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뷰캐넌

[스크랩] 제임스 뷰캐넌, "성령의 사역, 회심과 부흥", 제3부 1장 거룩의 영으로서의 성령의 사역

강대식 2016. 11. 16. 09:44

3 부 회심 이후 하나님의 백성들의 거룩에

관계하시는 성령의 사역

 

1장 거룩의 영으로서의 성령의 사역

 

1. 회심에서 성화로 이어지는 성령의 사역

 

하나님의 영의 일반적 사역은 죄인들의 중생(重生)과 하나님의 백성의 성화(聖化)라는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영혼 안에서의 성화의 시작은 죄인의 회심으로부터 시작된다. 회심하기 이전까지 우리는 죄와 허물 가운데 죽은 자이다(2:1-3, 3:3-7). 죄인의 회심의 순간에 그의 영혼 안에 영적 생명이 수여된다. 죄인은 이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며, 생명의 새로움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고 중생한다. 따라서 그는 이제 하나님의 만드신 바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새로 지으심”(2:10)을 받은 자가 된다.

 

우리가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 위대한 변화에는 종종 각성과 교훈이라는 예비적 사역이 선행되며, 이제 우리가 살펴보겠지만 점진적 성화의 과정이 수반된다. 그러나 이것은 복음 안에 제시된 그리스도를 가까이 함으로써 구성된다. 그것은 믿음의 행위를 통하여 나타난 자신의 의지적인 찬성과 선택적 행동을 통하여 나타난 의지의 단호한 동의로 말미암는다. 죄인이 진리의 교훈을 받고 죄와 위험을 깨달으며, 그리스도를 피난처로 삼아 그리스도의 완전한 직무 안에서 자신의 구세주로 영접할 바로 그때에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지고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모든 특권에 참여하는 자가 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 복된 변화의 본질과 실재, 그리고 그 중요성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성경 안에 이에 관한 많은 실례들을 기록하는 것을 기뻐하셨다. 이 실례들은 본질적으로 모든 참된 회심과 관계된 것이고, 또 개인적 경험의 다양성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두 가지 교훈을 동시에 제공해 준다. (빌립보 간수, 십자가상의 한편의 강도, 루디아와 고넬료, 바울, 디모데와 에디오피아 내시, 오순절에 회심한 삼천 명의 영혼들....). 그럼에도 여기에는 모든 자들에게 공통적으로 발생하는 근본적인 변화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예수 안에 있는 진리의 권세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모든 경우에 있어서 이 권세에 사로잡히게 되면 새생명과 함께 유쾌하고 헌신적인 순종이 뒤따르게 되어 있다.

 

사도 바울이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5:25)라고 하신 말씀은 이 위대한 변화를 이미 체험한 자들에게 하시는 말씀이다. 이 말씀은 중생받은 이후에 신자의 점진적이며 성장하는 성화에 관한 성령의 계속적인 사역을 의미한다.

 

2.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나는 것이 거듭남

 

이 말씀은 중생과 성화가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음을 시사한다. 다시 말하면 갱신된 마음은 언제나 실제적인 개혁을 수반하며, 거룩한 생활은 언제나 마음의 내적인 변화로부터 기원하게 되어 있다는 말이다. 그러하기에 중생은 샘의 근원이며, 성화는 거기서부터 흐르는 개울과도 같은 것이다.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해야 한다. 그러하기에 우리가 만일 영적으로 살아 있지 않다면 영적으로 행할 수 없는 것이다.

 

이 중대한 진리는 우리 주님께서 명백하게 교훈하신 것이다.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7:16-20). 여기서 우리는 나무의 참된 본질을 그 열매의 품질과 특성으로 평가할 수 있다는 교훈을 받는다. 마음에 영적 생명이 있는 자마다 삶을 통하여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음으로써 그 존재 자체를 표현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열매가 전혀 없다는 것은 영적으로 죽었다는 것을 증명한다.

 

그러나 종종 외면적인 모습만 보면 마음의 내적인 변화가 없이도 거룩한 모습을 나타내는 자들이 많이 있음을 놓치게 된다. 이에 대해서 우리 주님은 또 다른 말씀을 통하여 열매의 품질이 나무의 본질을 좌우한다고 교훈하신다. 곧 마음 안에 살아 있는 원리가 존재하지 않다면 영적인 삶은 없다는 것이다.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12:33-36).

 

이로써 성령에 의해 새롭게 된 모든 죄인이 또한 성령으로 행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 역시 명백하다. 그리스도인이 영위하는 거룩한 생활은 반드시 새로운 영적 출생에 수반되어야 하는 것이다. 만일 살아 있다면, 행하게 될 것이다. 성령을 따라 행하기를 원한다면 반드시 먼저 살아나야 할 것이다. 오늘날 만연해 있는 오류들.

 

1)경계해야 할 율법폐기론주의

이 율법폐기론은 그리스도인에게 부과된 의무를 노골적으로 불신하고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태만 또는 하나님과 가까이, 그리고 함께 의식적으로 동행하게 해 주는 생각들을 습관적으로 홀대하는 것이다. 그 결과는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색욕거리로 바꾸고마치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계속 죄에 거해도 되는 자유가 있다고 착각하게 만든다(1:4; 6:1 참고).

