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거널

[스크랩] 윌리엄 거널, "그리스도인의 전신 갑주", Ⅴ. 어떻게 전투 자세를 취할 것인가

강대식 2017. 3. 15. 09:15

. 어떻게 전투 자세를 취할 것인가

                                                                                         “그런즉 서서”(6:14)

 

1. 서라-도망가거나 항복하지 말라

 

선다는 것은 도망하거나 굴복하는 것의 반대말이다. 군대에서 어느 병사가 전투 중 후퇴하려고 할 때 지휘관이 전투 계속!’(여기에서는 서라는 단어와 같이 사용됨). 이 명령을 듣는 병사들은 모두 싸움을 계속하게 된다. 그리스도의 군사들도 전투 계속!’이라는 하나님의 명령이 있는 한 끝까지 항쟁해야 한다.

 

성경에 나타난 뚜렷한 명령

 

베드로는 사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벧전5:9). ‘굳게라는 말은 사탄과의 전투에 임했을 때 언제든지 전진하여 싸우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군인은 자기의 생명에 위협이 있더라도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군사로서 겁을 내거나 명령에 불복하는 것만큼 몹쓸 죄는 없다. 반면에 유혹에 강경히 맞설 때 주어지는 대가가 있다. 고통이 싫다고 죄를 선택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 세상의 군사들이 각 나라의 명예를 대변하듯 그리스도의 군사들은 하나님의 명예를 대변한다.

 

하나님께서 부여하시는 전신 갑주는 전투를 치러내기에 충분한 것이다

 

훌륭한 전력을 갖추고도 적에게 패한다는 것은 군인으로서 매우 수치스러운 일이다. 더더구나 그것이 영적 전투일 때는 그 수치가 더 심하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사탄의 어떠한 공격에도 대항할 수 있는 능력을 허락하셨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에게 주신 전신 갑주는 사탄과 싸우는 데 사용되는 것이지 도망갈 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전투에 담대히 임하라. 도망가거나 항복하지 말라. 그리하면 승리는 당신 것이다.

 

오직 예수의 힘에 의해서 적을 퇴각시킬 수 있다

 

상대가 약하다는 것을 확인했을 때 얼마나 용기가 솟구치는지 아는가? 당신이 깨어 있다면 사탄은 결코 당신을 공격할 수 없다. 사탄은 자기가 공격할 대상이 영적으로 깨어 있을 때는 놀라 겁을 집어먹는다. 자신만만하게 행동하라. 강력하게 대적할 때 사탄은 패주한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4:7).

 

2. 당신 자신의 자리에 서 있으라

 

각 사람이 제 위치에서 제 할 일을 다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첫째, 자기의 역할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슬기로운 자의 지혜는 자기의 길을 아는 것....”(14:8). 우리는 자기의 행할 바나 가야 할 길에는 무관심하면서도 남의 일에는 지나친 간섭을 하는 경향이 있다.

 

둘째, 일단 우리의 해야 할 바를 알게 되면 성실하게 행할 줄도 알아야 한다. 이 모든 일에 전심 전력하여 너의 성숙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내게 하라”(딤전4:15). 이 말을 좀더 쉽게 풀어보면, ‘하나님께서 네게 주신 소명을 네가 처한 곳에서 최선을 다해 행하라이다. 하나님의 능력은 그리스도인의 헌신에서 더욱 잘 드러난다. 행함이 따르지 않는 신앙은 우리 삶에 하등의 영향을 끼치지 못하고 허공에 뜬 추상적 지식에 그치고 만다.

 

셋째, 정한 위치를 떠나지 말고 임무 수행을 철저히 해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 모두에게 내려졌던 명령은 이스라엘 자손은 각각 자기의 진영의 군기와 자기의 조상의 가문의 기호(旗號) 곁에 진을 치되....”(2:2). 이 말은 곧 각자 정해진 위치를 떠나지 말고 정렬해 있으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이제 당신이 어떤 길로 부르심을 받았든지 그대로 행해야 한다.

