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장 은혜의 왕 노릇의 계획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라”(롬5:20-21)
은혜의 왕 노릇의 영광과 승리는 하나님의 공의와 하나님의 사랑이 완벽한 화합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의 사랑은 거룩한 사랑이요 의로운 사랑이다. 은혜의 통치 방법은 모든 단계 모든 부분과 세밀한 것이 전체(3위 하나님) 통치자 사이의 영원한 도모 가운데서 결정되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미리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바에”(행2:23) 의한다. 어떤 의미에서라도 은혜가 사람이 행하는 일에 따라 일어난 것이나 그에 의지한 것이 아니다.
은혜는 감상적으로나 감정의 차원에서 생각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전적으로 잘못된 은혜관이다. ‘은혜의 왕 노릇’이란 용어 자체가 은혜에 관한 모든 감상적인 견해를 송두리채 뽑아 버리고 우리들로 하여금 그 힘과 능력을 알게 한다. 은혜가 보좌에 오를 때 처음부터 목표가 뚜렷했다. 은혜는 그 목적을 규정짓고 천명함으로써 통치를 시작했다.
- 은혜의 계획을 두 가지 주요 면에서 살펴보자.
① 사실적인 역사적 측면이 있다. 특히 구약에서 역사는 언제나 예언적 요소와 결합되어 있다. 예언들과 역사적 사실들을 함께 살펴보노라면 한 가지 결론에 이를 수 있는데, 은혜가 시간 세계의 영원한 도모 가운데서 모든 것을 결정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은혜의 계획이 처음으로 발표된 것은 창3:15이다. 은혜의 통치에 대한 첫 번째 공표이며 거기에는 선지자적 예언이 있다. ‘뱀의 후손과 여자의 후손 사이를 원수되게 할 것이다’ ‘여자의 후손이 뱀의 후손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 ‘원시복음’이면서 사실상 복음 자체이다. 은혜의 궁극적인 목적이요, 목표이다. 구원역사의 시작이다.
아담과 하와의 자녀들. 셋은 아벨이 죽은 후에 태어난 아들이다. 하나님은 셋의 혈통에서 노아라고 하는 사람과 그의 가족을 택하여 내신다. 은혜의 통치의 계통이다. 심판과 동시에 은혜도 온다. 은혜는 여전히 자기의 궁극적 목표에 시선을 떼지 않았다.
다음에 아브라함으로 이어진다.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에서 끌어내고 구별하여 다른 나라로 인도해 가신다. 이삭의 얘기. “이삭에게서 네 씨라 칭하리라” “네 씨(이삭)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창12:12; 22:18). 이삭은 에서와 야곱 두 아들을 가진다. 은혜의 역사는 에서로 이어가지 않는다. 야곱의 계보가 약속의 노선이다. 야곱의 이름은 이스라엘로 바뀐다. 특별한 민족의 시작을 본다. 이스라엘은 12 아들을 가졌다. 그들 가운데 유다가 택하여진다. 다음에 그 계통에 베레스가 나온다. 마태복음의 족보는 은혜의 왕 노릇의 계획과 능력을 나타낸다.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 죄와 근친상간이었다. 구원 계통의 한 부분이다. 베레스를 따라가면 다윗의 아버지가 나오고 다윗에 이른다. 다윗은 장남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택한 사람이다. 그의 많은 아들 중 솔로몬이 택함 받는다. 어떤 실수도 없이 언제나 적재적소에 마땅한 인물을 뽑아내는 은혜의 특별한 프로그램이다. 때로는 우리 생각과 아주 상반되 보이나 하나님에 의해 계속되어 나가는 것이다. 솔로몬 때로부터 나사렛 예수가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다윗의 동리”에 태어날 때까지 분명한 목적과 정확하게 진행되어 나간다.
② 시간적 요소를 본다. 하나님께서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관영치 아니하기 때문에 어떤 일들을 허락하신다는 것을 읽게 된다.(창15:16) 하나님께 즉시 심판하지 않으신 것은 아직 때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자녀들이 포로로 잡혀 있는 정확한 기간이 4백년인 것을 훨씬 전에 아브라함에게 알리셨다(창15:13). 다니엘서 9장에 메시야가 태어날 정확한 때가 언제인지를 보게 된다. 그 시간은 그처럼 정확하다. 바울은 말했다.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갈4:4). 재림의 시기에 대해서 주님은 말씀하셨다.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시느니라”(막13:32).
구약은 주님에 관한 모든 것이 일어날 것을 예고하고 신약에서는 예언들의 성취를 보게 된다. 은혜가 왕 노릇 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명백한 계획과 절대적인 통제를 암시한다. ‘왕 노릇’은 고삐를 쥐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 모든 세목들이 필연적으로 전진해 감으로써 - 한 단계 한 단계, 한 일 한 일, 한 부분 한 부분 - 이루어지게 되고 결국은 목적을 완성하고 이루는 것이다. 왕 노릇과 은혜는 함께 일했다. 은혜가 이 비상하고 신비로운 방법으로 왕 노릇을 하고 있기 때문에 실패와 무가치함에도 불구하고, 쓰여진 각 사람들의 크고 심한 죄에도 불구하고 그 계획은 원래 영원한 도모 가운데서 계획된 궁극적인 목표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유다의 근친상간, 다윗의 살인죄와 간음죄.)
