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뷰캐넌

[스크랩] 제임스 뷰캐넌, "성령의 사역, 회심과 부흥", 5장 양심을 각성시키는 성령의 사역(강의안)

강대식 2016. 10. 14. 21:31

5장 양심을 각성시키는 성령의 사역

 

영혼에 내재하는 죄성을 각성시키는 것은 중대한 성령 사역의 일부분이다. 본 장에서는 그러한 양심을 각성시키는 성령의 사역에 대해서 고찰해 보고자 한다.

 

하나님의 법정적 기관으로서의 양심

 

인간의 마음속에는 율법의 기능을 수행하는 특별한 기관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양심이다. 양심은 인간이 반드시 지켜야 할 의무의 법을 규정해 준다. 따라서 양심은 율법의 기능과 죄에 대한 판결을 선언함으로써 심판의 기능을 성취한다. 양심은 이렇게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을 인식시킬 뿐만 아니라 가책과 후회와 같은 내적 고통으로 죄인의 마음을 압도하는 중대한 역할을 감당한다.

 

따라서 양심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며, 인간이 심판자이신 하나님 앞에 책임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고 그의 영혼을 어느 정도 각성시키는데 충분한 기능을 발휘하는 것이다. 그러나 양심이 이토록 많고도 유익한 목적들에 공헌함에도 불구하고, 양심의 현재 상태만으로는 영혼을 참된 상태로 온전히 각성시키기에는 불충분하다.

 

1)양심의 타락된 모습

양심이 타락의 결과인 우리 본성의 여러 기능들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것은 명백한 진리이다. 영혼의 자연적인 어둠은 자신의 부패와 타락을 올바로 직시하는 일을 방해한다. 실제로 우리는 타락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지각을 상실했으며, 더 이상 하나님의 탁월하신 거룩을 인식하지 못하게 되었다. 타락이 우리를 우리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우리 마음이 굳어짐으로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게 만들어 버린 것과 마찬가지로 도덕적인 지각 능력과 영혼의 죄성을 각성시키는 양심의 원리 역시 동시에 파괴된 것이다.

 

2)자연적 양심이 지닌 한계

하나님의 성령의 도우심을 받지 못하는 자연적인 양심, 즉 거듭나지 않은 자의 양심이 결코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의 죄성을 올바로 보게 하기에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은 양심을 마비시키고 결국 죽이고야 마는 인간의 습관적인 죄의 경향이 잘 증거한다.

 

성경에서 그 양심에 화인(火印)맞은사람들을 발견한다. 이러한 사람들은 습관적인 죄의 실행으로 말미암아 양심이라는 원리가 마비된 사람들이다. 이 자연적인 규정은 도덕적 법으로 성경에 명시된 것이며, 이 법은 불완전한 빛이지만 그것을 올바로 사용하는 자에게는 점진적인 진보와 성장을 주지만 그것을 더럽히고 왜곡하는 자는 급진적인 퇴보와 타락의 나락에 빠뜨린다. 죄의 권세가 상습적으로 반복되는 만큼 상대적으로 양심의 정죄하는 권세와 능력은 약해질 것이다. 결국 이러한 점에서 성령의 철저한 각성사역의 필요성이 더욱 절실하게 제기되는 것이다.

 

3)훌륭하다고 여겨지는 양심도 지닐 수밖에 없는 한계

사회적으로 좀 더 훌륭한 사람들(도덕적으로 고매하다고 하는 자들)은 죄와 그것으로 말미암는 모든 불쾌하고 혐오스러운 현상들에 대하여 정당한 인식을 할 줄 모른다. 이러한 종류의 사람들이 보유한 보통의 양심은 주로 외면적인 범죄만을 인식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면전에서 밝히 드러나는 죄라는 문제는 별로 생각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그들의 양심은 세상의 부모에 대한 불순종과 같은 인간관계에서의 배은망덕을 정죄한다. 그러나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향한 불경건, 불순종을 정죄하지 않는다.

