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뷰캐넌

[스크랩] 제임스 뷰캐넌, "성령의 사역, 회심과 부흥", 3부 3, 4장 기도의 영, 위로자로서의 성령의 사역

강대식 2016. 11. 30. 15:42

3장 기도의 영으로서의 성령의 사역

 

성경에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기도를 도우시는 성령의 특별하신 사역이 언급되어 있다. 이는 모든 신자들에게 공통적으로, 모든 시대의 교회를 향하여 영구적으로 발생한다. 이 진리는 옛 약속에서 암시되었다.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주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12:10). 그러나 이 주제에 관해서 가장 강한 어조로 진술된 증언은 다음과 같은 말씀이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8:26).

 

1. 기도의 영으로서의 성령의 사역에 대한 바른 이해

 

우리는 이 말씀을 성령 자신께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고 성령 스스로가 우리를 대신하여 하나님께 직접 기도하시는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중보자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에 계실 때 그의 제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셨고 지금도 하늘 보좌의 하나님 임재 앞에서 그들을 위하여 계속해서 증보기도를 하신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한 번도 성령이 개별적인 기도를 하거나 우리를 위하여 보좌에서 기도하는 분으로 묘사되지 않는다. 성령께서는 아주 다른 방법으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신다. 다만 은총과 간구의 영으로서 우리 안에 내주하심으로써 우리가 스스로를 위하여 기도할 수 있도록 우리를 위해 기도하신다.

 

성령은 믿음과 회개, 그리고 소망의 영이신 것처럼 간구의 영이시기도 하다. 그는 이러한 영적 은혜들의 저자이시며 그것들이 흘러 나와서 계속해서 유지되는 근원이시다. 거기다가 이러한 은혜들은 신자가 그의 영적 성품의 일부분을 형성하도록 성령에 의해서 실행되는 것들이다. 이처럼 성령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복 주심을 소원하고 간구할 수 있도록 격려하시고 또 그렇게 간구할 수 있는 은혜를 주심으로써 우리를 위하여 중재하시는 분이시다. 바로 이러한 의미가 이 교리에 대한 올바른 이해이다.

 

먼저, 성령께서는 중보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둘째로, 성령께서는 우리의 연약을 도우시는 분이라고 분명하게 묘사되어 있다. 즉 우리가 기도해야 할 것을 알지 못하고 있을 때, 그러한 기도의 방해물을 제거하고 우리 안의 부족들을 채워 줌으로써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 아버지께 상달될 수 있도록 도우시는 분이다.

셋째로, 성경은 성령께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분이라는 말씀을 덧붙이고 있는데, 이 표현은 성령 하나님에게 인격적으로는 적용될 수 없는 표현이다. , 우리 자신의 마음을 각성시키시기 위한 성령 하나님의 훈계적 간절함과 관심에 대한 표현이다.

 

이 다양한 표현들은 성령의 간구하심을 통하여 우리가 그의 은혜로 하늘 보좌를 향하여 진지하게 간구하고 기도할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는 사실을 보여 주기에 충분하다. 이 기도의 영적 본질은 성령에 의해 역사되고 유지되는 믿음과 사랑과 소망의 은혜들을 통한 하나님과의 교제에 있는데 이 교제는 가장 위대한 사역으로서 하나님을 향한 영혼의 가장 고상하고 거룩한 섬김이다.

 

우리 자신들의 연약과 무지 때문에 우리가 성령의 은혜와 강력을 단순히 의지해야 한다는 이 겸손한 고백은 실제로 인간의 마음의 자연적인 감정과 조화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인간은 너무나도 자기 자신의 독립적 능력에 대한 자아 충족성과 과도한 자만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도하는 데 있어서 성령의 은혜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은 기도한 적이 없거나, 외적으로 혹은 형식적으로 기도를 하기는 하지만 그 영적 본질에는 무지한 사람들이라는 두려움을 가져야 한다. 이뿐 아니라 형식에 얽매인 외면적 기도에 머물기 때문에 하나님과의 충만한 교제를 누리지 못한다.

