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스크랩] 6/19 설교, "너희가 피운 횃불 가운데로" 사50:1-12

강대식 2016. 6. 19. 22:01

본문: 이사야 50:1-12

  

하나님이 주시는 불이 있고, 사람이 피운 불이 있다.

나답과 아비후는 하나님이 주신 불이 아니라 자기들이 만든 불로 제사를 드리다가 죽었다.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각기 향로를 가져다가 여호와께서 명령하시지 아니하신 다른 불을 담아

여호와 앞에 분향하였더니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그들을 삼키매 그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은지라”(10:1-2)

 

사람이 만든 다른 불이 문제인 것이다.

우리 주님은 불과 성령으로 세례하시는 분이시다.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3:11,3:16)

 

성령과 불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불과 같이 역사하시는 것을 말한다.

성령의 불 세례는 성령이 아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베푸신다.

주님은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24:49)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1:5)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1:8)

 

그 능력은 드디어 오순절날 임하였다.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2:1-4)

 

오순절 성령이 임하므로 신약 교회는 시작된 것이다.

그 이후로도 주님은 우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베풀고 계신다.

성령이 불과 같이 우리 심령에 임하실 때 회개가 터지고 회심이 일어나고 부흥이 일어나는 것이다.

 

오순절 불을 받을려고 산으로 올라가고 집회를 하는 것은 불을 조작하는 것이다.

성령의 불은 주권적으로 우리 주님이 세례로 각 심령에 주시는 것이다.

이 성령의 불 세례는 예배 중에 하나님의 주권으로 받기도 하고, 기도하다가, 성경 보다가,

어떤 사람은 호수가에서 물을 먹다가, 우리가 획정할 수 없는 다양한 방법으로 주셨다.

 

성령의 불 세례는 반드시 체험적이다.

거듭나고 구원받는 것은 성령의 내적 세례이다.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3:5)

성령은 물과 같이 역사하신다.

 

우리는 이 내적인 성령의 세례로 한 몸이 되었다.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고전12:13)

 

성령은 비둘기 같이 임하시기도 한다.

내가 보매 성령이 비둘기 같이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더라”(1:32)

 

그래서 성령의 불 세례를 받지 못했다고 해서 구원을 못 받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직 확신과 능력을 위해 주시는 것이다.

 

내 증인이 되리라”.

성령의 불 세례는 믿음의 확신을 주고, 그리스도를 담대하게 증언할 능력을 주신다.

 

그러나 그 불은 우리가 구할 뿐이지 우리가 조작할 수는 없다.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11:13)

 

성령만 불이 아니라 말씀도 불이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 말이 불 같지 아니하냐 바위를 쳐서 부스러뜨리는 방망이 같지 아니하냐 여호와의 말씀이라 그러므로 보라 서로 내 말을 도둑질하는 선지자들을 내가 치리라 거짓 꿈을 에언하여 이르며

거짓과 헛된 자만으로 내 백성을 미혹하게 하는 자를 내가 치리라 내가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으며

명령하지 아니하였나니 그들은 이 백성에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23:29-32)

 

어쨌든 내적으로든 외적으로든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불이 와야 하나님과 진리를 믿게 된다.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고전2:9-13)

 

부흥과 부흥주의는 하늘과 땅만큼 다른 것이다.

부흥은 성령이 임하셔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고, 오순절의 반복이라고도 한다.

부흥주의는 인간들이 집회를 열고 자기들의 불과 열심으로 부흥을 조작하는 것이다.

 

미국의 1차 대각성은 휫필드와 조나단 에드워즈가 하나님께 쓰임 받은 하나님의 부흥이었다.

그러나 2차 대각성은 찰스 피니와 무디 등이 조작한 부흥주의였다는 것이 역사의 평가이다.

그후 20세기의 빌리 그레험이나 오순절 집회 등은 부흥주의의 재현으로 보는 것이 바른 견해이다.

그것은 다른 불이었다. 인간의 불이었고, 성경 말씀을, 그들은 그 목적을 위해 왜곡하고 변질시켰다.

지금도 베니 힌을 위시해서 미국의 성령 운동들은 대부분이 인간이 조작한 불로

부흥과 능력을 조작하고 속이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대로 열매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열매를 보지 않고 화려한 현상과 능력에 현혹되고 미혹되고 있다.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7:15)

 

저도 목사 되고 약 10년 동안 이 불의 현상들에 속아 세월과 비싼 댓가를 지불했다.

많은 사람들이 몰려가고 유명 목사들과 교회들이 대세를 주도하고 그런 책들이 베스트셀러로 팔리니,

어지간한 분별력과 진리의 능력이 없이는, 그것들이 아니라고 하기가 매우 어렵다.

 

영국의 청교도 시대에도 80%의 목사들은 왕정복고와 동시에 국교도로의 전환 법령에 순응하였다.

오직 진리의 확신을 가진 약 20%, 2천명의 목사들만 교구와 사택을 버리고 고난을 각오하고

진리의 길을 갔다.

