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뷰캐넌

[스크랩] 제임스 뷰캐넌, 성령의 사역, 회심과 부흥, 4장 마음을 비추시는 성령의 사역(강의안)

강대식 2016. 10. 5. 13:08

4장 마음을 비추시는 성령의 사역

 

이제 우리는 성령 하나님의 첫 교훈이 시작될 때부터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때까지 다양한 성령 사역들과 영혼에 관계하시는 그분의 계속적인 역사를 살펴보자(1:12 참고).

 

우리에게 가장 절실히 필요한 성령 하나님의 위대한 사역 중 하나는 바로 성령께서 우리의 지식에 영적인 빛을 공급해 주시는 것이다. 실제로 이 부분과 관련하여 사도 바울은 성령을 지혜와 계시의 정신이라 부르고 있으며, 그 성령께서 우리 마음 눈을 밝혀 주실 것을 기도하고 있다(1:17-19). 사도 바울은 참된 회심자를 가리켜 그 눈이 밝아진 자이며, 어둠에서 나와 빛으로 들어간 자라고 말한다. 그는 곧 흑암의 권세에서 하나님의 기이한 빛의 나라로 옮겨진 자이다.

 

이러한 성령의 조명(照明)하시는 사역은 성령의 다른 모든 사역의 기반이 된다. 그분께서는 죄를 인식할 수 있도록 우리의 마음을 비추심으로써 양심의 자각을 위한 기초 사역을 하신다. 또한 우리로 하여금 복음의 의미와 그 중요성을 알게 하시기 위해 회심을 위한 동기를 부여하신다. 그리고 하나님과 우리 자신들, 그리고 우리가 누리게 될 특권과 장래의 소망에 대한 올바른 지식과 견해를 교훈하심으로써 안식과 평화의 수단을 제공하신다.

 

성령께서는 복음이 제시하고 있는 거룩의 본질과 필요성을 우리에게 보여 주심으로써 성화의 사역을 수행하신다. 또한 우리의 영적 필요에 관한 성경적인 견해를 계시하심으로써 기도의 정신을 불러일으키신다. , 성령께서는 진리의 지식을 수단으로 그분이 원하시는 모든 일을 수행해 가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영혼에 대한 성령 하나님의 여러 가지 활동과 작용들에 관해 계시된 말씀을 올바로 이해하고 증진시키기 위해서는 앞서 언급한 성령 사역의 이러한 부분을 올바르게 고찰하고 공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성령 사역은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다른 모든 구원의 은혜들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그것들 중 어느 하나도 성령의 사역과 분리해서는 생각할 수 없다.)

 

영적 어둠에 갇혀 있는 죄인의 마음

 

성령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깨우치시는 분이시며, 그들의 마음을 영적으로 조명(照明)하시는 분이시다. 이러한 성령 사역은 그것을 받는 대상자들의 과거의 영적 상태가 어둠과 흑암의 상태였다는 것을 암시하고 전제한다(4:18 참고). 또한 이들은 육에 속한 자들이다(고전2:14). 참고로 여기 묘사된 영적 어둠의 본질이 우주적이라는 사실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이는 모든 믿지 않는 이방인들, 유대인들, 즉 자연인 또는 보통 생육법으로 출생한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것이다.

 

인간의 본성 자체에는 어느 정도의 빛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빛은 단지 어둠을 보게 해 줄 뿐이다. 따라서 마음이 거듭나지 못한 자의 영혼이 가지는 하나님에 대한 일반적인 개념으로는 결코 그 영혼을 가리고 있는 어둠을 몰아낼 수 없다. , 이것만으로는 영적 흑암이 제거되지 않는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1:21)라고 선언한 것이다.


또한 사도 바울은 이것이 바로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 하나님에 관한 지식이 근본적인 결함을 가진 증거라고 간주했다. 또한 그는 이러한 지식이 전혀 지식이 아닌 이유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선언했다(고전1:21 참고). 그리고 우리 주님께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둠이 얼마나 더 하겠느냐”(6:23)라고 엄숙히 선언하셨다. 참고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계시를 손에 들고 있으면서도 하나님을 믿지 않는 유대인들(한 번 비춤을 받은 자들)을 가리켜 영적 흑암에 머물러 있다라고 말한 것이다(고후3:14-16). 그러므로 흑암이 사람들의 마음에 여전히 존재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오로지 마음속에서 작용하는 내적인 역사를 통해서만 제거될 수 있다. 바로 이것이 성령께서 깨우쳐 주시는 영향력에 속한 것이다(고후3:17). 만일 우리가 수건을 벗은 얼굴로, 즉 밝히 열린 얼굴로 주의 영광을 볼 수 있다면’, 그것은 반드시 주의 영으로 말미암은 것이다(고후3:18 참고).

