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도 아카데미

토마스 왓슨, '회개', 6장 엄중히 회개를 권고함 (김영희)

강대식 2019. 6. 3. 21:24

6 장 엄중히 회개를 권고함

 

이 크나큰 회개의 의무를 감당하도록 여러분에게 촉구하고자 한다. 슬픔은 어떤 것에도 쓸모가 없고 오직 죄에 대해서만 유익할 뿐이다. 꽃밭에 줄 물을 하수구에 쏟아서 좋을 일이 없다. , 그러니 우리의 눈물이 올바른 통로로 흐르고 우리의 마음이 죄에 대한 슬픔으로 복받치기를!

 

1. 회개가 필요하다.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렇게 망할 것이다”(13:5) 하나의 자격으로서 필요하다. 회개는 그리스도께 사랑받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사랑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죄가 쓰지 않으면 그리스도가 달지 않는다.

 

2. 모든 사람에게 회개가 필요하다.

첫째, 높은 자들에게 회개가 필요하다. 너는 저 왕과 왕후에게 전하여라. 왕의 자리에서 내려와서 낮은 곳에 앉으라고 하여라.”(13:18) 지도자들의 죄는 선례가 되므로 누구보다 그들이 회개할 필요가 있다. 권좌에 앉은 자들이 회개하지 않을 경우,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심판할 날과 그들을 살라 버릴 불을 정해 두셨다.(30:33)

 

둘째, 극악무도한 죄인들에게 회개가 필요하다. 사람들은 날마다 사탄의 군대에 지원하고 있다. 사람들은 저 옛적의 유대인들처럼 누가 더 악한지 다투는 듯하다. 사람들은 세례의 서약을 취소하고 악마와 이면계약을 맺었다! 그들이 소돔과 같이 자기들의 죄를 드러내 놓고 말하며 숨기려 하지도 않는다. 죄인들은 아예 하나님께 도전장을 보내기까지 한다. 이것은 모두 그가 하나님께 대항하여 주먹을 휘두르고 전능하신 분을 우습게 여긴 탓이 아니겠느냐? 전능하신 분께 거만하게 달려들고 방패를 앞세우고 그분께 덤빈 탓이다.”(15:25-26)

 

사람들은 뻔뻔하지 않은 것을 오히려 수치로 여긴다. 요세푸스가 유대인들을 가리켜 했던 말이 오늘날 우리를 가리켜 하는 말이 되지 않기를 바랄 따름이다. 그 시대의 사악함이 하도 극단적이었으므로 로마가 함락시키지 않았다면 아마 예루살렘은 지진으로 땅 속에 묻히거나 홍수에 휩쓸리거나 하늘의 불벼락으로 망했으리라는 것이다.

 

율법과 복음이 모두 땅에 떨어졌으니 죄악을 담는 뒤주가 찬 것 같다. 죄가 그토록 빨리 찰 때는 즉시 눈물을 쏟아내야 마땅하다. 어찌하여 회개의 샘이 막혔는가? 하지만 사람들의 마음이 워낙 돌덩이인지라 목회자들이 쓰는 이 연장들이 오히려 대부분 닳고 말았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무수한 설교자들을 보내시어 회개를 요청하셨건만, 사람들은 여전히 찌꺼기처럼 가라앉아 있다.

 

우리는 진정 하나님께서 우리의 이 무례한 행위를 언제까지나 참아 주시리라고 생각하는가? 당신의 이름과 명예가 짓밟히는 모습을 하나님께서 과연 보고만 계시겠는가? 대체로 주께서는 믿음을 고백하는 자들의 죄를 처리하실 경우 재판 절차를 더욱 신속히 진행하신다.

 

눈물을 쏟아 내자. 그리하면 하나님의 저주의 두루마리가 날아간다. 사람이 굽히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구부러뜨리실 것이다. 어떠한 말로도 죄인들을 설득할 수 없다면 이제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멸하기로 작정하셨기 때문이다. 그분으로부터 회개의 눈물조차 금지당한 자들은 스스로를 사형수로 보아야 마땅하다.

 

셋째, 협잡꾼들에게 회개가 필요하다. 그들의 속임수는 다 헛것이다”(119:118) 그들은 악한 일을 행함에 슬기롭고 오로지 계략을 꾸미는 일에만 골몰한다. 그들은 믿음이 아니라 술책으로 살아간다. 그들은 스스로 가난해지는 잔재주를 부려서 부자가 되려는 자들이다. 그들은 아무것도 없는 척하지만 그 아무것도 없는 것으로 한 재산 챙긴다. 명백히 할 것은 이를테면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망한 이들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말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파산을 가장해 채권자들을 속이려는 자들이다. 그들은 저주를 꾹꾹 눌러서 자신들의 재산을 만든다.

