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도 아카데미

로이드 존스, '하나님 나라', 11장 거듭남

강대식 2019. 3. 13. 04:37

11.   거듭남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3:3-5)

 

인류에게 가장 필요한 일은, 하나님의 나라로, 하나님의 다스림과 통치로, 하나님의 축복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기독교 신앙 및 하나님 나라의 시작과 핵심 요소와 본질에 대한 어리석은 오해가 항상 있어 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따라서 주님은, 이 세상에 계시는 짧고 소중한 3년 가운데 아주 많은 시간을 논쟁하고 논박하며 질문에 답하는 데 쓰셨다. 우리는 본문에서, 하나님 나라에 대한 또 다른 오해를 볼 수 있다. 이러한 오해는 주님과 니고데모의 유명한 대화 속에서 나타난다. 이것은 성경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이야기 가운데 하나이자. 아주 극적인 이야기이다.

 

더 나아가 여기에는 놀라운 진리가 나타난다! 주님은 어느 때보다 분명하고 명확하게 말씀하신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18:1-3) 하셨다. 여기서 우리는 문제의 핵심에,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진짜 비결에 이른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6;33). 그러나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는가? 제가 어떻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가? 여기서 주님은 이 중요한 질문에 대한 분명하고 최종적인 답변을 주신다.

 

주님은 니고데모의 말을 가로막으심으로써 우리에게 매우 큰 교훈을 주신다. 주님은 하나님 나라의 본질과 그 나라에 들어가는 유일한 방법에 관한 심오한 진리를 제시한다. 니고데모의 태도는 곧 현대인의 태도이기도 하다. 현대인들은 어떤 제지를 받을 필요가 있다. 현대인들은 자신들이 똑똑하다고 생각하며, 자신들이 안다고 생각한다. 차라리 현대인들은 달콤한 말이나 입에 발린 소리를 듣기보다 제지를 받고 침묵당할 필요가 있다. 이것이야말로 오늘날 세상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이다. 스스로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어리석은 세상 사람들은 살아 계신 하나님 말씀으로 제지당할 필요가 있다.

 

주님은 여기서 세 가지를 말씀하신다. 첫째는, 이 말씀을 단순히 반복하신다. “너는 거듭나야 한다.” “너는 다시 태어나야 한다.” 주님은 니고데모에게 도전을 주신다. “좋다. 네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안다. 하지만 너는 그 말을 할 필요가 없다. 그 말은 모두 잘못된 것이다. 너는 반드시 거듭나야 한다.” “진실로 진실로라는 표현은 특별히 진지하고 깊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거듭남! 이것은 중요한 어휘이며, 기독교의 핵심 어휘이다. “위로부터 나다 born from above”, “새롭게 나다 born anew”로 번역해야 한다고도 한다. 주님은 아람어로 말씀하셨고, 헬라어로 번역되고 다시 영어로 번역되었다. 아람어로 이 말은 한 번 더 태어나지 another birth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결코 볼 수 없다는 뜻이다. “다시 태어나다” “한 번 더 태어나다” “위에서 나다” “성령으로 나다는 모두 같은 뜻이다. 어느 표현을 사용해도 괜찮다.

 

이것은 신약성경의 중요한 교리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기존의 생각에 조금 덧붙일 만한 것이 아니다. 바꾸어 말하면, 기독교는 우리가 취사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 모든 것은, 주님이 여기서 말씀하시는 것과 모순된다.

주님의 말씀은 침묵해라! 너는 아무것도 덧붙일 수 없다. 너는 반드시 거듭나야한다. 너에게는 아무것도 없다. 너에게는 새로운 기초가 필요하다. 너는 살아 있는 것이 아니라 죽어 있다. 그러므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이것이 주님의 가르침의 소극적 의미이며, 주님의 말씀에 내포되어 있는 의미이다.

 

적극적 의미도 있다. 우리는 먼저 완전히 새로운 출발을 해야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다. 해체해야 새로운 건축이 가능하다. 여기서 강조되는 것은 해체이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은 선하지 못하다. 그러므로 모두 제거되고 해체되어야 한다. 그래야 다시 세울 수 있다. 우리가 세우는 것은 새로운 건물이다. 우리는 완전히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 마치 이전에 아무것도 없었던 것처럼, 이것은 새 생명이 태어나는 것과 같다.

 

이것이 신약성경의 가르침이다. 이것은 때로 새로운 창조거듭남이라 불린다. 본성적으로는 쓸모없고 희망이 없으므로 새로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새로운 생명, 새로운 본성이 필요하다. 하나님은 새 생명을 우리에게 불어넣으신다. 하나님은 우리의 영혼을 수술하시고 생명을, 새로운 기질을 불어넣으신다. 그 결과로 우리는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된다(벧후1:4).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5:17).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새롭게 보고 새롭게 이해하기 시작하며, 그 속에 새로운 바람이 자리한다. 갑자기 태어나 이렇게 말하는 사람과 같다. “예전에 내가 아니야. 어떻게 된 거지?”