 

또한 그리스도께서는 사도 바울을 명하사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두움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26:18)라고 명령하셨는데, 단순히 인간적인 교훈이나 가르침으로 성취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고유하고 특별한 사역에 의해서 성취된다.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고후4:6). 이렇게 위대한 변화는 사람의 영혼에 관계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직접적인 사역에 기인한다.

 

2. 성령의 다양한 조명사역

 

여기에 영혼을 깨닫게 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몇 가지 중대하고 독특한 조명사역이 있다.

첫째, 선지자들과 복음전도자들, 사도들은 진리의 계시자이신 성령 하나님의 사역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았다(벧후1:21).

둘째, 성령 하나님은 성경의 저자로서 선지자들과 복음 전하는 자들, 사도들을 감동시키시고, 모든 세대의 세상을 책망하시며, 교회를 위로하는 메시지를 선언하신다. 그러므로 성경은 교회를 위해 성령 하나님께서 제공하시는 교과서인 셈이다.

셋째, 모든 인간의 영혼에 더욱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시는 성령의 역사가 있는데, 그것은 그분의 진리로써 사람들의 영혼을 조명해 주시는 것이다.

 

이렇게 이 위대한 조명사역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방법이요, 성령은 조명의 주체가 되는 것이다. 성경은 교과서이며 성령 자신은 교사가 된다. 또한 성령은 성경의 저자일 뿐만 아니라 우리를 그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는 해석자이시기도 하다. 성령께서는 성경을 우리 발에 등이요, 우리 길에 빛으로 우리 손에 쥐어 주신다. 우리가 영적으로 소경이 되어 멀리 볼 수 없기에 성령께서 우리 눈을 열어 주시고 우리 마음에 빛을 비추시는 것이다. 성령께서 가르치시는 진리는 모두 다 성경 안에 있다. 그러나 성령께서 그것을 우리 안에 넣어 주실 때까지는 그 진리가 우리 마음 안에 들어올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검과 같다. 하나님의 말씀은 좌우에 날 선 검이다. 그 효력은 그것이 성령의 검이라는 데 달려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빛이다. 그 빛은 오직 성령의 비추어 주시는 빛을 통해서만 볼 수 있다. 그러므로 결국 우리 마음에 빛을 비춰 주시는 것은 성령의 말씀이 우리의 마음으로 진입하여야만 가능한 것이다. 이처럼 오직 성령께서 마음의 문을 열어 주셔야말씀이 비로소 우리 마음에 진입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내 눈을 열어서 주의 율법에서 놀라운 것을 보게 하소서”(119:18)라고 기도했으며, 심지어 사도 바울은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3:14-16)라는 놀라운 기도를 올렸다.

 

바로 여기에 인간의 영혼에 역사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강력한 역사가 있다. 우리 속사람이 반드시 그분의 능력으로 강건하게 되어야 한다. 왜 우리 속사람이 강건해져야 하는가? 그것은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깨닫게 되고, 그리고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충만하게 하기 위해서이다(3:18-19 참고).

 

3. 구원의 유일한 방편으로서의 성령의 조명사역

 

모든 은혜의 방편들의 유효성, 특별히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것과 설교에 관한 유효성이 성령의 교훈에 달려 있다. 성령의 사역이 없이는 구원을 위한 회심을 목적으로 하는 말씀사역은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한다. 성령의 깨닫게 해 주시는 은혜를 동반하지 않는 한, 그것은 세상의 일반적인 도덕의 의미를 알게 해 주는 수단이 될 수 있을지는 모르나 절대로 영혼을 향한 영적 생명의 수단이 될 수는 없다.

 

사역자들은 종종 영혼을 깨닫게 하고 회심케 하는 일에 도구로 사용된다. 그러므로 모든 사역자들은 사도 베드로처럼 다음과 같이 말해야 한다.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놀랍게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3:12).

 

만일 이 진리의 말씀이 사역자의 연약함을 보여 주는 것이라면 그것은 결국 그 사역의 강력함 역시 증명하고 있는 진리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사역자의 설교의 유효성이 철저하게 성령의 능력에 달려 있다는 것을 확신할 때에만 비로소 자신의 사역의 위대함과 사명의 존엄성을 확실하게 깨닫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외적인 상황과 환경이 부정적이고 가망이 없어 보인다고 할지라도 바로 이로 인해 새 힘을 공급하고 용기를 북돋아 줄 것이며, 새로운 소망으로 고무시켜 줄 것이다.

