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도 아카데미

존 라일, '옛 길', 19장 성도의 견인 (김영희)

강대식 2019. 3. 27. 06:19

19 장   성도의 견인

 

저희가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10:28).

 

성경이 매우 분명하고 명확하게 가르치는 두 가지 점이 있다. 하나는 불경건한 자들에 대한 두려운 위험이며, 또 하나는 의로운 자들에 대한 완전한 안전이다. 전자는 지옥으로 향하는 불쌍한 자들이며, 후자는 천국으로 향하는 축복받은 자들이다.

 

당신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의 영원한 선택을 영광스러운 순서 안에서 보게 될 것이다. 하나님이 창세 전에 그들을 사랑하신 특별한 사랑, 부활하신 예수님과의 신비스러운 연합, 그들의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의 영원한 중재 속에 있는 그들의 유익, 하나님과 예수님과 매일 교제할 수 있는 자유, 소망에 대한 완전한 확신, 마지막까지 받는 견인, 이것들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성경에 기록하여 두신 것이다.

 

1. 성도의 견인의 교리가 의미하는 것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삶의 마지막까지 자신들의 신앙을 간직하게 될 것이라고 성경은 말한다. 살아 있는 믿음에 의해 그리스도께 연합되면 그들의 결합은 결코 끊어지지 않을 것이다.

 

1) 성도의 견인은 불경건하고 세상적인 사람들과는 관련이 없으며, 거짓으로 신앙을 고백하는 자와는 관련이 없다. 성도의 견인은 참으로 영적인 그리스도인들의 특별한 권리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목소리를 듣고 따르는 그리스도의 양들에게 속한 것이며,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믿고 거룩한 삶을 사는 사람에게 속한 것이며, “밤낮 하나님께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에게”(18:7) 속한 것이며 체험으로 그리스도를 알고 믿음과 소망과 자비를 가진 사람에게 속한 것이며, 포도나무의 열매 맺는 가지이며 지혜로운 다섯 처녀이며, 세상의 소금과 빛이며 하늘나라 상속자에게 속한 것이다.

 

견인의 특권은 하나님의 가족, 강한 자뿐만 아니라 어린이나 약한 자나 초신자에게도 속하는 것이다. 그것은 사람이 주고 받는 은혜의 양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약속을 실행하시는 그분의 진실함과 순전함에 있기 때문이다. 죄를 진정으로 회개하고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거룩함이 행해지는 곳에서는 그 교리가 결코 전복되지 않는다. 그것은 지구와 지상의 모든 것이 불타 없어지고 난 후까지 견딘다.

 

2) 믿는 자들은 끝까지 견딜 것이라는 말은 그들이 한 순간도 죄에 빠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노아도 한 때 술 취함에 빠졌고, 아브라함은 두 번씩이나 사라를 자신의 누이라고 속였으며, 다윗은 무서운 간음을 범했다. 베드로는 맹세하였지만 주님을 세 번 부인했고 바울과 바나바는 논쟁으로 동행하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이 그리스도인들이라도 실패할 수 있다는 증거이다. 그러나 믿는 자들은 전체적으로 마지막까지 완전하게 타락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항상 회개를 하여 하나님과의 동행을 새롭게 한다. 심하게 실망하고 의기소침할지라도 그들의 은혜를 완전히 잊어버리지 않는다.

 

3) 믿는 자들이 끝까지 견딜 것이라고 말한 것은 자신의 안전함에 대해 의심이나 두려움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안전하게 되는 것과 안전하다고 느끼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믿는 자 중에서도 일생동안 소망에 대한 완전한 확신을 즐기지 못하는 자들이 많다. 그들은 믿음이 너무 약한 반면 죄책감이 너무 강해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신의 안전에 확신을 가지지 못한다. 소망에 대한 완전한 확신이 구원에 필수적인 것은 아니다. 자신들이 그 사실을 느낄 수 없을 뿐이지 그것은 사실이다.

 

4) 견인에 대한 확신 때문에 깨어서 기도하는 것, 은사를 사용하는 것 등의 필요성을 부인할 수 없다. 성경에서 믿는 자들에게 하신 많은 경고와 조건적인 약속과 훈계는 그들의 견인을 유효하게 만드시는 하나님의 수단의 부분이다. 조심하지 않아도 살 수 있다고 생각하며 그것을 규범적인 것으로 경멸하는 사람은 마음이 전혀 새로워지지 않은 사기꾼으로 의심받아 마땅하다. 성령에 의해 참으로 가르침을 받은 사람은 그 자신의 약함에 대해 겸손해 하며, 양심을 소생시키는 어떤 경고나 훈계에도 감사하며 자신을 지킨다. 마지막까지 견디는 사람들은 어떤 수단에서 독립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항상 수단에 의존한다. “저희가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라는 약속에 속하는 자들은 근면하고 사려 깊고 기도하는 겸손한 사람들이다.

