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로교의 성직자중심의 제도의 대안으로 청교도 회중주의에 주목하자/ 변길용
21세기에 들어서면서, 교회에 새로운 변화의 물결이 일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영적인 역동성을 잃어버린 채, 침체의 늪에서 허덕이고 있는 교회에 새로운 활력소를 불어넣고 있다. 그것이 무엇인가? 바로 평신도 사역의 회복이다. 그러나 교회사를 살펴볼 때 이것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님을 보게 된다. 이것은 초대교회 때부터 이미 존재했었다. 하지만 고대에서 중세로 오면서 교황주의로 변질되면서 사제중심적인 교회구조로 바뀐 후, 종교개혁 이전까지 거의 사라졌다. 그러다가 마르틴 루터의 만인제사장론에 의해서 다시 재발견된 후, 개신교 전통 내에서 희미하게 이어져 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신교회의 대부분, 특히 장로교는 사제중심적인 구조로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 그 결과 교회는 수퍼맨쉽을 가진 목회자와 수동적인 평신도를 양산해 내므로, 머리 되신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지체로서의 역동적이고, 능동적인 협력관계로서의 관계를 잃어버렸다. 좀 더 신학적으로 말하자면, 루터가 명시한 만인제사장론에 근거한 회중중심적인 교회구조를 거의 배제시키고 말았던 것이다.
루터는 1520년에 출판한 ‘독일 귀족에게 보내는 글’에서 평신도와 성직자 사이의 구분을 분명하게 철폐하였다. 이러한 루터의 주장은 칼빈에게 와서도 동일하게 주장되었다. 하지만 에이비스(Paul D. Avis)는 그의 책인 ‘종교개혁자들의 교회관’에서 시간이 지날수록 제도적이고 사제중심적인 교회로 굳어져 가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만인 제사장론의 교리는 현재 각 교단을 살펴볼 때 큰 의미를 찾지 못하고 있다.
종교개혁의 전통을 계속해서 이어받은 개혁교회나 스코틀랜드의 영향하에 있는 장로교파도 거의 성직자와 그 상위 의회를 중심으로 한 교회정치제도를 지닌 채 지금까지 내려왔다. 장로교단이 주류인 한국의 상황도 별반 다르시 않다. 한국교회의 주류를 이루는 장로교단은 엄격한 성직자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문제는 성직자중심적인 교회나 교단운영은 시간이 흐를수록 경직되고, 평신도들로 하여금 수동적인 신앙생활을 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을 극복할 대안은 없는가? 필자는 그 대안을 청교도 전통 가운데 하나인 청교도 회중주의 속에서 찾아보고자 하는 것이다.
청교도 전통 중에는 일반적으로 분리파, 장로파, 그리고 독립파로 나뉜다. 장로파는 칼빈과 제네바 개혁교회의 영향하게 토마스 카트라이트를 중심으로 일어났는데, 초기에는 모든 성직자들을 동등하게 여기도록 주장했고, 각 교회의 성직자는 회중들에 의하여 선출되는 민주주의적인 모델을 제시하였다. 이것은 모든 신자들은 하나님 앞에서 동등하다는 만인제사장론에 근거한 대중주권이라는 사상을 기초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스코트랜드의 장로교제도의 영향하에 각 교회 위에 노회와 그 위에 대회 그리고 최종적 권위를 가지고 있는 총회의 단계로 계층조직을 가졌으며, 멤버십에 대한 것도 영국 국교회와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장로파의 대중주권사상에 영향을 받은 분리파는 청교도 회중주의에 영향을 주면서 계속 런던을 중심으로 확대되다가 국교와의 완전한 분리와 영국 국교회에 대한 적대적인 자세로 인해서 결국 영국교회의 계속되는 탄압을 받다가 1697년에 그 운동의 맥이 끊어졌다. 사실 분리파는 대중주권사상에 영향을 받은 교회언약의 시행을 통해 어느 정도 평신도의 주체적이고 자발적인 참여를 이루어 영적인 역동성과 참된 교회로서의 회복을 일구어냈다.
평신도 주체의 회중교회주의는 독립파에서 활짝 꽃을 피웠다. 왜냐하면 독립파는 영국 국교회를 교회로 인정하였으며, 영국정부에 대한 온건한 입장에 서 있으므로 해서 그 명맥을 계속 유지하였기 때문이다. 본 연구를 1582년부터 1660년대까지의 초기 회중주의 교회정치를 대상으로 한다. 이 기간은 분리파 운동의 선구자인 로버트 브라운, 존 베로우, 그리고 프랜시스 존슨을 통해서 회중주의 서막이 올랐다고 보는 학계의 일반적 견해를 따랐다. 그리고 영국의 독립파를 통해 회중주의와 미룩으로 건너가서 꽃피운 회중주의의 초기기간까지가 그 범위이다. 실제로 이 기간에 회중주의의 역동성이 가장 잘 나타났다고 보기 때문이다.
특별히 회중교회주의의 대중주권론에 의거한 평신도중심주의가 가장 완전하게 요약 정리된 강령이 바로 1648년에 뉴잉글랜드에서 만드러진 ‘케임브리지 강령’이다. 이 강령에서는 평신도들이 교회정치에서 얼마나 주도적인 위치와 역할을 감당하는가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하고 있다. 특히 당시 영국혁명 직후의 장로파의 득세에 대한 강한 반발과 뉴잉글랜드에서의 장로파 교회지도자들의 계속되는 문제제기에 대한 회중교회주의의 정체성 확립을 위해서 평신도들의 주체적인 지위와 역할에 대한 강조를 보여준다. 그리고 이와 같은 입장에 서 있던 회중교회주의는 당시 역사적 자료에서 볼 수 있듯이 훌륭한 교회를 이루었던 것이다.
변길용, ‘청교도(초기회중주의 1582-1648) 평신도 운동’, pp 7-11, 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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