 

3. 잠들지 말고 깨어 있으라

 

서 있다는 것은 깨어 있음을 뜻하고, 경계 태세를 갖춘 것을 뜻한다. 군대에서 경계 태세!’란 깨어 있어 경계를 게을리하지 말라는 말이다. 때때로 보초병이 잠이 들었다가 죽음을 당하는 경우를 보게 된다. 그리스도의 군사에게 있어서 깨어 있다는 것은 그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다. 이 세상 전투 중에는 휴식 시간도, 수면 시간도 있다. 그러나 영적 전투에서는 적군인 사탄이 늘 깨어 있어 우리 주위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기 때문에 수면을 취할 수가 없다. 사탄은 결코 잠자는 법이 없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이 영적으로 잠이 들었다가는 영락없이 위험에 처하게 된다. 삼손이 잠이 들었을 때는 들릴라는 그의 머리털을 베어 버렸다. 나태에 빠지지 않도록 정신차려라. 그리고 부지런히 움직여라. 영적 나른함도 바쁘게 움직일 때 쫓아낼 수 있다.

 

왜 그리스도인들은 깨어 있어야 하나?

 

(1) 그리스도인의 임무는 너무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반쯤 잠이 들거나 정신이 나간 상태에서는 도저히 수행할 수 없다.

그리스도인이 걸어가는 길은 좁고 위험하기에 졸고 있는 상태로는 절대 갈 수 없는 길이다. 우리는 믿음과 인내가 양 옆에 놓여져 있는 길을 가고 있다. 믿음은 하나님의 일을 수행하는 데 수반되는 의심이나 절망이라는 산에 길을 만들고, 인내는 우리의 영혼이 나태하거나 잠들지 않도록 지켜 주는 역할을 한다. 영적으로 잠이 들면 우리의 행하는 임무에 대한 목적을 잃는다.

 

(2) 그리스도인의 길을 걸어갈 때 깨어 있음으로 인해 얻게 되는 세 가지 유익한 점

첫째, 우리가 영적으로 깨어 있는 것을 보면 사탄은 당황한다. 집에 도둑이 들기 전에 조심하고 지키는 것이 필요하듯 사탄의 공격이 있기 전에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지키는 것 또한 필수적이다. 적의 공격을 받은 후 허겁지겁 해결책을 논의하기 보다는 미리 깨어 있어 경계를 게을리하지 않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둘째, 깨어 있어야만 잠들었을 때의 위험의 심각성을 감지할 수 있다. 잠을 자고 있는 사람은 자신의 코고는 소리를 들을 수 없고 옆의 사람들을 어떻게 괴롭게 하는지도 알지 못한다. 그때 누군가가 깨어 그 장면을 목격하면 그 사태가 얼마나 심각한지 알게 된다. 일단 잠들어 있는 사람들은 모두 똑같다. 강한 자나 약한 자나 잠들어 있는 동안은 무방비 상태이다.

 

셋째, 영적으로 깨어 있다는 것은 하나님이 함께 해주십사 하는 초청과도 같다. 하나님과의 교제에서만 얻을 수 있는 유익이 있다. 우리의 영적 승리는 하나님이 함께 하실 때 가능하다.

 

어떻게 깨어 있을 것인가?

 

(1) 늘 깨어 있어야 한다

사탄은 당신이 방심하거나 잠들어 있는 것을 재빠르게 알아내고는 공격을 퍼붓는다. 당신이 진정으로 그리스도의 군사가 되길 원한다면 긴장을 풀지 말고 늘 깨어 있도록 하라. 게으른 여행자처럼 길가에 한가로이 누워 뒹굴지 말고 목적지에 다다를 때까지 시간을 아껴 열심히 전진하라. 하나님께서는 창세 전부터 세상 끝날까지 결코 쉬지 않으신다. 당신 또한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할 때까지 깨어 있어 본분을 다함으로써 구원을 이루어 나아가라.