 

사역자는 이러한 단순한 믿음의 힘을 통하여 모든 회중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하여 강단에 설 것이다. 그 사역자는 야만인이거나 문명인이거나 유식한 자이거나 무식한 자이거나 관계없이, 심지어 가장 경멸적인 태도의 지성인이나 회의론자들조차도 자신의 영혼에 진리를 가져오신 동일한 성령께서 이들에게도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진리의 말씀을 적용해 주실 것을 확실하게 믿는 것이다.

 

1)이성적이며 지적인 성령의 역사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사역, 다른 교훈의 수단과 방편들을 자신들의 이성적 판단에 순응하게 만들며, 자신이 사용하는 모든 수단과 방법들 역시 인간의 본질적 목적에 부합되게 만든다. 그러나 성령 하나님의 교훈과 도움이 없으면 그들은 절대로 구원에 이르는 깨달음이나 감동을 받을 수 없다.

성령의 작용은 무슨 기발하거나 비이성적인 이상한 작용이 아니다. 성령의 역사는 대단히 이성적이며, 지적인 인간의 본질에 적합한 작용이다. 다시 말하면 성령께서는 영혼의 구성요소와 기능을 통하여, 또는 그러한 기능 안에서 역사하신다는 말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마음을 깨닫게 해 주시고 계몽해 주시는 적절한 수단이 된다. 그래서 이 진리는 영광의 복음의 광채우리 마음에 떠오르는 샛별인 것이다(고후4:4, 벧후1:19 참고). 그런데 만일 그들이 가지고 있는 말씀에 어떠한 어둠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그것은 성경 안에 빛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것을 분별한 영적인 안목이 그들에게 없기 때문이다. 성경에 무슨 부족한 것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 내부에 무엇인가 부족한 것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전에 알고 있던 진리들을 새롭게 보게 되는 경우, 그것은 하나님의 진리로서의 그 능력과 영적 의미와 취지를 새로운 빛 안에서 이해하고 느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2)이성의 기능으로 인식될 수 있는 성경의 진리

적절한 수단인 성경이,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일을 알지 못한다라고 할 때, 그것은 성경이 이해하기 어려운 글자로 기록되었다거나 성경적 명제들의 의미와 뜻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성경에는 자연적 이성의 기능으로 인식하고 증명할 수 있는 진리들이 있다.

 

잘 알다시피 바리새인들은 모든 율법의 지식 체계를 체득한 사람들로서 구약 시대의 위대한 신학자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주님은 모세의 글들을 해석하는, 현학적이고도 잘 교육받은 그들이 오히려 하나님을 진정으로 알지 못했으며, 모세의 글들도 올바로 이해하지 못한 자들이라고 힐난하셨다.

 

마술사 시몬도 주요한 진리들에 대하여 올바른 관념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사도들이 그에게 세례를 베풀기에 충분한 믿음의 고백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지적인 명제를 진술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영적으로는 깨달음과 거듭남을 통과하지 못했다. 그러하기에 우리 주님께서도 말씀을 듣고 즉시 즐거워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씀하셨다(13:20 참고). 이들은 말씀의 의미에 대한 약간의 지식을 가질 뿐만 아니라 그 능력에 대한 약간의 영향까지도 받은 자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생명의 빛을 맛보지 못한 자들이다.

 

베스도 총독, 아그립바 왕과 벨릭스 총독은 모두 다 사도 바울의 설교를 들었다. 그러나 육에 속한 로마의 통치자인 그들이 신적인 진리의 지식에 대해 보인 반응에는 놀라운 차이점이 있었다. 베스도 총독은 육에 속한 사람의 전형으로 바울의 복음의 설교가 어리석은 것이라고 비난했었다(26:24). 그러나 아그립바 왕은 바울의 말에 감동을 받아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26:28)라고 말했다. 이에 비해 벨릭스 총독은 더 큰 감동을 받았다. 그는 바울이 의와 절제와 장차 오는 심판할 때 두려워하여 지금은 가라. 내가 틈이 있으면 너를 부르리라”(24:25)라고 말했다.

