 영감된 기록이며, 따라서 무오하고 틀림없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Ⅱ 영감의 의미

영감이라는 말의 의미는 무엇인가?

1 영감에 대한 잘못된 개념들

우리가 말하는 것은 성경의 특정 부분들만 영감을 받았고 다른 부분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특정한 진술들과 가르침들, 특히 주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된 부분에서는 영감을 받은 부분이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역사들과 다른 여러 부분들은 영감을 받은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경이 하나님의 영감을 받았다고 할 때의 의미는 이런 것이 아닙니다.

성경의 저자들이 열정적인, 또는 창조적인 방식으로 글을 썼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어떤 시인이 걸작품을 하나 만들었을 때, 종종 사람들이 ‘그 시인은 영감을 받았어.’라고 말하는 것을 듣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성경 저자들이 성경을 기록할 때 그런 식으로 영감을 받았다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영감을 그저 성경 저자들에게 주어진 아이디어가 영감을 받았음을 의미하는 것일 뿐이라고 여깁니다. 물론 그 말도 맞지만 우리가 말하는 영감은 그보다 훨씬 많은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이 말은 성경이 어떤 사람에게 하나님의 숨결 혹은 감응(afflatus)이 임한 다음, 그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창작물이라는 의미도 아닙니다.

그러면 성경의 영감은 무엇입니까?

2 성경의 영감은 축자적 영감

성경의 영감

그것은 바로 성경은 하나님께서 숨을 불어넣으신 하나님의 작품이라는 것입니다. 영감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이 숨을 불어넣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이 메시지들을 사람들에게 그리고 사람들을 통해 불어넣으셨으며 성경은 그와 같은 하나님의 행하심의 결과라는 것입니다. 성경에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이 말은 분명히 특정한 단어들의 경우에도 해당됩니다.

축자 영감(verbal inspiration)

따라서 성경 자체가 축자 영감(verbal inspiration)을 주장한다는 점을 증명하고자 합니다. 축자 영감이란 그저 생각이나 개념들만 영감된 것이 아니라, 실제 기록이 특정한 단어들에 이르기까지 다 영감 되었다는 것입니다. 즉 단순히 내용에서만 옳다는 것이 아니라 모든 단어가 하나님의 영감으로 되었다는 것입니다.

축자 영감의 의미

영감에 대한 여러 가지 이론을 논하는 데 시간을 소모할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 성경 자체가 말하고 있는 바를 해설하는 데에 더 관심이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이 축자 영감을 주장합니다. 그렇지만 성경이 하나님의 의해 축자적으로 영감 되었다고 말할 때, 이 말이 성경을 기계적으로 받아썼다는 뜻이 아님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속기사처럼 앉아 있고, 하나님이 모든 단어를 불러 주어 받아 적게 하셨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저자들 간에 문체의 차이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그 증거입니다.

우리는 각 저자들이 특유의 표현법과 습관, 자신만의 독특한 문체를 쓰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쓴 글을 베드로나 요한의 글과 금세 구별해 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영감이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저자가 기록하는 가운데 오류를 범하지 않도록 하나님의 성령의 의해 통제를 받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령께서 저자들을 심지어는 특정한 단어를 선택하는 일에서조차 지배하고 통제하여 인도하여,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원래 의도하신 결과를 산출해 내도록 하셨다는 것입니다.

Ⅲ 축자 영감의 증거

그렇다면 성경은 이 사실을 어떤 방법으로 주장할까요?

1 성경은 영감에 대해 명확한 주장을 한다

첫 번째 표제는 성경이 영감의 문제에 대하여 명확한 주장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이 스스로에 대해 사용하는 특정한 용어들, 성경(Scripture)이라는 용어를 생각해 봅시다. 그 말은 ‘거룩한 글들(holy writings)’을 칭합니다. 범상한 글들이 아니라, 특별한, 거룩한 글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이 스스로를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묘사하는 것을 생각해 봅시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길”, ‘여호와의 말씀이 임하여“, 이와 비슷한 표현이 놀랍게도 구약 성경에만 3,808번이 사용되었습니다.

신명기 18장 18절은 이 주제에 대한 대단히 중요한 구절입니다. “내가 그들의 형제 중에서 너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그들을 위하여 일으키고 내 말을 그 입에 두리니 내가 그에게 명령하는 것을 그가 무리에게 다 말하리라.” 이것은 우리 주님이 오실 것에 대한 예언일 뿐 아니라, 또한 모세 자신과 그의 사역에 대해서도 많은 말해 줍니다.
구약의 모든 예언자들도 분명히 이런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갑자기 글을 쓰기로 결심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그리고 언제 그것이 임했는지를 정확하게 말합니다. 그들은 부르심을 받았고, 사명을 받았고, 그리고 말씀이 임했습니다.

