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거널

[스크랩] 윌리엄 거널, "그리스도인의 전신 갑주", Ⅸ. 그리스도인의 믿음의 방패

강대식 2017. 3. 27. 12:32

. 그리스도인의 믿음의 방패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6:16)

 

의로운 믿음

 

사도 바울은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라고 말했다. 사탄의 불화살을 소멸시킬 믿음이 있을 것이다. 사실(史實)에만 의존한 믿음, 일시적인 믿음, 기적만을 바라는 믿음은 사탄의 불화살을 막아내지 못한다. 오직 한 가지 믿음만이 사탄의 불화살을 막아낼 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의로운 믿음이다.

 

의로운 믿음이란, 단지 복음의 진리에 동의하는 것이 아니다. 성경의 진리에 동의한다는 것은 지식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의로운 믿음은 지식과 의지를 모두 포함한다. 진리라는 것을 진정으로 알게 된다면 그에 해당되는 행동이 요구된다. 즉 그 진리의 유익성을 깨닫고 난 뒤엔 그 진리에 매달려야 된다. 이래야 마음으로 믿어”(10:10) 의에 이를 수 있다.

 

보다 확실히 말하자면, 의로운 믿음이란 우리의 죄 사함과 생명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하나님의 언약을 믿는 영적 행위이다. 하나님의 모든 진리는 의로운 믿음의 대상이다. 무엇보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다.

 

언약은 영의 참 양식이신 그리스도를 담고 있는 그릇이다. 믿음의 역할은 그 언약의 접시에 담긴 것을 먹는 것이다. 또한 언약은 믿음의 손에 끼워진 결혼 반지이다. 우리는 그 결혼 반지와 결혼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결혼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스스로 인간과 언약을 맺지 않으셨다면 인간은 하나님의 이 은혜를 받지 못했을 것이다.

 

믿고자 하는 사람이 순종해야 할 두 가지 사항이 있다. 첫째, 하나님의 자비로 말미암은 믿음과 권세에 대한 약속이 무엇인지 찾아야 한다. 둘째, 그 약속이 무엇인지 찾아낸 후에는 망설임 없이 그 약속을 그대로 믿고 믿음을 행위로 옮겨야 한다. 믿음은 그리스도가 죄 사함과 생명을 위해 십자가에 달리셨다는 사실에 의존할 때 역동성을 발휘하게 된다. 믿음에 선행되는 몇 가지 영적 활동들이 있다. 먼저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이 없거나 그리스도의 권위를 의뢰하지 않고서는 참다운 믿음을 얻을 수 없다. 다음으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찾아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파악해야 한다. 약속을 개의치 않고 믿으려고 하거나 약속의 뜻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채 믿으려 하는 것은 모두 주제넘은 태도이다. 겸손한 죄인이 하나님의 약속을 발견하고 그 약속의 뜻을 진심으로 깨닫는다면 기꺼이 그 약속에 매달리고 약속에 부합되는 행동을 한다.

 

믿음을 방패에 비유한 이유

사도 바울이 믿음을 방패에 비유한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째, 방패는 전신 갑주의 다른 부분처럼 신체의 특정 부위만 방어하지 않는다. 예컨대, 투구는 머리를 방어하고 호심경은 가슴을 방어한다. 방패는 검과 화살이 날아오는 방향을 향해 이리저리 움직인다.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의 믿음의 역할도 이와 동일하다. 믿음은 사탄의 갖가지 공격을 방어하는 방패와 같다. 둘째, 믿음의 방패는 이렇게 우리의 온몸을 방어할 뿐만 아니라 전신 갑주의 다른 부분들을 보호한다. 믿음의 은혜는 다른 은혜들을 보호하고 지키는 역할을 한다.

 

모든 것 위에라는 구절의 의미

 

모든 것 위에의 뜻은 방어를 위한 모든 전신 갑주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방패이며, 또한 방패를 일단 소유하였으면 그것을 조심하여 지키라는 뜻이다. 사도 바울이 믿음을 방패에 비유한 것은 믿음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고대에 있어 방패는 군인에게 다른 그 어떠한 무장보다 중요한 것이었다. 전쟁에서 패하는 것보다 방패를 잃는 것을 더 수치스럽게 여겼다. 그래서 적에게 굴복할 때에도 방패는 손에서 놓지 않았다. 죽을 때에도 끝까지 방패를 들고 있는 것을 영예로 여겼다.