 

이것은 육에 속한 자들도 어느 정도의 신적인 지식을 알 수 있다는 것을 알려 준다. 그들은 심지어 우리 주님께서 영생이라고 선언하신 구원의 지식을 획득하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그것에 의해 감동과 영향을 받기도 하는 것이다.


3)말씀의 진리를 자기 기호에 맞추는 육에 속한 자

육에 속한 자도 자신의 이성의 기능을 통해 어느 정도의 신적 지식을 획득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지식 작용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를 자신이 원하는 대로 다루며 그것에 반응한다. 사람이 하나님의 가르침을 받지 않는 한, 결코 경험적 신자들에게 속한 것과 같은 교리적 지식을 소유하지 못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러한 지식에 순종하지도 않을 것이다.

 

4. 육적 지식과 영적 지식의 엄청난 차이

 

여전히 육적인 사람이 그 이성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에 관한 어떠한 지식을 획득한다고 할지라도 그가 성령의 깨닫게 하시는 역사를 경험하지 못한다면, 그 지식은 전혀 영적이지도 구원적이지도 않다는 것은 반드시 강조할 필요가 있다.

 

신적 진리에 대한 육적 지식과 영적 지식의 차이가 무엇이며 그것들을 서로 어떻게 구별할 수 있는지를 구별하는 일에는 어려움이 수반된다. 왜냐하면 이 두 종류의 마음의 상태는 서로 많이 유사하기 때문이다. 그러함에도 이 둘 사이에는 육적인 사람은 결코 진리의 지식을 깨닫지 못한다는 마음의 본질에 차이가 있다. 왜냐하면 육적인 자는 진리의 지식을 경험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복음이 요구하는 진정한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아마도 다음의 설명이 가장 적절할 것이다. 눈으로 보기는 보되 전혀 미적 감각이나 아름다움을 감지하지 못하는 사람을 그려 보라. 듣기는 듣되 전혀 그 소리의 화음을 감지하지 못하는 사람을 상상해 보라. 육적인 사람이 바로 이러한 사람과 같다. 진리의 지식을 보기는 보되 그 영적 탁월함을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 복음의 소리를 듣기는 듣되 각성시키는 구원의 음성으로 듣지 못하는 불쌍한 육의 사람 말이다.

 

예를 들어, 그리스도에 관해서 육적인 눈에 비친 그리스도는 고운 모양은커녕 풍채도 없고,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도 없는 분이지만, 영적인 눈에 비친 그리스도는 천천만만보다 아름다우시며 아주 사랑스러운 분이시다. 사도 요한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1:14)라고 고백한 것이다.

 

구원의 지식은 죽은 문자만의 지식이 아니요, 복음의 외면적인 형식도 아니다. 그것은 안에 있는 진리의 지식이요, 영광의 지식이다. 그것은 폭발하는 지식이요, 탁월한 맛을 지닌 진리의 지식이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의 지식의 빛이다.

 

1)생명과 사랑의 열매를 동반하는 영적인 빛

이 두 가지 지식 사이에 존재하는 또 다른 차이점은 바로 자증적(自證的) 능력을 동반하고 있는 참된 영적 빛이 사람의 마음에 확실성, 즉 진리에 대한 진정한 믿음과 신뢰를 느끼고 확신하게 해 주는 데 있다. 이러한 확신은 그 어떠한 지식들보다 더욱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신적 진리에 대한 육적인 지식과 영적인 지식의 차이점을 구별해 주는 시금석은 그것의 실제적인 영향력과 현재적인 열매이다. 영적인 빛은 생명과 사랑을 동반한다. 그것은 변혁적이고 갱신적이며, 그 영혼을 정결케 해 주는 극히 중대하고 강력한 빛이다.

 

2)밤과 낮을 가르는 두 지식의 차이

신적 진리에 관한 육적인 지식과 영적인 지식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점은 실재할 뿐만 아니라 엄청난 것이다. 이것은 마치 어둠과 빛의 차이요, 밤과 낮의 차이와도 같다.

