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부 청교도의 윤곽적 소개
제2장 우리에게 청교도가 필요한 이유
1. 성숙한 그리스도인
청교도들은 원칙적인 사람들이고 헌신적이고 단호하고 훈련적인 사람들이며, 가정의 미덕에 있어 특히 뛰어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하나님에게나 사람에게나 어떤 중요한 일을 말할 때 말씀에 의존하였다.
청교도들이 우리에게 필요한 이유는 그들의 성숙 때문이다. 성숙은 지혜와 선의와 쾌활과 창조성의 복합이다. 우리는 영적 난장이라면 그들은 거인들이다. 그들은 위대하신 하나님을 섬기는 위대한 영혼들이었다. 맑은 머리의 열정과 따뜻한 가슴의 동정이 결합되어 있었다. 이상적이면서 현실적이며, 목표 지향적이며 조직적인 그들은 위대한 신자들이었고, 위대한 소망자들이었고, 위대한 행위자들이었고, 위대한 고난자들이었다.
영국에서는 권력자들에게서 고난을 당했고, 뉴잉글랜드에서는 자연으로부터 고난을 당했다. 그 고난이 그들의 성숙을 이루었다. 우리의 풍요와 안일과 사치는 성숙을 이루지 못한다. 이 영적 전투가 전형적인 청교도를 만들었다. 이 전쟁에서 그리스도는 그의 대장이며, 그의 무기는 기도와 눈물이었다. 십자가는 그의 군기이며, 그의 문장은 “고난받는 자가 승리한다”였다.
청교도들은 대개 모든 공적 전투에서 졌다. 영국에서는 영국교회를 원하는 만큼 변화시키지 못했고, 소수파 이상으로 성장하지 못했다. 대서양을 건너가서는 뉴잉글랜드에 새 예루살렘을 수립하는 데 실패했다. 처음 50년 동안 청교도의 작은 이민들은 겨우 살아 남았다. 그러나 지속적인 압박과 좌절들 아래에서 청교도들이 계속 즐겁고, 평화롭고, 인내하고 소망에 차 있음으로 쟁취한 도덕적 승리와 영적 승리는 히브리서 11장의 제 일석을 차지한 신자들의 명예와 자리 중의 높은 영광의 자리를 그들에게 주었다.
휘트필드는 말했다. “시련 아래 있을 때 성직자들은 가장 훌륭하게 저술하고 설교한다. 그리스도와 영광의 왕이 그 때에 그들에게 거하시는 것이다. 청교도들을 그처럼 찬란하게 비추이는 빛으로 만든 것은 바로 이 이유였던 것이다. 1662년의 검은 바돌로매 법령에 의해 쫓김을 당하여 헛간과 밭과 도로와 울타리에서도 설교할 수 없는 자리로 내몰림을 당하였으나, 그들은 특별한 방법으로 권위있는 사람들처럼 저술하고 설교했다. 그들은 죽음을 무릅쓰고 저술로 말했다. 바로 이때에 독특한 감동을 주는 열정이 그들을 따랐다”
그들의 감동을 주는 열정은 계속되고 있고, 그 권위도 계속 느껴지며, 성숙한 지혜는 여전히 놀라움을 주고 있다. 이 문헌의 역사를 통해 청교도들은 그들이 알고 있고, 우리가 필요로 하는 성숙으로 나아가도록 오늘날의 우리를 도울 수 있다.
2. 일상생활의 통합
1) 그들의 일상 생활의 통합에 우리를 위한 교훈이 있다. 그들은 사람을 전체로 보았기 때문에 묵상을 행동과 통합하였고, 예배를 일과 통합하였고, 하나님의 사랑을 이웃과 자기사랑과 통합하였고, 개인의 정체성을 사회의 정체성과 통합하였고, 넓은 범위의 관계적인 책임들을 철저하게 양심적이고 주도 면밀한 방법으로 관계적 책임들과 통합하였다.
2) 그들의 영적 경험의 특성에 우리를 위한 교훈이 있다. 청교도의 하나님과의 교제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중심이고 성경이 가장 중요했다. 성경 진리의 전체 범위를 스스로에게 적용시키기 위해 광범위하게 그리고 조직적으로 묵상을 했다. 묵상 가운데 자기 심령을 탐색하고 도전하고, 죄를 미워하고 의를 사랑하는 감정을 분발시키고, 하나님의 약속들로 자신을 격려하고자 했다. 이 이성적이고 단호하고 열정적인 경건은 강박됨이 없이 신중하였고, 율법주의에 빠짐이 없이 율법 지향적이었고, 수치스러운 방종의 경향이 없이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표현하였다.