 

이러한 감정과 생각들은 참된 신자들의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참된 신자들은 기도의 시간에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하나님 앞에 토해 내고, 하늘에 계신 그들의 아버지와 함께 교통하고 교제하면 할수록 더욱 자신들의 연약을 느끼며, 더욱 성령의 은혜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의지하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러하기에 신자는 누구라도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라고 말했던 사도 바울의 겸손한 고백에 동의할 것이다. 이로 볼 때, 바울 자신의 경험은 기도의 영의 사역이 자신의 마음의 자연적이고 자발적인 결과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오히려 그것은 외부로부터 우리 마음에 심겨진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므로 그것은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은혜로 말미암아 계속해서 유지되어야만 한다.

 

우리의 영을 유지시키고 우리가 기도의 즐거움을 누리기 위해서는 성령 하나님의 은혜가 절대로 필요하다. 그러나 성령의 다른 사역도 마찬가지이지만 이 사역에 있어서 성령께서는 언제나 여러 가지 수단들을 사용하시며, 그것들을 우리의 이성적이며 도덕적 기질에 맞는 방식으로 역사하신다는 사실을 절대로 명심해야 할 것이다. 성령은 이성적으로 역사하신다. 또한 성령께서는 여러 가지 이유와 동기로 우리를 기도하게 만드신다. 은혜의 영으로서의 성령의 모든 사역은 기도할 수 있도록 우리를 준비시키시는 목적에 집중되어 있다.

 

1)우리의 죄를 드러내심으로써 기도하게 하심

성령께서는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온전한 의존의 느낌과 지각을 갖추게 하시기 위하여 우리의 죄와 허물을 드러냄으로써 기도하게 만드신다. 우리가 우리의 부족과 결핍을 잘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면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이 은혜의 공급을 간절하게 추구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기도는 우리의 일시적인 부족과 결핍, 또는 영적인 부족이나 결핍과 연관되며, 우리에게는 이 두 가지 모두에 관해 깨닫게 하시고 지도해 주시는 성령의 은혜가 필요하다. ‘마음의 부패와 질병을 발견하기 위하여 기도하는 것보다 더 시급하고 중요한 일은 없다.

 

2)필요한 은혜를 깨달음으로써 기도하게 하심

성령께서는 우리의 부족과 연약과 죄를 드러내시는 일 이외에도 그리스도 안에 있는 보화로서의 모든 필요한 은혜의 풍성한 공급을 깨닫게 하심으로 기도하게 하신다. 성령께서는 측량할 수 없는 구속의 복됨을 완전하고도 상세하게 알려 주신다. 왜냐하면 성령께서 그리스도의 영광을 나타내시고, 그가 그리스도의 것을 가지고 우리에게 알리실 것이기 때문이다(16:14-15 참고). 또한 성령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을 우리로 알게 하시기 위하여 보냄을 받으신 분이시기 때문이다(고전2:12).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백성을 위하여 이루신 풍성하고도 영광스러운 특권의 확실한 이해와 발견은 우리의 기도의 방향을 결정해 줄 뿐만 아니라 격려의 근원이 된다. 우리가 이 특권의 종류와 내용을 올바로 이해하기만 하면, 그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소중하고 추구할 만한 것인가를 느끼게 해 줄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시는 성령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면, 우리의 기도는 가장 자유롭고 생명력 넘치는 기도가 될 것이다. 이는 정말 놀랍고 위대한 축복이며 그것들을 위해 기도할 때 우리가 하나님께 위대한 기도를 올리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우리를 위한 복음의 모든 보화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며 복음 안에 무조건적으로 제공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때, 우리는 담대함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4:16).

 

3)더욱 간절하게 하심으로써 우리의 기도를 도우심

성령께서는 우리 안에 기질과 경향, 그리고 욕구를 일으키심으로써 우리 스스로 간절하고 끈질긴 간구로 우리에게 필요한 이 은혜를 공급해 주십사고 기도하게끔 우리를 도우신다(42:1-2). 거듭나지 못한 자연적 상태의 우리에게는 이러한 기질이나 욕구가 전혀 없다. 마음속의 있는 영적 욕구(갈망)은 하나님의 성령의 사역이며, 그 욕구는 언제나 성령의 계속되는 중재사역을 통하여 살아 움직여야만 한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5:6). 이 새로운 경향과 욕구는 하나님의 백성들로 하여금 기도하는 것을 매우 자연스럽고도 용이하게, 그리고 기쁘게 만든다.