 

육에 속한 사람은 그 안에 있는 무지로 인해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는 자이다. 이들은 성경을 문자적으로는 더 많이 알고 있을지도 모르며, 더 뛰어난 학문적인 지식을 소유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께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하나님의 사람들과 견줄 만한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 이 지식은 바로 하나님의 백성에게 소유된 지식으로서 성령의 가르침을 받는 자들에게만 속한 지식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차이점은 그야말로 엄청난 것이다. 이들에게는 전혀 새로운 지식이 주어졌다. , ‘하나님의 아들이 오셔서 우리로 하여금 그분이 참되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깨달을 수 있는 지식을 부어 주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안에 어떠한 새로운 영혼의 기능을 창조하시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이미 존재하고 있는 우리 마음을 완전히 새롭게 만드심으로써 참된 진리의 지식을 깨닫게 해 주신 것이다. 이 변화는 이해, 그 자체에 역사한다. 왜냐하면 이해력 역시 타락의 영향을 받았으며 그 자체로 왜곡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해와 깨달음 역시 그것을 창조하신 분에 의해 완전히 새롭게 갱신되어야만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성경에 그 빛이 아무리 명백하게 빛나고 있다 할지라도 영원히 이 빛을 일그러뜨리고 왜곡할 것이다.

 

이해와 깨달음이 영혼의 주요한 기능이며, 그 이해의 빛이 다른 모든 기능에 영향을 끼치고 그것들을 조종하며 주관하도록 지음받았기 때문에 마음이 새롭게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해가 밝히 계몽되어야 한다.

 

5. 죽음에 이르는 질병인 영적 어둠

 

성경에서 하나님을 배반하는 행위는 주로 우리의 영적 어둠에 기인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이 어둠은 하나님을 싫어하는 죄인들이 좋아하는 죽음에 이르는 치명적인 그늘과도 같다. 하지만 이런 영적 어둠을 제거할 수만 있다면 죄인은 비로소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될 것이다. 그것은 오직 어두운 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어 주실 때만 가능하게 된다(고후4:6 참고).

 

이러한 성령의 비추심, 즉 성령의 조명하심은 그 강도가 다를 뿐 모든 복음 진리가 증거하는 주된 내용이다. 각각의 진리는 모두 구원을 위해 무엇을 알고 믿어야 하는지에 대한 필수적인 지식을 포함하고 있다.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요일2:27). 이 말씀은 구원을 위해 성령께서 믿어야 할 모든 필요한 지식들이 어떠한 것인지를 알게 하시기에, 더 이상 인간적인 가르침과 교훈에 의해 좌우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기록된 성경은 하나님께서 그의 교회에 지식의 도움과 유익을 위해 주어졌다.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 아이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아버지를 알았음이요”(요일2:13-14).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진리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라 알기 때문이요...(요일2:21). 성경은 교회의 교훈을 위해, 그리고 진리의 말씀을 기억하게 하여 그들의 순전한 마음을 각성시키는 데에 유익할 뿐만 아니라, 거짓 교사들의 사주와 유혹에 노출되어 있는 그들이 진리의 말씀을 적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데에 대단히 유익한 편지다. 또한 그들이 하나님의 지식 안에서 더욱 자라 가는 것을 도와준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다 동일한 영적 빛을 소유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육에 속한 사람들이 세속적 지식에서 제각기 다른 수준의 차이를 보이듯이 그리스도인 역시 진리의 지식에 차이를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하나님으로부터 가르침을 받는 모든 자들이 알게 되는 지식의 공통점은 구원을 받기 위해서 필수적으로 알고 믿어야 할 모든 지식을 공통적으로 포함한다는 점이다.

 

성령 하나님의 깨닫게 해 주시는 비추심은 어느 한 족속이나 신분에 국한되지 않는다. 성령 하나님의 조명사역은 모든 믿는 자들에게 동일하게 공통적으로 임하는 것이다. 이는 성경이 가르치는 소중한 진리 가운데 하나이다.

 

손에 성경을 들고 서재나 밀실에 들어가서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개인들과 모든 겸손한 신자들은 언제든지 이 위대한 특권, 즉 하나님의 성령께서 가르쳐 주시기를 기도할 것이다. 신자들이 빛의 아버지되시는 하나님과 세상의 빛되시는 그리스도, ‘진리의 영되시는 성령 하나님과 누리는 직접적인 교통과 교제는 기독교에서 그리스도인이 어떠한 위치에 있는지를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것이다.

 

은혜로우신 하나님은 신자들을 위해 목회적 도움과 영적 인도하심을 공급해 주신다. 그리고 그들을 인간적인 지식이나 지혜에 절대적으로 좌우되도록 버려 두지 않으신다. 신앙 문제에 있어서는 더더욱, 단지 인간적인 권위에 지배를 받는 상태로 버려 두지 않으신다. ‘그들의 믿음은 인간의 지혜에 위치해 있어야 할 것이 아니라 반드시 하나님의 능력에 위치해 있어야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출처 : 청교도 아카데미
글쓴이 : 유정식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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