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적 신앙

[스크랩] 1857-1858년의 뉴욕 대부흥은 청교도 신학이 참된 부흥을 가져옴을 확인시켰다/ 김홍만

강대식 2018. 10. 5. 14:55

1857-1858년의 뉴욕 대부흥은 청교도 신학이 참된 부흥을 가져옴을 확인시켰다/ 김홍만

 

2차 영적 대각성 이후 미 장로교는 또 하나의 대부흥을 경험하였다. 이 부흥은 구학파로 하여금 청교도 신학이 참된 부흥을 가져다 주는 것임을 확인시키고 더욱 청교도 신학과 부흥 신학을 동시에 견지하게 하였다. 1857-1858년에 일어난 대부흥은 다음과 같은 과정 속에서 일어났다.

 

1850년대에 들어서면서 영적으로 깨어 있는 목회자와 신학자들이 교회와 사회에 대하여 우려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였다. 프린스턴 대학의 교수였던 제임스 알렉산더는 그 당시의 불신앙을 지적했는데, 성경을 부인하고 인간의 이성을 유일한 진리의 근원으로 보는 이성주의와 돈을 최고로 여기는 배금주의 사상, 그에 따른 무신론자들의 득세를 우려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이러한 불신앙이 교회가 부흥을 체험함으로써 고쳐질 수 있다고 믿었으며 부흥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의무라고 말했다.

 

즉 부흥이 교회와 사회에 일어나면 이러한 불신앙을 말끔히 물리칠 수 있으며 수많은 영혼의 회심이 교회와 사회에 경건을 가져다 준다는 것이었다. 특히 제1차 영적 대각성의 경우를 예로 들면서 부흥을 통해 그들의 조상의 믿음을 회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부흥의 필요성을 누구보다도 절감했던 제임스 알렉산더와 구학파의 목회자들은 1857121일 피츠버그에서 부흥을 위한 목회자 회의를 열었다. 또한 제임스 알렉산더 밑에서 9년간 훈련을 받은 제레마이어 램피어가 18577월에 뉴욕시의 노스더취 교회의 선교사가 되어 정오 기도 모임을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1명의 목회자만 참석했지만 점점 숫자가 늘어나 수백 명에 이르게 되었다. 그리고 이 기도 모임은 곧 뉴욕 시내의 목회자와 교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18581, 이 기도 모임은 뉴욕 시내뿐만 아니라 미국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제임스 알렉산더는 이 부흥을 기도로 유지해야 한다고 계속 외치면서 하나님의 참된 부흥으로 이끌기 위해 부흥의 지침서라 할 수 있는 부흥과 교훈을 만들어 배포하고, 설교의 중요성을 인식해서 뉴욕 강단이라는 책을 출판했다. 제임스 알렉산더는 조나단 에드워즈나 테넌트가의 설교처럼 경건치 않은 자에게 임할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주제로 설교하면서 세상적인 자, 스스로 의로운 척 하는 자, 형식주의자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했다. 이는 제1,2차 영적 대각성 때처럼 경건을 위한 청교도의 마음 종교를 적용한 것이었다. 사무엘 버처드 목사는 마음의 종교는 날선 검과 같아서 부흥의 때에 매우 중요하다고 했다.

 

하나님의 율법은 양심과 마음에 질책의 역할을 한다. 따라서 율법에 대한 설교는 복음의 설교에 앞서야 하는데 이는 반드시 필요하다. 자신을 신뢰했던 것에서부터 자기포기와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으로 옮겨진다.”

 

제임스 알렉산더가 청교도의 회심 신학에 강조를 둔 이유는 회심이 부흥의 진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회심이야말로 진정한 경건을 가져다 주는 수단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이는 프린스턴 신학이 경건을 위해 개인의 회심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말한 것과 같다. 이렇게 1857-1858년의 대부흥은 장로교의 구학파를 더욱 영적으로 강건하게 하였다. 그래서 1858년 총회에서(구학파) 대부흥에 대해 다음과 같이 보고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듣기를 애쓰고 있으며 은혜의 수단에 참여하기를 열심으로 하며 지속적으로 교인 수가 증가되는데 성령의 능력의 나타남에 의한 것이다. 모든 노회에서 죄인들을 회심시키고 성도들을 세우며 양떼들을 훈련시키는 주의 사역이 더욱 세차게 넓고 깊게 진전되었다. 성령의 임재와 능력과 은혜로 많은 사람들의 구원이 엄청나고 귀한 것임을 깨우쳤다.”

 

총회는 대부흥 때 죄인들이 회개하는 모습을 서술하기도 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손으로 우리를 누르셔서 우리가 일하고 수고하는 것에 경고와 고통을 주셔서 그것에 대한 부르짖음이 있게 하였고 이는 사람들의 마음을 떨구어 그들의 생각들을 하나님에게 직접적으로 돌리셨다. 고통과 재앙의 불을 통해 교회로 겸비케 하고 회개토록 하셨으며 주님만 더욱 의지케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의 은혜의 복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총회는 부흥 때의 구원의 가르침이 중요한 은혜의 수단임을 다시 확인하였는데 그것은 칼빈주의 표준이었다고 했다. 결국 대부흥은 구학파가 청교도 신학을 그대로 전수하고 있으며 그것을 부흥 신학의 수단으로 삼았음을 보여 주었다. 이것은 19세기 후반의 구학파가 국내 선교와 해외 선교 신학의 기저가 됨을 나타내며, 한국 초기 장로교회는 이러한 역사, 신학적 배경 가운데서 시작되었다.

 

김홍만, ‘초기 한국 장로교회의 청교도 신학’, pp 63-69


출처 : 청교도 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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