 

5) 내가 말하는 견인교리의 의미를 설명하겠다.

이 견인교리가 부주의하고 불경한 삶을 조장하는 어떤 경향을 가진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견인은 죄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성도를 위한 것이다. 경건한 삶을 살지도 않으면서도 그가 회개하였음으로 결코 멸망 받지 않으리라고 자랑하는 사람에게서 나는 어떠한 희망도 발견할 수 없다.

성도의 견인 교리가 단지 칼빈주의의 한 부분이라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칼빈주의에 대해 조소하는 몇 마디 말로 견인의 교리를 비난하거나 크롬웰의 임종 시의 이야기를 들어 그 교리를 비난한다. 문제는 그 교리가 칼빈주의적이냐 아니냐에 대한 것이 아니라 성경적이냐 아니냐에 관한 것이다.

 

2. 그 교리가 만들어진 성경적 토대

나는 성구들을 주석을 달지 않고 그대로 소개할 것이다. 그 교리가 의존하고 있는 토대들이 얼마나 깊고 넓은가를 관찰해 주기 바란다. 성도가 끝까지 견디고 멸망하지 않을 것은 그들 자신의 능력이나 선함 때문이 아니고, 결코 헛되지 않을 하나님의 선택과 전능하시고 위대하신 중재자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굴복되지 않으시는 성령의 내적 역사에 기초한다.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터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10:28-29)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8:35-39)

주께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하게 하시리라”(고전1:8)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6:39)

나의 믿는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내가 의탁한 것을 그날까지 그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딤후1:12)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속성들은 어떻게 성도의 견인에 관여하는가를 보여 준다. 만약 하나님을 믿는 백성이 마지막에 잃게 될 수 있다면 그들의 죄에 대한 예수님의 책임에 어떤 치욕이 던져지겠는가, 만약 그의 양떼 중에 한 마리가 들판에 남겨진다면 그분은 어떤 종류의 목자가 되시겠는가?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 중에 어떤 한 사람이라도 마지막에 멸망 받아 지옥에 가게 된 예를 성경에서 찾아볼 수 없다. 아브라함, 모세, 다윗, 베드로, 바울 같은 사람들도 때로는 실수하고 잘못을 저질렀다. 그러나 그들은 결코 멸망 받지 않았다.

얼핏 보면 교리에 반대되는 교리를 가르치는 것 같은 몇몇 성구들이 있으리라는 것을 잘 안다. 두 개의 성구가 서로 모순되는 것처럼 보일 때, 덜 분명한 것보다 분명한 것을, 약한 것보다 강한 것을 추구하는 것이 성경해석에 있어서 오류가 없는 규칙이 될 것이다.

 

3. 그 교리에 반대하는 사람의 이유

그들의 종교적인 제도가 너무 연약하고 그들의 영적인 소화력이 너무 약해서 그들은 항상 고기를 먹지 못하고 우유만 먹어야 한다. 그들에게 은혜에 대하여 강하게 말하면 그들은 당신을 반율법주의자로 간주할 것이며, 거룩함에 대하여 강하게 말하면 당신을 율법주의자로 생각할 것이며, 선택에 대해 강하게 말하면 당신을 마음 좁은 칼빈주의자라고 생각할 것이며, 책임과 자유의지에 대해 강하게 말하면 당신을 수준 낮은 알미니안주의자로 간주할 것이다. 그들은 어떤 방향에서나 또는 어떤 종류에서나 강한 것을 견딜 수 없다.

 

1) 견인교리를 믿지 못하는 이유가 기독교의 전체 체계에 대한 무지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복음을 구성하는 다양한 교리들의 본질, 위치, 균형에 대한 분명한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들은 교회에 속하는 것과 기독교 신앙의 모든 조항을 믿는 것이 옳은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의롭게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한 채 견인 교리를 믿으라고 기대하는 것은 불합리하다.

 

2) 견인교리를 믿지 못하는 이유는 인간과 인간 사이를 구분 짓는 종교의 어떤 체계를 싫어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어떤 한 부류의 사람을 다른 부류의 사람과 분리시키고, 어떤 한 부류의 사람을 다른 부류의 사람보다 하나님 앞에서 더 은총 받은 위치에 있는 존재들이라고 말하는 기독교의 가르침에 찬성하지 않는다. 그들은 말한다. “이런 종류의 가르침은 무자비하다. 우리는 모든 사람이 잘되기를 희망하고 모두 천국에 가기를 원한다물론 견인 교리가 그들에게는 견딜 수 없는 것이다.