 

그리스도인의 전신 갑주의 각 부분은 나름대로의 역할이 있다. 전쟁에 임할 때 그 어떤 하나라도 빼놓을 수 없다. 그러나 믿음의 방패의 도움이 없이는 제 기능을 제대로 해낼 수 없는 것이다. 각 부분이 믿음과 굳게 연결되어야 힘을 발휘할 수 있다.

 

1. 모든 것 위에 뛰어난 믿음의 탁월성

 

모든 은혜 가운데 믿음이 가장 중요하다. 다른 그 무엇보다도 믿음은 탁월성을 지니고 있기에 그리스도인들은 그것을 지키기 위해 싸워야 한다. 믿음은 마치 여러 행성 가운데 태양과 같고 여러 여인들 가운데 솔로몬의 사랑을 받던 여인과도 같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사랑의 우위성을 지적한 바 있다(고전13:13). 이 구절에서 믿음보다 사랑을 강조한 이유는 천국에 이르렀을 때 믿음은 사라지더라도 사랑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사랑은 믿음의 목적이기 때문에 믿음보다 분명히 위대하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천국의 상을 얻기 전에 이 땅에서 영적 군인의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러므로 사랑보다는 믿음이 우선한다. 이 세상을 이겨내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믿음이기 때문이다(요일5:4). 물론 영적 전투에 있어서 사랑도 위용을 떨친다. 그러나 믿음의 지휘하에 있다.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5:6). 장군은 그가 통솔하는 군인들을 통해 전투를 할 수 있듯이 믿음 또한 사랑을 통해 일할 수 있다. 사랑은 기업을 받을 수 있는 은혜를 지니고 있으나 그러한 권리를 그리스도인에게 부여한 것은 믿음이다. , 믿음이 없이는 사랑의 보상을 누릴 수 없다. 사랑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성도가 천국에서 연합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하는 것은 믿음이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3:17). 그러므로 믿음이 없이 살아가는 자는 천국에서 하나님과 함께 거할 수 없다.

 

믿음이 모든 것 위에 뛰어난 이유

 

(1) 믿음에 대한 하나님의 질문

중요한 사람이나 사건에 대해서는 반복 질문을 하기 마련이다. 예수님께서는 믿음에 관한 어떠한 질문을 하셨는가?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18:8).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에 대해 가장 궁금히 여기시는 것은 믿음에 관한 것이다.

 

예수님께서 실로암 못을 통해 맹인을 고칠 때에도 믿음에 대한 비중을 가장 많이 두셨다. 네가 인자를 믿느냐”(9:35).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에게 고난을 허락하시는 이유도 결국은 믿음 때문이다.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벧전1:7).

 

(2) 믿음의 선물

믿음은 모든 은혜보다 우위에 있다. 믿음과 더불어 여러 가지 은혜가 역사한다. 그 어떠한 은혜도 믿음이 없이는 그 역할을 제대로 해낼 수 없다. 예를 들어,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을 강조하고 있다. 믿음 없이 된 것은 하나도 없다. 모든 것이 믿음이라는 이름하에 행해졌다. 그리스도는 백부장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8:10). 백부장은 믿음 외에 여러 가지 은혜를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칭찬받았던 것은 그의 믿음이었다. 진실로 그리스도인의 손에 든 가장 귀중한 보배는 믿음이다. 죄인의 죄 사함을 구하거나 하나님의 은혜를 구할 때, 또는 천국을 구할 때 필요로 하는 것은 오직 믿음이다.

 

(3) 의롭다고 인정받는 것의 중요성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5:1). 우리는 사랑, 회개 등을 통해서가 아니라 오직 믿음을 통해 의롭다고 인정받는다.

