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도 아카데미

[스크랩] 제임스 패커, `청교도 사상`, 4장 성경의 인증, 5장 성경의 해석, 6장 오웬의 교훈 (강의안)

강대식 2018. 3. 14. 17:57

4.   성경의 인증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을 믿는 믿음은 어떻게 생겨나는가? 성경의 저자이신 성령께서는 외적증거와 내적증거라는 이중적 효력에 의해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신령한 믿음에 역사하신다. 성령의 내적 증거는 인간들이 믿을 수 있도록 인간의 마음에 작용하시는 성령의 내적 역사이며, 외적 증거는 성경의 신적 기원에 대해 성경 안에서 그리고 성경에 의해 증거하시는 동일한 성령의 외적 역사이다. 전자는 후자를 전제하며 또한 상관적이다.

 

그리고 이 두 가지는 모두 고전적 개혁주의 교리의 진술인데, 칼빈이 최초로 <기독교 강요>에서 성경에 대한 믿음의 근거로 성령의 증거를 말함으로 유명하게 되었다. 칼빈은 외적 증거에 대해서는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았다. 오웬의 탁월한 점은 성령의 외적 증거에 대한 강조이다. 오웬의 교리는 성경에 대한 성령의 이중적 증거이다.

 

성령의 외적 증거.

모든 성경의 직접적인 저자이신 성령은 안에서 그리고 성경에 의해 신령한 진리와 성경의 기원에 증거를 하셨다. 즉 성경에 가동된 신적 권위와 정확성의 특징들에 의해 그리고 성경의 능력과 효력 안에서 그 특징들 자체를 증거하시는 것이다.” 성령께서 이 효력을 어떻게 이루시는가? 세 가지 활동으로 하신다.

 

성령께서는 성경에 불변하는 의 특성을 부여하신다. 오웬은 어두운 데 비취는 등불”(벧후1:19),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119:105), “주의 말씀을 열므로 우둔한 자에게 비취어 깨닫게 하나이다”(119:130)등 유사 구절들을 인용하여 빛으로서의 성경을 나타낸다. 빛은 그 본질에 있어 자기 증명적이다.

 

성령께서는 성경에 권능을 주심으로 신령한 결과들을 낳게 한다. 성경은 인간의 삶을 분쇄하고 재창조하는 영향력에 의해 자신의 신적 기원을 증거한다. 오웬은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너희를 든든히 세우사”, “하나님의 능력”(4:12,20:23,고전1:18)의 성경의 묘사들을 인용한다.

 

성령께서는 성경을 개개인 의식에 침투하게 하여 각 사람에게 하나님 자신이 개인적으로 말씀하시는 말씀으로 의식하게 하여 경외감과 하나님 앞에, 하나님 눈 아래 있는 의식을 불러 일으킨다.

이렇게 성령의 활동을 통해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을 증거하고 인증한다.

 

성경을 믿는 믿음의 확립- 내적 증거

성령의 내적 증거는 인간의 선천적인 영적 무지를 제거하고 그의 심령의 눈에서 장막을 걷고, 그의 오만과 편견을 함께 깨뜨리고 그에게 영적 실재들에 대한 이해력과 지각’(5:14)을 모두 주는 내적인 조명의 활동이다. 신약 성경이 마 11:25~27, 1:17~19에서 나타내다또는 계시하다는 동사를 사용할 때 언급하고 있는 바가 바로 이것이며, 또한 사도 요한이 모든 것을 가르치는 기름부음으로 성령에 대해 말할 때(요일2:27) 마음 속에 생각하는 바도 바로 이것이라고 오웬은 말한다. 영적 실재들에 대한 지각이라는 수반되는 경험은 즉각적이며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놀라운 것이다.

 

성령께서 신자들에게 믿는 사실들의 능력과 실재에 대한 영적 감각을 주심으로 그들의 믿음은 매우 확고해진다. 이 지각은 종종 맛보고, 눈으로 보고 느끼는 감각 활동들로 표현되며 자연적인 일들에 확신을 얻는 방법과 같은 식으로 표현된다.

 

또한 성령께서는 자신이 조명한 사람들이 성경의 신성을 의심하는 유혹을 받지 않도록 계속 보살피며 또한 그 의심들이 솟아나는 모든 원천- 정욕, 불신, 반대적 논증의 압박, 하나님과 하나님의 권위에 대한 지각의 결핍, 그 밖의 모든 영적 불안- 으로부터 보호하신다. 이 모든 일들이 성령의 내적 증거에 속한 것이라고 오웬은 묘사한다.

 

따라서 우리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믿음을 소유하는 근거들은 성경 안에서 성경으로 계속 제시하는 성경의 신적 기원에 대한 성령의 외적 증거이다. 그리고 우리가 그렇게 믿는 이유는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을 조명하셨고 우리 안에 믿음을 생기게 하사 우리로 믿을 수 있게 하셨기 때문이다”.

