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1-06 주일설교
본문: 히 1:8-9
제목: 아들, 하나님
오늘 히브리서의 본문은 시편 45:6-7을 인용한 말씀이다.
시 45편은 오실 메시야에 관해 예언한 시편으로 다들 인정하고 있다.
이 본문을 통해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인지 확실히 해야 한다.
교회를 다니고 직분이 높은 사람들 중에도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교회가 교인들이 성경공부하기를 싫어한다고 교리를 가르치지 않고
성경공부를 형식적으로 하기 때문에 그렇다.
사람들이 복에만 관심이 있지, 하나님의 말씀에는 관심이 없는 것이 큰 문제이다.
성경을 모르면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모르는 것이고,
우리의 구원이 무엇인지도 모르게 된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우리의 구원이 무엇인지 모르면
중세 카톨릭 1000년처럼 미신이 성행하게 되고 하나님을 우상 섬기듯이 하게 된다.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이 망한 것은 성경에 대한 올바른 지식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롬10:2-3)
세상에서 가장 원통한 것이 교회 실컷 다니고 지옥 가는 것이라고 했다.
성경을 통해 하나님과 구원에 관한 올바른 지식을 갖지 못하면 이스라엘 망하듯이 망하고 만다.
올바른 지식으로 믿는 신앙이어야 하고 진리 안에서 하는 사랑이어야 한다.
맹목적인 열심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올바른 지식이 없으면 자기 의를 가지고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않게 된다.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이 사사시대 암흑시대가 된 원인은 딱 하나였다.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삿21:25)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다는 것은 자기의 왕이신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이고,
각기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했다는 것은 자기 의를 앞세우고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인간들끼리의 모든 싸움은 서로 자기가 옳다고 자기 의만을 주장하기 때문이다.
이 모든 싸움은 하나님의 옳은 것, 곧 하나님의 의가 중심에 올 때 멈추게 된다.
하나님의 의 앞에 사람들의 자기 의가 머리를 숙이고 복종할 때 평화가 온다.
하나님의 의를 알려면, 올바른 지식을 가질려면, 성경을 즐거워하고 묵상하고 지켜 행해야 한다.
먼저 성경을 통해 아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확실히 알아야 한다.
1. 아들은 주 하나님이시다.
“아들에 관하여는”는 하고, “하나님이여”로 부르고 있다.
하나님이 낳은 아들은 곧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앞 절에서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어느 때에 천사 중 누구에게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다’ 하셨으며
또 다시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라’ 하셨느냐“(히1:5)
하나님 아버지가 어머니 없이 낳은 아들이 아들 하나님이시다.
사람들이 자식을 낳듯이 낳은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아들은 하나님이 아니고 피조물이 되고 만다.
사람이나 만물이나 천사나 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물이다. 낳은 피조물이 아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게 아니고 낳으신 분은 아들 하나님 뿐이다.
성령은 하나님과 아들에게서 나오시는 영이라고 하지 결코 낳았다고 하지 않는다.
어떻게 낳으셨는지는 성경에 나와 있지 않기 때문에 모른다.
하나님의 영감으로 쓰여진 성경이 낳으셨다고 하니까 우리는 믿는 것이다.
성경을, 성령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지 않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이 될 자격이 없다.
히브리서 1장은 처음부터 아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장엄하게 선포하고 있다.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1-2절)
구약성경은 선지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다.
신약성경은 아들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다.
이 아들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고, 그 모든 만유의 상속자이심을 선포하고 있다.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지극히 크신 이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3절)
이 아들은 하나님의 놀라운 영광을 광채로 보여주시는 분이시며,
아무도 볼 수 없는 하나님의 본체를 우리에게 형상으로 보여주신 분이시다.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창조하신 만물을 붙들고 계시는 분이시다.
그 다음이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말씀이다.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을 하시고”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을 어디서 하셨는가?
십자가에서 자기 피로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을 하셨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주 하나님이신 분이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서 희생제물, 대속제물, 화목제물이 되셨다.
우리는 연약하고 죄인이며 원수노릇하고 있었는데 주님은 오셔서 우리 죄 때문에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이다.