 

그리스도와 믿음의 관계는 분리될 수 없다. 그리스도가 보배라면 믿음은 그 보배를 건네 받을 수 있는 손이다. 그리스도의 의가 옷이라면 믿음은 그 옷을 입혀 주는 손이다. 결국 우리의 죄를 사하는 것은 우리의 믿음 자체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보혈이다. 우리의 역할은 단지 믿음에 의해 그리스도를 받아들여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는 것이다. 우리의 벗은 몸을 가리우고 하나님께 아름답게 보이도록 하는 옷은 곧 그리스도의 의이다. 믿음은 바로 이 옷을 입는 것이다. 믿음은 두 개의 손을 갖고 있다. 다윗이 사울의 갑옷을 버린 것처럼 한 손으로는 자기 의를 벗어 던지고 또 다른 손으로는 그리스도의 의를 덧입어 영혼의 수치를 가린다.

 

어떻게 믿음은 다른 은혜에 영향을 끼칠 수 있을까

 

(1) 믿음은 모든 은혜가 필요로 하는 것을 공급한다

믿음은 직조업자에게 양털을 공급하는 부호와 같다. 중간 상인이 양털을 제대로 공급하지 못하면 직조공은 옷감을 짤 수 없다. 믿음도 각 은혜가 제 역할을 제대로 해내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공급한다.

 

예를 한두 가지 들어보기로 한다. 회개는 값진 은혜이다. 그러나 믿음이 없이는 회개가 일어날 수 없다. 빛으로 인해 우리가 사물을 볼 수 있듯이 믿음으로 인해 우리 마음에 숨겨진 죄를 볼 수 있다. 사랑은 하나님의 또 다른 은혜이다. 그러나 사랑의 불이 타오르려면 믿음이 공급하는 연료가 필요하다. 당신의 영혼은 전에도 지금처럼 하나님을 향한 사랑으로 늘 활활 타올랐는가?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불을 타오르게 할 수 없다.

 

(2) 믿음은 그리스도로부터 받은 능력과 은혜를 지켜 주고 강화시킨다

믿음은 수원지로부터 각 가정에 수돗물을 공급해 주는 파이프와 같은 역할을 한다. 즉 그리스도의 은혜를 우리의 영혼에 공급해 주는 역할을 한다.

 

(3) 모든 은혜가 제 능력을 상실했을 때 믿음이 도와 준다

예를 들어, 아무런 기력이 없는 환자가 의사로부터 절대로 죽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얻으면 큰 위안을 얻는다. 인간의 본성은 변화가 무쌍하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의 은혜가 사라질 수도 있다. 슬픈 일이다. 그러나 믿음은 아무리 약해진 상태에서라도 사라지지는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새로운 용기를 주신다. ‘영원한 언약은 우리의 약해진 은혜의 부패를 막아 주는 소금의 역할을 한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43:5). 믿음은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우리의 영혼을 맡기도록 강권한다. 그리스도인들이 소망을 잃고 움츠러들었을 때 믿음은 그들의 영혼을 일깨우고 그들의 불만이 진실한 기도로 바뀌게 한다. 또한 잃어버린 은혜도 되찾을 수 있다.

 

죄 중 가장 큰 죄는 불신이다

 

모든 은혜 가운데 우두머리가 믿음이듯이 모든 죄 가운데 괴수는 불신이다. 불신은 다른 죄를 통솔하는 죄의 마왕이며 대왕이다. 불신은 곧 죄를 짓게 하는 죄인 것이다. 하와가 최초로 죄의 독으로 호흡하게 된 것은 유혹자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3:1)라는 말 때문이었다. 이 말은 하와의 마음에 불신이 들어올 수 있는 문이 되었고 뒤따라 다른 죄들도 틈입할 수 있게 되었다. 죄의 위력의 비밀은 인간의 불신에 있다. 불신에 사로잡혀 있는 동안 죄인은 변화될 수 없다. 그들과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들은 바 그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함이라”(4:2).

 

성도들의 믿음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기쁜 소식을 이 세상에 알릴 수 있다. 반면에, 불신을 통해 사탄은 하나님에 대한 악한 증거를 세상에 퍼뜨린다. 불신의 죄로 인해 지옥의 입구는 활짝 열린다. 지옥에서 으뜸가는 죄 두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외식과 불신이다. 성경은 불신을 저주받을 죄라고 일컫고 있다. 불신자는 자신의 구속 영장을 가진 채 다닌다고 할 수 있다. 어떤 의미에서 그는 이미 옥에 갇힌 것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그는 저주의 명패를 달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구원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믿음이다. 다른 여러 가지 은혜의 부재시에도 믿음만 있으면 구원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불신은 우리의 영혼을 파멸시킨다. 불신이 인간의 마음의 문을 잠그게 되면 아무도 도울 수가 없다. 불신자가 정죄를 받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불신이다. 하나님의 심판 날엔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이 가장 큰 죄인으로 심판받게 된다(살후1:8).

