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스크랩] 10/23 주일설교, 비방자 박해자 폭행자, 딤전 1:12-14

강대식 2016. 10. 23. 18:53

2016-10-23 주일설교

본문: 딤전 1:12-14

제목: 비방자 박해자 폭행자

 

1. 충성되이 여겨 직분을 맡기신다.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딤전1:12)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서 그 지체들에게 직분을 맡기면 감사해야 한다.

그분이 나를 충성되이 여겨 직분을 맡기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회는 오직 주님께 충성됨을 보고 직분을 맡겨야 한다.

 

다른 어떤 것도 교회의 직분을 맡기는 데 작용해서는 안 된다.

돈도, 사회적 지위도, 학력도, 경력도, 출신도,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된다.

세상의 가치들이 교회를 움직이고 영향력을 행사하면 그곳은 교회이기를 그만 둔 것이다.

교회 간판만 걸어놓고 내용은 세상의 또 하나의 조직일 뿐이다.

 

하나님께 충성이 없다면 교회 직분은 맡겨서는 안 된다.

충성됨과 관계없이 세상 가치로 교회 직분을 주는 것은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우습게 여기고 공의로 행하지 않는 것이다. 말씀을 버리면 하나님을 버리는 것이다.

 

그런데도 직분을 받는데 돈이 얼마씩 내야한다는 얘기들이 들려온다.

장로 되는 데는 얼마, 권사 안수집사는 얼마.

심지어는 어떤 큰 교회는 집사 되는 데도 최소 2천만원이 이상이 든다고 들었다.

 

주님의 탄식이 들려온다.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 되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19:46)

내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2:16)

 

교회는 세상과 다른 곳이고 달라야 한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고, 우리는 그 지체들이다.

교회는 지체들인 성도들과 함께 하나님께 속해 있고 세상은 악한 자에게 속해 있다.

 

또 아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며”(요일5:19)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 역사하는 영이라”(2:2)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것은 영역이 옮겨진 것이다.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사함을 얻었도다“(1:13-14)

 

주님은 교회는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곳이라 하셨다.

내가 이 반석(베드로의 신앙고백)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16:18)

 

왜 교회가 세상과 같고 세상이 하는 짓을 그대로 닮고 있는가?

주님이 세우신 주님의 교회가 아니고 사람이 세운 사람의 교회이기 때문이다.

그런 곳은 음부의 권세, 사탄의 권세가 이길 것이고,

그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세상 풍속대로 교회를 운영할 것이다.

 

교회가 주님이 다스리는 곳이 아니고, 사탄과 그 하수인들이 다스리는 곳이 되었다면,

그것은 참으로 비극 중의 비극이다.

그런 교회는 무엇보다 직분이 그리스도께 충성이 아니라 마귀께 충성에 의해 좌우될 것이다.

목사서부터 부목사 장로 권사 안수집사 집사 모든 직분이

마귀와 세상의 충성도에 따라, 특히 돈과 권력에 얼마나 충성하는가에 따라 주어질 것이다.

 

목사를 선임할 때 세상 학위와 신학교의 유명도와 교단의 크기와 교회의 크기에 좌우된다면,

영적인 교회와는 벌써 거리가 먼 것이다.

사사시대, 멸망 당한 이스라엘과 유다,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유대교, 중세 카톨릭, !

올바른 지식을 따르지 않고 자기들의 의를 앞세워 애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치 않은 결과였다.

 

교회는, 목사서부터 직분을 어떻게 어떤 기준에 의해서 세우고 있는가를 보면 그 실상을 알 수 있다.

교인들은, 어떤 교회를 택하는가를 보면, 그의 가치관과 신앙의 순수성과 주님께 충성도를 알 수 있다.

그것이 바로 교회와 교인들이 실질적으로 보여주는 열매들이다.

 

우리 주님의 말씀이다.(7:13-20)

좋은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는다.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다.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 수 있다.

어떻게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거짓 선지자(목사)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다.