 

2)경계해야 할 형식주의

형식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삶이 규칙적이고 예의 바르기만 하면, 그리고 무엇보다도 외면적인 도덕성과 윤리에 어긋나지만 않는다면, 그 어떤 영적 변화에도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자들이다. 어거스틴(Augustine)은 항상 입버릇처럼 이러한 형식주의자들의 덕목은 오직 죄악을 양산할뿐이라고 말했다.

 

우리 주님께서도 구제와 기도, 그리고 금식을 불결하고 거룩하지 못한 동기로 수행한다면 사람들에게 어떤 칭찬을 받는다 하더라도 하나님께는 전혀 합당하지 않다는 견해를 밝히셨다.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양심도 이와 동일한 방식으로 결정되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마음을 감찰하시는 분이시다. 그렇기에 마음은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뜻대로 개혁되기 이전에 반드시 새롭게 되어야만 한다. 우리는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될 때만 거룩해질 수 있는 것이다(4:23 참고).

 

3. 성화를 촉진시키는 주체이신 성령

 

만일 우리가 성령 안에서 살면 또한 성령 안에서 행할지니”(KJV, 5:25)라고 하신 사도 바울의 말 속에는 인간의 영혼 안에서의 영적 생명의 시작뿐만 아니라 그 진행이 모두 하나님의 성령의 은혜로우신 역사하심에 좌우된다는 사실이 암시되어 있다. 우리가 성령에 의하여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 가는 위대한 최초의 변화를 맞게 되면, 뒤이어 일어나는 성화의 전 과정도 역시 성령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성령께서는 회심의 순간에 우리의 마음에 당신의 은혜로우신 원리를 심어 주신다. 그러나 이 원리는 스스로 독립적이거나 자립적이지 않기에 그 영양분을 심겨진 마음으로부터 공급받지도 않는다. 오직 비밀스런 원천으로부터 그것을 공급받는다. 만일 성령의 은혜가 떠나간다면, 가장 활력 넘치는 그리스도인조차도 이내 부패하게 될 것이다. 그에게는 영속성이 없으며, 스스로의 힘도 없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충만함을 통하여 필요한 은혜를 계속해서 공급받지 못한다면, 그에게는 어떤 성장이나 열매도 없을 것이다.

 

따라서 성령의 변함없는 역사하심과 내주하심을 나타내고 백성과의 교제를 설명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다양한 표현들이 성경에 사용되었다. 때때로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 안에 있는 것으로 제시되었다(KJV, 5:25). 또 다른 경우에 성령께서는 그들 안에(속에) 계신 분으로 제시되고 있다(14:16-17; 고전6:19; 8:9).

 

모든 참된 신자의 영혼 안에 지속적으로 내주하시고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성령에 대한 고찰은 거룩한 순종의 도상에서 신자를 즉시 격려하고 고무시키기에 합당하며, 동시에 경외감과 경건한 두려움에 대한 장엄한 영향을 끼치기에 충분하다. 그것은 신자가 싸움을 싸우라고 부르심을 받은 모든 부패와 타락의 도상에서 그를 공격하는, 이루 셀 수 없는 많은 유혹들을 이길 수 있는 강력한 위로가 되며, 확신과 소망을 격려하는 원천이 된다.

 

그러나 신자도 때때로 부정한 생각이나 욕망으로 성령을 탄식하게 할 수도 있으며, 심지어 잠시 동안 성령의 역사하심을 철회시킬 수도 있다. 따라서 신자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고전3:16-17)라는 엄숙한 하나님의 명령의 말씀을 들으며, 다음과 같은 훈계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2:12-13).

 

4. 성령 안에서 행하는 성화는 신자의 의무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성령 안에서) 살면 또한 성령으로 (성령 안에서) 행할지니라는 사도 바울의 말씀은 교리적 진리를 포함할 뿐만 아니라 실제적 의무도 규정하고 있다. 이 의무는 하나님의 영으로 말미암아 소생함을 입은 우리의 생명을 통해 도출되는 동기로 깨달아지는 것이다.

 

성령 안에서 행하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을 끊임없이 연습하는 것이다. 이 믿음은 은혜 위의 충만하신 그리스도의 은혜를 수여받기 위하여 우리를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해 준다.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구속뿐만 아니라 거룩이 되시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우리가 점점 더 성화되어 가는 것 역시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의해서 가능한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처음으로 연합되는 것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것이며, 그 연합이 유지되는 것도 동일한 믿음의 지속적인 연습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다. 우리는 이 믿음을 통하여 가지가 포도나무로부터 수액을 빨아들이듯이 우리로 하여금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하는 영양분을 그리스도를 통해서 공급받는다. 우리의 회심의 수단은 예수 안에 있는 진리였으며, 우리의 점진적인 성화의 수단 역시 그 진리가 된다. 성령의 약속에 관해 말씀하실 때조차도 제자들을 향하신 그리스도의 기도는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17:17)였다.

