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3-05 주일설교
본문: 고후 4:16-18
제목: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
1.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진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고후4:16)
그리스도인은 보배이신 그리스도를 질그릇 같은 자기 속에 지닌 사람들이다.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는 것이다.
그래서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해도 싸이지 아니한다.
답답한 일을 당해도 낙심하지 아니한다.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한다.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한다.
욱여쌈, 답답한 일, 박해, 거꾸러뜨림 들은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지는 것이다.
이것은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지는 것이다.
이러한 고난들을 통하여 예수의 생명이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는 것이다.
이 고난들을 통하여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진다. 고난에는 장사가 없다.
그러나 우리의 속사람은 나타나는 예수의 생명을 통하여 날마다 새로워진다.
그러므로 우리는 낙심하지 않는 것이다.
낡아져가는 우리의 겉사람 때문에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는 긴 고난 때문에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
환경의 겉만 낡아질 뿐, 속까지 낡아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중국 극동지방에서만 자라는 희귀종 ‘모소대나무’가 있다고 한다.
이 대나무는 씨를 뿌린지 4년 동안은 겨우 3cm 정도 자란다고 한다.
그러나 5년째가 되면 하루에 무려 30cm 이상씩 자라기 시작하여
6주만에 15m 이상 자라나 울창한 대나무 숲을 이룬다고 한다.
그야말로 폭풍성장을 하는 것이다.
위에서 자라지 않는 4년 동안 뿌리는 땅속에서 사방으로 뻗어나가며
심지어 수백m까지 뿌리를 내린다고 한다.
겉이 자라지 않는다고 속이 자라지 않는 것이 아니다.
속이 자라야 겉도 제대로 자랄 수 있다.
예수 죽인 것을 짊어져야 예수의 생명이 나타나고 자랄 수 있다.
세상은 겉사람 위주로 산다.
성형이 난무하고 겉모양으로 사람을 평가한다. 거기에 미혹 당하지 말아야 한다.
인생의 최종적인 승리는 겉모양이 아니라 속사람의 크기가 결정한다.
각 분야에서 뛰어난 사람들은 키도 작고 겉모양이 볼품 없는 사람들이 많다.
겉사람에 투자하는 돈과 시간과 열심을
속사람에 투자하는 것이 훨씬 더 장기적으로 효과가 크다.
자연(창조)을 거스려 뜯어 고치고 주입한 것들은 반드시 부작용을 낳고 댓가를 치른다.
모든 일을 이루는 성품과 능력은 보이지 않는다.
다윗은 양치는 목동이었지만 고난과 연단을 통해 마음의 완전함과 손의 능숙함을 이루어
왕으로 세웠을 때 인격과 능력에 부족함이 없이 위대한 왕이 되었다.
하나님은 용모와 키를 보지 않으신다.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삼상16:7)
세상의 일시적인 농단과 유혹에 넘어가지 말아야 한다.
세상의 승리와 행복을 최종적으로 결정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지 세상과 사탄이 아니다.
하나님은 이미 버린 용모와 키를 사람은 보고, 하나님은 속사람 곧 중심을 보고 판단하신다.
고난은 인내와 연단을 통하여 우리 속사람을 튼실하게 하고 키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속사람의 거룩함이요, 성화 성숙이다.
속사람의 거룩함, 성화와 성숙이 축복과 영광을 낳지,
겉사람의 화려함은 재앙과 치욕을 낳을 뿐이다.
세상을 따라가지 말고 하나님을 따라가야 한다.
세상의 생각과 가치관을 따르지 말고 하나님의 생각과 가치관을 성경을 통해 따라야 한다.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어야 한다.
야망을 품고 목표를 정하고 빨리빨리 달려간다고 성공을 이루는 것이 아니다.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롬9:16)
2. 고난이 영광을 이룬다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고후4:17)
고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영광의 소망을 이룬다.
이 영광을 소망으로 갖기에 고난 중에도 즐거워할 수 있다.
낮추기도 하며 주리게도 하며 긴 광야의 고난 길을 걷게 하시는 것은 마침내 복을 주시기 위해서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게 하기 위해 미리 정하셨다.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 그 형상을 만들어 가신다.
육신으로 태어날 때 처음 형상도 하나님이 만드셨지만, 그리스도의 형상도 하나님이 만들어 가신다.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 위해서는 해산의 수고를 해야 한다.
“너희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4ᅟᅡᆨ4:19)
하나님은 우리 속사람이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기까지 결코 그 손을 놓지 않으신다.
“너의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빌1:6)
그리스도인의 생활에 형상을 이루기 위한 고난은 많지만 하나님의 공급 속에서 이루어진다.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만나와 생수를 주시고,
옷이 해어지지 않게 하시고, 발이 부르트지 않게 하신다.
고난 중에 형통케도 하신다.
우리가 감당 못할 시험과 연단도 주지 않으신다.
말씀과 기도의 경건생활에 힘쓰면 능히 믿음으로 감당할 만한 것들이다.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해도 싸이지 않게 하시고, 답답한 일을 당해도 낙심하지 않게 하신다.