성경은 변할 수 없는 거룩한 법칙이었다. 그들은 타락한 인간 심령의 부정직성과 기만성을 알고 있기 때문에 변치 않는 마음가짐으로 겸손과 자기 불신을 교화하였고 영적으로 보이지 않는 흠들과 숨어있는 마음 속의 악들을 찾기 위하여 정규적으로 자신을 검사했다. 그러면서도 병적으로 되지 않았고, 성경에 의한 자기성찰이었다.
3) 효과적인 활동에 대한 그들의 열정에 우리를 위한 교훈들이 있다. 그들에게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을 타인들에게 맡기는 게으르고 수동적인 사람의 나태가 없었다. 그들은 조금도 자기 자신에게 의지함이 없이 개혁 운동에 참여하는 순수한 개혁 정신을 소유한 행동하는 사람들이었고, 그들 안에서 그들을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께 완전히 의지하고, 자신들이 행한 일에 있어 옳다고 생각되는 일은 무엇이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하나님의 일꾼이었고, 하나님께서 그들이 갖고 있는 능력들을 사용하시되 자신들을 나타내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시기를 열심히 기도하는 은사의 사람들이었다.
교회나 국가에 혁명을 일으키는 사람들이 되었을 때에도 그렇게 되기를 원한 사람은 없었다. 그들 모두는 죄에서 거룩함으로 변화가 요구되는 곳에서는 어느 곳에서든지 하나님을 위해 효과적인 동인이 되기를 갈망했다. 크롬웰과 그의 군대는 전투에 앞서 길고 강력한 기도를 드렸고, 설교자들은 강단으로 감히 나아가기에 앞서 길고 강력한 기도를 드렸고, 평신도들은 모든 중요한 문제, 즉 결혼, 사업 거래, 중요한 구매 등 무엇이나를 처리하기에 앞서 길고 강력한 기도를 드렸다.
4) 가정의 안정을 위한 그들의 프로그램에 우리를 위한 교훈이 있다. 청교도의 결혼 윤리는 당장 정열적으로 사랑하는 배우자를 찾는 것이 아니라, 가장 좋은 친구로 견실하게 사랑할 수 있는 배우자를 찾음으로 후에 하나님의 도움으로 정열적으로 사랑하는 데로 나아갔다. 청교도의 자녀 양육 원리는 그들이 마땅히 나아가야 할 길로 자녀들을 훈련시키고, 자녀들의 육체와 영혼을 함께 돌보며, 근실하고 경건하고 사회적으로 유용한 성인의 삶을 위해 자녀들을 교육하는 것이었다.
청교도의 가정 생활 윤리는 질서와 예의와 가정 예배를 유지함이 기초가 되었다. 친절과 인내와 언행 일치와 격려의 태도는 가정에서 필수의 덕으로 간주되었다. 그들은 가정을 요새로 삼아 모든 악조건들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가정 가운데에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 노력했는데 이는 가장 큰 칭송을 받을 만하다. 청교도들은 가정에서의 어려움과 실망들을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으로 현실적으로 받아들이고, 그런 어려움과 실망들 중 어느 것에 의해서도 풀이 꺾이거나 마음이 상하지 않는 성숙의 모범을 보였다.
게리, “그는 자신의 가정을 교회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자기 가정에서 태어난 자녀들이 하나님께로 중생하도록 하기 위해 힘썼다.”
5) 청교도의 인간 가치 의식에 배워야 할 교훈들이 있다. 그들은 위대하신 하나님을 믿음으로 도덕적 문제들과 영원과 인간 영혼이 중대하다는 것을 생생하게 깨닫게 되었다. 인간 개개인들에 대한 경이감을 그들은 예민하게 느꼈다. 죄는 아무것도 요구할 권리가 없다고 말한 중세기의 양향을 받아 비록 그들이 분명히 자신들과 다른 사람들을 언제나 존경한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친구로 만들어진 피조물로서의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그들의 가치관은 강력하였는데, 특별히 인간의 아름답고 고귀한 거룩성에 대한 의식이 강했다.
6) 청교도의 교회 갱신에 대한 이상에 배워야 할 교훈이 있다. 박스터의 <개혁된 목사>는 칼빈주의를 유세하는 사람이 아니라, 설교자와 교사와 교리 문답자와 직무의 귀감으로서 그 자신이 ‘부흥된’ ‘갱신된’ 사람이다. 개혁의 본질은 하나님의 진리에 대한 풍부한 이해, 하나님을 향한 애정의 분발, 헌신에 대한 열심의 증가 그리고 자신의 소명과 개인적인 삶에 있어 확고한 기독교적 목적과, 더 많은 사랑과 기쁨이었다. 이와 조화하여 교회를 위한 이상은 곧 ‘개혁된’ 성직자를 통해 각 회중의 모든 것이 개혁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3. 청교도의 위대성
청교도주의는 핵심에 있어 하나님과 경건에 열정적으로 관심을 두는 영적 운동이었다.
