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장 역동적 권능으로서의
현재의 하나님 나라
사탄이 매임을 당함
먼저 마12:28의 정황을 조사하여야 하겠다. 귀신을 내어쫓은 일은 예수의 사역 가운데 가장 특징적으로 드러나는 활동 가운데 하나였다. 마가는 처음 서두에서부터 귀신을 내어쫓는 역사를 예수님의 사역의 주요 주제로 제시하고 있다(막1:23-28). 열두 제자들의 전도(막6:7)와 칠십인의 전도(눅10:17)가 이 동일한 주제를 강조해 준다. 로빈슨은 이 귀신을 내어쫓는 일을 종말론적 하나님이 통치를 개시하기 위하여 역사 속에서 벌어지는 우주적인 싸움으로 보았다.
예수께서는 선지자들의 소망을 군사적 싸움이 아니라 영적인 차원으로 재해석하셨다. 하나의 종말론적 사건으로서의 하나님 나라의 강림은 인자의 파루시아 때에 마귀와 그의 사자들을 영원한 불 속에 멸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마25:41). 이 선과 악의 싸움, 빛과 어두움의 싸움, 하나님과 사탄의 싸움은 예수님의 가르침의 이원론적 구조의 근본적인 요소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주요 대적자가 영적인 존재이므로, 하나님 나라의 승리 역시 무엇보다도 영적 승리인 것이다. 사람은 영적인 권세에서 구원받아야 할 처지에 있으며, 그 영적인 권세는 사람의 능력으로 정복할 수가 없다. 하나님 나라가 궁극적으로 임하며 그의 통치가 우주적으로 세워진다는 것은 바로 영적인 영역에 속한 악의 원리 자체가 멸망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께서 귀신을 내어쫓으신 사건이 하나님 나라와의 관계 속에서 갖는 의미는 바로 이것이다. 즉, 하나님 나라가 악을 종말론적으로 정복하며 사탄을 멸하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가 사탄의 영역을 침범하여 예비적으로 그러나 결정적으로 패배시켰다는 것이다. 귀신을 내어쫓는 일을 하나님 나라의 권능으로 설명하시면서, 예수께서는,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그 세간을 강탈하겠느냐?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강탈하리라”(마12:29)라고 말씀하셨다. 누가는 싸움의 주제를 더 생생하게 강조한다. “강한 자가 무장을 하고 자기 집을 지킬 때에는 그 소유가 안전하되, 더 강한 자가 와서 그를 굴복시킬 때에는 그가 믿던 무장을 빼앗고 그의 재물을 나누느니라”(눅11:21-22).
이 말씀은 복음서 이면에 암시적으로 깔려 있는 종말론적 이원론을 반영해주는데, 이러한 이원론은 여러 가지 점에서 드러난다. 사탄이 강한 자이다. 그의 처소나 집은 “이 악한 세대”이며(갈1:4), 그의 “세간”은 그의 악한 영향력 하에 있는 남녀들이다. 더 강한 자, 곧 예수께서 그를 결박하고 그를 이기신 것이다. 결박하든, 무장을 빼앗든, 사탄에 대한 승리를 의미한다. 예수께서는 비유적인 언어를 통해서 자신이 사람들 가운데서 행하시는 사역을 악한 자를 물리치고 그를 정복하고 그에게서 세간을 빼앗기 위해서 사탄의 나라를 침략하는 것으로 해석하시는 것이다(마12:26). 마지막에 언급된 목적은 사람들을 사탄적인 악의 권세에서 구해내는 것인데, 귀신을 내어쫓는 일이 이를 가장 극적으로 표현해 주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권세로 사탄을 정복하는 이런 일이 이 시대에, 종말론적인 하나님 나라가 임하기 전에 성취된다.