또 하나의 흥미로운 사실이자 대단히 귀중한 논거는 어떤 선지자들은 때로 그들이 별로 말하고 싶지 않았다고 솔직하게 이야기한다는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종종 말하고 싶지 않았지만, 강권을 받았습니다(렘 1:6-7).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며 그는 단순히 하나님이 주신 것을 전달했습니다.

더 중요한 사실은 선지자 자신이 글을 쓰고 있으면서도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니엘이 “내가 듣고도 깨닫지 못한지라”고 말하는 다니엘서 12장 8절의 진술을 생각해 봅시다. 베도로도 똑같은 말을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에베소서 2장의 중요한 진술이 있습니다. 바울은 여기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20절)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그 터위에 세우심을 입었습니다. 우리는 신약 정경이 형성된 이후에 씌어진 어떤 것도 권위 있는 것으로 간주하지 않습니다. 여기에 우리의 터가 있으며 우리는 어떤 교회나 어떤 전통의 어떠한 가르침도 신적 영감을 받은 것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기초이며, 교회는 이 가르침 위에 세워져 있습니다. 그 가르침은 독특한 권위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2 축자 영감을 지지하는 결정적 구절들

첫 번째 본문은 디모데후서 3장 16절입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흠정역 성경은 이렇게 번역되어 있지만 개정역은 다릅니다.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모든 성경은 교훈과...에도 또한 유익하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입니다. 이 번역에 따르면 영감을 받지 않은 성경도 존재한다고 즉각 유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구절을 다룰 때는 흠정역의 명백한 번역을 고수해야 함을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두 번째 결정적 구절은 베드로후서 1장 20-21절입니다. “먼저 알 것은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 대단히 중요한 진술입니다. 물론 이에 대한 해석도 중요합니다. 베드로가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라고 했을 때 그 말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이는 누구도 성경에 대해 자신만의 특별한 해석을 할 권리가 없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는 여기에서 예언의 기원, 성경의 기원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그가 말하는 것은 어떤 예언도 어떤 개인의 사적인 이해 혹은 해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다시 말해, 그의 말은 예언이 소위 고등 비평가들이 지난 세기 동안 가르쳐 온 방식대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해 왔습니다. “이 예언자들은 대단히 위대하고 유능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심오한 사상가들이었다. 그들은 인생과 역사를 고찰한 후, 그것을 묵상하고 심사숙고하여 그 결과 이론과 사상을 도출해 기록했다.” 하지만 여기에서 베드로는 예언은 그렇게 임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삶과 사람들에 대한 그리고 하나님과 역사에 대한 어떤 사람의 사적인 해석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예언은 무엇입니까?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입니다. 이 “감동하심을 받다”라는 단어는 여러 가지로 번역됩니다. 다양한 번역들이 이 예언들은 어떤 사람이 자신의 타고난 능력과 성향들과 재능들을 사용하여 사물을 고찰한 후 최선을 다해 기록함으로써 만들어 낸 스스로의 주장이 아니라는 사실에 동의하고 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는 이 성령의 강풍, 하나님의 바람, 하나님의 영에 힘에 의해 통제를 받았습니다. 이런 신적 영감이 그에게 임하여 그를 붙잡아 감동시켰으며, 그는 성령에 의해 인도를 받았습니다. 예언들과 성경은 바로 이런 과정을 거쳐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이상의 내용이 축자 영감에 대한 성경 자체의 위대하고 명확한 주장들이라고 부른 것들입니다. 그것은 바로 모든 성경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생겨났다는 것입니다.

3 성경이 성경을 대하는 태도

먼저 주님이 하신 말씀을 살펴봅시다. “너희 율법에 기록된 바 내가 너희를 신이라 하였노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하셨거든 하물며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하사 세상에 보내신 자가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는 것으로 너희가 어찌 신성모독이라 하느냐”(요 10:34-36)라고 하셨습니다.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이 말은 성경을 폐기하거나 거역할 수 없고, 부인할 수도 없다는 뜻입니다.

그 다음에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한 사람을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갈 3:16). 사도는 여기에서 단 한 글자에 중요성을 부여합니다. 이는 축자 영감이라는 문제 전체에 대해서도 가장 중요한 진술 중 하나입니다. 사도의 전체 논증은 성경이 “자손들”이 아니라 “자손”이라고 기록되었다는 사실에 좌우됩니다. 복수형이 아닌 단수형을 사용했기 때문에 이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언급이 되는 것입니다.