청교도주의는 본질적으로 교회 개혁과 목회 갱신과 복음 전도를 위한 운동이었으며, 청교도주의는 세계관이며 기독교 철학이었다.
청교도의 목표는 영국의 개혁이 시작한 바를 완성하는 것이었다. 곧 영국국교회 예배의 형태 수정을 완성하고, 영국 국교회 교구에 효과적인 교회 기율을 도입하고, 정치와 가정과 사회 경제 쳬계에 정의를 수립하고, 모든 영국인들을 살아 있는 복음적 신앙으로 개종시키는 것이었다. 복음을 전도하고 가르침을 통해, 그리고 모든 예술, 과학, 기술들의 성경화를 통해 영국은 성도들의 땅, 집합적 경건의 귀감과 모범이 되는 것이며, 그리하여 세계의 축복 수단이 되는 것이었다.
4. 청교도의 교훈
오웬, 박스터, 굿윈, 하우, 퍼킨스, 십스, 브룩스, 왓슨, 거어널, 플라벨, 번연, 맨턴 등과 같은 위대한 청교도 목사이며 신학자들은 영적 통찰력 뿐만 아니라 뛰어난 지적 능력의 소유자들이었다. 그들에게 있어 착실한 학문에 의해 육성된 지적 기질은 하나님을 위한 불타는 열심과 인간 심령에 대한 세밀한 지식에 연결되었다. 그들은 사고와 관점에 있어 철저하게 하나님 중심이었다.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그들의 인식은 심원하였고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을 다룰 때 그들의 경의는 깊고 불변적이었다. 그들은 인간들과 관련된 하나님의 방법들과 중보이신 그리스도의 영광과, 신자와 교회 안에서 행하시는 성령님의 역사를 가장 풍성하게 이해하였다.
그들의 지식은 단순한 이론적 정설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가르치신 모든 것을 실행과 ‘일치시키고자’ 애썼다. 그들은 하나님의 생각에 대한 자신들의 파악을 삶의 모든 지류에 적용시켰고 교회, 가정, 국가, 예술과 과학, 상업과 산업의 세계를 개인의 헌신에 못지 않은 것으로 보았고 하나님께서 섬김을 받으시고 영광을 얻으셔야 하는 많은 영역들로 보았다. 왜냐하면 그들은 삶의 창조주를 삶의 각 부분의 주인으로 보았고, 그들의 목적은 ‘주님께 대한 거룩함’이 삶에 기록되고 삶의 영원성 가운데 기록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복음세계에 있어 세 집단이 청교도만이 줄 수 있는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다.
1) 불안한 경험주의자들
복음주의자들로 착각하기 쉬운 자들이다. 외부에 대한 시각은 일관성이 없고 매우 성급하며 신기한 것들과 즐거움과 ‘높은 이상들’을 추구하며 깊은 사고보다는 강한 감정을 존중한다. 그들은 딱딱한 공부 겸손한 자기 반성, 훈련된 묵상, 호화롭지 않고 힘든 직업과 기도에는 거의 흥미가 없다. 믿음의 전투나 ‘낮아짐’과 같은 균형감각이 없고, 기쁨, 평화, 행복, 만족, 영혼의 안식 같은 주제들만 계속 강조한다. 이 떠들썩한 사람들은 들뜬 상태 가운데, 보다 더 기묘하고 인상적인 경험이 더 신령하고 초자연적이고 영적인 경험이 틀림없다고 무비판적으로 경솔하게 판단을 내리고 진실한 사고에는 성경적인 덕성을 거의 부여하지 않는다.
청교도의 어떤 강조점들이 불안한 경험주의자들을 안정시켜 차분하게 할 수 있을까? 신적 요구로서의 하나님 중심에 대한 강조. 언제나 겸손하고 인내하고 절제하라는 요구와, 성령의 주요 사역이 흥분을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그리스도와 닮은 인격을 창조하는 것임을 인정하라는 요구. 시 139:23-24에 제시된 대로 성경에 의한 규칙적인 자기 반성의 필요성에 대한 강조. 신령한 고난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은혜 가운데 성장시키시는 하나님의 계획에 있어 중요하다는 것을 실감하는 것. 청교도의 교육 전통보다 더 능숙한 권위를 가지고 이렇게 정화하고 강건하게 하는 약을 사용한 다른 기독교 교육 전통은 없다.