 

목사들을 배출하기 위해 만든 하바드 대학교가 지금은 한 명의 목사도 배출하지 못하고 있다.

참된 복음주의의 요람이었던 미국의 프린스턴 대학도 자유주의화된 지 오래다.

인간이 만든 제도와 세상의 초등학문들에 포로가 된 것이다.

다른 불을 피우고 그 불로 횃불을 밝히고 있다.

 

저는 국내외 유명 신학교와 유명 교회들이 자유주의화 내지는 신정통주의화 되었다고 본다.

미국제 영성을 경계하라고 한다.

교회가 세상의 포로가 되었다고 한다.

하나님이 주시는 불이 아니라 인간이 만든 불과 횃불로 그들은 만족하고

그 불과 횃불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미혹하고 있다.

 

그들이 어느 대학에서 학위를 받았는지,

그 대학들이 지금 얼마나 성경적인지, 역사적인 전통의 맥을 잇고 있는지,

그들의 불과 그들이 쳐든 횃불을 보면 알 수 있다.

 

구약 이스라엘 시대에도 선지자들과 제사장들과 백성들이 한 통속이 되어 그러했다.

중세 카톨릭 시대 천년 동안도 사제들과 백성들이 하나가 되어 암흑시대를 만들었다.

종교개혁이 일어난지 오백년이 지나는 동안 현대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공통점이 있다면 그들은 암흑인 줄 모르고 그 불과 횃불로 만족하고 평안을 누린다는 것이다.

그들은 가장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욕심내며 선지자로부터 제사장까지 다 거짓을 행함이라

그들이 딸 내 백성의 상처를 가볍게 여기면서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

그들이 가증한 일을 행할 때에 부끄러워하였느냐 아니라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을 뿐 아니라

얼굴도 붉어지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므로 그들이 엎드러질 자와 함께 엎드러질 것이라

내가 그들을 벌할 때에 그들이 거꾸러지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8:10-12)

 

우리는 이사야 예레미야 등 선지서의 말씀이 바로 오늘 현대의 이스라엘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들어야 한다.

우리 주님이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에게 하신 책망이 바로 오늘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들어야 한다.

현대 교인들에게도 바리새적인 요소와 사두개적인 요소들이 누룩으로 퍼져있기 때문이다.

 

우리 주님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음을 당한다고 하셨다.

사사시대에도, 왕정시대에도, 중세 시대에도, 예수님을 죽인 자들은 마찬가지였다.

지금도 하나님을 위한다고 하면서 예수님을 죽이고 있는 자들은 제도권 종교권력자들인 것이다.

 

너희 중에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종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자가 누구냐”(50:10)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묻고 계신다.

세상의 힘 있는 자들을 경외하지, 정말로 하나님을 두려워함으로 존경하는가?

 

하나님은 그의 종들에게 고난과 연단을 통해 학자의 혀를 주시고, 학자들 같이 알아듣게 하신다.

저는 15년 멱우리 시절이 그러하였음을 감사한다.

등을 때리고 수염을 뽑고 모욕과 침 뱉음을 당하여도 주의 종은 부끄러워하지 않았다고 이사야는 말씀한다.

이것은 우리 주님이 오셔서 당할 일을 예언한 것이기도 하다.

 

순전한 종들은 항상 시대의 종들, 세력을 가진 종들에게 핍박을 당해 왔다.

순전한 말씀에, 진리에, 견고하게 선 하나님의 종들은 이렇게 말한다.

나를 의롭다 하시는 이가 가까이 계시니 나와 다툴 자가 누구냐 나와 함께 설지어다

나의 대적이 누구냐 내게 가까이 나아올지어다 보라 주 여호와께서 나를 도우시리니

나를 정죄할 자 누구냐 보라 그들은 다 옷과 같이 해어지며 좀이 그들을 먹으리라

 

이런 자세가 있었기에 2천명의 청교도들은 교구도 집도 버릴 수 있었고, 순교하고 고난을 견딜 수 있었다.

 

이사야 시대에 이스라엘은 진리를 위해 고난을 받은 것이 아니라 그들이 죄악 때문에 고난을 받고 있었다.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내가 너희의 어미를 내 보낸 이혼 증서가 어디 있느냐

내가 어느 채주에게 너희를 팔았느냐 너희는 너희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팔렸고

너희의 어미는 너희의 배역함으로 말미암아 내보냄을 받았느니라”(50:1)

 

하나님은 아내인 이스라엘에게 이혼 증서를 줘서 내 보낸 적이 없다.

채주에게 팔아 넘긴 적도 없으시다.

이혼 당하고 팔린 것은 오직 너희 죄악 때문에 팔렸고 배역함으로 내보냄을 받은 것이다.

 

하나님이 제게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느냐고 원망 불평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기 죄악은 돌아보지 않고, 하나님을, 이혼증서로 내쫓고 팔아먹는 분으로 매도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나님은 오히려 말씀하신다.