 

4)영적 은혜 누림을 연습하게 하심으로써 기도를 도우심

성령께서는 본질적으로 하나님과의 교제에 암시된 이러한 영적 은혜들을 생명력 있게 추구하도록 자극함으로써 우리의 기도를 도우신다. 기도는 정확히 이러한 은혜들을 연습하는 것이다. 기도는 하나님을 향한 신뢰와 그 안에 있는 기쁨을 연습하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이 모든 은혜들이 성령의 열매들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또한 이 은혜들은 먼저 우리 마음에 심겨져야 하며, 그 후에도 계속해서 성령에 의해 자양분을 공급받아야만 함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한다면, 당신은 즉시 성령께서 우리 영혼의 모든 은혜로운 감정과 경향들을 생명력 있게 강화하고 고무시킴으로 우리 기도를 도우시는 분이심을 깨닫게 될 것이다.

 

5)우리가 연약하기에 기도를 도우심

성령께서는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므로 우리의 기도를 도우신다. 그 도움은 우리 기도의 장애물들을 제거하고 그것들을 경계하도록 자극하며, 우리가 그것을 초월하도록 하는 도우심이다.

 

2. ‘은혜와 간구의 영으로서의 성령의 사역이 주는 몇 가지 교훈

 

우리는 무엇보다도 이 교리를 통해 기도는 매우 엄숙하고도 진지한 경건의 훈련임을 배우게 된다. 또한 이 교리를 통하여 우리는 기도가 우리의 육체적 능력을 훨씬 초월하는 경건의 훈련이며, 오직 하나님의 성령에 의해서만 부여될 수 있는 은혜를 연습하는 것임을 배우게 된다. 이러한 고찰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보좌에 나아갈 때마다 다시 한 번 모든 은혜의 성령을 기대하게 하며, 그분의 도우심을 간구하게 해 준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이 교리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를 당신과의 교통과 교제를 누릴 수 있는 자로 회복시켜 주시기 위한 충분한 은혜를 제공해 놓으셨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시며, 은혜의 보좌에 좌정하셔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기를 원하시는 분으로 계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리스도께서도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있으시면서 당신의 공로의 향기로 우리의 기도를 하나님 아버지께 올려 드리는 우리의 변호자와 중보자로 계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모든 외적인 장애물들이 제거되었음에도 여전히 우리의 마음속에 남아 있는 장애물들에 대해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은혜와 기도의 영으로 계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소중한 진리가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는 성령의 은혜를 간구하도록 격려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기도가 평강 가운데 응답될 소망을 가지게 만드는 것이다. 심지어 우리가 하나님께 무슨 말로 기도할지를 몰라 당황하고 있을 때에라도, 그것은 결코 우리를 낙심하게 만들지 못한다. 무슨 말로 기도해야 할지를 모를 때라도 마음의 소원(갈망)’은 바로 우리의 기도가 된다.

 

어떤 이유에서든지 간에, 우리의 육신적 연약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기도가 방해받거나 그 시간이 자꾸만 축소된다 할지라도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의 연약을 체휼(體恤)(동정)치 않으시는 분이 아님을 잘 보여 줄 것이다(겟세마네 동산에서 잠들었던 제자들). 그러나 우리가 성령의 은혜들을 기대한다면, 모든 가능한 수단을 다 동원해서 이 장애물을 경계하고 극복해야만 할 것이다. 우리의 육신적 연약 그 자체는 매우 종종 게으름과 방종과 제멋대로의 욕망으로 치달으며, 그 결과 하나님과 우리와의 영적 교통과 교제를 훼손하는 매우 수치스러운 원인이 된다.

 

따라서 우리는 필요하다면 항상 기도와 금식 가운데 깨어 있어야 하며, 사도 바울의 이 말씀을 기억해야만 한다.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고전9:27).