 

참 믿음을 판단하는 방법

 

당신은 시장에서 물건을 살 때 가장 질이 좋은 것을 원한다. 이렇게 육신을 위해서 최고를 찾으면서 영혼을 위해서는 왜 최고의 것을 구하지 않는가? 만일 여러분이 위조 지폐를 받았다면 그것은 당신이 속았기 때문이기에 손해는 당신이 보게 된다. 거짓 믿음에 속았다면 누가 손해를 보겠는가? 이제 당신의 믿음이 과연 참 믿음인지 판단해 보기를 바란다.

 

(1) 성령은 당신의 영혼 속에서 어떻게 역사하는가?

믿음은 그리스도의 영이 인간의 영혼에 이루어 놓은 역사 가운데 가장 위대한 업적이다. 사도 바울은 이것을 일컬어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1:19)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의 능력은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는....”(1:20)정도라고 말하고 있다. 죽은 자를 살려낸다는 것은 엄청난 일이며 위대한 일이다. 그리스도는 무덤에서 다시 살아나셨고 영광 중에 거하게 되었다. 이렇게 우리의 믿음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은 그리스도를 살리신 것처럼 사망 가운데 있는 우리의 영혼을 살리셨다.

 

참 믿음을 추구하는 많은 사람들이 이와 같은 성령의 능력을 알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영접했다는 사실을 마치 입 속에 빵 부스러기를 넣듯 단순한 것으로 여긴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지 못한 이유는 그들이 자신의 죄를 회개하지도 않고 그들의 공허한 삶을 하나님 앞에 내어 놓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마땅히 회개를 통해 구원을 체험했어야 했다. 하나님께서 어떤 방법으로 우리의 영혼 속에 믿음이 생기게 하는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성령은 우리의 지각을 조명한다

성령은 결코 어둠 속에서 역사하지 않는다. 우리의 영혼의 창문을 열어 놓아 하늘의 빛이 들어오게 한 다음에야 믿음이 생겨난다. 우리 인간의 본성에만 의거해서는 하나님과 구원에 대해서알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의 영의 눈이 성령에 의해 떠질 때 생명의 길을 볼 수 있고, 그 다음에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생명에 들어갈 수 있다.

 

믿음이란 그리스도에 대한 아무런 지식 없이 맹종하는 것이 아니다. 당신이 당신의 지식에만 의존하는 가운데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구원을 이루셨는지 전혀 모른다면 믿음을 얻을 수 없다. 당신의 영혼에 성령의 조명이 없다면 믿음에 의한 의의 태양은 결코 떠오를 수 없으며 당신의 구원 또한 이루어질 수 없다.

 

성령은 우리로 하여금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한다

죄인이라는 선고를 받으려면 확실한 증거와 위법 사실이 판명되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죄인인 인간은 성경의 분명한 증거와 성령에 의해 그리고 양심에 의해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양심은 우리 마음 안에 있는 하나님께 속한 법원 직원과 같다. 회개를 유발하는 양심의 가책은 성령의 역사이다.

 

성령은 반역하는 영혼을 강력하게 그러나 온유하게 새롭게 하여 그리스도를 주와 구세주로 선택하게 만든다

당신은 그리스도를 선택한 것으로 인해 기쁨을 누리는가? 기쁨을 얻기 위해 그리스도께 달려가는가? 성령은 당신의 의지의 철문을 여시고 그 안에 갇혀 있는 회개의 심령을 자유케 하신다.