사탄의 떨어짐
“사탄이 하늘로서 번개 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눅10:18). 황홀경 속에서 보았다기 보다는 비유적인 표현으로 보아야 한다. 과연 이 크나큰 영적 싸움을 배경으로 하지 않고서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신약의 가르침을 해석할 수가 없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역동적인 권능이요, 그것을 대적하는 영적 원수들이- 인간적인 원수들과 초인간적인 원수들이- 정말로 있기 때문에 그 나라는 반드시 “임하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가 “임한다”는 것은 곧 사탄의 권세를 침입하여 그의 나라를 무너뜨리는 것을 뜻한다. 예수께서 그의 말씀과 행동으로 사탄의 권세를 깨뜨린 그 만큼 하나님의 나라가 실제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신약 성경은 하나님의 나라를 예수님 자신과 그의 사역 속에 위치시킨다. 예수께서 하나님 나라를 임하게 하셨다. 귀신에 대한 승리는 영적인 세계에서 일어난 승리이다. 그러나 그 일은 예수께서 역사 속에 오셔서 악을 무너뜨리시고 사람들을 그 굴레에서 구원하셨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
우리는 예수께서 칠십인의 성공적인 전도 사역에서 사탄이 패배한 증거를 보신 것으로 결론 지을 수 있다. 제4 복음서는 예수의 죽으신 때를 사탄이 패배한 때로 본다(요12:31,16:11,히2:14). 공관복음서는 예수의 죽음을 하나님 나라의 강림에 필수적인 하나의 사건으로 제시하고 있다. 사탄을 패배하게 만든 것은 예수님의 사역 전체이다. 이 귀신들을 내어쫓은 일들의 더 깊은 의미는 눅10:20에서 볼 수 있다. 무엇보다도 그들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되었다는 사실에 대하여 기뻐하라고 하셨다. 악의 세력을 무너뜨린 것은 다만 목적을 이루는 하나의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악을 멸하는 일은 인류의 구원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기뻐해야 할 진정한 이유는 그들에게 주어지는 구원에 있는 것이다. 바로 하나님의 나라가 악의 권세를 무너뜨렸기 때문에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역동적인 역사(役事)
하나님의 나라는 종말론적인 완성에 앞서 세상에서 행해지는 하나님의 통치의 역동적인 역사이다. 마11:2-6에서 예수의 사역을 통해서 메시야적 성취의 때가 개시되었다는 증거를 보았다. 예수께서는 이사야 35장의 약속을 지목하심으로써 자신이 메시야의 구원을 이루었다고 분명히 밝히셨다. 요한의 보낸 자들이 떠난 후 예수께서는 무리들에게 한 마디 설명의 말씀을 덧붙이셨다. 율법과 선지자의 시대는 요한으로 끝났다. 요한 이후로 새 시대가 개시된 것이다. 이 새 시대의 특징은 바로 이 사실에 있다.;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비아스타이 하르파주신 아우텐”(마11:12).
“천국이 능력적으로 활동하며 또한 능력적인 반응을 요구한다”고 보면 훨씬 뜻이 잘 통한다. 랍비들은 반드시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의 멍에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하나님이 행동하셨으므로, 그의 나라의 역동적인 권능이 세상을 침입했으므로, 사람들은 급진적인 행동으로 반응을 보여야 한다고 가르치셨다.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버리라 —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뻬어 버리라.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막9:43,45,47). 이런 행동들이 바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사람들에게 요구되는 격렬한 행동인 것이다.
다른 말씀에서도 그의 제자가 될 사람들에게 격렬한 행동을 요구하셨다.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하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눅14:26). 그는 또한 자신이 평화가 아니라 검을 주러 이 세상에 왔다고 말씀하셨다(마10:34). 비유들 가운데서, 그는 하나님의 나라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사람이 자기의 모든 소유를 기꺼이 바쳐야 한다고 가르치셨다(마13:44). 부자 청년에게 그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그가 이 땅에서 소유한 모든 것을 버려야 한다고 말씀하셨다(막10:21). 하나님 나라의 임재는 급진적이고도 격렬한 행동을 요구하는 것이다. 묵시론자가 가르친대로 그저 수동적으로 가만히 종말론적 나라가 임하기를 기다릴 수는 없다. 오히려 그 반대로,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그들에게 임하였고,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능동적으로, 공격적으로, 힘을 발휘해서 그 나라를 붙잡아야 하는 것이다. 그 어떤 표현으로 보다도 비아제타이와 비아스타이 사이의 날카로운 재담을 통해서 이러한 사상이 더욱 더 영적으로 묘사되고 있는 것이다. 누가의 표현을 보면 이 해석의 뒷받침을 받는다.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요 그 후부터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 사람마다 그리고 침입하느니라(에이스 아우텐 비아제타이)”(눅16:16).
마태나 누가나 이 두 말씀 모두 세 가지 동일한 요소를 갖고 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격렬한 반응, 하나님 나라의 활동과 사람들의 반응 사이의 대조,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역동적인 역사(役事).