 

 4장 위로자로서의 성령의 사역

 

세상을 떠나가시기 전, 거룩하신 우리 주님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에게 그들을 고아와 같이 내버려 두지 않고 그들과 함께 영원히 거하시기 위하여 성령을 보내 주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주님은 그 성령을 보혜사(保惠師)라고 부르셨다. 이러한 성령의 직무는 그들의 연약을 돕고, 그들을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며, 그들에게 유혹의 대적을 경계할 힘을 주고 시련을 견디게 하며, 기도할 때 돕는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하여 당신의 백성들을 보호하고 안전하게 하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15:13). 여기에 언급된 기쁨과 평강과 소망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을 위해 제공하시는 바로 그 위로를 구성하는 요소들이다.

 

1. 위로의 주체가 되시는 하나님

이 위로의 근원에 관한 한, 삼위 하나님과 연관되며 삼위 하나님의 직무들로부터 우리에게 흘러 나오는 것임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대단히 중대하다. 무엇보다도 하나님 자신이 위로의 주인이시라는 말이다. 마르지 않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의 샘이 바로 이 위로의 원천이다.

 

위로자로서의 성령의 사랑하심은 매우 다양한 방법을 통하여 나타난다.

첫째, 그리스도께서 기름부음을 받으신 것도 성령을 통해서이며, 인성을 취하심으로 당신의 위대하신 구속계획을 수행하시기 위한 자격을 획득하심도 성령을 통해서였다.

둘째, 복음이 담고 있는 은혜와 자비의 모든 메시지를 기록하게 하신 분도 역시 성령이시다. 왜냐하면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벧후1:21)이기 때문이다. 그러하기에 복음이 전달하는 모든 위로는 하나도 예외가 없이 성령께서 전달하시는 것이며, 복음이 제공해 주는 모든 소망 역시 성령께서 주신 소망이다.

셋째, 성령은 당신의 계속된 교회 안에서의 중재와 신자들의 마음속에서의 내적 사역을 통하여 복음 안에 내포된 은혜로운 의미를 이해하고 복된 영향을 느끼게 해 준다.

 

만일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 누구라도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벧전1:6)하고 있다면, 그들은 그 현재의 위로가 조금도 결함이 없는 그리스도의 복음으로부터 샘솟으며, 하나님께서 그들의 참된 행복과 복지에 여전히 관심을 가지고 계신 분이시라는 사실을 믿어 의심치 말아야 하며, 그 말씀 안에서 안식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낙심한 자의 보혜사가 되시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궁극적인 유익을 위하여 광야로 인도하시는 것처럼 그들을 혹독한 시련으로 인도하신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곳에서 그들을 인도하신다.

 

2. 신자를 위로하시는 성령의 수단과 방법

 

성령께서는 그의 다른 모든 사역에서와 마찬가지로 이 위로의 사역에 있어서도 계명의 말씀에 따라, 그리고 우리의 도덕적 본성의 필요성에 따라 역사하신다. 성령의 사역은 결코 쪼개지거나 분리되지 않는다.

 

성령께서는 말씀을 통해 계시된 진리를 수단으로 하여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게 하시며, 그 능력을 지각하게 하시고 특별히 믿음의 연습을 통하여 각 영혼에 그 말씀을 적용하심으로써 당신의 백성들을 위로하신다. 그러하다면 복음이 포함하고 있는 진리가 성령께서 그의 백성들을 위로하시는 도구적 수단이 된다는 것은 위에 인용한 사도 바울의 기도, 믿음 안에서 모든 평강과 기쁨으로 충만하게 하시기를 원한다라는 말씀을 통해 증거된다. 다윗 또한 동일한 위로의 수단을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이 말씀은 나의 고난 중의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기 때문이니이다”(119:50).

 

성령께서는 죄인의 회심 순간에 이 위로를 전하여 주신다. 죄인은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자기 스스로는 소망이 없는 자임을 자각하기 위하여 구세주이신 그리스도의 지식 안에서 새롭게 각성된다. 그리고 복음이 주는 확실성과 자유를 깨달으며, 과감히 성경의 약속과 보증을 확신하고 개인적으로 그리스도만 믿고 신뢰한다. 따라서 이 복음 진리의 단순한 요소들은 죄인의 마음에 즉각적인 위로와 안심을 제공한다.