 

(2) 성령에 의한 믿음 생활의 특징

참 믿음은 하나님의 약속 안에서 명령에 순종한다

아브라함은 그의 순종으로 유명하다. 그렇다면 무엇이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하나님께 순종하도록 만들었을까?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11:8).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이 불가능하듯 믿음을 가진 상태에서 하나님을 기쁘게 하기를 원치 않는 것 또한 불가능하다. 믿음은 나태한 것이 아니다. 믿음은 우리의 영혼을 잠재우지 않고 일하도록 깨운다. 무지와 불신의 밤은 곧 잠자는 때이다.

 

참 믿음은 기도하는 것이다

기도는 믿음의 자식이다. 자식이 아버지의 성()을 따르듯 기도는 믿음을 성으로 삼는다. 기도는 믿음의 자연스런 호흡으로 감사와 간구 두 가지를 내포하고 있다. 그리스도인은 간구하는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자비를 들이쉬고 그 자비에 대한 찬양을 내쉼으로써 영적 호흡을 한다. 믿음은 그리스도인에게 기도하고픈 욕망을 불붙인다. 믿음은 기도하도록 돕는다.

 

믿음은 모든 은혜 가운데 가장 귀한 것이므로 각별히 조심하여 간직해야 한다


믿음을 지키라. 그리하면 당신이 받은 다른 모든 은혜도 지키게 될 것이다. 당신은 믿음을 의지하여 서 있기 때문에 믿음이 넘어지면 당신도 넘어지게 된다. 넘어지게 되면 원수의 발 아래 깔리게 됨은 자명하다. 믿음을 위협하는 잠재적 위험을 주의하라. 전장에서 쓰러졌으나 정신이 들자마자 방패가 어디 있느냐고 물었다는 그리시안(Grecian) 장군을 본받으라.

 

믿음은 가장 주요한 은혜로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믿음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평가하도록 하셨다. 왜냐하면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그것이 자신의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인한 것임을 알기에 결코 자만의 위험에 빠지지 않기 때문이다.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12:3).

 

믿는 이들이 믿음을 지킬 수 있는 다섯 가지 지침

 

(1) 하나님의 말씀은 믿음을 생겨나게도 하고 지키게도 한다

당신을 개심시키고 믿음의 씨앗을 뿌린 하나님의 말씀은 그 믿음을 유지하게 하는 젖과 같다. 어머니의 젖과 같은 성경을 자주 가까이 하라. 그리스도인들은 빵만으로는 살 수 없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영의 양식을 공급하라. 설교를 통해서, 집회를 통해서, 친구와의 교제를 통해서, 아니면 혼자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시간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먹으라.

 

믿음이 약하다고 걱정을 늘어놓는 그리스도인들이여 그렇게 말만 할 것이 아니라 믿음이 약해진 이유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라. 그것은 당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공급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당신이 처음 믿기 시작했을 때에 주위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라는 권고를 많이 받았을텐데, 지금은 어떠한가? 바쁜 일과에 쫓겨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는 일을 등한시하다가 아예 성경을 읽지도 않는 안타까운 처지에 놓여 있지는 않은가? 그리하여 하나님을 믿는 것이 쉽지 않게 여겨지고 급기야 불신 쪽에 더 많은 비중을 두지 않는가?

 

(2) 양심을 살피라

선한 양심은 믿음을 태우고 항해하는 배와 같다. 그러나 그 배가 파선하면 그 안에 탄 믿음은 어떻게 되겠는가? 당신은 무엇이 양심을 파괴하는지 알고 있다. 그것은 바로 고의적으로 또는 습관적으로 짓는 죄이다. 이러한 고범죄를 경계하라! ()을 마시는 것은 위험하다. 그러나 그보다 더 위험한 것은 몸 속에 독을 그대로 오랫동안 방치하는 것이다. 당신이 그리스도인이라고 해도 회개를 통해 양심을 깨끗게 하지 않으면 믿음이 활성화될 수 없다.

 

(3) 믿음이 살아 움직이게 하라

우리는 믿음에 의해 살고 그 믿음은 운동(활동)을 통해 지속된다. 몸이 건강한 사람들은 열심히 운동을 하지 않고는 못 배긴다. 장시간에 걸쳐 믿음이 빈둥대도록 하지 말라.

