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장 구원받는 자가 적다
“구원을 얻는 자가 적으니이까”(눅13:23)
이 글을 읽는 독자는 자신을 그리스도인으로 인정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당신은 구원을 받을 것인가라고 물어보아야 한다. 구원을 받는 것이 쉬운 일이라면, 나는 지금 내가 하고 있듯이 이렇게 책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구원받는 자의 수에 대하여 성경에 분명하게 말씀하지 않았다면 나 역시 입을 다무는 것이 나을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가?
1. 구원받는 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설명하고자 한다.
분명히 해두어야 할 것은, 이것을 알게 될 때에만 비로소 다음 단계를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1) 구원받는 것은 이생에서 구세주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죄책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이다. 구원의 첫째 부분이다.
2) 구원받는 것은 그리스도의 영으로 거듭나서 거룩하게 되어 현세에서의 죄의 세력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이 구원의 두 번째 부분이다.
3) 구원받는 것은 심판 날에 두려운 죄의 결과로부터 해방되는 것이다. 당신은 그리스도 안에서 아무런 흠도 점도 없고 실수도 없이 완전하다는 선언이다. 구원은 다른 사람들은 그리스도와 관계가 끊어지고 영원히 버려지는 반면, 당신은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그의 사랑하는 자식이요, 종이라고 선언해 주는 것이다. 구원은 영원히 죽지 못하는 벌레와 꺼지지 않는 유황불, 끊임없는 비탄과 울부짖음 등의 지옥의 영역에서 벗어나 있다는 선언이다. 구원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는 날에 의로운 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광된 몸과 타락하지 않은 영원한 왕국과 시들지 않는 면류관과 즐거움의 상급을 받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완전한 구원이다.
- 구원은 죄책과 죄의 세력, 죄의 결과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구원은 지금 믿고 거룩하게 되는 것이며 마지막 날에 하나님의 진노에서 해방되는 것이다. 현세에서 믿음이 있는 자는 의심할 바 없이 첫 번째 부분을 가졌으며, 내세에서 두 번째 부분인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벗어나게 될 것이다. 이 두 부분은 서로 연관성이 있다. 따라서 인간은 먼저 거듭나지 않는다면 나중에 구원받을 것이라고 상상해서는 안 된다. 또한 지금 거듭난다면 내세에 확실하게 구원받으리라는 것을 의심하지 말아야 한다.
- 복음을 전도하는 목사는 주된 목표가 영혼을 구원하는 데 있다는 것을 항상 기억해야 한다. 이것을 깨닫지 못하는 목사는 삯꾼이요, 목사가 아니다. 회중은 그를 요구할지 모르나 성령은 그를 요구하지 않는다. 목사란 단순히 예배를 주관하며, 수많은 설교를 하는 것인가? 단순히 편안한 생활과 존경받는 직업을 얻는 것인가? 목사는 무엇을 위해 보내졌다고 생각하고 있는가? 인간을 어둠으로부터 밝은 곳으로, 사탄의 힘으로부터 하나님에게로 인도하기 위하여 보내졌다. 다가오는 진노로부터 인간을 해방하라고 설득시키고자 보내진 것이다. 세상을 섬기는 일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일로 그들을 이끌고자 보내진 것이다. 그들을 잠에서 깨우고 부주의에서 일으키고자 보내진 것이다.
정기적으로 예배를 드리도록 그들을 설득한 것으로 모든 것을 다했다고 생각하지 말라. 회중이 모두 모여들고 넘쳐난다고 하여 모든 것을 다했다고 생각하지 말라. 목사가 아주 사소한 어떤 것에 만족하여 살아간다면 그는 우매한 자요 사기꾼에 불과할 것이다. 또한 그는 소경을 이끄는 눈먼 인도자일 뿐이다.