 

3) 견인 교리를 믿지 못하는 이유는 구원 얻는 믿음의 본질에 대한 잘못된 견해 때문이다. 그들은 믿음을 단지 감동이나 느낌으로 간주한다. 그래서 그가 가진 것처럼 보였던 믿음은 쉽게 사라져 버린다. 그들은 말한다. “사람은 믿음에서 타락할 수 있으며, 견인과 같은 것은 없다이것이 그들 신앙에 있어서 확고한 원칙이 된다. 사람들은 인간 마음속에 있는 종교적인 감정들이 은혜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을 잊어버린다. 구원받는 믿음은 어떤 느낌보다 더 깊고 강력한 것이다. 그것은 감정의 작용이 아니라 전 양심, 의지, 이해, 내적 인간의 작용이다. 그것은 분명한 지식의 결과이다. 그러나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며 결코 없어지지 않는다.

 

4) 견인의 교리를 믿지 못하는 이유는 회개의 본질에 대한 잘못된 견해로부터 온다. 그들은 인간의 인격과 회개 속에 있는 변화에 너무 많이 기대한다. 그들은 헌 문을 새로 칠한다고 해서 새 문으로 만들 수 없다는 것을 잊어버린다. 회개했다고 생각한 사람이 옛 습관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을 볼 때 그들은 그 사람이 전혀 회개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대신 그는 회개 했으나 나중에 그의 은혜를 잊어버렸다라고 말한다. 회개는 세계를 만드신 하나님만이 우리 마음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강력한 역사이며 항상 영감을 가지고 지탱해야 하는 역사이다.

 

5) 견인의 은총을 믿지 못하는 이유는 세례의 효과에 대한 잘못된 견해 때문이다. 그들은 모든 사람이 세례를 통하여 거듭나며 모두가 성령의 은혜를 받은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부주의하게 세상적으로 살다 세상적으로 죽어서 결국 불쌍하게 멸망한다. 단지 세례에 의해 거듭나는 것이 사실이라면 궁극적인 견인의 교리는 치명적이 된다.

 

6) 견인을 믿지 못하는 이유는 교회의 본질에 대한 잘못된 견해 때문이다. 그들은 눈에 보이는 교회와 보이지 않는 참 교회와의 차이를 구별하지 않는다. 그들은 후자에 속하는 특권과 축복과 약속을 전자에 적용한다. 그리스도 몸의 많은 구성원들이 사람이 만든 체계 위에서 머리되신 예수님과 연합되지 않고 생명도 은혜도 없어서, 마침내 영원히 멸망 받게 된다. 물론 그들은 견인의 교리를 주장할 수 없다.

 

이와 같은 경고를 하는 것이 달갑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을 고집불통이며, 마음이 좁고 배타적인 사람이라고 부른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견인의 주제에 관한 많은 잘못을 간과할 수 없다. 당신이 기독교의 교리를 믿는다고 말할 때 그것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배우라. 당신의 소망에 대해 합당한 이유를 가지며, 신앙에서 진리라고 생각하는 것과 거짓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말할 수 있도록 하라. 그리고 건전한 신앙의 유일한 기초는 성경의 원문에 대한 지식임을 잊지 말라.

 

4. 그 교리가 실제적인 중요성을 가지는 이유

1) 견인은 그것이 복음의 전체 기술에 미치는 강한 특징 때문에 매우 중요한 교리이다. 복음의 가장 큰 특징은 그것이 기쁜 소식이라는 점이다. 그것은 본래 멸망 받아 마땅한 우리에게 소망, 즉 용서와 하나님과의 화해와 영광이 있다는 기쁜 소식이며, 죄가 아무리 많아도 다 씻김을 받고, 영혼이 아무리 무가치해도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칭함을 받는 기쁜 소식이다.

만약 당신에게 매일 이 특권을 상실하고 그리스도의 피에 의해 인침받은 용서가 다시 취소될 위험 속에 있다고 말하면 당신은 어떠하겠는가? 하나님의 성도들이 멸망받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그것은 복음의 면류관으로부터 가장 빛나는 보석을 떼어버리는 일이다. 우리는 절벽의 가장자리에서 매달려 있는 것과 같이 위험하며, 죽을 때까지 무서운 위기 속에 있게 되는 것이다. 이것 속에 좋은 소식이 있는가? 진실로 그러한 교리는 복음의 기쁨을 뿌리째 잘라버리는 것이다. 확실한 평화와 위안을 얻기 위해서는 나의 현재의 위치뿐만 아니라, 나의 미래의 전망에 대한 것을 알아야 한다.

