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눅 19:45-48
1. 유대인들은 교회를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다
“성전에 들어가사 장사하는 자들을 내쫓으시며 —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하시니라”(눅19:45-46)
같은 말씀이 마태복음에도 마가복음에도 요한복음에도 있다.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요2:16)
유대인들은 성전을 화려하게 지어놓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아니라 돈을 예배하였다.
그들은 성전에서 부정한 거래를 일삼음으로서 성전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다.
멀리서 하나님을 예배하러 온 자들을 속이고 강매하며 강도 짓을 하였다고 한다.
우리 주님이 보신 성전의 모습은 ‘장사하는 집’이요, ‘강도의 소굴’이었다.
부와 권력이 하나님 자리를 차지하고 하나님은 형식적으로 섬기고 있었다.
하루살이는 걸려내고 낙타는 삼켰고, 작은 의무는 지키면서도 더 중한 바 의와 신과 인은 버렸다.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였지만 속은 탐욕과 위선과 불법으로 가득차게 했다.
회칠한 무덤이었다.
재물과 하나님은 겸하여 섬길 수 없는데도 그들은 겸하여 섬기기를 좋아하였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6:24)
두 주인을 동시에 섬기는 것은 불가능하다.
한 주인을 사랑하면 다른 주인은 미워할 것이고,
한 주인을 중히 여기면 다른 주인은 경히 여기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여 둘 다 섬긴다고 하였다.
황금이 우상이 되고 섬김을 받는 것은 영혼에 변화가 오기 전에는 고칠 수 없는 질병이다.
재물보다 황금보다 비교할 수 없이 소중한 것이 자기 영혼인 것을 지옥에 가서야 깨닫는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일만 악의 뿌리라고 하신다.
돈을 탐하는 사람들은 많은 근심으로 자기를 찌르고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된다.
돈은 필요의 대상이지, 사랑의 대상이거나 탐하는 대상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일용할 양식으로 족해야 한다.
그 외의 것은 다 탐욕이고 그것은 우상숭배이기 때문이다.
너희는 먼저 재물이 아니라, 성공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하신다.
그리하면 모든 것을 더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신다.
천하보다 더 귀한 영혼이 이 땅에서는 잠시요, 저 세상에서는 영원 삶을 산다.
이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땅에다 코를 박고 재물에만 전념하다가 낭패를 보고 만다.
하나님이 만드신 영혼은 영원을 사모하고 하나님을 사랑할 때 행복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세상과 사탄이 우리 시선과 관심을 사로잡아 사탕발림으로 불행과 비극으로 이끄는 것이다.
우리는 그와 싸워 이겨야 하고 믿음을 지켜야 한다.
오늘날 교회가 장사하는 집으로, 강도의 소굴로 바뀐지 오래다.
세상이 그대로 교회에 들어와 세상의 우상과 가치관이 그대로 들어와 하나님 노릇을 하고 있다.
그들의 상을 엎으시고 쫓아내실 분은 그때나 지금이나 오직 주님 한 분 뿐이시다.
다 부와 권력에 취해서 돌아가니 말릴 사람도 없고 바로 잡을 사람도 없다.
“이 땅에 무섭고 놀라운 일이 있도다. 선지자들은 거짓을 예언하며
제사장들은 자기 권력으로 다스리고
내 백성은 그것을 좋게 여기니 마지막에는 너희가 어찌하려느냐?”(렘5:30-31)
하나님만 무섭고 놀랍게 여기셨지, 교회 사람들은 태평세월이었다.
목사와 교인들이 한 통속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권력은 바르게 쓰지 못하면 강도의 칼이 되고 만다.
제사장에게 다스릴 자기 권력이 있다는 것이 무엇을 말하는가?
진리를 선포해야 할 선지자들은 거짓을 예언하고 설교하고 있고,
하나님을 섬겨야 할 제사장들은 돈을 섬기고 그것으로 권력을 삼아 다스리길 좋아한다.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좋게 여기며 아부하고 충성하며 같이 춤을 준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파수꾼들은 맹인이요 다 무지하며 벙어리 개들이라 짖지 못하며 다 꿈꾸는 자들이요
잠자기를 좋아하는 자들이니 이 개들은 탐욕이 심하여 족한 줄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요
그들은 몰지각한 목자들이라 다 제 길로 돌아가며 사람마다 자기 이익만 추구하며 —
내일도 오늘 같이 크게 넘치리라 하느니라”(사56:10-12)
교회는 음부의 권세가 호시탐탐 노리는 대상이다.
중세 교회만 면죄부를 파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교회도 면죄부를 더 지능적으로 팔고 있다.
천년만에 부패된 교회를 종교개혁을 했지만 또다시 오백년 만에 부패의 온상으로 돌아갔다.