 

복음을 영접함으로써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신앙의 삶을 시작하는 신자는 그 시작부터 여호와께서 은혜로우신 분이심을 맛보며, 올바로 이해하고 진심으로 믿기만 하면 신적 진리의 가장 단순한 요소들인 평강과 기쁨, 그리고 소망이 주는 위로를 충만하게 받게 될 것이다. 성령의 위로는 그의 다른 모든 열매들과 마찬가지로 예수 안에 있는 진리의 지식을 더 풍성하고 확실하게 이해함에 따라서 더욱더 성장하고 강해진다. 신자의 위로는 종종 신적 진리에 대한 그의 생각과 견해가 희미하고 불분명하면 잠시 동안 약해질 수 있으며, 요동칠 수도 있다.

 

그러나 성령의 가르치심에 따라 이 진리들을 더욱 명확하게 이해하면 할수록 그분의 위로 역시 더욱 안정되고 견고해지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의 속성으로부터 그가 얻는 모든 새로운 견해들, 구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지혜와 정의와 사랑에 대한 모든 증명들, 그리고 특별히 자신의 영혼을 향하신 하나님의 손길, 하나님의 진리의 능력에 대한 모든 새로운 경험들은 반드시 그 위로를 더욱 강하게 해 주는 것들이다. 이러한 것들을 처음으로 힐끗 보기만 해도 그의 마음속에 위로와 소망이 싹트게 된다. 참된 모든 복음적 위로는 계시된 하나님의 진리로부터 그 기초와 근거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은 실제적으로 대단히 중요하다.

 

위로자로서의 성령의 사역이 하나님의 백성을 시련으로부터 면제해 주시는 것이 아님을 또다시 반복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하나님의 백성들은 세상 사람들이 받는 그것보다 더 혹독하고 많은 고통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여기 그들이 누리는 평화의 비밀이 있다. 그것은 환란의 한가운데서 누리는 평화요, 슬픔의 한가운데서 누리는 기쁨이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16:33). 그래서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이다.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고후4:8-9).


3. 성령의 위로하심의 풍성함과 다양성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15:13)

 

우리는 이 기도의 표현 방식을 통해 그리스도인의 위로가 구성하고 있는 요소들 사이에 본질적이고도 상호적인 관계가 있음을 배우게 된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미래의 살아 있는 역동적 소망을 경험하기 이전에, 현재에도 믿음을 통한 기쁨과 평강이 있음을 배우게 된다.

 

확신의 결핍으로 인해 불평하는 자들은 무엇보다도 먼저 즉각적인 구원과 위로를 제공해 주기에 합당한 복음 진리에 대한 단순한 요소들을 향해 그 눈을 돌리고 관심을 집중해야 할 것이다. 또한 약간의 평화를 경험하고 가끔은 미래에 대한 소망을 바라볼 수 있게 된 자들은 더없이 행복한 감동을 더 많이 누릴 수 있도록 분투하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사도 바울의 요청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 소망에의 추구는 그들의 의무인 동시에 특권이기도 하다. 이것은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그들의 의무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하지 아니하리라”(벧후1:10). 또한 이것은 그들의 특권이다. 왜냐하면 이 풍성한 위로와 은혜를 통한 참된 소망은 도달하고 취득할 수 있는 것들로 선포되었기 때문이다. 모든 참된 신자들은 이것들이 정말 추구해야 할 만한 것들임을 참되게 인정할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고찰을 통해서 아직 경험해 보지 못한 더 큰 평강과 기쁨과 소망을 마땅히 기대하고 추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함에 있어서 우리는 이러한 것들을 정당한 방식으로 추구해야 하며, 통상적인 은혜의 수단들을 잘 사용해야 한다는 것을 반드시 기억해야만 한다.

 


출처 : 청교도 아카데미
글쓴이 : 유정식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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