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뷰캐넌

[스크랩] 제임스 뷰캐넌, "성령의 사역, 회심과 부흥", 9장 성령의 부흥사역(강의안)

강대식 2016. 11. 9. 14:48

9장 성령의 부흥사역

 

현재 이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가장 위대한 일은 죄인들의 회심과 성도들의 거룩한 생활이다. 이 위대한 사역이 때로는 말씀 선포를 통하여 완만하게, 그리고 조용히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어떤 때는 이것이 좀 더 비상하고 놀라운 방법으로 이루어지기도 한다.

 

때때로 갑작스럽게 이루어지는 성령의 부흥사역

 

종종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선하신 뜻 가운데 교회의 역사를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매우 비범하고도 놀라운 방식으로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신다. 부분적으로는 선잠을 자고 있는 교회를 깨우고 각성시키거나 불신자들과 부정적인 자들을 놀라게 하시고 깨닫게 하시기 위해서 그렇게 하신다. 무엇보다도 그들이 너무나 얕보기 쉬운 이 하나님의 은혜의 주권과 능력을 그들에게 즉시 교훈하시기 위해 그렇게 하신다.

 

시기나 장소에 관계없이 어느 나라에서건 참된 신앙의 능력의 부흥이 발생해서 죽지 않는 몇몇 영혼들이 구원의 회심을 경험하기만 한다면, 비록 그러한 사건이 세상에서 조롱을 받는다 하더라도 하늘의 천사들에게는 기쁨이 되며 구속자에게는 만족함이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만 한다. 우리 역시 위와 동일한 활력과 현상을 경험한다면, 그러한 사건은 우리에게도 큰 기쁨이 될 것이며, 여러 가지 면에 있어서 흔들리는 우리의 믿음을 확증시키고, 잦아드는 열정에 불을 붙이고 미적지근한 기도에 활력을 제공하며, 흥미 없는 소망을 강화시켜 주기에 충분한 것이 될 것이다. 이처럼 어디에서든지 부흥은 하나님의 교회가 목도하고 찬미해야 할 의무와 특권이 된다.

 

2. 구약 시대와 신약 시대에 일어난 부흥들

 

성경은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3:19)이라고 했는데, 이는 사도 시대 이후에 발생할 놀라운 부흥의 계절을 가리킨다. 성경은 구약과 신약 시대에 발생했던 잊지 못할 부흥의 실례들을 기록하고 있다. 그것은 성경이 이러한 부흥을 승인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셋의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고 말하고 있는데(4:26 참고), 성경은 노아의 대홍수 이전에 일반적인 신앙의 부흥이 발생했다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여호수아 시대에 좀 더 보편적이고 놀라운 부흥이 있었다는 특별한 설명을 발견하게 된다.

 

모세의 인도 아래 애굽을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목이 곧고 패역한 무리였다. 그러했기에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그 약속의 땅에 입성하지 못하고 모두 광야에서 죽었다. 여호수아와 함께 약속의 땅에 들어간 모든 세대 사람들에 대하여 성경은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이스라엘 여호수아의 사는 날 동안과 여호수아 뒤에 생존한 장로들,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모든 일을 아는 자의 사는 날 동안 여호와를 섬겼더라”(24:31).

 

광야에서 출생해 광야에서 자란 광야 2세대들은 진지한 신앙의 깊은 각성과 함께 참된 신앙의 능력을 보여 주었다. 그 예로 그들은 실로에 모여 거기에 회막을 세우고 거기서 율법의 모든 말씀을 들으며 경건한 모습을 보였다(18:1, 33-35). 이들의 신앙의 진지함과 열정은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하심에 대한 감각(광야에서 행하신 이적들)을 가지고 있었다. 둘째, 그들은 어릴 때부터 광야를 통한 교육을 받았다. 어릴 때부터 고난과 시험을 견디어야 했고, 그것들은 그들로 하여금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하나님의 주권적인 의지에 대한 절대적인 복종을 의무로 여기도록 만들었다. 셋째, 그들은 하나님의 율법의 말씀을 낭독하는 것을 주의 깊게 들었으며, 그 영광스러운 진리의 말씀에 익숙해 있었다. 이것들은 알맞고 적합한 수단들이었다.