 

내가 왔어도 사람이 없었으며 내가 불러도 대답하는 자가 없었음은 어찌 됨이냐

내 손이 어찌 짧아 구속하지 못하겠느냐 내게 어찌 건질 능력이 없겠느냐

보라 내가 꾸짖어 바다를 마르게 하며 땅들을 사막이 되게 하며 물이 없어졌으므로

그 물고기들이 악취를 내며 갈하여 죽으리라 내가 흑암으로 하늘을 입히며 굵은 베로 덮느니라”(50:2-3)

 

하나님은 오셨는데도 종들을 통하여 부르고 또 불렀는데도 그들은 죄악과 배역에 팔려 듣지 않았다.

손이 짧아 구속하지 못하고, 건질 능력이 없는 하나님이 아니시다.

그러나 하나님의 참으심이 하나님의 거룩함과 공의를 버리게 할 수는 없다.

결국에는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은 내려지지 않을 수 없다.

 

하나님이 흑암으로 하늘을 입히고 굵은 베로 덮으면 모든 것은 끝이 나고 만다.

바다도 마르고 땅들도 사막으로 변하고 그 안의 생명들도 악취를 내며 죽고 만다.

이 재앙이 이르기 전에, 참된 종들의 경고를 귀담아 듣고,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야 한다.

 

흑암 중에 행하여 빛이 없는 자라도 여호와의 이름을 의뢰하며 자기 하나님께 의지할지어다

하나님은 죄를 회개하고 돌아와서 하나님을 의지하면 사하시고 축복하시는 분이시다.

우리가 육체와 호흡 뿐임을 아시기 때문이다.

 

죄가 없더라도 그리스도인은 고난과 연단이 있을 수 있다.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그러나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벧전2:20-21)

 

바울도 말씀한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6:9)

 

고난 중에도 하나님의 이름을 의뢰하고 자기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

그것이 믿음의 인내요, 믿음을 지키는 것이요, 선한 싸움을 싸우는 것이다.

이 달려갈 길을 마치고 승리하였을 때 주님은 약속하신 의의 면류관을 주실 것이다.

 

그러나 악인들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기 불을 피우고 횃불을 둘러 띤다.

그들은 그들 자신의 공로와 능력에 대한 자부심으로 불을 피우고 횃불을 삼아 만족해 한다.

세상적인 재물과 향락 속에 행복을 느끼며 자기들 인생의 횃불로 삼는다.

 

그러나 피조물이 주는 위로들은 불꽃과 같아서 오래가지 못하고 곧 사라져 버린다.

그런데도 세상 사람들은 그 불로 스스로를 따뜻하게 하고, 그것을 횃불 삼아 오만하고 자신만만해 한다.

횃불 같이 타오르는 그들의 야망과 탐심이 그들의 종말을 재촉한다.

 

하나님은 이들을 향해 말씀하신다.

너희가 다 너희의 불꽃 가운데로 걸어가며 너희가 피운 횃불 가운데로 걸어갈지어다

그러나 너희가 내 손에서 얻을 것은 이것이다.

너희가 고통이 있는 곳에 누우리라

흑암 중에 내려가게 될 것이다.

 

악인의 빛은 꺼지고 그의 불꽃은 빛나지 않을 것이요 그의 장막 안의 빛은 어두워지고 그 위의 등불은

꺼질 것이요 그는 광명으로부터 흑암으로 쫓겨 들어가며 세상에서 쫓겨날 것이며”(18:5-6,18)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에서, 부자는 날마다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호화롭게 즐기다가

지옥의 고통 가운데로 떨어지고 만다.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며 그의 혀를 서늘하게 해 줄 물 한 방울을 구하는 신세가 되고 만다. .

 

살아 생전에 고통을 받던 나사로는 아브라함의 품에서 위로를 받는다.

아브라함, “얘 너는 살았을 때에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는 그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괴로움을 받느니라”(16:25)

 

끝이 좋아야 한다.

시작과 중간이 아무리 좋아도 끝이 좋지 않으면 그것으로 끝이다.

끝이 좋으면 그간의 모든 고통도 슬픔도 위로가 되고 행복이 되는 것이다.

 

끝이 천국과 영생이어야지, 끝이 지옥과 영벌의 고통이 아니어야 한다.

인간이 만든 불을 의지하지 말아야 한다. 지옥의 불꽃으로 직행하게 된다.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주의하라

이것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름이요 그리스도를 따름이 아니니라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졌으니

그는 모든 통치자와 권세의 머리시라”(2:8-9)

 

사람들이 피운 불꽃 가운데로, 그들이 피운 횃불 가운데로 들어가지 말아야 한다.

우리 주님께서 주시는 성령과 불의 세레를 받으며 그 불 속에서 살아야 한다.

그분의 진리인 불꽃 속에서 살아야 한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2:6-7)


출처 : 청교도 아카데미
글쓴이 : 강대식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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