 

둘째로, 주님은 이런 일이 모두에게 일어나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지도자라이 사람 니고데모에게 하신 말씀이다.

그분의 발을 적시고 머리털로 닦은 불쌍한 창녀에게 말씀하셨다면 놀라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추론할 수 있는 결론은 하나뿐이다. 자신의 모습 그대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니고데모도 예외가 아니다. 밤에 찾아온 니고데모라도 반드시 거듭나야 한다. 이것이 핵심이다. 니고데모라도 어린아이로 돌아가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 니고데모라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는 고사하고, 그 나라를 볼 수도 없다. 니고데모는 보통 사람으로 온 것이 아니라, 다만 조금 더 필요한 사람으로 왔다. 그러나 주님은 첫 번째 원리 즉, 우리가 거듭나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제 두 번째 원리로 넘어가겠다.

 

우리 역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다만 우리 자신을 현재보다 조금 더 낫게 하는 정도라는, 이상한 생각을 갖고 있다. 우리는 한두 가지를 그만 두고 두세 가지를 더하면 그리스도인이 된다고 생각한다. 하나를 벗고 다른 것을 입는다는 뜻인가? 새 옷을 입고 좀 더 밝아지거나, 자신을 좀 더 깨끗하게 하면 여러분은 괜찮은 사람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그러나 이것은 기독교가 아니다. 이것은 도덕이나 윤리적 행위나 철학이다. 이것은 기독교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 기독교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 모두 잘못되었다!

 

실제 그리스도인 삶을 살며 기독교 운동을 주창하는 사람들 가운데 유명한 무신론자들이 많다는 어처구니없는 기사가 언론에 자주 실린다. 우리는 거듭나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현재의 모습으로는 영적인 생각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니고데모는 바리새인이고, 매우 훌륭한 사람이며, 유능한 사람이다. 니고데모는 교육을 잘 받았으며 유대교의 전문가이다. 그러나 한 마디로 말하면, 니고데모는 자신을 완전히 속이고 있다! 그는 너무나 우둔하고 어리석다! 주님께 너무나 우스꽝스러운 말을 한다! 니고데모는 영적인 생각을 하지 못한다.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니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니까?”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이어서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니고데모가 다시 묻는다. “어찌 그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 니고데모는 완전히 헤매고 있으며 아직도 주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한다. 니고데모는 인간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바울은 이렇게 표현한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고전2:14). 주님은 육체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인 것을 말하고 있다.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너는 육에 속했고 육으로 난 것은 육이며너 자신을 넘어설 수 없다. 계속 자신의 본성대로 사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거듭나야 한다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니고데모야, 너는 나처럼 생각할 수 없다. 너는 전혀 다른 영역에서 살고 있다. 너는 태어날 때부터 귀가 들리지 않는데도 음악을 이해하려는 사람이나, 눈이 완전히 멀었는데도 미술 비평가가 되려는 사람과 같다. 너는 할 수 없다. 왜냐하면 너의 본성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은 주님께 배운 것을 이렇게 표현한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8:7).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 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육적인 본성은 하나님과 맞선다. 이들의 육신의 생각은 우둔하고 맹목적이고 어리석을 뿐 아니라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7:18).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3:19)

 

왜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가? 사람들이 음행과 간음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악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마음이 부패했고, 사람들이 하나님을 미워하기 때문이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육은 결코 자신의 수준과 본성을 뛰어넘지 못한다. 우리가 거듭나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우리의 본성은 하나님의 진리를 대적한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새로운 본성이 필요하다.

 

두 번째로, 훨씬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 우리가 우리 모습 그대로일 뿐 아니라 하나님 나라도 그 나라 모습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그 나라는 하나님의 나라이다. 소크라테스나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의 니라가 아니다. 모차르트나 베토벤의 나라가 아니다. 그 나라는 하나님의 나라이다! 그 나라는 외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인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17:21).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간다는 것은 영적인 영역으로써, 전능하고 영원하신 하나님과의 교제의 자리로 들어간다는 뜻이다.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 되고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뜻이다.