- 결국 구원받는다는 것은 종교가 지닌 지극히 위대한 목표이다. 우리가 깊이 생각해야 할 문제는 교회에 갈 것인가 말 것인가의 문제나, 많은 종교적 의무를 수행할 것인가 말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문제는 우리가 궁극적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는가의 문제이다. 우리는 구원에 이르지 못하는 어떤 것에도 결코 만족해서는 안 된다. 인생의 평화와 죽음에서의 희망과 내세의 영광을 주지 못하는 종교에 만족한다는 것은 참으로 유치하고 어리석은 행위이다.
2. 구원받는 자의 수에 대하여 세상에서 일반적으로 저지르고 있는 잘못을 지적하고자 한다.
- 사람들은 자신을 둘러싼 주변 사람이 지옥에 갈 위험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가? 그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고 보이는 증거는 전혀 없다. 그들은 함께 먹고 마시며 웃고 이야기하며 일한다. 그들은 하나님과 영원과 천국과 지옥에 대해서는 거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그들은 누군가가 악하거나 불경한 것을 거의 상관하지 않거나 결코 상관하지 않으려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의 밑바탕에는 선한 마음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악한 사람은 아니라고 말할 것이다. 이러한 것은 모두 사람들이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고 자기를 합리화하려는 것을 말한다. 그것은 대부분의 사람이 구원을 받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 불행하게도 사람들은 이 세상을 떠난 사람들의 상태에 대해 좋게 말하려고 하는 풍조가 있다. 그가 살아 있을 때 어떻게 행동했는가 하는 것은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회심이나 칭의의 증거를 보여주지 못한 채 영혼이 없는 피조물로서 살다가 죽을 수도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아무 거리낌 없이 “더 좋은 세상으로 가 살아 있을 때보다 행복하겠지”라고 말을 한다. 그것은 사람들이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라고 믿으려 한다는 것을 말해 준다. 또한 사람들은 그들 대부분이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믿고 있음을 말해 준다.
엄숙하게 하나님의 모든 권고를 말해주고 그들에게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 뒤로 미루려 하지 않는 목사를 그들에게 보내라. 회심한 자와 회심하지 않은 자 사이에 분명하게 선을 긋게 하라. 참된 그리스도인의 품성에 대해 분명히 설명하라. 그런 품성이 없이 죽은 영혼은 구원받지 못한다는 것을 기회 있을 때마다 주장하게 하라. 그러면 어떻게 될 것인가? 그 결과 몇몇 회개한 자들은 구원을 받는 반면에 대부분의 청중은 그가 말하는 교리를 받아들이려 하지도 믿으려 하지도 않을 것이다. 청중은 공개적으로 그를 반대하지는 않지만 대부분의 청중은 그가 ‘너무 엄하거나’, ‘폐쇄적이며’, ‘괴짜’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자신의 영혼을 편안한 상태로 놓아두기를 원한다. 그들은 그렇게 생각하고 싶기 때문에 “평안하다. 평안하다”라고 외치는 것이다. 이와 같은 공허하고 근거 없는 견해에 대항하여 목사는 분명하게 항의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고전2:14)
3. 구원받는 자의 수에 대하여 성경은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마7:13-14) 그분의 말씀이며, 그 말씀은 사람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가를 아시고 과거와 미래를 아시며, 마지막 날에 모든 인류를 심판하실 분의 말씀이다. 그 말씀은 인간의 머리로는 상상할 수도 없이 깊고 수수께끼 같은 말씀인가? 결코 아니다. 그 말씀은 바로 다수가 잃어버린 바 되고 소수만이 구원받으리라는 것이다.
- 종교를 존중하였던 인류의 역사를 살펴보면, 노아시대 사람들은 낙원을 상실한 것을 잊어버렸고 노아의 입을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하였다. 홍수가 온 땅을 덮었을 때 구원받은 자가 많았는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롯의 시대는 어떠하였는가? 소돔과 고모라가 불에 탔을 때, 그 평원의 네 도시 안에서는 의로운 사람을 단 다섯 명도 찾아 낼 수 없었다. 아브라함이 이삭의 배필을 구하고자 했을 때 그들이 거하였던 땅에서는 그들과 혼인할 수 있는 여인을 단 한 명도 찾아낼 수 없었다.