 

참된 신앙의 놀라운 또 다른 부흥은 열왕들의 시대에 발생했다. 서기관 사반이 요시야 왕 앞에서 여호와의 율법책을 읽었을 때, 놀라운 일이 발생했다(왕하22:11-13). 여기에는 백성들을 향한 요시야 왕의 걱정과 근심이 놀라운 방식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그는 백성들이 하나님의 진노에 노출되어 있음을 알았기에 그들에게 임박한 심판을 두려워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당장 이 문제를 개혁하기로 마음먹었다. 왕이....모든 장로를 자기에게로 모으고, 이에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매....모든 백성이.....다 왕과 함께한지라. 왕이 여호와의 전 안에서 발견한 언약책의 모든 말씀을 읽어 무리의 귀에 들리고, 왕이 대 위에 서서 여호와 앞에서 언약을 세우되.....백성이 다 그 언약을 좇기로 하니라”(왕하23:1-3). 그 후 국가적인 차원에서의 종교개혁이 일어났다(산당, 목상들을 제거, 유월절 지킴 등등).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 발생했던 이와 유사한 강력한 신앙의 부흥에 대한 또 다른 실례가 있다. 그것은 아사 왕과 히스기야 왕의 통치 시대에 발생한 신앙 부흥이었다. 또한 바벨론에 포로로 잡현간 자들의 마음에서 일어난 위대한 변화가 그것이었다. 그들은 이러한 부흥을 통하여 그들의 땅으로 귀환할 것을 준비했다.

 

구약에는 유대인의 역사를 통하여 수시로 발생한 이러한 영적 부흥을 훌륭하게 묘사하는 많은 구절들이 있다(52:7, 54:1-5; 36:25; 14:4; 2:28 참고). 이것을 통하여 우리는 유대교회가 믿음으로 고대했던, 더 새롭고 더 나은 시대에 반드시 오게 될 위대하고도 보편적인 신앙 부흥에 대한 예언을 발견한다. 따라서 우리는 신약 성경을 통하여 세상 역사 안에서 발생했던 부흥 가운데 참된 신앙의 가장 놀라운 부흥에 대한 설명을 읽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죽은 자들이 살아나는 것과도 같은 부흥이었다. 새로운 충격과 자극이 세상에 전달되었고 사람들은 그 힘을 느꼈으며, 그날에 발생한 결과들을 목격했다. 이는 전혀 새로운 신앙이나 종교의 소개가 아니라 태초로부터 계시되었던 바의 완성이었다. 이것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의 가시적인 성취였으며,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의 명백한 현현이었다.

 

유대교회와 국가가 쇠퇴일로에 처해 있었음에도 남겨진 소수의 무리들은 신실하고도 경건한 신앙을 장려했고 이스라엘의 소망과 위로를 기다렸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세례 요한의 소생케 하고 새롭게 하는 사역이 있었으며, 그러한 사역은 하나님의 아들의 현현을 통하여 더욱 증대되었다. 그 결과 수많은 죄인들이 회심했다.

 

영광의 주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심으로 이 위대한 사역이 마치 멈추어진 것 같아 보였지만 오히려 이 사건은 하나님의 영의 광대한 부어 주심과 나라와 민족 가운데서 더 강력한 일반적 각성의 길을 예비하게 되었다. 유대인과 이방인을 포함한 모든 나라의 족속과 방언으로부터 사람들의 영혼이 사로잡혔으며, 그들은 죄를 깨닫고 회심함으로써 전 세계에 영광스러운 복음을 전파하는 전도자들이 되었다.

 

이적적인 선물로서의 하나님의 성령께서는 사도들에게 강림하심과 동시에 청중들에게 구원하시는 은혜가 임함으로써 오순절에 삼천 명의 영혼들이 단 한 번의 설교를 통하여 회심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다. 신약의 또 다른 곳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믿고 회심했다. 여호와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교회에 더해주셨던 것이다. 아덴과 로마, 그리고 고린도에서 회심이 발생했으며, 갈라디아와 아시아, 갑바도기아, 그리고 비두니아에서도 회심의 역사가 일어났다. 사도들의 설교는 하나님의 능력을 통하여 강력하게 역사했으며, 사람들은 구원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를 경험했다.