 

(2) 범사에 깨어 있어야 한다

신실한 경비병은 도시 전체를 두루두루 살피고 점검한다. 당신 또한 당신의 삶 전반에 걸쳐 깨어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우리의 입을 조심해서 경건치 못한 말들이 튀어 나오지 않도록 하며, 우리의 생각 또한 잘 감찰함으로써 세상의 정욕으로 오염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대하23:6). 모든 일을 두루 살핌으로써 하나님께 찬양 돌리는 일을 잊지 않도록 하라.

 

(3) 깨어 있되 지혜로운 선별력이 필요하다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본분을 잘 이행하기 위해서는 정말로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 선별할 수 있는 지혜가 요구된다. 사소한 일에만 몰두하다가 정말 중요한 것을 놓치는 경우가 있다. 당신이 어떤 부분에 취약점을 드러내고 있는지 점검해 보라.

 

 

 

 

 

. 그리스도인의 영적 무장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6:14)

 

여기에서 말하는 진리는 무엇인가? 혹자는 그리스도 자신을 가리킨다고 하지만 그는 일부분이 아닌 완전한 전신 갑주 전체를 의미한다. 바로 교훈의 진리 혹은 신실성의 의미를 갖는다. 그렇다면 허리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몸에 있어서 허리는 선박의 용골(龍骨:큰 배 밑바닥 한가운데를, 이물에서 고물에 걸쳐 전체를 받치는 길고 큰 목재)에 해당된다. 배 전체가 이 용골에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선박은 이 용골에 모든 것을 의지한다고 말할 수 있다. 허리는 온몸을 지탱하는, 힘의 원천이 되는 곳이다. 진리의 교훈을 명확히 붙잡고 있는 의지의 상태를 말한다.

 

1. 마음의 옷으로서의 진리의 교훈

 

베드로는 믿음을 굳게 하여’(벧전1:9) 사탄을 대적하라고 경고한다. 이 경고는 진리 안에서 대적하라는 말씀과 동일하다. ‘믿음은 하나님의 진리인 믿음의 대상을 가리킨다. 다음 절에서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온전케 하시며 굳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견고케하시도록 간절히 기도하였다(10). 이것은 당시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인 전신 갑주를 입지 않고서 견고한 믿음 생활을 하기란 불가능하였기 때문에, 성도들이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는 사탄의 술책을 알고 사탄에 대항하는 견고한 믿음의 반석에 서도록 함이었다.

 

그리스도의 진리로 확립된 판단

 

사탄이 뱀처럼 거짓 선생이 되어 진리를 오도(誤導)하려 하기 때문에 성도는 그리스도의 진리 안에서 판단을 정확히 하여야 할 필요가 있다. 베뢰아인들은 바울의 가르침에 관하여 자신들의 판단력을 확립하기 위하여 성경을 연구하였다. 진리는 진리를 알고 인격적으로 체험한 자들에 의해서만 귀하게 여겨진다.

 

그리스도인이 진리 안에서 판단력을 확립해야 하는 이유

 

파멸을 초래하는 잘못된 교훈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다. 어떤 종교든 옳게만 믿으면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이들은 무엇을 믿든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이렇듯 인간적인 측면에서 보면 상당히 설득력이 있을는지 모르나 그리스도 외에는 생명에 이르는 길이 없다. 당신이 예정한 것보다 더 빨리 지옥에 가고 싶다면 나쁜 교리라는 강에 뛰어들어라. 그리하면 단숨에 지옥에 도착하게 될 것이다.

 

진리 안에서 판단하는 법

 

(1) 진리를 흔들림 없이 붙잡아라

불순종하는 마음과 부정직한 판단은 물과 얼음의 관계처럼, 상호 의존적이다. 안정되고 흔들리지 않는 마음과 분열된 마음은 결코 만날 수 없다. 사랑이 진리와 함께 할 때는 안전하게 유지될 수 있으나 세속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욕망이 뒤섞이면 파국으로 치닫고 만다.

 

(2) 말씀의 내용을 깨달으라

성경의 중요한 한 가지 목표는 진리 가운데 우리를 굳게 세우는 것이라 할 수 있다(4:11-12). 왜 그러한가?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4:14)함이다. 말씀을 읽을 때나 들을 때에 그 내용의 적용 부분만 생각지 말고 교리적인 요소에도 유념해서 생각하라. 성경을 적용하는 훈련은 우리를 가슴이 따뜻한 그리스도인으로 만들어 주고, 교리적인 훈련은 흔들림이 없이 말씀 위에 굳게 서 있도록 도운다.