사사시대에도 자신들이 저지른 죄로 인하여 외국 왕들에게 압박을 받고 나중에서야 기적적으로 해방되는 것에 대해 여러 번 읽게 된다. 마치 진창 속으로 되돌아가는 돼지와 같지 않은가?
열왕기시대는 첫 번째 왕 사울에서부터 마지막 왕인 시드기아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역사는 몇 번의 빛나는 시기를 제외하고는 모두 어두운 타락과 퇴보와 우상숭배의 역사였다.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발바닥에서 머리끝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병든 것이 새로 맞은 흔적 뿐이거든---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해 조금 남겨 주지 아니하였으면 우리가 소돔과 고모라 같았으리로다”(사1:5,9)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왕래하여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약 공의를 행하여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을 사하리라”(렘5:1)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이스라엘 족속들이 내게 찌끼라 곧 풀무 가운데 있는 놋이나 상납이나 철이나 납이며 은의 찌끼들이로다”(겔22:17-18) 그렇다면 그 당시에 구원받은 사람이 많았는가? 성실하게 성경을 읽는 사람들은 그 대답이 무엇이어야 하는가를 자명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계실 때 유대인들은 어떠했는가? “그가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치 아니하였으나”(요1:11)라는 요한의 말은 그들의 영적 상태를 잘 말해주고 있다. 팔레스타인 지방 전역을 여행하셨던 그리스도를 따라가 보라. 도시와 황무지에서, 가버나움에서 나사렛까지, 더 나아가 예루살렘까지 그리스도를 따라가 보라. 서기관과 바리새인 사이에서, 사두개인과 헤롯당 사이에서 그리스도를 따라가 보라. 그 어느 곳에든 같은 결과를 맛보게 될 것이다. 그들은 깜짝 놀라 말을 잃었고 겁에 질렸으며 경이로움을 느꼈지만, 소수만이 사도가 되어 그를 따랐던 것이다.
사도시대는 성령께서 같은 기간 동안에 그만큼 많은 영혼을 그리스도의 품으로 불러들였던 때는 없었다. 그러나 사도행전에서도 볼 수 있듯이 참된 기독교는 “어디서든지 반대를 받았던”것이다.(행28:22) 예루살렘을 비롯한 모든 도시에서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매우 적었다. 바울의 편지에서 읽을 수 있듯이 신앙을 고백하는 교회가 섞여 있는 곳에는 수많은 썩은 신도가 있었던 것이다.(빌3:18-19) 그렇다면 그 당시에 구원받은 자가 많았는가?
- 성경을 유대인들의 역사를 기록한 책일 뿐이라고 말하면서 참된 이유를 회피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이 가지지 못한 광명과 특권을 가졌으며, 그들의 죄와 잘못에도 불구하고 지상에서 가장 거룩하고 도덕적인 민족이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푸른 나무에서 소수만이 구원받는다면, 말라버린 나무에서는 얼마나 적은 수만이 구원받겠는가!
구원받는 자의 수에 대하여 성경에서 말하는 것과 세상 사람들이 말하고 있는 것은 다르다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구원이 아주 쉬운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성경에 따르면 구원에 이르는 길은 아주 좁고 그 문도 좁다. 성경의 예언은 결코 실현되지 않을 것처럼 여겨졌지만 나중에는 모두 실현되었다. 구원받는 자의 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그렇게 될 것이다.
4. 구원받는 자의 수에 대한 분명한 사실을 제시한다.
① 공공연하게 죄를 저지르면서 살아가는 사람들과 안식일을 범하는 자들을 따로 떼어놓기로 하자.