그런데도 그 실상을, 유대인들처럼 모르고, 한 통속이 되어, 미친 듯이 돌아가고 있다.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가는 자들이 많은 것이다.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고 열매를 보면 알 수 있다고 하시는 데도,
노략질하는 이리들을 삼가지도 않고, 열매를 보면서도 좋다고 여전히 붙어 있다.
“너희는 그들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고후6:17).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하지 말라”(요이1:10).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배운 교훈을 거슬러
분쟁을 일으키거나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그들에게서 떠나라
이같은 자들은 우리 주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다만 자기들의 배만 섬기나니
교활한 말과 아첨하는 말로 순진한 자들의 마음을 미혹하느니라”(롬16:17-18)
사도들이 전한 ‘이 교훈’인지, 사도들에게 ‘배운 교훈’인지 분별할 책임이 영혼의 소유자에게 있다.
지옥으로 갈 것인지 천국으로 갈 것인지, 문과 길을 선택할 책임이 자기 영혼에게 있다.
강도의 소굴에서 마냥 즐기고 진리에 대한 무관심으로 살다가
지옥에 가서야 자기 혀를 써늘하게 해줄 물 한방울 구하는 신세가 되지 않아야 한다.
시간이 주어졌을 때, 은혜의 기회가 주어졌을 때, 강도의 소굴에서 돌이켜야 한다.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딸려고 하는, 무익한 노름을 그만 두어야 한다.
우리 생명이 전제와 같이 부어지고 세상 떠날 시각이 가까이 오고 있다.
달려갈 길을 마치지 못하고 선한 싸움을 싸우지 않고 믿음을 지키지 않은 사람들은
무슨 상을 받을 것이며, 무슨 면류관을 받을 수 있겠는가?
유황 불이 타오르는 곳에서 저주와 회한으로 고통을 씹으며 영벌을 감당해야 할 것이다.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라 하셨다.
다만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간다고 하셨다.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던 자들, 많은 권능을 행한 자들, 다
“불법을 행한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한다고 하셨다.(마7:15-23)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고 하신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마7:14)
문도 잘 찾아야 가고 길도 잘 찾아가시기 바란다.
사람 많은 곳은 아예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주님은 많은 제자 삼지 않으셨고,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다고 하셨다.(마18:20)
주님이 심은 작은 가지가 자라서 때가 되면 천을 이루고 강국을 이루게 하신다.
교회에서 장사하지 말아야 한다.
돈 거래 하지 말아야 한다.
세상 권력이, 목사 권력이, 힘쓰거나 다스리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게 해야 한다.
2. 교회는 기도하는 집이 되어야 한다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 되리라 하였거늘”(눅19:46)
교회는 하나님과의 교통을 위하여 성별된 기도하는 집이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집, 하나님과 교통하는 집이라는 의식이 없으니, 강도의 소굴로 만드는 것이다.
재물과 권력에 사로잡히면, 하나님도, 하나님의 집도, 별것이 아닌 게 되고 만다.
교회는 무엇보다 기도하는 집이다.
“여호와와 연합하여 그를 섬기며 여호와의 이름을 사랑하며 그의 종이 되며
안식일을 지켜 더럽히지 아니하며 그의 언약을 굳게 지키는 이방인마다
내가 곧 그들을 나의 성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내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할 것이며
그들의 번제와 희생을 나의 제단에서 기꺼이 받게 되리니
이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 것임이라”(사56:6-7)
교회 와서 기도하지 않는 사람이 다른 곳에서는 기도를 잘할까요?
수요기도회, 금요기도회를 귀하게 여기시기 바란다.
주일 날도 예배 시간 전에 오셔서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시기 바란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께 독립선언을 한 사람이다.
하나님의 은혜와 도움 없이도 나는 얼마든지 잘 살 수 있다고 무언중에 장담하는 사람들이다.
사람의 본성은 내버려두면 하나님께 나아가기 보다는 대적하는 성향이 높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해 긍휼하심을 받기 위해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야 한다.
범사에 감사하며 항상 기도하는 것이 우리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다.
성령 안에서 무시로 기도하시기 바란다.
육적인 기도만 하지 말고 영적인 기도를 할 수 있기를 바란다.
주님의 기도가 우리 기도의 모본이다.
무엇보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를 부르고 바라보아야 한다.
내 이름의 출세가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기를 구해야 한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기도해야 한다.
내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기도해야 한다.
일용할 양식만을 구해야 한다. 이에 지나치는 것은 탐심이다.
우리가 필요한 것을 다 아시지만 그래도 우리가 구해서 받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용서함 같이 우리 죄도 용서해달라고 구해야 한다.