 

우리 주님은 충성되이 여겨 직분을 맡기시고 그 직분을 감당할 수 있도록 그분이 능하게 하신다.

그러니 주님께 충성된 교회가 충성됨을 보고 직분을 맡기면 걱정할 것이 없다.

바울은 나를 능하게 하신주님께 감사하고 있다.

 

바울은 또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4:13)고 하였다.

, 이 말씀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운 자에게 해당한다.

 

모세는 나이 80이 되었을 때 하나님은 그에게 능력과 지혜를 주셔서 사용하셨다.

바울은 우리가 약한 그 때에 곧 강함이라하였다.

우리가 약할 때 그리스도의 능력이 온전히 역사하실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짋어질 때 예수의 생명이 우리 몸에 나타나고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질 때 예수의 생명이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는 이치와 같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매일 지고 주님을 따를 때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있다고 하셨다.

 

교회는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온 몸이 연결되고 결합되어 세워가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그리스도)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4:16)

 

각 마디가 직분을 맡은 자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역사적으로 아버지 같은 큰 스승들도 마디이다.

그 마디들을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머리와 연결되고 서로와 결합되는 것이 참 교회이다

그 안에서 각 지체들은 자기의 믿음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할 때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워지는 것이 교회이다.

 

직분을 맡은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지 않는다면 지체들은 머리와 연결될 수 없고, 서로 결합될 수 없다.

역사적으로 그 연결과 결합을 위해 헌신한 마디들을 통하여서도 도움을 받아야 한다.

특히 초대교부들, 종교개혁자들, 청교도들이 그 마디들이다.

 

목사가 회장처럼 군림하고 직분자들은 마디가 아니라 수족노릇만 한다면, 그것은 회사이지 교회가 아니다.

그 마디들이 그리스도 머리와는 연결되지 않고 오직 권력을 쥔 목사에게만 연결되고 결합된 교회,

지체들끼리의 결합은 없는 교회, 각 지체들은 아무 역사도 하지 않는 교회,

수만 많이 끌어다 놓은 교회, 서로 누구가 누군지도 모르고, 예배만 드리고 가는 교회,

그것은 교회가 아니고 숫자 놀음이요, 세상 모임이요, 자기들의 세력을 예배하는 단체일 뿐이다.

 

그런 교회와 교인들이 사사시대를 만들었고 이스라엘과 유다를 멸망 당하게 했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고, 중세 카톨릭을 만들었다.

오늘날의 교회와 교인들도 회개하지 않으면 멸망에 이르고 말 것이다.

 

이 땅에 무섭고 놀라운 일이 있도다

선지자(목사,신학자)들은 거짓을 예언(설교)하며 제사장(목사)들은 자기 권력으로 다스리며

내 백성은 그것을 좋게 여기니 마지막에는 너희가 어찌하려느냐”(5:30-31)

 

이 말씀은 이스라엘 멸망 직전에 하신 말씀이지만,

현대 교회와 교인들에게도 그대로 해당되는 말씀이다

 

2.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다.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13)

 

바울이 사울이라 불리울 때 한 악행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 알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와 성도들을 열심과 특심으로 비방하고 박해하고 폭행하였다.

유대교와 바리새인의 교훈에 충성하였기 때문이었다.

 

예수님이 다메섹 도상에서 나타나 만나주시지 않았다면 그 인생은 그렇게 끝났을 것이다.

주님은 그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한 것을 긍휼히 여기시고 불러주셨다.

주님이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택한 자라도 다양한 과정을 통과하여 부르시고 직분을 맡기신다.

결코 우리가 보기에 좋은 자들이 아니다.

 

바울은 자기가 비방자 박해자 폭행자였기에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고 고백하고 있다.

바울과 같은 일을 하지는 않았지만 하나님께 쓰임 받은 많은 사람들이 같은 고백을 하고 있다.

은혜가 깊어질수록 우리의 죄가 더 크게 심각하게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도 돌아보면 크건 작건 간에 비방자 박해자 폭행자였다.