② 사리분별이 없고 경솔한 그리스도인을 따로 떼어 놓자. 그들은 의례적으로 많은 종교의식에 참석할 뿐 교리와 실체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그들은 성경이 몽땅 불에 타버린다 해도 별 관심이 없으며 그들의 보물은 땅 위에 있는 자들이다.
③ 자기중심적이고 형식만을 따르려는 자들도 따로 떼어 놓자. 그들은 자신의 행위에만 의존하려는 자이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의로움 이외의 다른 의로움에만 정신을 쏟는다.
④ 머리로는 복음을 알지만 마음으로는 그에 따르지 아니하는 자들을 따로 떼어 놓자. 그들은 생명의 길을 볼 수 있으나, 그 길을 걷고자 하는 용기가 없으며, 그 길을 걸으려 하지 않은 불행한 자들이다. 그들은 바른 교리를 인정하지 않고, 귀 기울이려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인간에 대한 공포, 세상에 대한 관심, 돈을 사랑하고 인간관계가 깨어지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서 영원히 벗어나지 못한다.
⑤ 위선적인 신앙고백자들을 따로 떼어 놓자. 그들은 교회 안에서나 대중 앞에서는 성도로서 말하지만, 집에서는 결코 성도가 아니며, 무엇보다는 자신의 마음속에서는 결코 성도가 아니다.
- 성실하고 철저하게 조사한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구원받는 길 안에 남아 있을 것인가? 생각만 해도 두렵고 무시무시한 일이다.
① 많은 사람들은 그들이 죽기 전에 회개할 기회가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고 생각하고 자신을 합리화하려 든다.
② 또 다른 사람들은 하나님의 자비와 반대된다고 생각하며 금방 사멸할 것들을 꼭 움켜 줜 채 놓으려고 하지 않는다.
③ 많은 사람들은 세상에 악이 존재하다는 것을 깨닫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들은 좋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작은 집단 속에서 세상은 진보하고 있고, 보다 완전한 세상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말한다.
④ 많은 사람들은 그러한 교리가 너무 편협하고 배타적이며 자비롭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회심한 영혼, 믿음이 있고 성스러운 영혼들 이외에는 아무도 이 왕국에 들어갈 수 없다.
⑤ 많은 사람은 교리가 너무 어둡고 자비롭지 않다고 생각한다. 종교의 강력한 말씀을 좋아하지 않고, 아무도 간섭하지 않겠다는 자비, 또는 어느 누구나 지은 죄는 언급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 아무런 증거 없이도 모든 사람이 구원받는 길에 들어설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비는 참된 자비가 아니다. 또한 모든 사람은 천국에 가게 되며 지옥과 같은 장소는 없다고 지옥을 부정하려 하는 것은 위선적인 자비일 뿐이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이야기한 자비(고전13:1)는 결코 어두운 것이 아니며, 아무것도 들으려고 하지 않는 어리석은 것이 아니다. 그가 말하는 자비는 어떤 사람이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어떤 사람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가를 구별할 줄 아는 눈과 분별할 줄 아는 분별력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자비는 오직 참된 진리로서 우리를 기쁨으로 넘치게 한다. 또한 그러한 자비는 내가 소수만이 구원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고통스런 마음으로 진실을 털어놓도록 돕는다.
➅ 많은 사람들은 구원받는 자의 수에 대하여 자기 의견을 가지는 것은 무례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성경에 근거하여 그에 맞는 주장을 하는 것은 결코 무례한 일이 아니다.
⑦ 너무 지나치고 부당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내가 하는 말을 광신적인 행위이며 이성적인 사람이 관심을 둘만한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다. 또한 그들은 나와 같은 주장을 하는 목사들을 나약한 심성의 소유자로, 상식이 부족한 자로 여긴다. 새로워지지 못한 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자, 영적인 마음이 없고 성스럽지 못한 자들도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분명한 증거를 제시하라.