 

기억하라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니라”(요일1:5).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가 누구며 그의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구인가.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하지 아니하는 자로다”(24:3-4). 이것은 관점이나 사상이나 대립의 영역이 아니라 개인적인 관계의 영역이다. 이것은 여러분이 하나님과 영적 교제를 누린다는 것이다. 하나님과 아담 및 하와 사이의 옛 관계가 회복되며, 여러분은 하나님의 친구가 된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상속자로, 영적인 영역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과 함께 거하고 그분과 교제할 수 있는가?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그 이유는 무엇인가?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고후6:14-16). 이것이 하나님의 나라 안에 있다는 뜻이다. 하나님 나라는 빛과 영광이 넘치는 곳이다. 그 나라에 들어가려면 우리 속에 있는 것이 그 나라에 맞아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단지 한 나라의 본성과 관계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목적과 생각과 계획과 관련이 있다. 우리 각자가 거듭나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하나님은 이사야 55장에서 선지자의 입을 통해 이것을 아주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8-9).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것들을 알지 못하느냐?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우리는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언하노라. 그러나 너희가 우리의 증언을 받지 아니하는도다.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되겠느냐?”(9-12). 그렇다면 하늘의 일은 무엇이며, 하나님의 생각은 무엇인가?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13). 주님은 육신이 되신 말씀이다! 성육신은 하나님이 인간이 되신 기적이다! 주님은 동정녀에게서 태어나셨다! 이것이 성육신의 모든 영광이다! 어떻게 인간의 머리로 이해할 수 있겠는가? 주님은 이어서 말씀하신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3:16).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길은 오직 하나밖에 없다. 인자가 반드시 내려와 광야에서 뱀이 들렸듯이 들리셔야 한다.

 

이것은 육에 속한 사람이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고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다. “누구든지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뿐이다. 그래서 내가 그를 위해 죽었다. 그 옛날 광야에서 놋뱀이 들렸으며 뱀에게 물렸으나 그 놋뱀을 바라보았던 모든 사람이 나았듯이 나도 들려야 한다. 내가 죄의 형벌을 받아야 하며, 누구든지 나를 바라보고 믿는 자는 구원을 받는다.” 이것이 메시지이다. 그러나 바울은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라고 말한다. 지금도 마찬가지며, 항상 그러했다.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고전1:22-23). 지금도 그렇다! 인간은 이것을 이해할 수 없다. 이 십자가의 도가 길이건만 육에 속한 사람은 이 길을 싫어하고 거부한다. 내가 나를 구원해야 한다고 한다.

 

이 모든 것은 마지막 원리로 이어진다. 인간이 어떻게 거듭날 수 있는가? 이것은 여러분과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이 분명하다. 여러분은 자신의 본성을 바꿀 수 없다. 어린아이처럼 될 수 없으며 새롭게 시작할 수도 없다.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 불가능하다. 우리는 반드시 거듭나야 한다. 우리는 위로부터 나야 하며,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 거듭남은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이다.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그러하니라”(3:8).

 

거듭남은 큰 신비이다. 거듭남은 기적이기 때문이다. 거듭남은 이미 요한복음 첫 머리에서 언급되었다. “영접하는 자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1:12-13). 새로운 본성을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다. 새로운 본성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우리를 다시 지으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저도 거듭남을 이해하지 못한다. 거듭남은 바람과 같다! 여러분은 바람이 빚어낸 결과를 보며 바람이 부는 소리를 듣지만 이해하지는 못한다. 여기에 신비가 있다. 바람은 왔다가 가며 무언가를 하지만 보이지는 않는다.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한 사람이 새 사람이 된 자신을 발견한다. 사람들이 말한다.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났다. 전에는 전혀 보지 못했던 게 보인다. 느끼고 안다. 이게 무엇인가?” 사람들은 자신들이 알지 못하는 무슨 일이 일어났음을 안다. 이것이 하나님의 재창조이다. 사람들은 깨지고 회복되며 다시 만들어진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새 사람이라는 것을 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는가? 있다. 할 수 있는 일을 말씀드리겠다. 자신이 거듭나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물로 난다는 것은 세례이며, 여러분이 원한다면 회개라고 해도 좋다. “이제야 내가 눈이 멀었다는 것을 알겠다. 저는 악하고 더럽다. 저는 깨끗해져야 한다. 이런 모습으로는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다. 저는 씻겨야 하며 새롭게 되어야 한다.” 이것이 회개이다!

 

여러분은 자신이 거듭남에 대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여러분은 애원하는 자로서, 도와줄 이 없는 자로서, 희망이 없는 가난한 자로서, 자신을 하나님의 자비에 자신을 맡기고, 여러분을 용서하고 받아들이며 새 생명을 주시도록 그분께 구해야 한다. 거듭남이 하늘의 진리이며 하나님이 하늘에서 하시는 일이라는 것을 인정하라. 포기하고 항복하라. 여러분이 이스라엘의 위인일지라도 고백하라. 회개하고 믿으며 자신을 전능하신 사랑의 하나님의 손에 맡기라.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으라. 그분을 믿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