- 왕 노릇의 요소가 아니라면, 은혜의 세력이 아니라면 전체 목적은 좌절되었을 것이다. 이스라엘 자녀들의 상태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것이 사실상 바르게 되었다. 왕 노릇의 역사적 국면은 성경 역사로써 끝난 것이 아니고 교회의 긴 역사와 기록에서 그것은 분명하게 보여 졌다. 하나님 교회의 설립은 은혜가 왕 노릇의 역사 가운데 중요한 요점이다. 왕 노릇은 교회의 대부흥들 가운데서 더욱더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은혜의 왕 노릇’이 아니었다면 사람은 시작하자마자 교회의 역사를 끝나게 했을 것이다
각 개인들의 구원 계획도 창세전에 전부 결정되었다. 구원의 서정이 그것이다. 로마서 8장은 모든 순서에 대한 힌트를 제공하고 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8:28-30)
하나님은 언제나 모든 일을 계획하신다. 무한하신 능력을 가지고 위대하고 영원한 하나님은 언제나 하나의 계획에 따라서 일하신다. 그 때문에 사람들은 ‘자연법칙’이라 부르나 그것은 하나님께서 자연 안에서 해놓으신 법이다. 구원역사에 있어서도 정확하고 계획적이다.
구원은 ‘미리 아심’부터 시작된다. 그가 예정 받고 선택되지 않았으면 아무도 구원받지 못한다.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입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벧전1:2)
그 다음은 ‘효과적 부르심’이다. 그 다음에 중생이 온다. 동시에 아들로 받아들여진다.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엡1:5). 하나님은 우리를 그의 권속으로 받아들인다.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 넣으신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와 연합된다. 그것은 은혜의 계획의 내적 사역의 일부이다.
다음은 칭의이다. 우리는 믿음을 행사하기 때문에 의롭다함을 받은 것을 깨닫게 된다.
그 다음에 성화, 마지막은 영화이다.
하나님은 경이롭고 영광스러운 이 모든 단계들을 계획하셨다. 은혜가 매 단계마다를 주장하신다. 만일 은혜가 주장함을 멈추면 전 과정이 붕괴될 것이다. 그것을 시작한 것도 은혜이고, 그것을 계속하는 것도 은혜이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나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은혜이다. 이 은혜의 왕 노릇의 계획은 얼마나 놀라운 것인가!
은혜의 왕 노릇의 세력. 계획이 서 있으니 그것을 수행해 나갈 비상한 능력이 있다. 은혜가 왕 노릇 함이 매우 능력 있는 통치가 되지 못한다면 상황은 완전히 절망적일 것이다. 구원계획은 개벽부터 대적자 마귀의 저항을 만난다. ‘이 세상 신’.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 역사하는 영’. 창 6장에서 온 세상이 그의 능력 아래 있었다. 아브라함의 생애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의 역사에서, 바벨론 포로. 그들의 상황은 전혀 소망이 없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남은 자가 예루살렘과 가나안에 돌아왔다. 오직 은혜가 왕 노릇의 힘에 의한 것이다.
개인적인 사람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실패와 죄와 불순종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들을 여전히 사용하실 수 있었다. 성경은 우리들에게 그 행진이 계속 되고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진다고 말한다. 어느 때에는 어떤 무서운 힘이 일어나고 기독교가 아주 소멸돼 버린 것 같이 보일 때가 여러 번 있었다. 하나님은 그의 원수들을 태양이 아침 안개를 흩어버리듯이 흩으셨다. 왕들과 군대들과 제국들과 지옥 권세들이 그 앞에서 아무것도 아니게 녹아버렸다.
오. 왕 노릇하는 은혜의 힘이여! 기독교는 오늘날 아주 쇠미한 상태이다. 그러나 그것은 전에도 여러 번 그랬다. 이 계획을 좌절시킬 수 있거나 은혜의 통치와 그의 근원적인 계획과 결정된 목표 사이를 이간시킬 수 있는 힘은 아무것도 없다. 여러분은 ‘은혜의 왕 노릇’ 만큼 확신을 주는 어떤 것을 알고 있는가?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니라” 이 위대한 목표는 그의 무한한 은혜 안에 있으며 우리들을 포함하고 있다. 여러분 자신을 보지 말라. 목적을 보라. 계획을 보라. 은혜의 왕 노릇을 보라. 그렇게 함으로써 여러분의 발걸음을 반석 위에 든든히 세웠다는 것과 아무것도 그것을 흔들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복되도다. 은혜의 왕 노릇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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