 

(3) 말씀대로 판단하라

자신의 눈으로 진리를 보고 깨달음이 오기까지 포기하지 말고 계속 성경을 읽고 묵상하라. 사람의 권위가 아닌 말씀의 증거로 자신의 판단을 결정하라. 지혜와 경험이 풍부하여 존경을 받는 연장자의 충고를 소홀히 여기거나 무시하지 말라. 하나님께서는 이런 식으로 올바른 진리의 길로 우리를 인도하시길 원하신다.

 

(4) 호기심을 주의하라

새로운 의견이면 무엇이나 호기심을 갖고 가장 최근의 종교적인 정보나 움직임에 민감하게 마음을 주는 사람은 오류에 쉽게 빠져 든다. 바울이 경고하고 있는 가려운 귀는 잘못이라는 더러운 병을 유발시킨다(딤후4:3). 온갖 종파와 이론에 대한 지나친 호기심은 진리를 분별하지 못하게 만들고 회의적으로 만든다. 어거스틴의 고백을 들어 보자. 그는 고백하기를, 자신이 너무나 많은 가르침에 귀를 기울이고 좇아 다님으로써 오히려 진리 그 자체를 싫어하고 꺼려하게 되었다고 한다.

 

(5) 하나님의 견고한 진리를 겸손히 구하라

길을 안다고 자신을 과신하여 길을 묻지 않는 여행자는 길을 잃고 헤매기 십상이다. 자만심을 조심하라. 자만심에 취하면 은혜의 나라에서는 이방인이 되며, 진리를 구하는 겸허한 기도는 야망에 지배당하는 자기 독백에 불과하게 된다.

 

(6) 여러 가지 교리에 기만당하지 말라

 

(7) 진리의 가치를 마음에서 깨달으라

소중한 많은 장서들이 그 책의 가치를 깨닫지 못한 무지한 군인들의 군화에 짓밟히고 불태워졌다. 진리의 운명도 그 진리를 발견한 사람의 손에 좌우된다. 진리에서 힘을 얻고 그 진리의 소중함을 깨닫고 있는 이에게 진리가 발견되면, 그 진리는 그의 마음에서 유효하게 작용하기 시작한다.

 

자유롭고 담대한 믿음의 고백

 

폭력을 통해서 진리가 공격받는다. 많은 사람들이 박해 때문에 진리에서 분리되었다. 그러므로 진리의 허리띠를 매는 데 반드시 요구되는 길은 담대하게 진리를 고백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용기가 동반되지 않는 진리는 사람을 황새치(Sword fish)처럼 만든다. 머리에 뽀족한 예리한 검을 가지고 있으나 그 검을 사용할 손이 없다. 그러나 성령의 검을 휘두를 거룩한 담대함으로 무장되어 있는 사람은 무적의 용사이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하게 마주 서서 진리를 선포함으로 진리 그 자체를 온전히 가슴에 안는 사람은 두려울 것이 없다. 이것이 진리로 허리띠를 띠는 것이다.

 

(1) 진리의 고백을 요동하지 않고 고수하라

사도 바울은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으라”(10:23)고 권면함으로써 이 교훈을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강조하고 있다. 박해를 두려워하여 성도들과 함께 모이기를피하는 사람들을 바울은 경계하여 꾸짖었다. 이렇게 영적으로 흔들리는 사람은 배교의 문 앞에 가까이 다가선 사람이라고 그는 믿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믿음을 고백하는 항해를 남의 눈을 피하지 말고 거세게 불어오는 바람에 맞서 담대하게 나가야 한다. 버가모 교회는 담대한 믿음의 고백으로 칭찬받은 교회이다(2:13).