 

사도들 가운데 한 사람을 택해서 그의 여러 가지 사역을 더듬어 따라가 보라. 당신 자신을 사도 바울의 동역자라고 생각하면서 바울이 보았던 것을 보고 바울의 설교를 통하여 회심했던 자들을 목격하며, 바울이 세웠던 교회들을 보고 오랫동안 기억되는 그의 위대한 사역과 기념비적인 사건들을 목도해 보라! 그렇게 한다면 성령의 능력을 동반한 복음 설교가 세상을 충분히 혁명적으로 바꾸어 놓을 수 있다는 사실을 어찌 의심할 수 있겠는가? 그 복음 설교가 어둠의 왕국을 전복시키고 그 위에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으로 충만한 하나님의 왕국을 건설하는 데 충분하다는 사실을 어찌 의심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3. 성령의 부흥사역은 지금까지도 존재하는가?

 

이러한 역사들은 구약과 신약 시대에 하나님의 교회가 경험한 신앙 부흥이었다. 그러하다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복음 설교를 통하여 이와 유사한 결과를 어느 정도나 기대해야만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놀라운 이적의 시대는 지나갔기에 그러한 방편들을 기대하는 대신 이제는 단순한 말씀 설교만을 의지해야 하는 것처럼 여긴다. 그러므로 오순절에 사도들의 설교에 동반되었던 놀라운 부흥의 결과를 기대하는 것은 비합리적인 것으로 보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의문에 대응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해야 할 중요한 말씀들이 있다(2:8; 28:14; 72:16-17; 2:14; 11:25-27).

 

점진적인 진보를 선포하고 복음의 궁극적인 편만성을 보증하는 이러한 구절들은 회심의 사역이 그리스도의 교회 안에서 수행되는 것을 암시한다. 이 회심의 사역은 복음 설교라는 수단을 통하여 성취되고 능력을 동반하시는 성령의 직접적인 역사하심을 통하여 죄인의 마음과 양심에 적용된다. 이러한 방식으로 교회에 계속해서 더해지는 모든 영혼들이 오순절에 역사하셨던 한 분의 보혜사를 통하여 구원을 받을 것이며, 계몽되고 각성되며, 복종하고 회심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성령의 은혜로우신 역사는 기독교회를 통하여 계속되어야 하며, 죄인들의 회심과 하나님의 백성들의 거룩을 위하여 세상 끝나는 날까지 효과적이어야 한다는 사실은 성경의 예언이며 약속이다. 많은 이들은 이적적인 방언과 치유, 그리고 예언의 은사들이 아주 오래 전부터 멈추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의 능력도 중지되었다고 너무나도 쉽게 단정하는 나머지 성령의 사역의 가장 가치 있는 부분이 영구적이며 세상 끝 날까지 계속 수행될 것이라는 실제적인 사실을 잊어버린다.

 

그러나 이사야 선지자나 요엘 선지자는 신약 시대를 언급하면서 예언한다. 즉 신약 시대의 교회에 예언되고 약속된 위대한 축복들 가운데 하나는 성령의 충만한 부어 주심이다. 신약 서신서의 모든 기록자들도 그들의 서신에서 하나님의 영의 은혜로우신 일반적 사역, 즉 이적적인 성령의 은사가 없이도 모든 참된 신자들이 경험하는 것으로서의 사역을 언급한다.

 

거듭나야 할 모든 영혼들은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성령으로 거듭난다. 그리고 죄인들로 하여금 어둠에서 빛으로 옮겨가게 하는 회심의 사역과 그들이 점진적으로 영화롭게끔 준비되는 성화의 사역은 사도들에게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게 하신 것만큼이나 큰 성령의 열매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성령의 은혜로우신 역사가 오늘의 기독교회에서 종결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실질적으로 회심의 사역이 종결되었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성령의 사역은 모든 족속과 방언과 나라들로부터 구속받을 하나님의 백성들로 다 찰 때까지 반드시 계속되어야 한다. 그러하기에 성령의 은혜로우신 역사하심은 중지되기는커녕 모든 교회의 모든 회중 가운데 계속된다. 하나님의 성령은 말씀을 통하여 유익을 추구하는 모든 영혼들 안에 역사하신다.

