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도 아카데미

[스크랩] 로이드 존스, `산상 설교`, 상권, 30장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김영희강의안)

강대식 2018. 1. 25. 13:07

30 장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5:27)

 

이 한 문단은 신약성경의 복음 중에서도 가장 본질적인 특성을 내포하고 있으며 이것은 신약성경을 일관해서 흐르고 있는 파라독스이다. 이것에는 시작부터 끝까지 모순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을 여기서도 보게 된다.

복음의 역설성은 옛 사람 시므온이 아기 예수를 안고 이 아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의 패하고 흥함을 위하여 세움을 입었다이것은 역설이다. 복음은 항상 이 두 가지를 포함한다. 산상설교는 그 완전한 실례의 하나이다. 산상설교보다 더 낙심케 하는 것은 없다. 산상설교를 지키기는 아예 불가능하게 보인다. 하지만 동시에 산상설교 이상으로 우리를 격려하며 용기를 북돋아 주는 것이 또 있는가? 우리에게 이런 일들을 하라고 명령하는 사실로 봐서 이 명령에는 이 일이 가능하다는 뜻을 함축하고 있으며 우리가 할 수 있다는 암시가 되고 있다. 산상설교는 낙심천만한 것인 동시에 용기를 북돋아 준다. 이 두 가지 면을 마음에 명심하는 일 이상으로 더 중요한 일은 없다 하겠다.

 

너희가 너희 친구들에게만 문안하면 그것의 특별한 점이 무엇이냐‘(모펫 박사의 번역) 이 어구에서 우리는 다시 한번 무엇이 그리스도인으로 만드는가에 대한 완벽한 정의 하나를 가지는 셈이다. 이것이 모든 것의 열쇠이다. 20절에서도 우리 주님은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이라고 말씀하셨다. 이 중요한 원칙을 세 가지 형태로 생각해 보면, 그리스도인은 본질적으로 특이하고 특별한 사람이다. 그리스도인은 생래적인 관점에서는 설명할 수 없는 사람이다. 주님은 여기서 이 특별성, 특유성이 이중적인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리스도인들은 다른 사람들이 행하는 대로 한다. 하지만 그들이 하는 것 이상으로 한다. 5리는 누구라도 갈 수 있다. 하지만 10리를 가는 것은 그리스도인이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에서 눈에 띄는 사람이다.

 

1. 우리 주님의 정의에 의하면,

*그리스도인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하는 사람일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는 사람이다. 그리스도인은 최상 최고의 수준에 있는 자연인보다 더 위에 있고 자연인을 초월하는 사람이다. 그리스도인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독립된 사람이며, 최선 최고의 사람들과도 다른 사람이다. 그리스도인은 원수를 사랑하며 그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선을 행하며 그를 멸시하고 박해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는 이런 역량을 일상생활에서 보여주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그리스도인은 다른 사람들과 다를 뿐만 아니라 그가 적극적으로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닮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그리스도인에 대한 본질적인 정의이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닮게 되어 있다. 내게 생래적 관점에서 설명할 수 없는 것이 있는가? 나의 삶에 비그리스도인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그리스도와의 관계의 관점에서만 설명될 수 있는 특별하고 특이한 것이 있는가?

 

2. 그리스도인이 전체 생활에서 그리스도인의 특유성을 나타내는 방법은 무엇인가?

* 그리스도인의 특징은 문자보다 영에 더 관심을 가진다는 데 있다. 도덕적 윤리적 인간은 법의 테두리 안에서 살고 싶어 하지만, 법의 본질적인 정신은 생각하지 않는다.

* 자연인은 억지로 마지못해 순종하고, 그리스도인은 속사람을 따라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한다는 것이다.

* 도덕에 대한 자연인의 태도는 부정적으로 어떤 일들을 하지 않는데 있지만, 그리스도인의 태도는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의와 같은 적극적인 의에 주리고 목말라 하는 것이다.

* 자연인은 행동의 관점에서 죄를 생각하지만, 그리스도인은 마음에 관심을 가진다. 그리스도인은 행동을 넘어 마음에까지 가는 것이다.

* 자연인은 자기의 죄성 때문에 결코 심령이 가난하지 않으며 결코 이것 때문에 애통하지 않는다. 자연인은 자기가 지옥에 가야 마땅한 죄임을 보지 못한다. 자연인은 이것을 도리어 모욕으로 생각하며 분개한다.

* 다른 사람에 대해 가지는 태도에 있어 자연인도 그들을 불쌍히 여기며 아량있게 대우할 수 있지만, 그리스도인은 그 이상으로 그들을 사탄의 포로로, 죄의 희생물로 보며 사랑을 베풀어야 할 사람들로 본다.

* 신관에 있어서 자연인은 원래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할 대상으로 생각하지만,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알게 되어 마음과 목숨과 힘과 뜻을 다해 사랑하려 한다.