 

5.   성경의 해석

 

오웬의 첫 번째 주장은 그가 마땅히 사용해야 하는 은혜의 수단을 사용하는 모든 그리스도인은 삶과 경건을 위해 알 필요가 있는 모든 것을 성경에서 터득할 수 있다는 의미에 있어 성경은 명쾌하다는 개신교의 표준적인 주장이다. 오웬은 교회의 공식(설교) 비공식(그리스도인들과의 토의)의 단체적인 성경 학습에서만 개인이 성경의 가르침의 바른 이해에 도달하기를 기대한다. 그러한 학습도 쉬운 것은 아니다.

 

마음 속에 있는 선천적인 악들- 오만, 타락된 감정, 나태, 음침한 생각, 변덕스러운 관습, 악한 합리화-은 우리의 진보를 방해한다. 오직 신령한 방법으로만 이 악들을 역습하여 정복할 수 있다. 성경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신령한 방법은 다음과 같다. 즉 빛을 구하는 끊임없는 기도, 터득되는 모든 진리의 능력을 경험하려는 열망, 모든 진리를 알자마자 바로 양심적으로 순종을 실행하는 것 그리고 교회에서의 예배 생활이다.

 

그는 성경을 하나의 풍경으로 관찰했다. 즉 관찰자에게 그 경치의 매력적이고 충격을 주는 부분은 외관적인 배열의 질서에 있는 것이 아니다. “비록 분명히 바울의 몇몇 서신들, 특별히 로마서에는 가장 중요한 복음 교리들의 일정한 방식에 따른 배열이 있으나 성령께서는 성경에서 교리들, 또는 초자연적인 진리들을 어떤 체계나, 순서나, 방법에 적응시켜 배열하지 않으셨다.” 오웬은 대체적으로 성경을 교리들(하나님에 대한 사실들)과 그 교리들을 적용하는 모범들로 이루어졌다고 보았다.

 

오웬은 성경의 여러 책들의 현상태의 배열은 실제로 다른 어떤 책들의 배열보다 더 실제적이고 유익하다고 주장한다. 성경의 배열은 우리에게 바른 형태로 묵상하는 공부를 하게 하며, 교리 지식에 대한 지적 오만감을 가지려는 유혹을 막아준다. 우리가 신실하게 하나님을 섬길 때 거룩한 메시지는 모든 변화의 능력으로 우리에게 알려지고 적용된다. 성경의 목적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경외와 순종과 경의를 생기게 하는 것이다. 즉 사람들을 거룩하고 의롭게 하는 것이다. “때로 성경의 어떤 이야기의 한 구절, 한 단어, 또는 한 표현이 한 권의 박식한 토론보다 우리 영혼에 믿음과 사랑을 불러일으키는 데 더 많은 공헌을 한다.”

 

6.   존 오웬의 교훈

 

웨스트민스터 대교리문답의 질문 4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은 어떻게 분명한가?이다. 그 답은 다음과 같다.

성경은 그 위엄과 순정함에 의해,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드리는 모든 부분들과 전체 범위의 일치에 의해, 죄인들을 납득시키고 회심시키며 신자들을 위로하고 구원을 학립시켜 주는 그 빛과 능력에 의해, 스스로 하나님의 말씀임을 나타낸다. 그러나 성경에 의해 그리고 성경으로 사람들의 심령에 증거하시는 하나님의 성령께서만이 성경이 참으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완전하게 납득시킬 수 있으시다.

 

오웬의 신적 의미 전달에 대한 교리는 단지 이 견해를 자세히 쓴 것일 뿐이다. 오웬이 제시하는 것보다 더 완전하고 유력하게 하나님의 백성에게 말씀을 확신시키시는 성령에 대한 교리를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 연구가 우리에게 상기시키는 바는 성경의 가장 훌륭한 증거는 언제나 성경이라는 사실과 성령의 능력 안에서 성경의 진리를 설교하는 것이 성경의 영감과 성경이 선포하는 신적 실재들에 대한 믿음을 생기게 하기 위해 많은 논증을 하는 것보다 더 유익하다는 사실이다.

 

이 연구는 또한 우리 자신이 성경을 탐구하고 가르칠 때 마땅히 드려야 하는 영광을 성령께 드리고 있는지 자문하라는 도전을 준다. 해석의 문제가 발생할 때 우리는 얼마나 많이 얼마나 열심히 기도하는가? 그리고 우리는 사람들에게 말씀을 완전하게 설교하는 사람들인가? 하나님의 말씀을 해설하고 적용하는 것 외에는 어떤 일도 행하기를 거부하는 것이 기독교 교육자들로서 우리의 영광인가? 오웬의 하나님으로부터의 의사전달에 대한 교리가 이러한 사역을 완수하려는 우리의 열심을 갱신시키고 하나님의 인도 아래에서 이 사역이 얻게 되는 결실에 대한 우리의 확신을 갱신시키기를 축원한다. p 129


출처 : 청교도 아카데미
글쓴이 : 강대식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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