 

(2) 하나님께서는 성도에게 진리를 위탁하셨다

진리는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맡기신 값비싼 보배이다. 하나님께서는 진리를 무너뜨리려는 모든 시도들을 대항해 그것을 고수하라고 명하셨다. 진리의 말씀은 성도에게 주신 하나님의 증거이며 성도는 여기서 자기 뜻에 의해 만인 앞에서 거룩히 진리를 고백하며 이 진리대로 사는 사람이다.

 

(3) 죽음과 위험에 맞서 믿음을 고백하라

악한 마음에 거하는 박해의 영은 항상 있었고 세상이 끝날 때까지 있을 것이다. 사탄은 먼저 오류의 영을 가지고 나타난 다음, 박해의 영을 가지고 나타난다. 고난의 시기가 되면 우리는 진리의 원수와 싸워야 한다.

 

진리를 이용하는 거짓 성도

 

(1) 세속적인 욕망을 위해 진리를 오용하는 사람들

진리 그 자체를 사랑하고 진리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그 진리로 인해 고난을 받으며 진리를 사수할 사람은 바로 이 소수의 사람들이다. 우리가 세상이 외면하는 진리를 사랑하지 못한다면 진리를 위해 수치와 멸시를 받을 수도 없다.

(2) 진리에 대한 목청은 높지만 그대로 살지 않는 사람

부코르셀루스는 자주, 그리스도께 키스하는 사람은 많으나 그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탄식했다. 그리스도에 대한 참된 사랑은 그와 거룩한 결혼관계를 맺는 것을 뜻한다. 남편되신 그리스도에게 내적인 깊은 끌림을 느끼므로 그의 영의 지배를 받으며 진리에 대한 그의 말씀으로 양식을 삼아 자기를 완전히 포기할 때 그리스도와 그의 진리를 사랑하는 영혼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3) 진리의 원수를 대적하는 열심히 없는 사람

사랑은 언제나 열정으로 무장하고 있다. 사랑은 진리의 적을 향해 검을 들고 싸울 태세가 되어 있다. 강단에서 진리를 옹호할 용기와 사랑을 보이지 않는 목회자가 불타는 화형대에서 진리를 옹호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진리를 위해 눈물을 흘릴 수 없는 사람은 진리를 위해 피흘리지 않는다.

 

진리를 향한 사랑으로 마음이 불타 오르게 하는 법

 

(1) 마음을 진리에 일치시키라

닮음(likeness)은 사랑의 기초이다. 육욕적인 마음은 진리와 유사성이 없는 까닭으로 진리를 미워한다. 진리의 능력은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여 진리를 닮은 모습으로 변화시키고 결코 진리와 분리될 수 없다.

 

(2) 마음에 하나님의 사랑을 끊임없이 채우라

사랑은 사랑하는 자에게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볼 수 있게 하고 그것을 좋아하게 한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우리로 하나님께서 좋아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지치지 않고 질문하게 만들며 그렇게 함으로 그분께 사랑을 표현하게 만든다.

 

(3) 진리의 탁월성에 대한 묵상

눈은 사랑이 전달되는 창이다. 순결한 아름다움으로 찬란히 빛나는 진리를 볼 수 있는 영적인 눈은 진리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내가 그것을 종일 작은 소리로 읊조리나이다”(119:97). 진리의 바다를 탐험할 때 발견할 수 있는 아름다운 특성이 있다. -진리는 순결하다. -진리는 확실하다. -진리는 자유함을 준다. -진리는 승리한다.

 

(4) 배교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마음을 살피라

하나님의 성도들은 타오르는 원수의 분노에도 두려워하지 않고 불속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했다. “황제시여, 제가 당신의 명령에 불복한다면 감옥이 나를 기다리겠지만, 하나님께 불순종하면 지옥의 불이 나를 기다릴 것입니다라고 사람들의 핍박에 두려움 없이 맞선 한 순교자는 말하였다. 다윗도 이유 없이 자기를 핍박하는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아니하였다. 고관들이 거짓으로 나를 핍박하오나 나의 마음은 주의 말씀만 경외하나이다”(119:161).


출처 : 청교도 아카데미
글쓴이 : 유정식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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