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와 성령
오늘 이 주제는 이전에 거의 언급된 적 없는, 새롭고 매우 어려운 주제입니다. 그러나 이 주제는 아주 중요해서 자주 다루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성령을 믿사오며.” 우리가 이 문구를 우리의 신조로 고백했다면, 개인적 체험을 통해서도 우리 입술로 경건하게 고백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성령의 임재와 사역은 우리가 평생 동안의 사역에 필요한 지혜와 소망에 대해 확신을 품을 수 있는 근거입니다. 목회의 성공에 대한 소망과 목회를 계속하는 데 필요한 힘은 주의 영이 우리 위에 거하신다는 믿음에 달려 있습니다.
1. 왜 목회자에게 성령의 도우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한가
어디서 성령의 도움을 구할 수 있을까? 하나님이 축복하셔서 이러한 고찰이 성령의 도움을 지속적으로 받는 데 유익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시다.
첫째, 성령은 지식의 영이십니다.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요16:13). 이 점에서 우리는 성령의 가르침을 필요로 합니다. 우리는 공부가 절실히 필요합니다. 남들을 가르치는 선생은 자신이 먼저 배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준비하지 않고 습관적으로 강단에 오르는 것은 용서할 수 없는 뻔뻔한 행동입니다. 그보다 더 우리 자신과 사역의 품위를 떨어뜨리는 것은 없습니다.
우리에게 성령의 도움이 필요한 때는 바로 성경을 앞에 놓고 홀로 씨름하며 열심히 연구하는 복된 수고의 때입니다. 성령께서는 하늘의 보고를 여는 열쇠를 들고 계셔서 우리를 측량할 수 없이 부요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흑암 중의 보화와 은밀한 곳에 숨은 재물”(사45:3)을 주실 수 있습니다. 아무리 원문을 연구하고 주석을 살펴보고 깊이 묵상해도, 성령께 간절히 부르짖는 일을 소홀히 한다면 여러분의 공부는 아무 유익이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은 특별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에 대해 가르쳐 주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특히 소중합니다. 그것이 바로 설교의 요점입니다. 성령은 그리스도에 대한 것들을 취해 우리에게 보여 주십니다. 성령은 특히 그리스도에 대한 것들을 기뻐하셔서 십자가를 신령한 빛으로 집중적으로 조명해 주십니다.
성령은 지식의 영으로서 우리에게 복음에 대해 가르쳐 주실 뿐 아니라 다른 모든 일에서 하나님을 볼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십니다. 우리는 자연에서나, 일반적인 역사에서나, 날마다 섭리로 일어나는 일들에서나, 자신의 경험에서나, 하나님께 눈을 감아서는 안 됩니다. 복된 성령께서는 이 모든 일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설명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주께서 제가 무엇을 하기를 원하시는지 가르쳐 주소서.’ 성령은 성소의 일곱 가지가 달린 금 촛대이시므로 그분의 빛을 통해 모든 것을 올바로 볼 수 있습니다.
굿윈(Thomas Goodwin 1600-1680)이 이와 같이 적절히 말한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가 진리를 알려면 진리에 수반되는 빛이 있어야 한다. 모든 은혜 충만했던 이들의 경험이 이를 입증한다. 어떤 때는 말씀에서 뭔가를 발견하는데 다른 때는 그렇지 않고, 어떤 때는 심령에 은혜가 있는데 다른 때는 없으며, 어떤 때는 영적인 안목이 트이는데 다른 때는 그렇지 못한 이유가 무엇인가? 우리의 눈은 늘 같지만 이 어두운 등불에 불과한 눈을 여시고 감기시는 분은 성령이시다. 성령께서 눈을 여시거나 감기시는 대로 우리는 더 보거나 덜 보게 된다. 때때로 성령께서 눈을 완전히 감기우시면 눈이 제아무리 좋아져도 영혼은 어둠 속에 처하게 된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령께서 이 빛을 비추시길 기다리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은 어둠 속에 거하며 소경들을 인도하는 소경이 될 것입니다.
둘째로, 성령은 지혜의 영으로 일컬어집니다. 따라서 우리는 지혜에 있어서도 성령을 절실히 필요로 합니다. 지식에 지혜가 뒤따르지 않으면 위험하기 때문입니다. 지혜는 우리가 아는 바를 바르게 활용하는 기술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균형 있게 전하는 일은 말씀을 온전히 이해하는 일만큼이나 중요합니다. 복음의 일부만을 이해한 사람이 그 부분을 지나치게 부각시킴으로써 왜곡된 기독교를 전하면, 그것을 받아들인 이들은 그 결과 왜곡된 성품을 나타내는 해를 입기 때문입니다.