하나님 나라에 대한 역동적인 말씀
이 누가복음의 말씀은 하나님 나라가 현재 역동적으로 역사한다는 또 하나의 증거를 제시해준다.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님의 말씀과 그의 권위 속에 임재해 있었고, 그 속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이 점은 특별히 “복음”(유앙겔리온), “복음을 전하다”(유앙겔리제스타이), “선포하다”(케루세인) 등의 낱말에서 볼 수 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예수님의 메시지는 단순히 교훈이나 예언, 또는 약속이 아니었다. 그것은 복된 소식의 선언이었다. 그것은 복음이었다.
선지자들은 하나님이 그의 백성에게 임하신다는 복된 소식이 선포될 때가 올 것을 약속했다. “보라, 주 여호와께서 장차 강한 자로 임하실 것이요 친히 그 팔로 다스리실 것이라”(사40:9-10). 전령이 산 위에 나타나 평화를 전하고 구원의 복된 소식을 선포하여 시온에 다음과 같이 말할 것이라고 한다: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 여호와께서 열방의 목전에서 그 거룩한 팔을 나타내셨으므로 모든 땅 끝까지도 우리 하나님의 구원을 보았도다”(사52:7,10,사41:27,60:6,나1:15). 이 약속의 날은 여호와의 영의 기름 부음을 받아서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며,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을 전파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할” 자를 통해서 선포될 것이다(사61:1-2). 이 아름다운 소식은 다름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 백성들에게 임하사 그들에게 메시야적 구원을 베푸시리라는 것이다.
나사렛의 한 회당에서 예수께서는 이 복된 소식이 더 이상 소망이 아니라 현실이 되었음을 주장하셨다(눅4:18). 성취의 때가 이제 왔다. 예수께서는 가난한 자에게 복된 소식을 전하며(유앙겔리사스타이), 포로들의 해방을 선포하며(케룩사이), 여호와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도록(케룩사이) 기름 부음을 받은 분이다. 복음 선포 속에서 약속이 성취된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행동만이 아니라 말씀 속에서도 임재해 있었다. 예수께서 선포하신 말씀 그 자체가 그것이 선포한 내용, 즉 포로들의 해방과 눈먼 자들의 회복과 눌린 자들의 해방되는 일을 발생케 한 것이다.
복음 그 자체가 메시야의 표적들 가운데 가장 큰 표적이다. 복음은 새로운 가르침이 아니었고, 그 자체가 바로 사건이었다. 복음 전파와 치유, 이것들이야말로 하나님 나라의 임재를 보여주는 두 가지 표증이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누가(16:16)는 마태의 비아제타이(11:13)를 유앙겔리제타이로 바꾸어 표현한 것이다. “하나님 나라가 그 권능을 행사한다”와 “하나님 나라가 전파된다”는 결국 동일한 사상을 표현하는 것이다. 곧 하나님 나라의 역동적인 임재가 예수님의 행위와 그의 말씀 속에 있다는 사실을 표현해 주는 것이다.
설교와 복음 전파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것은 예수님의 권위이다. 그의 말씀은 그저 인간의 말이 아니었다. 그것은 권위 있는 말씀이었다. “권세 있는 교훈이로다. 더러운 귀신들을 명한즉 순종하는도다”(막1:27). 예수님의 가르침의 고귀함은 형식이나 내용이 아니라 그 권능에서 비롯되는 것이었다. 그가 말씀하시자, 그대로 일이 이루어졌다. 선지자들과도 구분된다. 선지자들이 늘 사용했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라는 어법은 “아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그의 권위 있는 말씀은 하나님의 권위가 자기 자신 속에 임재하고 있음을 알고 있는 자의 말씀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구속적인 통치로서 이제 예수님 자신과 그의 행위와 말씀 속에 임재해 있다.
예수님의 말씀에 나타나는 가장 충격적인 특징은 바로 그의 권위이며, 그 권위는 또한 하나님에 대한 의식의 표현이며 동시에 예수 자신 속에서 “직접 대하는 사건”이 되는 그 직접적인 하나님의 뜻에 대한 표현이기도 하다. 예수님 자신과 그의 행위와 그의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와 그 축복들이 임재하며, 또한 사람들 가운데서 역동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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