 

(4) 도사리고 있는 불신을 해결하라

불신에 의해 믿음이 소멸될 때 회개를 통해 그 믿음이 회복될 수 있다. 아삽은 자신의 불신에 대해 내가 이같이 우매 무지함으로 주 앞에 짐승이오나”(73:22)라고 고백했다. 회개를 통해 죄의 독성을 뱉어내고 믿음을 되찾았다.

 

(5) 믿음이 자라도록 애써라

당신의 믿음이 강하면 강할수록 사탄의 공격으로부터 보다 더 안전할 수 있다.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신뢰함이니이다”(26:3). 만일 당신이 약한 믿음을 압도하는 강한 믿음의 여러 가지 유익한 점을 안다면 강한 믿음을 갖기 위해 한시라도 지체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 위에 서서 기쁨을 누릴 줄 아는 그리스도인들은 강한 믿음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사람들은 언약 속에 있는 영적 영광을 볼 수 있으므로 늘 찬송을 부른다.

 

믿음이 강한지 약한지 분별하는 방법

 

(1) 하나님의 약속을 전적으로 의지하면 할수록 믿음은 보다 강해진다

(2) 이 세상에서 당신이 어떠한 상황에 처할 때에 만족하면 할수록 믿음도 강해진다

(3) 믿음이 강할수록 기도의 응답을 오랫동안 기다릴 수 있다

(4) 믿음이 강할수록 약속을 믿고 기꺼이 고난을 감수한다

(5) 믿음이 강할수록 죄의 유혹에 쉽게 대항할 수 있다

(6) 믿음이 강할수록 순종과 사랑으로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기꺼이 따른다

(7) 믿음이 강할수록 죽음을 향한 태도가 온화하다

 

2. 사탄의 불화살을 꺼버릴 수 있는 효험 있는 방법

 

사탄의 무기

 

여기서 사탄의 무기를 화살에 비유하는 데에는 세 가지 이유가 있다.

화살은 빠르다

사탄의 유혹은 번쩍하는 번개와 같이 빠르고 한번 쏘면 되돌릴 수 없다. 다윗이 밧세바를 바라보고 미처 그의 창을 닫기고 전에 사탄의 유혹의 화살은 이미 당겨졌다.

 

화살은 은밀히 날아간다

화살은 소리 없이 은밀히 날아가듯 유혹도 은밀하게 다가온다. 화살은 멀리에서도 쏠 수 있으므로 화살에 맞은 사람은 누가 화살을 쏘았는지조차 알지 못하고 상처를 입는다.

 

화살의 본질은 상처를 입히거나 죽이는 것이다


사탄의 무기는 단순한 화살이 아니라 불화살이다. 왜 성경은 불화살이라고 불렀을까?

첫째, 사탄은 불타는 분노 가운데 화살들을 쏜다. 용처럼 하나님과 성도들을 향해 분노의 불을 내뿜는다. 둘째, 불화살이라고 칭한 이유는 그것을 끄지 않았을 때 지옥의 불로 인도되기 때문이다. 모든 유혹엔 지옥의 불꽃이 담겨 있다. 모든 유혹을 통해 지옥과 저주로 이끄는 것이 사탄의 의도요 목적이다. 셋째, 불화살이라고 칭한 이유는 독()을 품고 있어 사람의 영혼과 마음과 양심에 불 같은 염증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이 이 표현을 사용한 것은 화살을 쏠 때 화살촉에 독을 묻힘으로써 적에게 더욱 치명적인 되었던 그 당시 관습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다. 독을 묻힌 화살은 사람의 몸을 관통할 때 상처만 입히는 것이 아니라 독이 전신에 퍼지게 하여 그 상태로 방치하면 치유가 불가능하다.

 

우리의 죄의 본능을 부추기는 사탄의 불화살(유혹의 불화살)

 

사탄의 불화살은 꼬드기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모든 사람의 마음속엔 은밀한 죄성이 존재한다. 유혹하는 것은 사탄이지만 죄를 범하게 되는 것은 우리 안에 있는 죄성이다.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1:14). 즉 유혹을 끌어들이는 것은 우리 안에 있는 정욕이다. 사냥꾼은 덫을 놓기만 할 뿐 정작 새가 덫에 걸리는 이유는 먹이에 대한 욕심 때문이다.