2) “자기 방어적 주지주의자들”
이들은 끊임없이 자신을 엄격하고 논쟁적이고 비판적인 그리스도인들, 정통적 관행이 모든 것인 자들, 하나님의 진리의 옹호자들로 나타낸다. 칼빈주의건 알미니안이건, 세대주의건 오순절파이건, 국가 교회 개혁주의자이건, 비국교파 교회 분리주의자이건, 무엇이거나 간에 자신들의 진리관을 옹호하고 방어하는 것이 그들의 주된 관심이며, 그들은 이 과제에 아낌없이 자신을 투자한다. 그들의 주위에는 거의 온기가 없이 냉랭하다. 그들은 교제 관계와 멀리 떨어져 있다. 그들에게 있어 경험은 큰 의미가 없다. 지적 정확성을 위한 싸움에서 승리하는 것이 그들의 하나의 큰 목적이다. 그들은 지성의 우선권을 잘 이해하고 있다
청교도 전통이 빈약한 주지주의에 대해 어떤 강조점을 제시하는가? 참된 신앙은 지성 뿐만 아니라 애정을 요구한다는 것. 신학적 진리는 실천을 위한 것이라는 것. 실제들을 아는 것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관념적 지식은 죽이는 것이 된다는 것. 사랑과 거룩한 생활의 필요하다는 것. 묵상의 훈련은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을 끊임없이 열심을 내고 사모하도록 하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위대한 청교도들은 두뇌가 명석했던 것만큼 마음이 겸손하고 따뜻했으며 성결 지향적인 만큼 인간 지향적이었으며, 진리를 위해 열정적인 만큼 평화를 위해서도 열정적이었다.
3) 불평적인 분리주의자들
이들은 현대 복음 운동의 조난자이며 태만자들이고 그들 중의 많은 자들은 이제 복음 운동에 악감을 가지고 복음 운동을 기독교의 신경증적 왜곡이라고 비난한다. 그들은 복음으로 양육을 받았거나 또는 복음적 영향권 내에서 회심을 고백함으로 한때 스스로를 복음주의자들로 보았으나 복음주의적 관점에 대해 환멸을 느끼게 되었고, 복음주의가 자신들을 실망시켰다고 느끼고 등을 돌린 사람들이다. 지적인 이유로, 또는 상처와 분노로 인해 그들은 자신을 신용 사기의 희생자로 생각하게 되어 복음주의가 자신들을 실패시키고 바보로 만들었다고 비난하고 원망하며 포기해 버린다.
이들을 치유하기 위해 청교도들은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다. 청교도 저자들이 한결같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은 첫째, 하나님의 ‘비밀’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분이다. 따라서 ‘손실과 고난’, 즉 우리의 소망들과 관련된 좌절과 실망들은 하나님과의 교제의 삶에 있어 반복되는 요소라는 것이다.
둘째, 청교도 저자들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우리에게 말해준다. 그들은 죄인들을 구속하고, 회심시키고, 성화시키고, 궁극적으로 영화롭게 하는 것이 바로 사랑이라고 말한다.
셋째, 하나님의 ‘구원’에 대해 우리에게 말한다. 우리의 죄를 제거하시고 우리에게 하나님의 용서를 전하신 그리스도께서는 이 세상을 통과하여 영광으로 우리를 인도하고 계시다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부터 이 영광에 대한 열망과 이 영광을 즐기기 위한 능력을 조금씩 배움으로 이 영광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령한 예배와 변함없는 사랑의 순종이라는 형태로 나타나는 이 땅의 거룩은 내세의 행복으로 가는 고속도로인 것이다.
넷째, 세상과 육체와 악마와 우리를 타락시키고자 하는 수많은 방법의 ‘영적 전투’에 대해 우리에게 말해 준다.
다섯째, 악을 허용하기도 하며 영적 전투를 지배하시고 성화시키시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에 대해 우리에게 말해준다.
여섯째, 하나님의 ‘영광’에 대해 말한다. 하나님의 선하심에 완전히 맡기고 언제나 하나님을 우리의 기쁨과 희락으로 삼음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촉진시키는 것은 우리의 특권이다.
나는 지금까지 읽어왔던 어떤 다른 신학자들보다 청교도들에게 더 많은 신세를 지고 있고, 청교도들이 나에게 아직도 필요하다. 우리 청교도의 유산을 함께 계속적으로 탐구해 보기로 하자. 더 많은 황금이 발굴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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