* 생활면에서 그리스도인의 삶의 동기는 사랑으로 그의 행동에 은혜의 요소를 가지고 있다. 자연인은 선행의 기록을 보전하고 싶어하며 쓰고 남을 때에 주지만, 그리스도인은 희생적으로 주며 한 손이 하는 것을 다른 손이 알지 못하게 준다.

* 고난이 올 때 자연인은 의지를 발동하여 극기적인 체념으로 대처하며, 부정적이며, 노여움을 억눌러 감춘다. 그리스도인은 그 속에 숨은 의미를 보기 때문에 환란 중에 기뻐한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알고 시련 가운데 기뻐할 수 있다.

* 상해와 불법에 대하여 자연인은 그것을 모두 무시해 버리거나 그것을 오해하는 사람을 냉소적으로 물리쳐 버린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은 십자가를 일부러 지며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라는 명령을 견지한다. 여기서 주님은 우리가 이 일들을 어떻게 행해야 하는가를 말씀해 주셨다.

 

나를 따르는 자는 박해를 받으며 고난을 당할 것이 확실하다. 그러나 십자가를 지라. 누구든지 네 오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며 또 너를 송사하고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그리스도인은 이것을 기쁘게 기꺼이 행한다. 그에게는 특별한 점이 있어 항상 다른 사람보다 더 나아가는 사람인 것이다. 원수를 사랑할 수 있고, 그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선을 베풀며 저주하는 자를 축복하며 멸시하고 박해하는 자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는 자연인은 결코 없었다. 원수를 사랑하는 것은 싸우지 않거나 살상하지 않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사랑은 원수를 적극적으로 사랑하며 그를 위해 그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는 것을 의미한다.

* 임종할 때 자연인은 극기적인 냉정함과 체념을 가지고 숨을 거둘 수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죽음을 직면할 수 있으며 바울처럼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이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내가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진 이것이 더욱 좋으나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자기가 가는 곳을 알고 두렵지 않으며 기대감도 가진다.

 

3. 무엇이 그리스도인을 이렇게 특별한 사람으로 만드는가?

그리스도인은 자기가 철저하게 소망이 없고 정죄받은 존재임을 안다. 그리스도인은 자기가 하나님의 원수요 외인임을 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고 무언가를 깨달은 사람이다. 독생자를 보내셨을 뿐 아니라 죄인인 자기를 위하여 그를 십자가의 죽음으로 보내신 것을 안다. 그리스도인은 이 모든 일이 자기를 위해 있음을 안다. 이것이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그의 태도를 변화시킨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용서를 받을 자격이 없을 때 용서를 받은 사람이다. 그러니 그가 원수를 용서해 주지 않을 권리가 어디에 있겠는가?

그뿐 아니라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 삶을 참 생명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지나지 않으며 자신이 나그네임을 알게 되었다. 그리스도인은 터가 있는 성을 찾고있는 사람이며 장차 올 영구한 도성을 찾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것은 그의 모든 것을 변화시킨다. 그리스도인은 자기가 그리스도의 얼굴을 보게 될 것의 영광의 소망을 갖고 있다. 저 위대한 이침이 올 때, 여기 땅 위에 있을 때 어떤 사람을 용서하지 않았거나 사랑하지 않고 미워한 모든 것을 기억하게 되기를 원치 않는 사람이다.

 

그리스도인은 산상설교를 읽고 나는 이렇게 살려고 한다. 내가 살아야 할 삶이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므로 이것이 그리스도인을 특별하게 만들어 준다. “남보다 더 하는 것이 무엇이냐여러분은 특별해야 하고 특별해야 한다. 여러분은 특별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원수를 사랑하며 나희를 저주하는 자를 축복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선을 베풀며 너희를 모욕하고 핍박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라 그것은 이 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인 것이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인의 아버지가 되신다. 하나님이 여러분의 아버지라면 신의 성품이 여러분 속에 있어, 여러분은 다른 사람과는 달라야 한다. 성령께서 안에 계셔서 채워주시며 인격 속에서 강력한 힘을 역사하여 그 분의 뜻대로 행하게 하신다. 더구나 하나님의 사랑이 성령을 통하여 그리스도인의 마음에 부은 바 되었다. 그리스도인은 특별하지 않을 수 없다.

마음속에 하나님의 사랑을 부음 받지 못한 사람이 어떻게 원수를 사랑할 수 있겠는가? 여러분은 포도나무의 한 가지이다. 힘과 생명과 양식이 거기에 있다. 여러분은 열매를 맺게 되어 있다.

 

여러분에게 특별한 점이 있는가?

여러분이 선하며, 도덕적이며, 바른 삶을 살고 있는가를 묻지 않는다. 여러분이 기도하는가, 여러분이 교회에 규칙적으로 참석하는가를 묻지 않는다.

여러분에게 특별한 자질이 있는가?

여러분의 아버지의 그 무언가가 여러분에게도 있는가? 이것이 시금석이다.

 

여러분에게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자녀임을 선언하는 이 특별한 분리성을 발견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


출처 : 청교도 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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