 

따라서 하나님의 성령의 가르침 외에 도대체 어디서 이러한 지식을 알고 배울 수 있는가? 성령의 사역으로서의 양심의 자각은 성령의 조명사역을 수반하며 그것에 기초한다. 우리의 마음이 진리를 분별하는 것은 양심을 각성케 하는 성령의 밝혀 주시는 사역을 통해서이다. 바로 이때부터 우리는 각성된 양심, 즉 바르게 깨닫고 바르게 선고하는 양심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4)양심을 각성시키는 데 필요한 성령의 사역

성령의 각성케 하시는 사역의 필요성은 자신의 죄에 대해 집중하고 찬찬히 그 죄를 살펴보는 일이 모든 일 중에 가장 어려운 일이라는 사실로 미루어 볼 때 더욱 명백해진다.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죄보다는 다른 이들의 죄를 살핀다. 사람들은 죄에 대한 그럴듯한 변명과 이유를 바쁘게 찾으려 한다. 그리고 죄에 대한 자세한 본질을 설명하면 할수록, 사람들은 더욱 귀를 막고 자신의 처참한 본질을 들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이러므로 성령의 역사하심과 능력이 동반되어야 자연적 양심의 각성을 뛰어넘어 죄의 각성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2. 양심을 소생시키시는 성령

 

죄를 각성시킴에 있어서 하나님의 성령은 인간의 양심을 역사의 대상으로 삼으신다. 그렇게 하심에 있어서 성령은 하나님의 진리의 빛과 능력을 통해 그 양심을 계몽하며 소생시키신다.

 

우리의 양심은 비록 타락으로 인하여 손상되고 파괴되었을지라도 양심의 빛이라는 천상의 불빛이 여전히 남아 있다. 그래서 한편으로 이 양심은 우리를 도덕적 존재로 만들며, 다른 한편으로는 새롭게 변화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존재로 만든다. 따라서 성령에 의하여 조명된 자연적 이성이 영적인 일을 분별할 수 있게 되듯이, 자연적 양심이 성령에 의하여 교정되고 강화될 때, 죄의 악함을 분별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진리의 빛과 능력을 통하여 양심을 각성시킨다. 여기서 하나님의 진리는 변화를 일으키는 도구가 된다. 성령께서는 빛을 비추심으로 책망하시고 인간의 이해력이라는 매개체를 통하여 양심을 움직이신다. 이렇게 한번 조명되고 각성된 양심은 즉각적으로 도덕적 표준에 합당하게 행동하게 되며 틀림없는 선고를 내리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들은 각성의 수단이며, 이 중에서 가장 중요한 수단은 다름 아닌 율법, 즉 강력한 하나님의 계명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율법을 통하여 죄를 깨닫기 때문이다. 또한 율법은 우리를 그리스도에게 인도하는 몽학선생이기 때문이다.

 

영적인 율법은 사람의 마음을 두두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명령이다. 이 명령은 모든 인간의 삶 속에 파고드는 법이다. 그 정죄하는 능력은 모든 사람의 입을 봉하며 하나님 앞에 있는 온 세상의 죄를 선고한다. 이 율법이 사람의 지성에 알려지고, 성령에 의하여 그 자체의 증명하는 빛으로 말미암아 죄인의 양심에 적용되기만 하면 그것은 즉시 죄인의 양심을 각성시킨다. 이렇게 각성되고 정죄당한 죄인의 양심은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내가 죄인이요, 죄 아래 팔렸도다!’라고 외치게 되는 것이다.

 

3. 양심을 각성시키는 수단으로서의 말씀

 

하나님의 성령께서 죄인의 양심을 각성시키는 중요한 수단이 계명이라고 말할 때, 그것은 반드시 양심에 관계된 모든 원리들과 그것들과 관계된 모든 사실들을 다 포함하는 광의적 의미로 이해되어야 한다(십계명, 그리스도의 모범, 비유 안에 감추어진 진리들, 십자가의 진리들...).

 

죄에 대한 지식을 얻는 수단은 율법이다. 그러나 율법의 기능은 언제나 십자가를 더욱 선명하고 크게 보이게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복음이, 특히 그리스도의 십자가 교리가 죄인의 양심을 각성시키고 그 확신을 진정한 마음의 회개로 바꾸는 가장 강력한 수단임을 믿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복음, 특히 그리스도의 십자가 교리가 율법의 본질과 정수를 모두 포함하기 때문이다. 율법은 각성된 죄인의 눈을 십자가에 고정시키고, 십자가는 다시 죄인의 양심을 율법이 발산하고 있는 진리의 빛의 바다로 고정시킨다. 이제 그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게 하라.

 

4. 양심을 각성시키시는 성령 사역의 다양한 현상들

 

양심이 그 대상이 되며 성령께서 그 주체가 되시고 진리의 말씀이 그 도구가 되는 각성의 사역은 그 죄성을 느끼고 감지하도록 영혼을 압박하고 알맞은 감정과 두려움, 수치심을 유발시키며, 결국 자신을 스스로 정죄하는 자극으로 구성된다.

 

양심의 관점에서 볼 때, 마음속에 죄가 있다면, 성령이 진리의 빛으로 조명할 때, 양심은 그것을 불결하고 가증한 것으로 파악하기 마련이다. 즉 성령은 죄인이 그 마음속의 죄를 있는 그대로 발견토록 하시며 그 죄에 대해 마땅히 성찰토록 하신다. 이것이 성령 하나님의 사역의 주된 부분이다.