 

4. 성령의 부흥사역이 지금도 계속되어야 하는 이유

 

기독교회를 향하신 하나님의 성령의 새롭게 하시고 거룩하게 하시는 사역은 결코 종결되지 않았다. 교회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영의 계속되는 사역은 신실한 복음 설교를 통하여 위대한 부흥의 결과를 기대하도록 우리를 교훈하는 교리이다. 이는 실상 복음사역의 마지막 큰 닻과도 같으며 세상을 복음화하고 중생시키는 유일한 희망이 된다. 이것이 없이는 결코 세상을 복음화할 수 없다.

 

만일 우리가 성령의 은혜를 제거하고 그분의 깨닫게 하시고 새롭게 하시며 회심시키는 은혜에 관한 약속의 말씀을 포함하는 성경구절들을 모두 삭제한 채, 초자연적인 회심의 사역을 성취하기 위해 일반적인 수단들만 남긴다면, 우리의 목적은 실패로 끝나게 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과 약속이 우리와 함께한다면, 복음이 하나님의 손안에 수단으로 역사하고 성령께서 살아 계셔서 각 영혼을 교훈하시고 거룩케 하시는 능동적인 교사와 보혜사로 역사하신다면, 이 진리의 힘 안에서 우리는 모든 어려움과 난관들에 맞설 수 있으며, 모든 낙담과 절망으로부터 일어설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세상의 조롱과 조소의 한가운데서 흔들리지 않고 견고히 설 수 있으며, 궁극적인 승리의 확신을 가지고 헬라인과 이방인, 미개인과 문명인 모두에게 복음을 담대히 설교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복음은 모든 사람들의 마음에 적절하게 역사하며, 하나님의 성령께서 효과적이게 역사하시는 능력의 소유자가 되시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주신 구하는 이에게 성령을 한량없이 주실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이 영원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의 성령께서 이따금씩 놀라운 신앙 부흥을 일으키심을 믿고 기대해도 괜찮은가? 이러한 질문을 침착하고도 공평하게 고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그것에 대한 정확한 판단을 방해하는 몇 가지 선입견을 제거해야 한다.

 

1)새 생명을 주고, 그 생명에 건강을 주는 부흥

무엇보다도 신앙 부흥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명백하고도 분명한 정의를 내리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첫째는, 이미 하나님의 백성된 자들에게 새로운 생명과 활력과 능력을 분배하고 베풀어 주는 것이다. 둘째는, 불신앙적인 삶을 살았던 영혼들에게 놀라운 각성과 회심을 주는 일이다. 환언하면, 부흥이란 죽은 자들에게 새로운 생명을 부여해 주는 것이며, 산 자들에게는 새로운 영적 건강을 분배해 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부흥이란 정확히 이 두 가지 중 하나를 구성요소로 한다. 교회의 구성원들 사이에 발생하는 소생된 신앙의 상태와 하나님을 향해 회심하는 영혼들이 더하여짐으로써 증가하는 숫자가 바로 그것이다. 많은 영혼들의 동시적인 회심과 하나님의 백성들의 마음에서 신앙적 능력이 증가하는 것, 이 두 가지가 바로 신앙 부흥을 구성하는 요소들이다. 이 두가지 성령의 은혜의 결과들이 서로 각각 독립적으로 역사될 수도 있겠지만 함께 발생할 때는 강력한 상승효과를 가져오게 된다.

 

2)부흥의 방식은 성령의 주권적 선택

성령께서는 당신의 영광스러운 사역을 실행함에 있어서 어떤 한 가지 방식에 얽매이거나 제한을 받지 않으신다. 이러한 주제를 고찰할 때, 우리는 언제나 성령 하나님의 주권을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한다.

 

5. 교회사에 기록된 수많은 부흥의 실례들

 

위대한 종교개혁의 시기였던 16세기는 독일과 스위스와 영국에서 동시적으로 선택받은 몇몇 사람들의 마음속에 발생한 신앙의 부흥을 원천으로 교회의 외적 모습이 완전히 개혁되는 시기였다.

