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도 아카데미

[스크랩] 조엘 비키, `칼빈주의`, 6부 칼빈주의의 목적, 28장, 송엳적 칼빈주의 (강의안)

강대식 2017. 7. 26. 15:08

6부 칼빈주의의 목적

28장 송영적 칼빈주의(싱클레어 퍼거슨)

 

하나님을 찬미하는 것은 신앙의 제일되고 순전한 행위이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 사람답게 행동한다. 그러나 찬미를 통해서는 천사와 같이 행동한다.”(토마스 왓슨)

 

본서 전체와 특히 본서의 결론인 본 장은 칼빈주의가 항상 송영적이라고 말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성경적으로 참되거나 진정한 칼빈주의가 아니며, 결국 참된 신학이 될 수도 없다. 왜냐하면 참된 신학은 항상 송영, 즉 찬미를 이끌어내기 때문이다. 송영은 문자적으로 찬미 또는 찬양을 뜻하다. 송영은 성경을 강조한다. 왜냐하면 송영은 믿음의 삶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바울은 아브라함의 삶에 대해 이렇게 이해했다. 그는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던’(4:20) 사람이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항상 영광스럽게 계시된 하나님을 믿음으로 붙잡을 때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는 원리로 결정된다.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11:36). 삶의 모든 국면에 미치는 하나님의 주권에 관한 지식은 믿음의 마음으로부터 한결같은 반응을 불러온다. 이것을 종교 개혁의 교훈을 요약해주는 유명한 라틴어인 ‘soli Deo gloria’ 오직 하나님께 영광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도 있다.

칼빈주의는 성경 신학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며, 그러한 신학의 결과는 실제로 송영이 될 것이다. 이것은 개혁주의 신학이 송영을 불러 일으키는 성경적 가르침이기 때문이다.

 

1. 성경적 교훈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 감사하나이다”(11:25). 주님을 믿으라는 예수님의 초청(11:28-29)은 하나님 아버지를 향한 그의 찬미에서부터 흘러나온다. 그리고 이 찬미는 하나님의 특별하신 선택에 기초한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방식, ‘하나님의 뜻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어떤 이들에게는 진리를 숨기시고 어떤 이들에게는 그것을 나타내셨다. 오직 아들의 선택하시는 은혜만이 아버지 하나님의 지식의 문을 열어주신다.

 

신적 주권과 영광과 은혜의 자유,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하나님의 선하심안에 기초한 송영의 뿌리는 신약성경에서 반복적으로 찾을 수 있다. ‘칼빈주의자들이 송영과 긴밀하게 연결시키는 이 진리들은 이해하기 어렵거나 한해한 구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신자들이 공통적으로 사랑하고 즐거워하는 말씀들 안에 묘사되어 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8:28). 송영적 마음과 확신 넘치는 참으로 열정적인 감정으로 하나님을 찬미하도록 자극한다. 이 진리들이 바로 칼빈주의의 정수이며 참된 칼빈주의에게 열정적이고도 송영적인 심령을 부여해 준다.

 

1:3-6 송영 역시 우리를 선택하신 하나님의 주권적인 사랑과 우리에게 모든 영적 복을 주시는 주권에 기초해 있다. 벧전 1:1-5의 송영 역시 동일하게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자들의 찬미를 표현하고 있다. 성경에서 하나님을 찬미하는 것은, 우리가 전적으로 타락했으며 구원에 아무런 공헌도 할 수 없음에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신다는 것에 대한 깨달음에서 기인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하셨으며, 그리스도의 보혈이 우리를 구속하셨다. 그리고 성령께서 새 생명을 주시기 위하여 우리 안에서 불가항력적으로 역사하신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견인하시기 때문에 성도로서 인내하게 된다. 이러한 성경적 가르침이 바로 후일 칼빈주의라고 묘사된 신학으로 정립된 것이다.

 

2. 칼빈주의적 찬양

 

대부분의 옛 찬송들은 칼빈주의가 본질적으로 송영적이며, 실상 모든 송영이 그러한 성경 신학에 의해 좌우된다는 것을 강조한다. 여기 토플레디의 찬송이 있다. “내 손의 수고로는 주님의 계명의 요구를 성취할 수 없어요. 영원토록 눈물을 흘린다 할지라도 말이죠. 속죄할 수 없는 그 수많은 죄로 인해 주님만이 구원하시죠, 오직 주님만이 말입니다”. 이 시에는 칼빈주의가 나타난다. 이와 동일한 진리들은 존 뉴턴의 놀라우신 주 은혜’(Amazing Grace)에도 잘 나타나 있다. 송영은 개혁주의 신학의 한 자리를 차지하는 데 전혀 손색이 없다.

 

3. 그리스도인의 경험

 

개혁적인 기독교의 역사는 고상한 영적 경험의 역사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높이 찬미하는 노래로 표현된 칼빈주의적 교리는 특별한 기독교의 경험으로 우리를 이끌어준다. 칼빈주의적 사상에 기초해서 지성적이고도 아름다운 곡조와 선율로 구성된 이 노래는, 개혁주의 예배에서 열정적으로 불렸을 뿐만 아니라 개혁주의 신자들의 삶의 방식과 경험을 통해서도 여전히 불릴 수 있는 노래이다. 개혁주의 세계와 삶의 방식의 진정함은 그 멜로디가 낮은 단조로 연주된다 할지라도, 그 선율과 곡조에 여전히 남아 있다. 교회에서 연주될 때, 그것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반영한 영광스러운 교향곡이 된다.

-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신뢰

- 소망 없고 무력한 죄인들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전능한 은혜에 대한 경험

- 우리의 죄를 위하여 돌아가신 우리 구세주의 사랑을 받는다는 놀라운 감정

- 우리를 자유케 함으로 그리스도를 믿고 섬기며 사랑하게 만드는 은혜의 발견

- 하나님의 백성을 보존하실 것이라는 약속을 깨달음으로써 누리는 평온한 확신과 평강

 

이러한 특징들은 모두가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게 한다. 칼빈주의의 본질이 바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자 하는 이런 삶의 방식에 있다. 결국 이것은 소요리문답을 시작하는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인간의 제일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이다.” 여기 많은 사람들에게 칼빈주의가 전하는 궁극적인 놀라움이 있다. 하나님의 영광과 인간의 즐거움이 반립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목적 안에서 깊은 연관성을 지닌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와 영광 안에서 하나님을 드높이는 성경 신학은 매우 다른 실재로 진입하는 문을 열어 준다. 하나님과의 풍성한 교제를 회복하는 경험과 빛,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변화, 그리고 영광 가운데서 그분을 보기 위하여 그분이 계신 곳으로 가고 싶어하는 열망이 제공된다.

(조엘 비키, “칼빈주의, p 637)


출처 : 청교도 아카데미
글쓴이 : 강대식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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