성령이 역사하시고 은혜와 믿음이 선물로 오니까 회개하고 주님을 영접한 것이지요.

 

그래서 지금 그러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바울을 생각하고, 우리의 올챙이시절을 생각하여,

그들을 동정하고 기다려주고 인내해 주어야 한다.

그들도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된 자가 나중이 되기도 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되는 자가 많다고 하셨다.

이른 아침에 부르는 자도 있고, 마감 시간이 다 되어 부르는 자도 있다.

 

우리가 연약할 때에, 죄인 되었을 때에, 원수 되었을 때에,

주님이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음을 기억하자.

 

율법의 행위로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함을 받을 자, 아무도 없고,

오직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우리로서는 자랑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

더러운 옷과 같은 우리 자신들의 의로움을 세우기 위해 애써 하나님의 의를 불순종하지 말자.

 

아직도 남아 있는 우리 옛 사람의 타락한 본성은,

기회만 있으면 교만해지고 의로움으로 남을 정죄할려고 하기 쉽다.

은혜가 메마르지 않도록 경건생활에 힘쓰는 우리가 되자.

 

3. 주의 은혜를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게 하신다.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14)

 

우리가 전에는 바울과 같이 비방자 박해자 폭행자였으나 충성되이 여겨 직분을 맡기신 주님은

우리를 능하게 하실 뿐 아니라, 주님의 은혜가 넘치도록 풍성하게 하신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예수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우린 구원도, 거룩함도, 축복도, 영광도, 있을 수가 없다.

예수 그리스도 없이는, 하나님과 화목할 수도, 하나님께 나아갈 수도 없다.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않기로 작정해야한다.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6:14)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다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고 하나님과 원수인 세상을 사랑하고 세상에 있는 것을 사랑하고 집착하니까

우리의 믿음이 더 이상 성장하지도 못하고 성숙하지도 못한다.

세상에서 일하되 세상이 나를 지배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지배당하지 말아야 한다.

 

주의 은혜는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믿음과 사랑을 위한 것이다.

주의 은혜가 넘치도록 풍성할 때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믿음도 사랑도 풍성해질 수 있다.

은혜가 믿음도 사랑도 자라게 한다.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은 이제 율법 아래 있지 않고 은혜 아래 있다.

율법이 이젠 그리스도인을 정죄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8:1)

 

성경이 왜? ‘그리스도 예수 안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를 강조하고 반복하고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분이 넘치도록 풍성하게 부어주시는 은혜가 우리를 구원하고 살게 하고 영광을 얻게 하기 때문이다.

죄가 왕 노릇하던 신분이었는데, 이제는 은혜가 왕 노릇하는 신분으로 우리를 바꾸어 주셨다.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한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넘쳤느니라”(5:15)

 

은혜는 하나님이 피조물들에게 거저 주시는 은총과 사랑과 복과 선물의 총칭이다.

가장 큰 은혜가 구원의 은혜이다.

구원 받은 자에게 은혜는 또한 왕 노릇하며 영생에 이르게 한다.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라”(5:21)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왕 노릇한다고 하였다.(5:17)

 

믿음과 사랑과 함께 주의 은혜가 넘치도록 풍성하였다는 것은 이렇게 좋고 대단한 것이다.

은혜가 메말라지면 믿음도 사랑도 시들해지고 마는 것을 경험한다.

그래서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고 하신다.(벧후3;18)

 

여러분, 우리가 전에는 비방자 박해자 폭행자였다.

그런데도 우리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기 때문에 긍휼을 베풀어 주셨다.

그리고 우리를 충성되이 여겨 직분을 맡겨주셨다.

 

그 직분을 귀하게 여기고 충성을 다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자.

직분을 맡기신 주님은 우리를 홀로 두시지 않고,

우리 주의 은혜가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게 하신다는 것을 믿고 소망하자.


출처 : 청교도 아카데미
글쓴이 : 강대식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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