코는 얼굴에서 두드러지는 부분입니다. 그러나 코를 너무 크게 그려서 눈과 입과 나머지 부분들이 전부 작아진 그림은 풍자만화지 초상화가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복음의 어떤 중요한 교리를 너무 강조해서 나머지 진리를 가리는 설교는 더 이상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이 있는 복음이 아니라 진리의 풍자만화가 되고 맙니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그런 풍자만화를 너무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목회자들 중에 약속이나 위로가 되는 부분만 좋아하고 실제적인 거룩의 문제는 거의 다루지 않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신실한 태도로 아무것도 빼지 않고 과장하지 않은 견고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많은 지혜가 필요합니다. 저는 우리 중에 어떤 이에게도 완전한 지혜가 있다고 보지 않습니다. 우리는 대개 조금씩 지나치게 치우쳤거나 잘못된 지식에 빠져 있습니다. 그런 것들을 찾아서 고치도록 노력합시다. 우리는 의식적으로 특정 본문을 다루지 않기도 합니다. 그 이유는 본문을 이해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이해는 하지만 본문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바를 말하기 싫기 때문입니다. 또는 우리 자신의 연약한 점이나 교인들의 편견을 그 본문이 불쾌할 정도로 적나라하게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그런 죄악 된 침묵은 당장 그만둬야 합니다.
그것만이 다는 아닙니다. 하나님 말씀을 제대로 전달하는 법을 안다 해도 시기와 모인 회중에 두루 적합한 말씀을 잘 선별하는 지혜도 필요합니다. 교리를 제시하는 어조와 태도에서도 마찬가지로 분별력이 필요합니다. 인간의 책임에 대해 설교하는 많은 분이 은혜의 교리를 사랑하는 모든 이에게 반감을 살 만큼 너무 율법적인 태도로 말씀을 전하는 것 같습니다. 반면 너무 하나님의 주권만을 강조하는 나머지 인간의 자유 의지를 믿는 모든 이가 칼빈주의에 완전히 등을 돌리게 만드는 분도 많은 것 같아 우려됩니다. 우리는 잠시라도 진리를 감춰선 안 됩니다. 그러나 쓸데없이 거슬리거나 불쾌한 감정을 일으키지 않고,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 이들을 점차적으로 깨우치며, 연약한 형제들을 풍성한 은혜의 교리 속으로 인도하려면 진리를 잘 전하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지혜는 성공하기에 유익합니다(전10:10). 지혜가 있는 자는 시절을 좇아 어울리는 옷으로 단장하고 진리의 열매를 맺습니다. 복되신 성령 외에 누가 이러한 지혜를 줄 수 있겠습니까? 오, 여러분, 반드시 겸손하게 경외하는 자세로 성령의 인도하심을 기다리십시오.
셋째로, 우리는 또다른 측면에서도 성령이 필요합니다. 제단에서 취한 핀 숯을 입술에 댄 것처럼(사6:6-7), 진리를 적절히 선별할 지식과 지혜가 있을 때 그 진리를 거침없이 전할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오, 제단에서 취한 핀 숯으로 입술을 지진 사람은 얼마나 영광스럽게 말씀을 전하겠습니까! 깊은 영혼 속에서만 아니라 말하는 그 입술에도 타오르는 진리의 힘을 느끼면서 말입니다. 주님께 영광을 돌리려면 성령께서 우리의 입술을 열어 주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능력 있게 말씀을 전할 수 없습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 설교할 때 갖가지 마음의 상태를 의식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어떤 때는 바퀴가 벗겨진 바로의 병거처럼 온몸이 무겁기도 하고 어떤 때는 “놓인 암사슴”(창49:21)처럼 몸이 가볍지 않습니까? 우리는 뭔가에 묶여 있거나 허공을 치는 듯이 설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알고 있습니다. 이 모든 일을 성령께서 주관하신다는 것을 모를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우리의 사역에서 거룩하고 복된 변화가 일어난다면 그것은 성령께서 우리 영혼에 일으키신 역사일 것입니다.
넷째로, 성령께서는 또한 관유(붓는 기름)의 역할도 하십니다. 이것은 전체 설교 전달, 즉 단지 입으로 말하는 것만이 아니라 설교의 전달 과정 전체를 놓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성령은 여러분이 설교 주제에 완전히 사로잡힐 때까지 그 주제를 깊이 묵상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땅에 짓밟히는 것처럼 낙심하거나 독수리 날개 위에 탄 것처럼 하늘 높이 비상하게 됩니다.