 

사탄의 유혹에는 우리를 홀리는 속성이 있다는 것을 알고 선뜻 유혹을 맞아들이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너무 자신 만만하여 자기는 그 어떠한 유혹도 이겨낼 수 있다고 하는데, 성경은 자신 만만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10:12).

 

사탄은 세상의 정욕-일명 세상의 삼위일체(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의 독을 묻혀 불화살을 쏜다. 믿음은 그 불화살을 끌 수 있는 방패와 같다.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요일5:4).

 

(1) 육신의 정욕

이 시험은 육신을 즐겁게 해주겠다고 약속하는 유혹이다. , 육신의 음탕함, 쾌락 등으로 불타오르게 한다. 이 약속만큼 강렬한 유혹은 없다. 그러나 결코 그것으로는 만족할 수 없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2) 안목의 정욕

유혹에 제일 먼저 빠져 죄를 범하는 것은 이다. 아합이 나봇의 포도원을 탐했을 때 어떤 비극적인 일을 행하게 됐는가 생각해 보라.

 

(3) 이생의 자랑

우리 안에는 자랑하고 싶어 안달하는 마음이 있다. 또한 사탄은 멋들어진 선물을 내 보이며 사람들의 자만심을 키우고 부추긴다. 이러한 사탄의 유혹과 사람의 욕심이 만날 때 사탄은 자기의 목적을 성취한다.

 

믿음은 자랑하고픈 유혹을 불타오르게 하는 연료를 제거한다. 믿음은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세상의 자랑 대신 그리스도의 칭찬을 바라게 한다. 믿음은 죄를 범함으로써 사탄으로부터 세상의 영예를 약속 받는 것은 위험한 거래임을 알려준다. 믿음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세상의 영예를 저버린 믿음의 선배들을 상기시킨다.

 

공포를 불러일으켜 절망에 빠지게 하는 불화살

 

첫 번째 화살이 유혹의 불화살이었다면 두 번째 화살은 그리스도인을 두려움에 떨게 하는 공포의 불화살이다. 사탄은 첫 번째 공략이 성공하지 못했을 때 이 공포의 화살들을 쏘아댄다. 사탄은 우리의 영혼을 사탄의 소굴로 끌어들이려고 끊임없이 애를 쓴다. 따라서 사탄은 이 공포의 화살로 절망에 빠지도록 한다. 다른 여러 죄들은 절망이라는 유혹에 쉽게 빠지게 하는 전초전에 불과하다. 절망은 다른 죄들보다 심각하여 우리로 하여금 지옥 자체에 사로잡히게 한다. 믿음이 우리에게 언약의 말씀을 제공하는 데 반하여 절망의 잔혹성은 우리의 양심으로 하여금 지옥의 고문을 받게 한다. 절망으로 인한 영혼의 고갈은 우리들로 하여금 스스로 사형 집행자가 되게 한다. 절망은 우리로 하여금 그 어떠한 평안도 누리지 못하게 하기에 하나님의 용서에 대해서도 망각하게 한다. 그러나 믿음은 그 어떠한 상황에 있어서도 그리스도인들의 영혼을 질식하게 만드는 연기가 빠져나갈 수 있도록 창문을 열어 준다. 믿음은 절망을 대적한다.

 

성경 전체를 통틀어 가장 큰 명령은 믿으라는 것이다. 유대인들이 우리 주 예수께 물었다.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까?” 이에 대해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6:28-29)라고 대답하셨다.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모든 일의 근본이다.

 

사탄은 사람들을 술주정꾼이나 살인자보다는 불신자로 만드는 데 더 열심이다. 믿음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역사라면 불신은 사탄의 역사이다. 그리고 절망은 가장 불경스런 불신이다. 많은 죄 가운데 절망은 여러 질병 가운데 가장 위험한 전염병과 같다. 즉 불신이 절망 가운데 자리잡을 때 그것은 마치 죽음을 가져오는 전염병이 창궐한 것과 같다. 불신은 절망을 잉태하고 절망은 불신을 한껏 자라게 한다. 절망이란 이처럼 무서운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그 파멸적인 절망의 심연으로부터 벗어나도록 하자.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딤후1:7).


출처 : 청교도 아카데미
글쓴이 : 유정식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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