 

종교개혁 시대의 위대한 총체적 부흥 이래 일련의 지역적 부흥이 좀 더 부분적이고 제한적 범위하에 발생했다. 1623년부터 1641년까지 아일랜드의 얼스터(Ulster) 지역에서는 매우 비범한 참된 신앙 부흥이 일어났는데 그때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이곳은 장로교회의 본산지로서의 복을 누려왔다. 이 정착민들은 제임스 왕의 명령으로 영국과 스코틀랜드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이었다. 그 중에는 스코틀랜드에서 핍박을 받아 왔던 능력 있고 열심 있는 복음 사역자들이 이곳으로 피신해 왔는데 그들 중에 탁월한 블레어(Blair)와 리빙스턴(Livingston), 그리고 웰쉬(Welsh)가 있었다. 그들의 설교에는 정말 놀라운 복이 임했고 수많은 사람들이 회심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순전한 복음적 교회들이 설립되었고 복음주의적 교육과 훈련이 도입되었다.

 

1625년에는 스테와튼(Stewarton)의 교구에서 주로 어빈(Irvine)의 목회자였던 딕슨(D. Dickson)목사를 통하여 괄목할 만한 부흥이 발생했다. 그는 장날에 맞추어 여러 지방에서 몰려드는 사람들의 영적 유익을 위하여 주중 강연을 시작했고 이로 말미암아 소중한 말씀의 씨앗을 멀리에까지 뿌릴 수 있었다. 강연 후에 수백명이 넘는 사람들이 딕슨 목사와 대화하기 위하여 기다리기도 했다.

1630년에도 역시 매우 비범한 부흥이 나낙셔(Lanarkshire)의 쇼트(Shotts) 스코틀랜드 장로교회에서 발생했다. 회중은 성찬식을 통하여 엄숙함을 느꼈고 다음 날인 월요일에도 설교 듣기를 소원했다. 이러한 요구에 존 리빙스턴(John Livingston)이 예배를 인도하게 되었다. 그는 겔36:25절 말씀을 본문으로 설교했는데, 이날 성령의 놀라운 능력이 임하여 5백여 명의 사람들이 회심하게 되었다.

 

1638년에도 스코틀랜드 교회에서 참된 신앙의 부흥이 시작되었다. 이 부흥은 한 지역에 한정되지 않았고 스코틀랜드 전역에 광범위하게 발생했으며 교회 회중뿐만 아니라 사법부에까지도 영향을 끼쳤다.

 

1734년에는 주로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와 데이빗 브레이너드(David Brainerd)의 사역을 통하여 노샘턴(Northampton)과 북미의 뉴잉글랜드의 다른 여러 도시들에서도 놀라운 부흥이 일어났다.

 

1742년에는 스코틀랜드의 많은 교구 교회들에게 새롭게 되는 계절이 찾아왔는데, 그 첫 번째 교회가 멕클로치(M󰡑culloch)목사의 캠버슬랭(Cambuslang) 교회였다. 멕클로치 목사는 중생의 본질과 필요성에 대해서 근 1년간 설교를 했다. 그러자 그의 회중 가운데 90가정이 주중에도 강연해 줄 것을 요청했다. 기도 모임도 즉시 조직되었다. 이 일 후에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목말라하며 사모했기에 멕클로치 목사는 거의 매일 그들에게 설교해야 했다. 어느 날에는 휫필드(Whitefield) 목사가 도착하기 전에 이미 약 삼백여 영혼들이 회심했다. 얼마 후에 탁월한 설교자 휫필드가 설교하자 약 3천에서 4천에 가까운 영혼들이 예배에 참석했는데, 4백명이 훨씬 넘는 회중이 목회 명부에 회심한 자들로 기록되었다.

 

같은 해에 로브(Robe) 목사가 지도하던 킬시스(Kilsyth) 교회에서도 놀라운 부흥이 일어났다. 그는 이 교회에서 30년을 목회했으나 그 어떤 부흥도 체험하지 못했다. 그러나 어느 날 낙심 중 기도에 전력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영적 부흥의 조짐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한 주에 30명이, 40명이 각성되었는데 모두 합하면 약 3백여 명이 회심하였다. 그 외에 여러 교회에서 신앙 부흥이 일어났다.

 

1794년에는 주로 발라의 찰스(Charles of Bala)를 통해 웨일즈의 여러 교구 교회에서도 역시 놀라운 신앙 부흥이 일어났다. 웨스트민스터 총회가 끝난 직후인 1649년에 이미 총회원들이 신앙적으로 황폐했던 이 웨일즈 지역을 도우라는 명령을 받았다. 따라서 이곳저곳을 여행하며 복음을 전하는 30명의 순회 설교자들 외에 경건한 150여 명의 목사들이 여러 지역에 교회를 설립했다.