또한 성령은 여러분에게 설교 주제뿐 아니라 설교를 듣는 청중의 영적 상태에 대해서도 더 깊이 느끼게 하십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사람들이 회심에 이르고 그리스도인들이 이전보다 더 높은 수준으로 도약하기를 열망하게 됩니다. 그와 동시에 여러분에게 또다른 감정, 곧 여러분이 전하는 진리를 통해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기를 바라는 강렬한 소망이 생깁니다.
여러분은 설교를 듣는 청중에 대한 깊은 연민을 느끼게 됩니다. 어떤 이들은 진리를 많이 알지 못함으로 인해, 어떤 이들은 많이 알지만 받아들이지 않음으로 인해 그들을 놓고 애통해합니다. 어떤 청중의 얼굴을 보면 마음 속에 ‘성령의 이슬이 떨어지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지만, 어떤 이들을 보면 안타깝게도 이슬이 없는 길보아 산과 같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 모든 일이 설교 도중에 일어납니다.
강단에서 우리는 설교 첫마디부터 끝마디까지 전능하신 하나님께 능력을 구할 수 있도록, 경건의 영에 하나님을 의지하는 영을 더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지금 이 순간까지 설교를 잘 했어도 성령의 도움을 받지 못하시면 여러분은 설교를 마치기 전에 어리석은 짓을 저지를 것입니다. 반면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의지하며 설교 내내 산을 향해 눈을 들어 도움을 구하면(시121:1), 여러분은 담대하고 확신에 찬 영으로 설교할 것입니다.
오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말씀을 전할 때 축복해 주실 것을 믿고 설교하십시오. 우리는 이미 약속을 받았습니다. 설교를 마치고 나서는 축복을 받은 사람들이 있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사55:11)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이 그 약속을 지키시는 것을 보면 놀랍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우리의 감성과 지성을 적절한 상태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설교 내내 성령이 필요합니다. 영적인 상태가 바르지 않으면 삼손이 힘을 잃은 것처럼 말에 설득력을 잃게 되고 그 사실을 성도들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어떤 분은 호통을 쳐서 혈기를 발산합니다. 어떤 분은 자기 이야기를 하면서 교만을 드러냅니다. 어떤 분은 강단에 선 것 자체가 자기 딴엔 겸손인 것처럼 설교하는 반면 어떤 분은 강단에 선 것도 황송해하는 듯이 설교합니다. 태도와 말투에서 오류를 피하려면 우리는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그분만이 우리에게 유익이 되도록 가르치십니다.
다섯째로, 우리는 성령께서 복음 가운데 역사하셔서 실제적인 효과를 얻을 수 있도록 성령을 온전히 의지해야 합니다. 성령의 검을 사람들의 심령에 꽂아 넣는 것이 우리의 목표입니다. 올바른 효과를 목표로 삼으십시오. 성도들을 더 고상한 진리로 감동시키고 주님께 더 가까이 인도하며, 불신자들을 두려움에서 헤어나올 때까지 위로하고 회개시켜 그리스도를 곧바로 믿게 해야 합니다.
은혜의 기적으로 우리의 사역에 인 침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이 아니시면 누가 그렇게 인 쳐 주실 수 있겠습니까? 주님의 영이 도와 주시지 않으면 우리는 결코 목표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심한 통곡과 눈물로”(히5:7) 날마다 성령을 기다리십시오. 많은 사역이 열매 없는 근본 원인은 성령의 능력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는 데 있습니다.
다음으로 우리는 간구의 영이신 성령을 필요로 합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성도들을 위해 중보하십니다. 우리 삶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성령 안에서 기도하는 일입니다. 풍성한 기도는 열정적인 설교와 함께 가는 법입니다. 늘 무릎꿇을 수는 없지만 영혼만은 경건한 자세를 유지해야 합니다. 기도의 습관도 좋지만 기도의 영은 더더욱 중요합니다. 규칙적으로 따로 기도하는 습관을 유지해야 합니다. 그러나 기도의 목표가 ‘하나님과의 지속적인 교제’이어야 합니다. 우리 목회자들은 기도로 우리의 심령을 올려 드리지 않는 상태로 오랫동안 있어서는 안 됩니다.
더 나아가, 성령은 거룩의 영이시므로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목회 사역의 중요하고 본질적인 요소는 본을 보이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교인들은 우리가 강단 밖에서 하는 말과 친교 모임에서나 다른 장소에서 하는 행동을 눈여겨봅니다. 목회자는 아무리 깨끗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또한 분별의 영이신 성령이 필요합니다.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마음을 잘 아시듯이 인간의 마음도 잘 아시기 때문입니다. 다양한 성격을 가진 사람들을 다루려면 이런 자질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성령께서 지도해 주시지 않으면 우리는 수없이 다양한 경우에 대처하는 방법을 알지 못할 것입니다.