또 하나의 중요한 증거는 신약에서 구약을 인용하는 방식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이르신 바와 같이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히 3:7). 이것은 시편 95편에서 인용한 것입니다. 신약을 철저히 살펴서, 구약을 인용한 후 이것을 하나님과 성령의 말씀으로 간주하고 있는 부분, 또는 언제나 같은 의미를 갖는 어구인 “말씀하시기를”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부분을 관찰해 보십시오.

4 성경의 일관성

성경을 읽을 때 이 영감의 교리를 분명하게 입증하는 다른 명백한 추론들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육십육 권의 성경은 적어도 일천육백 년이 넘는 기간에 사십 명 이상의 저자들의 의해 기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성경 전체에는 오직 한 가지 유형의 교리와 한 가지 유형의 도덕만이 존재합니다.

구약을 봅시다. 구약에는 한 가지 정신, 즉 메시아의 소망이 스며들어 있습니다. 시대마다 사람들은 달라지지만 메시아적 소망은 하나였습니다. 그리고 신약에도 오직 하나의 주제가 있으니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심입니다. 모든 것이 그를 가리켜 보이고 있고 모든 것이 그에게 집중되어 있습니다. 저자들이 다양하다는 것은 아무런 차이도 만들지 않습니다. 오직 이 하나의 위대한 주제만이 존재합니다.

5 가장 중대한 증거-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하지만 우리가 제시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증거는 주 예수 그리스도 자신의 증거입니다. 그분이 끊임없이 구약을 인용하는 방식을 주목하십시오. 그분이 구약을 권위 있는 것으로 여기셨으며, 어떤 논쟁이나 반대보다도 상위의 것으로 여기셨다는 것을 주목하십시오. 그분이 단지 “기록되었으되”라고만 말씀하셨으며, 그것은 최종적인 결론이었습니다. 그분은 분명 구약 전체를 권위 있고, 최종적이며, 최고의 것으로 받아들이셨습니다.

예수께서는 몇몇 구체적인 진술들을 하셨습니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마 5:17-18). 마가복음 12장 26-27절 그리고 누가복음 24장 44절을 살펴보기 바랍니다.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들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결국, 영감에 대한 우리의 이해의 근거는 주 예수 그리스도 자신 안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님이 성경을 바라보는 관점이었습니다.

그럼 기록상의 차이점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몇몇 불일치점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적절한 대답이 있습니다. 우리가 가진 번역본들에는 분명히 쉽게 설명할 수 없는 난점들이 존재하며 이것에 대해 솔직하게 언급해야만 합니다. 하지만 비평가들이 들고 나오는 소위 난제들과 불일치들의 대부분은 설명이 가능하다는 사실도 말하도록 하겠습니다. 사실사 이 문제들의 대부분은 이미 해결되었습니다. 그 중 많은 부분은 수년 간 고고학적 연구의 결과로, 그리고 성경의 언어학에 대한 이해가 깊어짐에 따라 설명되었습니다.

아직까지도 몇 가지 난제가 남아 있습니다만, 그것들이 결코 교리나 역사적 사실들에 대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그것들은 숫자의 문제이거나 아니면 필사자나 번역가의 실수로 쉽게 설명할 수 있는 비교적 중요하지 않은 문제들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며 우리의 믿음과 행실에 대한 유일하고 무오한 규칙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만일 여러분이 성경의 권위와 축자 영감을 하찮게 여기기 시작한다면, 여러분은 필연적으로 주님 자신에 대해서도 어려움에 봉착하게 될 것입니다.

6 성령의 조명 외에 영감성을 증명할 방법은 없다

결국 여러분은 누구에게도 성경이 유일무이하게 하나님의 영감을 받은 책임을 증명해 줄 수는 없는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사람들은 성령의 조명을 받아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이 모든 사실을 완벽하게 진술하고 있는 웨스터민스터의 신앙고백의 한 본문을 인용하는 것으로 이 강의를 마치고자 합니다.

우리는 교회의 증언에 감동받고 설득되어 성경을 높고 귀한 것으로 여기게 될 수 있다. 또한, 성경이 천국의 내용을 다룬다는 사실, 교리의 능력, 문체의 장엄성, 모든 부분의 일관성,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리는 전체의 시야, 인간의 구원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 완전히 나타나 있음, 그 외 비교 대상이 없는 많은 탁월성들, 전체적인 완전성 등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에 대한 충분한 증거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이 무오한 진리이며 신적인 권위를 갖는다는 사실을 우리가 완전히 수긍하고 확신하게 되는 것은 우리의 마음 속에서 말씀으로, 그리고 말씀과 함께 증거하시는 성령의 내면적 역사의 결과다(Ⅰ:Ⅳ).
출처 : 청교도 아카데미
글쓴이 : 박성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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