삼일만에 부활하심으로 우리를 의롭다 함을 받게 하시고 승천하셔서
높은 곳에 계신 지극히 크신 이의 우편에 앉아계신다.
보좌 우편은 원래 앉으셨던 자리였지만
인간의 몸을 입으신 사람이며 참 하나님이신 그리스도로서 우편에 앉으신 것이다.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빌2:8-11)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셨다.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 하나님이라 시인하게 하셨다.
이 일로 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다.
아버지 하나님이 낳으신 아들 하나님이 때가 되어 여인의 몸에 성령으로 잉태하셔서 사람으로 오셨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요1:14)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라”(마1:20)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21)
“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이르시되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22-23)
우리는 베드로처럼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믿어야 한다.(마16:16)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참 사람이요 참 하나님이신 것을 믿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주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예수 그리스도로 오신 이래 많은 이단들이 생겨났다.
어떻게 하나님이 사람이 될 수 있느냐의 의문에서 출발하였다.
하나님이면 하나님이고 사람이면 사람이지, 참 하나님이면서 어떻게 동시에 참 사람이 될 수 있느냐?
여호와의 증인들은 여호와 하나님 곧 하나님 아버지만을 믿고 아들과 성령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런가하면, 하나님이 십자가에서 죽을 수는 없다고 하면서 하나님은 떠나갔고 사람인 예수만 죽었다고 한다.
인간의 지혜와 두뇌로 다 알려고 해서도 안 되고 그 눈으로 단정하고 거부해서도 안 된다.
성령이 오시면 다 믿을 수 있고 충분히 납득이 된다.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고전2:12)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함과 같으니라”(고전2:9,사64:4,65:17)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것, 은혜로 주신 것들은 세상의 영으로는 알지 못하고,
또한 성령을 받지 않고서는 그 눈으로 그 귀로 그 마음으로는 도무지 생각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모르면 입을 닫을 것이고, 알려면 성령을 받기를 구하여야 한다.
2. “주의 보좌는 영영하며 주의 나라의 규는 공평한 규‘이다(8절).
지극히 크신 이의 우편 보좌는 영영한 곧 영원한 보좌이다.
“하늘과 땅의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마28:18)
사람의 보좌는 아무리 화려하고 막강할지라도, 그것은 일시적이고 시원잖고 한심하기까지 하다.
이게 나라냐고? 나라를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고서도 여전히 그 보좌를 놓치 못하고 있다.
성경에 나오는 이스라엘이고 이방이고 거의 다 그랬다.
왕의 규는 통치의 상징이요 규례의 상징이다.
왕이 예복을 입을 때 손에 쥐는 옥패를 말하며, 위가 뾰족하고 아래는 사각으로 만든 옥이다.
나라의 규는 공평한 규이어야 하건만 부패와 부도덕과 독재의 상징이 되곤 하였다.
우리 주의 보좌는 영원한 보좌이면서 그 통치는 공평한 규이니 얼마나 감사하고 영광스러운가?
인간이 되먹지 않으면 하는 짓이 그러하고, 공평한 규를 모르면 보좌를 탐하지 말아야 한다.
어리석은 백성들이 선거권을 줘도 공평한 규에 투표할 줄을 모르고 패거리 규에 투표하여 나라를 망친다.
공평은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에서 나온다.
공의와 정의로 그것이 표현된 것이 공평이다.
불공평한 것들을 바로 잡는 것이 공평이요 공의와 정의이다.
다윗은 온 이스라엘을 다스려 정의와 공의를 행했다고 하였다.(삼하8:15)
렘23:5에서도 의로운 가지로 우리 주님이 오셔서 정의와 공의 곧 공평으로 행할 것이라 하였다.
“그 날 그 때에 내가 다윗에게서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다스리며 세상에서 정의와 공의를 행할 것이며”.
사람이 성령으로 거듭나고 회심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공평을 행사하지 못한다.
입으로만 정의와 공평을 말하지 실제로는 이익을 따를 뿐이다.
할례파들이 그렇다고 성경은 말한다.