교회를 감독하고 지도하는 일에도 성령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아무런 권위를 내세우지 않아도 사람들에게 두루 존경받고, 부드러운 말로 충고해도 그 말이 곧 법처럼 힘있게 받아들여지는 영적인 아버지의 지위보다 더 높은 지위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 사람은 교인들의 바람을 염두에 두므로 교인들도 먼저 그의 권면을 듣고 싶어한다는 것을 압니다. 교인들의 소망을 늘 존중하므로 교인들도 기꺼이 그를 존중합니다. 확고하면서도 온유한 그는 만인의 종이기 때문에 또한 만인의 우두머리입니다. 이렇게 되려면 위로부터 지혜가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2. 어떤 경우에 목회자가 성령의 도우심을 잃게 될 수 있겠는가?
목회자도 성령의 도우심을 잃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여러분이 신자로서 멸망하는 일은 없습니다. 영생이 여러분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목회자로서는 파국을 맞고, 주님의 증인으로서는 더 이상 쓰임 받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분명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성령을 근심시키거나 노하게 하거나 심지어 거부할 수도 있습니다. 가장 안 좋은 경우는 우리가 성령의 뜻을 거스름으로써 그분을 모독하여, 그 옛날 사울 왕의 경우처럼 성령이 더 이상 우리를 통해 말씀하지 않으시고 우리를 떠나시는 경우입니다.
여러분, 성령을 근심시킬 악행들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과의 교제에 합당치 않은 목회자는 성령의 놀라운 능력을 체험하는 일에도 합당치 않습니다. 그 외에도 특별히 피해야 할 일들이 있습니다.
우선 민감성의 부족, 즉 성령의 감동에 불순종하는 데서 오는 무감각한 상태입니다. 또다른 뼈아픈 잘못은 신실치 못한 경우입니다. 혹시 여러분은 어떤 교리를 설교하는 이유가 그 교리를 믿어서가 아니라 단지 교인들이 그런 설교를 기대하기 때문입니까? 그리고 전반적으로 은혜가 부족하기 때문에 성령을 크게 근심시킬 수도 있습니다. 목회하는 분 가운데 은혜가 부족한 사람이 어디에 가나 있습니다. 그는 영적이지도 않고 그리스도의 향기도 없습니다. 그의 심령은 속에서 타오르지 않으며, 그의 영혼은 살아 있지 않습니다. 그 부족함이 모든 것을 망쳐 놓습니다.
성령이 역사하지 않게 하는 또다른 악은 교만입니다. 성령은 또한 게으름을 싫어합니다. 구세주를 위한다면서 게으름을 피우는 것은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는 악입니다. 그리고 개인 기도를 소홀히 한다거나 그 외의 많은 악을 행하는 것도 똑같이 불행한 결과를 초래할 것입니다.
3. 성령이 떠나시면 목회자에게 어떤 일이 생기는가
성령께서 크게 근심하시고 우리를 떠나시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십니까? 두 가지 가능성이 있습니다. 첫째는 우리가 하나님의 참된 종이 전혀 아니었을 가능성입니다. 둘째는 발람이나, 심지어 그가 탄 나귀처럼 하나님께 잠시 쓰임 받았을 뿐인 경우입니다. 안타깝게도 저는 어떤 이들이 사울처럼 성령께 버림받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참된 복음 전도자를 괴롭히고 철학이라는 사술에 의지하며 사라진 이단사설에서 도움을 구합니다. 성령께서 거하시지 않으면 우리가 있는 자리는 그 어떤 자리보다 위험한 자리입니다. 그러니 조심하십시오.
여러분, 저는 우리가 참으로 하나님의 자녀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이 우리를 떠나시면 여로보암 왕 때 여호와의 명을 순종하지 못했던 그 속임 당한 선지자처럼 우리도 갑자기 데려감을 당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았고 육신이 죽임을 당한 것이 곧 영혼을 잃어버렸다는 증거는 아닙니다. 그러나 그의 사역은 그 순간 그 자리에서 끝나 버렸습니다. 더 나쁜 경우는 우리가 삼손의 삶을 되풀이하는 경우입니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시는 하나님입니다(신6:15). 우리는 그분의 영광이 우리의 모든 행동의 유일한 목적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요3:30). 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런 마음을 주셔서 하나님 앞에서 조심스럽고 겸손히 행하게 해주시기를 소원합니다.
-스펄전의 목사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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