 

죄인은 자신의 죄에 대해 생각하기도 싫어하며 의도적으로 잊어버리고자 노력한다. 심지어 죄가 자신의 마음에 내재하고 있음에도 그것에 대해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구실을 대거나 적극적으로 변명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자주 죄인을 당신의 손안에 두시고, 그가 죄의 본성과 본질을 깨닫고 자신의 죄성을 발견하기까지 계속해서 계명과 말씀으로 압박하신다(50:21-22). 과거에는 죄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으나 이제 다윗처럼 고백하게 된다. 무릇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51:3).

 

자신의 죄에 대한 살아남과 깨달음이라는 각성은 언제 어느 때나 발생할 수 있다. 그것은 성경의 단 한 구절을 통해서도 가능하며, 충실한 설교 한 편을 통해서도, 각성시키시는 하나님의 직접적인 섭리를 통해서도, 혹은 하나님의 정의에 대한 생생한 조망을 통해서도, 영원이라는 엄숙한 생각을 통해서도 언제든지 갑작스럽게 발생할 수 있다. 하나님의 성령은 언제든지 죄인의 양심에 접근하실 수 있으며, 그 양심을 곤란하게 하고 고민스럽게 만들며 각성시키시기 때문에 이것들 중 어떠한 것이라도 죄인의 거짓된 안전과 평화를 무너뜨릴 수 있는 것이다.

 

5. 양심을 각성시키시는 성령 사역의 다양한 방법들

 

이러한 성령 하나님의 각성과 확신의 사역은 다양한 방법으로 수행되며, 여러 가지 경우에 서로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모든 경우에 있어서 구원하시는 회심의 사역이 필요하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하나님의 영은 각 사람의 필요와 사역에 따라 그분의 뜻대로 역사하신다. 따라서 그들의 모든 경험이 다른 신자들과 전적으로 동일해야 할 필요는 없다.

 

만일 당신이 자신의 죄에 대해 확신을 동반한 신중하고도 지속적인 각성을 가지고 있다면, 그리하여 그로 인해 당신이 마땅히 형벌받을 죄인임을 자각하고 하나님의 자비하심 외에는 결코 구원받을 길이 없음을 인식한다면, 당신은 각성에 대한 참된 본질을 가진 자이다. 뿐만 아니라 그 각성의 형태나 모양 때문에 괴로워할 필요가 전혀 없다.

 

6. 죄인의 각성과 확신의 결과

 

어떤 의미에서 죄의 각성과 확신은 그 대상이 되는 자에게 모두 유사한 결과를 가져온다. 이러한 것들 중에는 우리가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두려움, 수치심, 그리고 자기 정죄와 같은 감정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것들은 각기 사람에 따라 그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모든 각성된 죄인들이 경험하는 유사한 현상들이다. 이 외에도 각성된 죄인에게는 죄와 양심사이에서 발생하는 내적 전투가 있다.

 

이 시점에서 죄의 확신이나 각성이라는 나무가 두 종류의 가지로 나눠진다는 것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그 하나는 회개의 열매를 맺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최종적 유기 상태를 확정짓는 것이다. 두 가지 모두 상당한 새싹들과 꽃들을 싹틔우고 맺는다. 그러나 그 열매는 크게 다르다.

 

영혼이 각성되고 근심하기만 하면 그에게는 은혜와 구속의 영광스러운 계획이 계시되는 것이다. 만일 이 각성이 십자가를 바라보게 하고 세상 죄를 지고 가시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서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할 수 있다면, 죄인들을 향하신 그리스도의 사랑과 그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의 살아 있는 감정을 채울 수만 있다면, 단호하고 엄숙한 각성은 부드러운 통회와 자복으로 녹아들 것이며 가장 비참한 후회는 흔쾌한 회개로 바뀌게 될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발생하는 것이 근심인데 이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세상 근심과는 다르다. 또한 이때 발생하는 것이 수치심인데 이 수치심은 영혼을 낙담케 하는 것이 아니라 겸손케 한다. 이때 또 발생하는 것이 바로 두려움이다. 이 두려움은 죄인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두려움, 즉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과 관계된 두려움이 아니다. 이 두려움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두려움이요, 경고와 심판을 선포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려드리는 두려움이다. 이 두려움은 정죄받은 죄인으로서의 노예가 가지는 두려움이 아니라 죄의 용서함을 받은 자녀의 성실한 경외감인 것이다.