세상에서 시험에 들지 않게 구하고, 악에서 구원해주시기를 구해야 한다.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현재 쥐고 있는 사람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하나님께 있음을 찬양하고 고백하고 확신해야 한다.
이러한 주기도의 순서와 내용이 우리의 기도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너희는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여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므로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4:2-3)
이사야 선지자는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범하지 않겠다고 하였다.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은 은혜 주시고 깨닫게 하시고 회개하게 하시고 선한 길로 인도해 주신다.
하나님과의 교통과 교제가 쉬임 없이 이어지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소원한다.
교회 와서 사람과의 교제도 필요하다. 하지만, 오직 그 교통만 하다가,
하나님과의 교통을 데면데면하는 것으로 끝난다면 그것은 성전 뜰만 밟고 가는 것이다.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는 말씀을 기억하고,
내가 기도하는 하나님의 집에 왔다는 것을 의식하고 그 내용에 충실하시기 바란다.
3. 교회는 말씀을 가르치고 예배하는 집이 되어야 한다
“예수께서 날마다 성전에서 가르치시니”(눅19:47)
교회는 장사하고 강도짓하는 강도의 소굴이 아니라 진리를 가르치는 곳이다.
교회는 돈 자랑, 권력 자랑하는 곳이 아니다.
돈을 섬기고 탐하고 거래하고 권력을 휘두르는 곳이 아니다.
주님은 날마다 성전에서 가르치셨다.
그런데 강도의 소굴을 만든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백성의 지도자들은 그를 죽이려고 하였다.
지금도 그러고 있는 현실을 잘 보시기 바란다.
진리가 우리를 구원하고 자유케 한다.
진리가 교회의 중심이 되지 못할 때 돈과 권력이 중심이 되는 것이다.
음부의 권세가 교회를 이기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은 진리와 교훈(교리)에 관심과 중심을 쏟아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이고, 예수 그리스도가 진리이고, 성령이 진리의 영이시다.
우리를 거룩하게 하려고 부르셨고, 진리가 우리를 거룩하게 해준다.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엡1:4-5)
부자가 되고 출세하고 성공하게 하려고 우리를 택하고 부르시고 아들들이 되게 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이 주시는 복은 세상의 복이 아니라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이다.(엡1:3)
기복신앙, 형통신앙, 믿음신학들이 얼마나 잘못된 미신의 길을 가는지 사탄의 길을 가는지 알 수 있다.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이 우리를 이땅에서도 행복하게 하고 저곳에서도 영원히 행복하게 한다.
우리는 성령으로 거듭나야 하고 회심하고 영화에 이르기까지 성화의 길을 가야 한다.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롬8:30)
교회는 진리의 말씀을 가르치고 선포하여 성화의 길을 가게 하는 곳이다.
그래서 교회는 진리의 기둥과 터인 것이다.
진리의 말씀이 교회의 터가 되고 진리의 말씀이 교회의 기둥이 되어야 한다.
성령으로 충만하여 사도들이 진리의 말씀을 선포할 때 초대교회 성도들이 3천명씩 회개하여 돌아왔다.
그 처음 세워진 교회에서 맨 처음 하는 일이 진리의 말씀을 가르치는 것이었다.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행2:42)
강도의 소굴이 아닌 교회의 참 모습은 이러하다.
우리 주님 부활하시고 승천하실 때 하신 말씀이다.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성경)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28:20)
하나님은 오직 영과 진리로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신다고 하였다.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하라고 하셨다.(요4:24)
그 진리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인 것이다.
진리의 말씀은 가르쳐야 깨닫고 성령으로 살고 실천할 수가 있다.
진리의 말씀 배우기를 싫어하고 멀리하는 사람들은 무엇으로 살고 무엇으로 예배할 것인지요?
육은 무익한 것이고 세상의 모든 것은 사라지고 마는 것들이다.
천지는 없어져도 진리의 말씀은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다고 하셨다.
이 진리의 말씀으로 살고 복을 받는데, 배우기 싫어하고, 성경 읽기를 게을리하고 있다.
떡반죽 그릇과 광주리에도 복을 받고 들어가도 나가도 복을 받는 것이 주의 말씀에 순종하는 데 있다.
병원 간호사들과 직원들이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말씀공부를 하고 있다. 너무나 귀하다.
진리의 말씀으로 가르침을 받아야, 좁은 문, 생명으로 인도하는 협착한 길로 갈 수가 있다.
가르침을 받지 않으면 큰 문, 멸망으로 인도하는 넓은 길로 가기가 십상이다.
교회도, 내 영혼도, 부와 권력으로 장사하는 강도의 소굴로 만들지 말고,
기도하는 집, 진리의 말씀을 가르치고 배우고 실천하는 집으로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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