“불순종하고 헛된 말을 하며 속이는 자가 많은 중 할례파 가운데 특히 그러하니 그들의 입을 막을 것이라
이런 자들이 더러운 이득을 취하려고 마땅하지 아니한 것을 가르쳐 가정들을 온통 무너뜨리는도다”(딛1:10-11)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자들이 할례파들이었다.
장로들, 대제사장들, 서기관과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었다.
할례파들이 항상 종교권력을 쥐고서 공평의 규는 버리고 더러운 이득의 규만 휘둘러 망하는 길로 갔다.
할례파들이 교회를 장사하는 집,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고, 나라를 망하게 만들었다.
더러운 이익들을 취하려고 마땅하지 아니한 것을 가르쳐서 가정들을 온통 무너뜨렸다.
우리 주님은 저들이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탄식하셨다.
3. “주는 의를 사랑하시고 불법을 미워하신다”.
“주께서 의를 사랑하시고 불법을 미워하셨으니
그러므로 하나님 곧 주의 하나님이 즐거움의 기름을 부어 주를 동류들보다 뛰어나게 하셨도다”(9절)
만왕의 왕이신 그리스도께서 다스리는 나라는 그의 영원한 보좌와 공평한 규에 꼭 맞게 통치하신다.
의를 사랑하시고 불법을 미워하심으로 공평으로 통치하신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원래부터 본성적으로 의로우시고 완전하시기 때문에 영원토록 그렇게 하신다.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일을 능히 하실 수 있도록
주의 하나님이 즐거움의 기름, 곧 성령을 충만하게 부어주셨다.
주의 동류들보다 뛰어나게 하셨다.
주의 동류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함께 상속받을 자들을 가리킨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에게는 성령을 “한량없이” 부어주셨다.(요3:34)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붓듯 하셨으매 -- 선한 일을 행하셨다”.(행10:38)
사람이신 그리스도에게 하나님 아버지가 성령을 기름붓듯 부어주셔서 최고의 즐거움을 누리게 하셨다.
우리도 주님의 충만한 중에서 받으면 최고의 즐거움과 기쁨을 누릴 수 있다.
부와 재물을 구할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은 이 즐거움의 기름(성령)을 구하여야 한다.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눅11:13)
주께서 의를 사랑하시고 불법을 미워하셨으니 그러므로 하나님 아버지가 주께 즐거움의 기름을 부어주셨다.
우리도 주님을 본받아 의를 사랑하고 불법을 미워하는 길로 가야 한다.
나는 손 놓고 있으면서 또는 반대로 행하고 있으면서 기름부음을 기대할 수 없다.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였다고 하였다.(행13:52)
우리에게는 왜 기쁨과 즐거움이 없는가?
우리가 의를 사랑하고 불법을 미워하지 않음이요, 즐거움의 기름부음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성령의 기름부음이 부어지면, 우리는 성령의 열매를 맺는다.
사랑과 희락(기쁨)과 화평과 오래참음의 열매를 맺는다.
하나님의 나라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기쁨)을 누리는 것이라고 하신다.(롬14:17)
우리가 하는 일과 성령이 하시는 일은 순순환으로 이루어진다.
주님처럼, 주님을 본받아, 의를 사랑하고 불법을 미워하면 즐거움의 기름부음을 부어주신다.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으면 더욱더 의를 사랑하고 불법을 미워하며 사랑과 기쁨의 열매를 맺는다.
내가 다 하는 것도 아니요 성령이 다 하시는 것도 아니다.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나도 힘을 다하여 수고하여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 안에서 행하시면서 동시에 기쁘신 뜻의 소원을 주셔서 우리로 행하게도 하신다.
우리가 믿는 주 예수 그리스도는 아들 하나님이시요 주 하나님이시다.
그분의 보좌는 영원한 보좌이시고 그분의 규는 공평한 규이시다.
그분은 의를 사랑하시고 불법을 미워하신다.
하나님 아버지는 그분에게 성령을 한량없이 기름붓듯 부어주셨다.
그분의 충만한 데서 우리도 받는다.
의를 사랑하고 불법을 미워하면서 또한 성령의 기름부음을 구하는 우리가 되자.
우리도 기쁨과 성령이 충만한 제자들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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