 

7. 각성된 죄인들을 향한 설교

 

이미 여러 종류의 각성의 단계를 통과했거나 현재 경험하고 있는 사람들이 취해야 할 의무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1)죄에 대한 각성을 소중하게 다루어라

우선 당신은 각성을 조심해서 다루어야 하며, 그것들을 다룸에 있어서 하나님 앞에서 책임 있는 태도로 임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동일한 각성과 확신을 어떻게 다루는가에 따라서 빛과 어둠, 그리고 천국과 지옥과 같은 정반대의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2)죄의 본질을 철저하게 인식하라

당신의 각성과 죄의 확신을 억누르는 대신 죄의 악한 본질, 특별히 자신의 죄의 지독함에 대해 더욱더 많이 알려고 노력하라. 죄에 대해서 마음을 집중하여 진지하게 생각함으로써 죄의 지독한 본질을 더욱 확실히 알아야 한다. 그것을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완전하시고 무한하신 하나님의 속성을 묵상하며 당신 자신의 모습과 비교하여 보라. 그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6:5).

 

3)하나님의 법의 판결 앞에 부복하라

당신 자신의 죄를 온전히 인식했다면, 이제는 하나님의 율법의 선고에 귀를 기울이며 그 계명에 순종하라. 그 판결을 당신 자신에게 적용하고 그 판결이 너무 가혹한 것이라며 논쟁하거나,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판결을 강요하시지 못하거나 강요하시지 않는 분이라고 상상하려는 나쁜 마음을 경계하라. 하나님의 판결은 정확무오하고 정의로운 것이다. 그것이 사람이 아무리 항거하고 항소한다 할지라도 번복될 수 없는 신적 판결이다.

 

율법의 정죄가 죄에 대해 당신이 현재 느끼고 있는 저주를 경험하게 하고 다가올 미래의 진노를 깨닫게 한다면, 그것은 스스로를 정죄하고 고소하는 당신의 양심의 능력을 강화시켜 줄 것이며 결코 그 어떤 핑계도 대지 못하게 만들 것이다.

 

4)그릇된 위로에 안주하지 말라

그릇된 위로의 기초를 의지하거나 비성경적인 구원의 방법들을 조심해야 한다. 죄의 확신과 각성의 압박과 고통은 죄인들로 하여금 종종 거짓된 피난처를 추구하게 만든다. 그 결과 거짓된 교리를 수용하거나 때로는 미신적인 습관들에 빠지게 된다. 이런 것들은 양심을 진정시키기는커녕 일시적인 위로만을 줄 뿐이다.

 

오직 순전한 진리와 거룩한 복음만이 양심을, 영적 생명을 가지게 하고 건강하게 회복시킬 수 있다. 이런 비성경적인 구원의 방법을 의지하는 자들은 마치 열병에 걸려 불면증에 시달리는 환자와 같다. 그들은 불안을 제거하고 몸에 좋은 음식을 섭취하여 건강을 회복하는 대신 일시적인 진통제를 투여하거나 흥분제를 맞기를 좋아하는 자이다. 결국 이러한 자들은 비록 증상은 다소 누그러뜨릴 수는 있겠지만, 병을 더욱 키우는 어리석은 자가 아닐 수 없다.

 

5)확신에 뒤따르는 유혹을 경계하라

당신의 현재 상태를 파고드는 독특한 유혹들을 삼가 조심하여 항상 물리치라. 죄의 각성과 확신이 그렇게 강력하지 않을 때는 구원에 대한 우리의 감정이 무관심해진다. 그러나 반대로 위로의 조건들이 많으면 너무 쉽게 영적 교만에 빠지고 만다.

 

죄인의 마음은 언제나 자신의 죄에 대해 너무 과장되거나 그릇된 견해를 취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모든 연약까지도 고의적인 죄악으로 간주하며 이것들을 영벌(永罰)과 유기(遺棄)의 특징으로 간주하는 그릇된 적용을 하는 경우들이 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자신의 죄가 정말 용서가 가능한 죄인지, 그리고 구원은 정말 가능한 것인지에 의심을 품으면서 하나님의 은혜의 효능과 구세주의 희생이 주는 능력을 제한하고 복음이 주는 위로의 수단들로부터 이것들을 제외시키기도 한다. 이러한 사람은 마치 가장 영양가 있는 음식을 먹고도 그것을 모두 독으로 만들어 버리는 배탈 난 사람과도 같다. 그러한 자는 가장 복된 약속과 가장 풍성한 복음의 특권으로부터 아무런 유익도 얻지 못하게 만드는 사람이다. 무엇보다도 먼저 각성된 양심의 확신들은 선하고 유익한 것이라는 사실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그것들이 죄인을 겸손하게 만드는 한 그 확신들은 계속해서 장려되어야 한다.

