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보스톤

[스크랩] 토마스 보스톤, 「인간 본성의 4중 상태」, 3부 은혜의 상태, 1장 중생, 중생의 속성에 대한 오해들(강의안)

강대식 2017. 2. 15. 09:46

3부 은혜의 상태

 

1. 중생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벧전1:23)

 

이제 인간 본성의 회복이 시작된 상태인 은혜의 상태로 들어간다. 영원한 행복에 참여하게 될 자는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조만간 그 상태로 변화된다. 은혜에 의한 변화의 결과는 영생을 기업으로 얻는 것이다. 그 변화는 두 가지의 특별한 면에서 나타난다.

1. 중생을 통해 나타나는 변화는 본성의 변화로서 그들의 본성적인 실제 상태, 곧 부패의 상태와는 정반대다.

2. 주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 나타나는 변화는 그들의 본성적인 상태 곧 진노의 상태와는 정반대로서 정죄함이 미칠 수 없는 상태다그러므로 필자는 죄인을 은혜의 상태로 이끌어 위대하고 포괄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중생과 그리스와의 연합을 다루고자 한다.

 

사도 베드로는 성도들에게 거룩과 특히 형제 사랑을 배우도록 자극하기 위해 그들의 영적인 근원을 생각나게 한다. 그들이 썩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듭났다고 말한다. 이 사실은 그들이 똑같은 새로운 본성에 함께 참여한 자들로서 서로 형제임을 보여 준다. 이 새로운 본성은 거룩의 뿌리이며 특별히 형제 사랑의 샘이다. 우리는 한때 죄인으로 태어났다. 우리가 성도가 되려면 반드시 거듭나야 한다.

 

거듭남은 태어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잉태되어 태어났다라고 이해하면 되겠다. 중생은 전인에게 실제로 나타나는 초자연적인 변화로서 자연적인 출생과 적절하게 비교된다. 중생의 일반적인 수단은 로 불리는 썩지 않는 씨다. 그 씨에 의해 새로운 피조물이 만들어진다. 썩지 않는 영적인 씨다.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말씀은 그것이 역사하는 모든 대상에게 영원한 효과를 나타낸다. 이런 면에서 말씀은 살아 있고 항상 있다.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벧전1:25). 성령에 의해 우리에게 심겨지는 이 말씀이 중생의 방편이며 그것에 의해 죽은 죄인들이 생명으로 일어난다.

 

교리: 은혜의 상태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거듭난 자들이다.

 

모든 은혜로운 사람들 곧, 하나님의 은총의 상태에 있으면서 은혜로운 성품들과 성향을 부여받은 자들은 중생한 사람들이다

 

. 중생의 속성에 대하여

 

중생의 속성에 대해 그릇된 개념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속아서 그들에게 나타난 몇몇 부분적인 변화를 이 위대하고 철저한 중생의 변화로 오해한다.


1)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그들의 어머니로라고 부르는데, 하나님은 교회를 그분의 자녀들로 인정하지 않으실 것이다. “내 어머니의 아들들이 나에게 노하였다”(1:6). “내 어머니의 아들들은 가짜 형제들이다. 세례를 받은 모든 사람이 거듭난 사람은 아니다. 시몬은 세례를 받았지만 여전히 악독이 가득하며 불의에 매인 바 되었다’(8:13,23). 기독교가 국교인 나라에서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지만 단지 호칭만 그럴 뿐이다. 그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 신앙을 고백하는 곳에 마귀가 그리스도의 양 가운데 그의 염소를 두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우리에게서 나갔으나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하였도다”(요일2:19).

 

2) 훌륭한 교육을 받은 것이 중생이 아니다. 교육은 사람의 정욕에 굴레를 씌울 수 있지만 그 마음까지 바꾸지는 못한다. 늑대는 사슬에 묶여 있더라도 여전히 굶주린 맹수다. 좋은 모범은 사람의 외적인 삶을 변화시키는 데 강력한 영향력을 나타낸다. 하지만 동료들이 바뀌면 그런 외적인 변화가 신속하게 사라지는 슬픈 경우가 이 세상에 많다. 요아스 왕은 제사장 여호야다가 있는 동안 매우 독실했으나 곧바로 배도했다(대하24: ).

 

3) 방탕한 삶에서 돌아서서 예절 바른 절제의 삶으로 변화 되었어도, 그 변화는 구원의 변화에 미치지 못한다. 삶의 개혁은 하나님의 은혜가 전혀 없는 가운데서 일어날 수 있다. 하지만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의는 하나님의 의에 결코 미칠 수 없다.

 

4) 어떤 사람이 기독교의 모든 외적인 의무들을 감당해도 여전히 거듭나지 않았을 수 있다. 종교의 모든 외적인 행위들은 본성적인 능력들의 범주 안에 있다. 위선자들이 성령의 모든 은혜들을 모방할 수 있다. 성경은 참된 거룩함”(4:24)진실한 믿음”(딤전1:5)을 말한다. 가짜 거룩과 가장된 믿음이 있다는 것이다.

 

5) 사람은 자기 나름대로 종교적인 방법을 통해 상당히 엄격한 자리까지 나아갈 수 있지만 여전히 새로운 출생에 문외한일 수 있다. “내가 우리 종교의 가장 엄한 파를 따라 바리새인의 생활을 하였다”(26:5). 거룩하지 않은 본성도 종교 내에서 나름대로의 엄격함을 지닌다.

 

6) 어떤 사람은 매우 예리한 양심을 가져서 고통을 당하지만 여전히 거듭나지 못한 채 죽을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지만그것은 단지 바람을 잡은 것과 마찬가지다. 양심으로 인한 뼈아픈 고통이 있을지라도 마침내 허무함으로 끝나는 일들이 있다. 번쩍이는 모든 것이 금은 아니다. 봄에 무성한 나무라도 추수 때에 아무 열매를 찾을 수 없는 것들도 있다. 어떤 사람들은 예리한 양심을 갖고 있지만 단지 지옥의 맛을 미리 볼 뿐이다.

 

처음에는 아무리 새로 태어난 것처럼 보여도 두 가지 모습으로 그르칠 것이다.

1) 어떤 사람들은 한동안 예리한 가책을 느끼지만, 그들의 구원에 대해 신경 쓰지 않으면 그 가책은 사라져서 이전처럼 또는 보통 더 열악하게 불경해진다.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12:45). 그들은 깨닫는 은혜는 얻었지만 회심하는 은혜를 얻은 것은 아니다. 그들은 결코 자신과 자신의 의에서 벗어나지 못할 뿐더러 예수 그리스도께로 나아가지 못한다.

2) 중생케 하는 은혜를 전혀 접하지 않은 영혼 안에 놀라운 감정의 변화가 있을 수 있다. 은혜가 없이도 에서처럼 한없는 눈물을 흘릴 수 있다. 돌밭 비유에서 말씀을 들은 자가 기쁨으로 받는 것처럼 거듭나지 않은 사람이 큰 기쁨의 감동을 체험할 수 있다.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볼 수도”(6:4-6) 있다. 성령의 일 mk,반 활동들은 마치 범람지처럼 여러 가지를 신기하게 뒤집어 놓는다. 하지만 범람이 끝나면 모든 것이 다시 정상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돌같은 마음은 여전하다. 이런 경우 이 감정들은 뿌리가 없기 때문에 시들 수밖에 없다.

 


출처 : 청교도 아카데미
글쓴이 : 강대식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