- 나는 하나님의 진리라고 믿기 때문에 썼던 것이다. 나는 당신의 반대자로서가 아니라 당신의 영혼을 사랑하는 자로서 모든 것을 말하였다. 당신의 집이 불에 타고 있을 때 당신의 곤한 잠을 거칠게 깨우는 그를 반대자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5. 맺는 말
1) 소수만이 구원받게 될 것이다. 당신은 그 중의 한 사람이 될 수 있겠는가? 당신이 구원받을 수 없다면 차라리 태어나지 않는 것이 더욱 좋을 것이다. 당신이 그 중의 하나가 아니라면 지체하지 말고 그 중의 한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라.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을지도 모르나 므낫세와 다소의 사울을 받아들일 정도로 충분히 넓으니 당신도 충분히 들어올 수 있다.
당신이 그 중 하나가 될 수 있는지 의심스럽다면 즉시 확실하게 행하라. 당신이 구원에 대해 불확실한 상태로 살아가는 데 만족한다면 당신은 이 세상에서 지극히 어리석은 삶을 살게 될 것이라고 단언한다. 머지않아 심판이 행해질 것인데 당신은 자신의 행위를 감싸줄 변호인이 있는지, 하나님을 만나 뵐 준비가 되어 있는지 여부도 확실히 알지 못한다. 지금 즉시 구원의 주제에 대하여 차분하게 앉아서 깊이 탐구하라.
2) 소수만이 구원받게 될 것이다. 당신이 그 중 하나라면 감사하라. 당신과 조금도 다름없는 수많은 사람이 무지와 어둠 속에서 살아가고 있을 때 당신은 자신의 죄와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알 수 있도록 가르침을 받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라.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과 성스럽게 되기를 바라는 소망과 의로움에 대한 갈구와 말씀에 대한 티 없는 기쁨은 과연 어디에서부터 비롯되었는가? “오, 주여! 어찌하여 당신은 저와 같은 어리석은 자를 택하여 주셨나이까?”
당신이 그 중 하나라면 당신이 홀로 고립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을 때 결코 놀라지 말라. 당신은 모든 무신앙과 불결함을 보게 될 것이고 수많은 잘못된 교리를 대하게 될 것이다. 마음이 움츠러들지 않도록 경계해야 하며, 주의 말씀이 진리라는 실제적인 증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마음에 기억하도록 하라. 주님께서는 지금도 약속으로 그의 백성을 이끌고 계시며, 온 세계에서 그를 증거할 자들을 일으켜 세우고 계신다. 최후에 모든 사람이 함께 모이게 될 때 구원받는 자는 아직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계7:9)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모든 민족이 주를 경배하게 될 것이고, 그의 권위를 보이실 날이 이제 다가오고 있다.
당신이 그 중의 하나라면 진정으로 지극히 경건한 사람이 되는 것을 결코 두려워하지 말라. 최고로 높은 성스러움과 영적인 마음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하나님에 대한 지극히 고귀한 헌신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것을 당신의 의식 속에 깊이 새겨 두도록 하라. 수많은 영혼을 이롭게 하는 일에 온 힘을 다하라. 시간은 짧고 영원한 내세가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 천국과 지옥이야말로 크고 참다운 실재이다.
다시 한 번 당신에게 물어보겠다. 당신은 구원받게 될 것인가?
'성경도 아카데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존 오웬, "그리스도의 영광", 10장 교회에 자신을 전달하시는 그리스도의 영광 (0) | 2018.11.15 |
---|---|
[스크랩] 조지 래드, `하나님 나라`, 13장 하나님 나라의 완성, 14장 신학을 위한 영속적인 가치(결론) (0) | 2018.11.13 |
[스크랩] 조지 래드, `하나님 나라`, 12장 하나님 나라의 윤리 (0) | 2018.11.12 |
[스크랩] 존 C. 라일, "옛 길", 2장 사람의 영혼 (김영희) (0) | 2018.11.12 |
[스크랩] 조지 래드, `하나님 나라`, 11장 하나님 나라와 교회 (0) | 2018.11.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