박해를 받아도 버림을 받지 않게 하시고, 거꾸러트림을 당해도 망하지 않게 하신다.
그리스도의 심히 큰 능력이 고난 받는 우리 질그릇 속에 항상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
그 죽음에 넘겨지는 고난들이 예수의 생명을 낳고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어가게 하신다.
그 끝에 가나안이 열리고 축복의 영광이 이루어진다.
그 영광은 지극히 크고 무겁고 영원한 영광이다.
우리가 받은 고난은 그에 비하여 잠시 받은 것이고, 가볍게 받은 것이다.
우리의 잠시 받은 고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이룬다.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롬8:16-18)
성령께서 친히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고 증언하시니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된 것을 안다.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의 모든 것을 물려 받는 상속자이다.
우리의 구주이신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하는 상속자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그 영광을 받으려면 고난도 그분과 함께 받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받는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는 비교할 수가 없다고 하신다.
지금 우리가 받고 있는 고난, 잠시 받는 고난의 경한 것이,
비교할 수 없는,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무거운 것을 이룬다고 하시는 것이다.
뭐가 눈에 띄게 이루어지는 게 없다고, 고난이 왜 이리 기냐고 탄식이 나오는가?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위로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라”(롬15:4)
성경에서 하나님께 쓰임 받은 사람들의 고난과 그 결말의 영광을 보고 교훈을 받고
위로를 받으면서 인내와 소망을 가지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사람, 곧 속사람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예나 지금이나 똑 같기 때문이다.
노예살이, 감옥생활의 고난을 통해, 요셉을 만드셔서, 대애굽제국의 총리로 세우셨다.
아둘람굴과 도망자 망명자 생활을 통해, 다윗을 만드셔서,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왕으로 세우셨다.
고향 친척 아버지 집을 떠나 가나안의 긴 고난을 통해, 아브라함을 만드셔서,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셨다.
자그만치 40년 동안의 광야생활의 긴 고난을 통해, 모세를 만드셔서,
출애굽의 위대한 능력자로 세우셨다.
십남매와 모든 재산과 건강까지 잃는 고난을 통해, 욥을 만드셔서, 갑절의 축복을 주셨다.
비방자 박해자 폭행자였던 바울도, 고난을 통해 만드시면서, 위대한 사도로 세우셨다.
그래서 바울은 자기의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한다고 하였다(고후12:10).
이들의 고난과 그 결말의 영광은 우리의 교훈을 위해서 기록한 것이다.
거기서 고난의 인내를 배우고, 성경의 위로로, 소망을 갖게 하기 위한 것이다.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6:9)
고난 중에 낙심하고 불안해 하지 말라고 하신다.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마다 새로워지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속사람의 크기가 우리의 미래와 운명과 환경을 결정한다는 것을 믿기 바란다.
3. 보이지 않는 것에 주목하라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고후4:18)
이 세상에서 눈에 보이는 것들은 그것이 아무리 화려해도 아무리 보잘 것 없어도,
다 잠시 있다가 없어질 것들이다.
그 최고라는 권력도 10년을 넘기기가 어렵고 재물도 건강도 아름다움도 오래 가지 못한다.
그런데도 그것이 전부인양 몰입하고 보다 귀한 것들을 보지 못한다.
아무리 많이 쌓은 재물도 누구의 것이 될지 모른채 두고 떠나야 한다.
자식에게 물려주는 재산들도 그것이 득이 되지 않고 독이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모세는 애굽의 모든 보화와 왕족의 특권도 다 버리고,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는
그리스도를 위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받는 고난을 택했다.
그분이 살아 계셔서 통치하시고 상 주시는 분임을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는 것 같이 보면서 고난을 인내로 참아냈다.
보이는 애굽 왕의 노함을 무서워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하나님이 주시는 상을 더 큰 것으로 보았다.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히11:26)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
그분이 살아 계신 것과 그분이 상 주시는 분임을 믿어야 한다.
믿음은 실제 생활에서 능력과 효력을 발휘해야 한다.
그래서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하는 것이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을 실상으로 보는 것이고,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이는 증거로 갖는 것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잠시 있다가 없어질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지만 영원한 것을 바라보아야 한다.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기 때문이다.
겉사람도 잠깐 보이다가 없어질 것이다.
그러나 속 사람은 보이지 않지만 영원히 있는 것이다.
고난도 잠깐 보이다가 없어질 것이다.
그러나 그로 인해 상으로 받는 영광은 지극히 크고 무겁고 영원한 것이다.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은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롬8:24-25)
고난과 연단이 낳게 될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을 소망으로 붙들고
그 소망을 이루실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면서,
잠잠히 참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고난의 세월 동안 겉사람이 낡아진다고 낙심하지 말자.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고 있음을 알고 감사하자.
잠깐 있다가 없어질 보이는 것들을 보지 말고 보이지 않는 영원한 것을 주목하자.
우리가 잠시 받는 고난의 가벼운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이룬다는 것을,
소망으로 확실히 붙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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