 

그 후 웨일즈에는 몇몇 능력 있는 설교자들이 출현했는데, 휴 오웬(Hugh Owen), 토마스 굿지(Thomas Gouge), 그리피스 존스(Griffith Jones), 하웰 해리스(Howel Harrises), 다니엘 로우란즈(Daniel Rowlands)가 바로 그들이다. 그들은 주로 웨일즈 지역에서 지속적으로 헌신했으며, 때때로 위대한 성공을 거두었다. 휫필드는 이를 두고 사람들이 설교를 들으러 팔십 리 길을 걸어오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했으며 수천 명의 사람들이 큰 감동을 받았다고 증언했다.

 


디모데의 회심-딤후3:14-15

 

1. 두 종류의 회심


오랫동안 신앙에 무관심하면서 죄를 탐닉하며 살다가 회심을 경험한 반면, 어려서부터 혹은 어머니의 태에서부터 거룩하게 구별된 사람들이 있다. 이 두 부류의 사람들이 겪은 경험은 엄청난 차이를 나타내지만 중생은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이 중생은 성령께서 빛을 비추어 주심, 각성시킴, 새롭게 하심, 거룩케 하심 등의 사역으로 구성되어 있다. 중생의 경험은 죄의 확신,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자비에 대한 이해, 복음의 초청에 대한 진심 어린 수용, 그리고 타락과 부패와의 전쟁으로 특징지어진다.

 

2. 결코 평범하지 않았던 디모데의 회심


디모데의 신앙적 영향은 유아 시절의 신앙 교육으로부터 기원되었음을 잘 보여 준다.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에서 알 수 있듯이 경건한 유대인이었던 그의 어머니의 보살핌을 통하여 어려서부터 구약 성경의 진리의 말씀으로 양육받았다(16:1). 그리고 바울의 목회사역하에서는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었고, 후일에 복음의 탁월하고 열정적이며 헌신적인 목회자가 되었다.

 

3. 디모데의 회심이 주는 교훈

  

1)태어나면서부터 은혜를 입은 아이는 있다

디모데의 회심은 어린아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은혜의 대상이 된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그러한 어린아이가 어른이 되면 이해하고 믿은 진리의 말씀이 회심과 성화의 도구적 수단이 된다. 그러나 어린아이들은 아직 진리의 지식을 알 능력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도 적합한 하나님의 은혜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성경이 명백하게 증명하는 사실이다. 어린아이가 하나님의 은혜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언약의 특권에 들어감을 허락하는 하나님의 예비에 의해 암시되어 있다. 그것은 첫째, 구약 시대의 할례로 둘째, 신약 시대의 세례에 의해 가능해졌다.

 

2)어린 시절의 신앙 교육은 깊이 각인된다

우리는 디모데의 회심을 통해 유아 시절의 건전하고 유익한 신앙 교육이 종종 하나님을 향한 구원의 회심을 낳는 수단이 되는 축복임을 배우게 된다. 어려서부터 디모데가 성경을 익숙하게 알았다는 것은 대단히 소중한 특권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을 진정으로 믿고 그 말씀이 죄인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도구임을 확신하는 부모라면 반드시 그의 자녀들에게 그 성경의 소중한 진리의 지식을 전달하고 전수하는 일을 가장 거룩한 책임으로 느낄 뿐만 아니라 가장 즐겁고 유쾌한 특권으로 여길 것이다.

 

3)심겨진 믿음의 씨앗은 천천히, 그러나 강하게 자란다

우리는 참된 신앙이 때때로 유아 시절 어린아이의 영혼에 심겨져서 한동안 그 성장을 거의 인식할 수 없을지라도 그 아이가 자라듯 그 신앙도 자라고 그 아이가 강해지듯 그 신앙도 강해진다는 것을 배운다.

 

4. 디모데의 회심이 모태 신자에게 주는 경고-종교적 의식에 익숙-스스로 신앙적이라고 생각-회심 오해.


출처 : 청교도 아카데미
글쓴이 : 유정식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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