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그가 의로우신 줄을 알면 의를 행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줄을 알리라”(요일2:29).
의로운 삶이란 단순히 도덕적 삶이나 선한 삶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은 명백하다. 의란 예수 그리스도가 사신 삶의 질과 같은 삶을 의미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보여 준 삶과 같은 삶을 영위하는 사람을 보게 된다면 의심할 여지 없이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난 자라고 확신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렇게 살 수 없다는 말이다. 거듭나지 아니한 사람으로서는 산상 수훈이 가르치는 내용의 삶을 살 수 없다. 산상 수훈의 말씀은 일반인들이 지키기에는 불가능한 내용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반인이 얼마나 좋은 사람들인가 아닌가에 상관없이 그들이 그리스도인의 삶을 산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들은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삶까지는 살 수 있지만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 수는 없다. 신약 성경의 말씀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일반인에게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라는 요청은 전혀 하지 않는다. 오히려 신약성경이 그리스도인을 위해 제시하는 삶의 기준은, 일반인을 정죄하며 그들이 거듭나야만 될 절대적 필요성을 느끼도록 밀어붙이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이 요한이 말하는 주제요 위대한 논증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난 자들이라면 거기에 합당한 질적 삶이 따라 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여러분이 계명을 못 지키며 죄 가운데 살고 있다면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주장할 수 없다. 만일 그와 같은 삶을 산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마귀의 자녀이다. 하나님의 자녀라면 마땅히 다른 삶을 살아야만 된다.”라고 그는 말했다.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요일3:3)
오직 그리스도 안에 머물러 있는 참된 하나님의 자녀들만이, 양자의 영을 받음으로써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자들만이, 하나님의 자녀들이라고 일컬음을 받을 수 있고 하나님과 긴밀한 관계를 맺을 수 있다. 이외의 다른 사람들은 창조의 사역에는 속할지 몰라도 구원의 영역에는 속할 수 없다. 그들은 하나님의 생명 밖에 있는 사람들이다.
자녀와 아들에 무슨 차이점이 있는가? 설명해 보자면, 아들이라는 단어는 법적이고 외형적 관계를 강조하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반면, 자녀라는 단어는 부모로부터 태어나 부모의 성질과 혈통을 공유한다는 공통적 본성에 강조점이 주어져 있다. 그러므로 법적 위치보다는 아무래도 내적이면서도 생명력 있는 유기적 관계를 더 많이 강조한다고 볼 수 있다. 요한이 우리에게 상기시켜 주려는 것은 참된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하나님의 생명 그 자체도 공유한다는 사실이다. 베드로후서 1:4에는 이것에 대해 우리가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라고 표현하여 설명했다. 요한복음 15장의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는 여기에 관해 완벽하게 설명하고 있다. 포도나무의 생명과 수액과 포도나무로서의 구실을 할 수 있는 활력소가 포도나무의 원줄기에서 가지로 공급된다. 유기적 관계이며 하나님의 본성을 공유하고 있음을 가르치는 것이다.
우리는 자녀로서 하나님 가족 중의 한 구성원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부터 너희는 ---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엡2:19). 우리는 그분의 자녀로서 식구의 일원이 되었으며, 그분 가족의 한 구성원으로서 그분과 독특한 관계 안에 들어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이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자녀들이 될 수 있도록 만들어 준 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이 자신의 생명을 우리에게 넣어 주신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하나님의 본성이 사랑이시며 또한 그분의 성품을 우리에게 넣어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내지 못하면서 산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라 할 수 없다. 자녀란 부모를 닮기 마련이며 자손들을 선조의 특징을 보이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그 성품은 스스로가 역사하여 드러내고 표현된다. 여러분 안에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고 있다면 서로서로 사랑해야 한다. 비록 형제가 사랑받을 만한 가치가 없다 해도 그를 사랑해야 한다.
세상은 “그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이런 사실을 비웃을 것이다. 세상은 이와 같은 신령한 일을 이해할 수 없다. 여러분을 광신자라고 하며 어느 날 갑자기 심리적 고정관념을 발전시켰다는 식으로 우습게 평한다 할지라도 흥분하지 말기 바란다. 이는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기 때문에 여러분을 이해할 수 없는 것뿐이다. 이것은 참으로 큰 신비이며, 어떤 면으로 보면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부분 중의 하나라고 할 수도 있다. 비록 세상은 우리를 모른다 해도 우리는 그리스도를 알 뿐 아니라 같은 그리스도인들간에도 서로서로를 알 수 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생명을 소유하고 있음에 대한 증명이다.
“보라 --- 어떠한 사랑을”에서 보여지는 사랑이란 단어는 이해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설명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말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이 사랑은 영원한 것이며, 하나님으로부터만 나올 수 있는 것이며, 다른 무엇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닌 스스로 생성된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우리의 죄악에도 불구하고 주님이 이 땅에 오시어 많은 고난을 당하면서 돌아가실 수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의 아들이 되심은 우리 같은 사람의 아들들이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하기 위함이었다. 바로 그런 그분의 엄청난 사랑의 행위를 통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었으며 지금 현재도 하나님의 자녀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너무나도 놀랍고 믿기 어려운 사실이지만 틀림없는 진리이다.
- 로이드 존스, ‘하나님의 자녀’(요한일서강해 1-3장), pp 429-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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