 

여기서 언급된 진리는 율법 안에 포함된 진리가 아니다. 그것은 복음 안에 포함된 진리이다. 왜냐하면 복음의 진리가 새로운 순종적 삶을 강권하는 동기를 제공해 주기 때문이다. 복음은 성령의 손안에서 가장 효과적인 성화의 수단이 된다. 성화에 대한 인간적 방법은 율법을 통해서이다. 반면에 성화에 대한 하나님의 방법은 복음을 통해서이다. 전자는 행위로 말미암는 것이며 후자는 행위를 생산하고야 마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것이다.

 

성령 안에서 행한다는 것은 내재하고 있는 죄와의 계속적인 전투를 유지하는 것이며, 그 육체를 정욕과 욕망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고자 하는 것을 의미한다. 중생은 인간의 영혼에서 죄를 몰아내고 그 능력을 파괴한다. 그러나 중생이 죄를 마음으로부터 완전히 근절시키지는 못한다. 그러하기에 죄는 여전히 거기에 있다. 다만 폭군으로서가 아니라 반역자로 남아서 우리를 속이고 유혹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그 죄의 존재를 지각하지 못하고 그 의지를 주의 깊게 대적하지 못한다면, 죄는 우리 안에서 큰 성공을 거두게 될 것이다. 심지어 하나님의 자녀의 가슴속에서조차도 많은 쓴 뿌리가 자라서 그들을 곤란하게 하고 더럽힌다.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그 마음의 법과 싸워 그들의 지체 속에 있는 죄와 사망의 법 아래로 그들을 사로잡아 오는 것이다(7:23 참고). 신자의 전체 성화 과정은 육체가 사망으로 그 기능을 다할 때까지 끝나지 않고 계속되는 전쟁과도 같다. 이 영적 전쟁은 성령 안에서 행하는방법으로만 승리를 쟁취할 수 있다.

 

또한 성령 안에서 행한다는 것은 영적인 마음 상태를 유지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우리의 생각을 언제나 영적인 진리와 관계시키고 우리의 감정을 영적인 대상에 고정시키며 우리의 모든 기능을 영적인 사역에 집중하는 것이다. 즉 영의 일을 생각하는 의무를 포함한다(8:5-6).

 

성령 안에서 행한다는 것은 명백하게 우리가 영적인 마음을 가져야 함을 의미한다. 이 은혜로운 기질은 주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 하나님의 진리로 충만하게 채워지는 것으로 구성되고 우리의 감정과 욕구가 가시적이며 유한적인 것에 머무르지 않고 보이지 않지만 영원한 것에 고정되는 것으로 구성된다.

 

우리의 생각과 감정과 욕구가 주로 세상적인 것으로 채워져 있고 자연적으로, 그리고 본능적으로 세상적 행복만을 추구한다면, 우리가 여전히 성령 안에서 행하지 않고 육체 가운데 행하고 있다는 두려움을 가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생각과 감정과 욕구들이 주로 영적이며 신적인 것으로 채워져 있고 그것에 고정되어 있다면, 뿐만 아니라 오직 우리가 기도할 때뿐만 아니라 평상시에도 늘 감사함으로 만족해하며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천국을 향하고 이와 같은 다른 영적 주제들을 생각하고 있다면, 우리는 영적 생명으로 새롭게 거듭난 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라는 소망을 가지기에 충분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런 자들의 가장 우선적이고 확실한 증상은 영적인 음식과 자양분을 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영적인 마음 상태를 소유한 자들은 그들을 새롭게 해 주시는 이가 성령이시며, 그의 영적인 삶을 계속해서 영위하게 하시는 이도 성령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성령 안에서 행하는 자로 불려야 한다. 왜냐하면 성령께서는 신자들로 하여금 계속해서 영적 양식을 갈구하게 하며, 그들의 생각을 영적인 것에 고정시켜 주고, 그들의 감정을 영적인 대상에 고정시켜 주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성령께서는 진리의 말씀을 수단으로 이 일을 수행하신다. 그러므로 새로 태어남의 근원은 바로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이 되는 것이다(벧전1:23). 이 동일한 진리가 성령께서 그의 백성들에게 영양을 공급해 주시는 자양분이 된다.

 

더 나아가 성령 안에서 행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생활의 모든 은혜들을 습관적으로 계발하고 그것을 연습함으로써 풍성한 의와 평강한 열매를 맺는 것을 포함한다. 이는 모든 신자들 안에 명백하게 묘사된 성령의 열매를 의미한다(5:22-23; 5:9). 이것들은 우리의 타락한 본성이 자연적으로 맺는 열매들이 아니며, 이것들은 모두 다 하나님의 영께서 새로운 피조물로 장식해 주시는 거룩한 아름다움인 동시에, 천국의 우리의 삶을 위하여 준비시켜 주시는 것들이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우리 자신의 힘을 의지하지 않아야 하며 성령의 역사하심을 위하여 기도해야 할 것이다.

 


출처 : 청교도 아카데미
글쓴이 : 유정식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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