 

6)자신에게 제시된 완전한 치료책을 숙지하라

각성된 죄인으로 하여금 복음 안에서 그에게 제시된 완전한 치료책을 더욱 확실히 숙지하게 하라. 각성된 양심이 요구하는 두 가지 포괄적인 목표가 있다. 하나는 죄의 용서요, 또 다른 하나는 죄인의 정결이다. 이것은 하나님에 의해 복음 안에 계시되고 설명된 방법을 통하여 성취되어야 한다. 복음만이 이 두 가지 목표에 대해 가장 완전한 치료책을 제시하며 양심을 만족시키고 두려움과 공포를 제거해 줄 원리들을 지니기 때문이다.

 

복음이 그 치료책을 제공한다. 복음은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는 성령 하나님을 만나게 해 준다. 성령 하나님께서는 우리 영혼에 새로운 영적 생명을 심어 주시고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이 되게 하시기까지우리를 점진적으로 강하게 하시며 성장하게 하신다(1:12 참고). 눈을 크게 뜨고 이 완전한 치료책을 상고하라! 그리하면 각성된 모든 죄인들은 그 복음의 치료책이 자신에게 유익할 뿐만 아니라 모든 위급한 상황에서 구급약이 됨을 충분히 깨닫게 될 것이다.

 

7)복음에 담긴 치료책을 자신에게 적용하라

각성된 죄인은 무조건적으로 제시된 복음을 영접함으로써 그 치료책 안에서 확실한 개인적 관심사를 추구하라. 복음 설교를 들은 모든 죄인은 한 사람도 예외가 없이 제시되고 제공된 복음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 있다.

 

복음 안에서 모든 죄인이 가지는 일반적인 관심, 즉 그것을 제공하신 분이 하나님 자신이시기 때문에 그 누구도 박탈할 수 없는 이 관심은 더욱 독특한 구원적 관심을 추구하기 위한 충분한 이유를 불러일으킨다. 다시 말하면, 복음을 믿도록 초청을 받은 모든 죄인들은 자신의 영혼의 구원을 믿으라는 성령 하나님의 보증과 격려를 받게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취하며,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성실하심의 보증 안에서 안식하며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은 그 복음을 영접할 때 복음이 취소되거나 그 복음의 약속이 성취되지 않을까 봐 두려워할 필요가 전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일반적 확신에 머무르지 말라! 그 확신에 기초해서 더욱 행동하고 움직이라! 가장 결단적인 자세로 지성을 사용하여 그리스도를 당신의 구세주로 영접하고 자신의 영혼을 그리스도의 능하신 손에 맡겨야 한다.

 

8)확신을 고백하고 소망을 하나님께 고하라

각성된 죄인은 자신의 각성과 확신을 표현하고 진지한 기도로 자신의 소망을 그분께 고백해야 한다. 고백은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회개케 하므로 죄인의 마음을 구속하고 제한하며 그로 인해 생산되는 겸손을 더욱 깊게 하는 한편, 각성으로 인해 고통스러워하는 죄인의 지성을 안도시켜 준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진정한 각성과 확신은 내적 욕구를 증폭시킨다. 그 욕구는 바로 하나님 앞에 자신의 마음을 내놓는 기도이다. 죄인으로 하여금 아무것도 염려하거나 의심하지 말고 자신의 마음을 하나님 앞에 쏟아 놓아라. 그렇게 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격려하시고 보증하신다는 것을 확신하며 기도하라. 기도하라.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를 들어 주실 것이다.

 

죄의 각성과 확신이 가져오는 모든 고통과 근심, 걱정이 용서하시는 하나님과 구세주의 은혜와 자비에 의해 제거될 통회하는 마음과 겸손은 가장 진정하고 심오한 것이다. 죄의 각성으로 인해 발생하는 무시무시한 두려움과 저주는 구속계획에 대한 분명하고도 명백한 이해로 인해 제거되는 것이다. 당신이 얼마나 가볍고 옅은 강도로 비탄에 빠진다 할지라도 그것이 당신을 겸손케 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당신이 자아 의존과 자의(自義)를 배격하고 자신이 죄인 중의 괴수이며 비참하고 불쌍한, 벌거벗은 소경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고난과 수치를 마땅히 당해야만 옳다고 여기는 당신이야말로 우리 주님께서 원하시는 자이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5:3-6). ‘마음의 강퍅함을 진심으로 느끼고 슬퍼하는 자야말로 마음이 진정으로 부드러운 자이다.

 


출처 : 청교도 아카데미
글쓴이 : 유정식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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