 

2) 견인의 교리가 중요한 것은 그것이 두 의견 사이에서 머뭇거리는 모든 사람에게 특별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경우 그들은 점점 실패하여 멸망 받지 않도록 아예 시작하기를 두려워한다. 그들 앞에 많고 큰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주저하는 이 사람들에게 용기를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은 무엇인가? 나는 주저 없이 성도의 견인 교리라고 말하겠다. 그리스도를 섬기는 어려움이 아무리 크고 많을지라도 모든 일을 통하여 그들에게 승리하게 하는 은혜와 능력이 그 교리 안에 저장되어 있다고 기꺼이 말할 수 있다. 그들은 시련을 받지만 견딜 수 없는 시련은 받지 않으며, 유혹을 받으나 저항할 수 없는 것을 받지는 않는다. 흔들리는 그리스도인들이 결정적인 고백을 하기 두려워하는 이유는 견인의 교리가 주는 용기의 부족 때문이라고 확신한다.

 

3) 견인의 교리가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참 믿는 자들의 마음에 특별한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참 믿는 자들의 숫자는 언제나 매우 적다. 천국에 이르는 길이 좁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믿는 자들은 세상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시련을 가지고 있다. 마귀는 항상 그들 가까이 있어 항상 덫을 놓으며 졸거나 자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믿는 자들이 공포와 불안에 대항할 수 있는 최상의 치료책은 무엇인가? 나는 지체없이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에 대한 마지막 견인의 교리라고 대답하겠다.

 

그리스도는 그가 사랑한 사람을 끝까지 사랑하신다. 하나님은 그의 양들 중에 가장 힘없는 양이 들판에서 절망하는 것과 그의 정원에서 가장 연약한 꽃이 시들거나 죽는 것을 내버려두지 않으신다. 사자굴 속의 다니엘, 풀무불 속의 세 친구, 난파선에 있는 바울, 방주 속의 노아만큼이나 현재도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는 자를 사랑하시고 보호하신다.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사람이나, 마귀나, 내부의 걱정이나, 외부의 고통이나, 그 어떤 것이라 하더라도 하나님의 자녀들을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랑으로부터 끊어버릴 수 없다.

이것은 큰 위안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을 확증하기 위해 복음에 간직하여 두신 것이다. 만약 이것이 그리스도의 교회에 있는 백성을 더욱더 전진할 수 있게 한다면, 그들을 위해 얼마나 좋은 일인가! 나는 성도들이 약해지는 한 가지 이유가 하나님이 그들을 강하게 하기 위해 밝혀주신 진리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4. 맺는 말

1) 당신의 영혼의 상태가 어떠한가 살펴보라. 만약 거듭나지 않았다면, 견인의 교리를 믿느냐 안 믿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당신이 가장 정확하고 정통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다 해도 가장 무지한 이교도 곁에서 멸망당하는 것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영혼의 상태를 불안하게 내버려 둔 채 살아가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며, 결코 지혜롭지 않은 것이다.

만약 당신이 회개하지 않는다면, 당신의 위험은 치명적일 것이다. 당신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면 당신 영혼의 관심사를 소홀히 하지 않게 될 것이다. 하나님 앞에 진정한 기도로 마음을 쏟을 때가 올 것이며, 그리스도 안에서 위안을 얻을 때가 올 것이다.

 

2) 귀중한 교리를 오용하지 말고 유용하게 쓰기 원한다.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10:12) 우리가 안전함을 느끼면 느낄수록 더욱더 거룩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행하신 것을 많이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더욱더 하나님을 위해 행해야 한다. 우리의 빛이 크면 클수록 우리의 감사는 더욱 커야 하며, 은혜의 풍성함을 보면 볼수록 선한 일을 더 많이 행해야 한다.

 

당신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당신의 몫의 길이와 넓이를 알기 원한다. “나의 양들은 결코 멸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를 위해 쓰신 것이다. 생활 속에서 완전한 평화를 원하는가? 이 견인의 교리를 굳게 잡으라. 당신의 십자가는 매우 무거울 것이다. 당신의 슬픔은 영광을 위해 영혼을 정화시키는 것이며, 빼앗김은 손으로 짓지 않은 하늘의 집을 위한 돌을 만드는 것이다. 당신은 죽을 때 확실한 소망을 가지기를 원하는가? 의사들이 노력을 포기하더라도 하나님의 사랑하심과 인자하심은 떠나지 않는다. 예수님은 항상 당신 곁에 서 계시므로 마귀가 당신을 해하지 못하며 죽음이라도 당신을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원한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끊을 수 없다. 당신은 결코 멸망받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