 

넷째, 도덕주의자들에게 회개가 필요하다. 눈에 띄는 흠은 없지만 그들이야말로 정작 최악의 상태에 있다. 그들은 자신들은 회개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도덕을 자기들의 그리스도로 삼는데, 그것은 세련된 본성일 뿐이다. 도덕적인 인간은 훌륭하게 차려입은 옛 사람에 불과하다. 도덕은 구원의 능력이 없다. 삶은 도덕적일 수도 있어도 욕망은 죽일 수 없다.마음에 교만과 불신앙이 가득 차 있다. 아름다운 나뭇잎 뒷면에 벌레가 붙어 있는 것이다. 여러분이 도덕적이므로 회개하라는 것이 아니라 도덕적일 뿐이므로 회개하라고 나는 말한다. 도덕으로 구원받을 수 있다면 그리스도께서 돌아가실 필요가 없었다.

 

다섯째, 위선자들에게 회개가 필요하다. 이들은 죄에 온전히 몰두하는 사람들이다. 위선은 거룩의 모조품이다. 위선자는 일종의 연기자로서 도덕주의자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스스로 경건의 복장을 차려입는다. 그는 거룩한 체하지만 거룩의 능력은 부인한다. 위선자는 변장한 성도이다. 그는 겉은 금칠을 했으나 속은 썩어버린 나무기둥이다.

 

그가 겉으로 선한 체하는 것은 오히려 악해지기 위함이다. 그는 어떤 무리와 섞여도 변신할 수 있고, 따라서 어떤 때는 비둘기가 되었다가 어떤 때는 독수리가 된다. 다른 이들이 우러러 볼 수 있도록 성전기도는 좋아하지만 골방기도는 무시한다. 위선자는 겸손을 가장하지만 그 겸손은 세상에서 출세하기 위한 것이다. 그는 믿음이 있는 것처럼 행세하지만 그 믿음을 방패로 사용하기보다는 자신을 은폐하는 겉옷으로 사용한다. 그는 옆구리에 성경을 끼고 다니지만 그의 가슴에는 성경이 없다. 그가 보여주는 모든 신앙은 교활한 거짓이다.

 

위선자보다 회개를 어려워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들은 아예 회개하는 방법조차 모르며, 위선은 정신병보다 치료하기 어렵다. 더 늦기 전에 하나님께 가서 자비를 구해야 한다. 그들은 신앙을 결단에 의해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어떤 속셈을 가지고 의도적으로 받아들였으므로 악하다. 그리고 그들이 슬픈 것은 그들의 속임수가 오래갈 수 없기 때문이며, 그 위선자들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분노가 특별히 더 맹렬하기 때문이다. 이교도들이 저주받는다면 위선자들은 두 배로 저주받을 것이다. 지옥은 위선자들을 위한 장소라고 한다.(24:51)

 

여섯째, 은혜의 역사를 아는 참된 이스라엘, 곧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회개가 필요하다. 그들은 날마다 눈물의 제사를 바쳐야 한다. 누군가 신자가 되었을 때는 사면장을 받은 것이므로 이제 즐거워할 일밖에 없다는 것은 반율법주의자들의 주장이다. 즐거워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다른 할일이 하나 있으니 바로 회개이다. 회개는 끊임없는 행위이다. 죽을 때까지 신실한 슬픔을 멈추어서는 안 된다. 회개는 육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이다. 평생에 걸쳐 지속적으로 이루어 가는 일이다.

 

- 말씀의 촛불을 켜들고 마음을 밝혀 회개할 것을 살펴보자.

여러분의 성급한 비판을 회개하라. 그러므로 여러분은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는 아무것도 미리 비판하지 말라”(고전4:5)

여러분의 헛된 생각을 회개하라. 생각은 종잡을 수 없는 것이다. 사탄은 여러분의 육신을 사로잡지 못할 겨우 여러분의 그 생각을 지배한다. 헛된 생각으로 지옥에 떨어질 수도 있다.

 

여러분의 헛된 풍습을 회개하라. 신실한 자들은 세상을 본받지 말아야 한다.(12:2) 남들이 무엇을 하건 유다는 죄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4:15) 그리스도인들은 단정한 옷차림으로 겉옷을 삼고,(딤전2:9) 그리고 속옷은 겸손의 옷으로 입어야 한다.(벧전5:5)

여러분의 은혜의 쇠락을 회개하라. 네가 처음 사랑을 버린 것이다”(2:4) 여러분의 영혼이 썰물일 때가 얼마나 많은가? 영혼의 한기가 얼마나 자주 찾아오는가? 여러분의 한때 그토록 뜨겁던 마음은 어디 있는가? 오 그처럼 사랑을 버렸으니 회개하라!

 

여러분의 은사를 향상시키지 못했음을 회개하라. 건강도, 재산도, 지혜와 능력도 은사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은사들을 맡기시고 당신의 영광을 위하여 증진하게 하셨다. 여러분의 달란트를 땅속에 묻어 두었으니 통곡하라! 그토록 많은 세월을 헛되이 보냈음에, 여러분의 그 황금같은 시간을 원액이 아니라 거품으로 채웠음에 슬퍼하라.

거룩한 맹세를 잊었으니 회개하라. 맹세는 자신의 영혼을 하나님께 붙들어 매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 자신을 엄숙히 드림으로써 그분의 것이 된 이후로 다른 주인들을 위해 일하지 않았는가? 여러분은 맹세를 파기함으로써 여러분의 평화를 파기했다. 이는 명백히 새로운 눈물의 대야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복을 받고도 보답하지 않았으니 회개하라. 여러분은 평생 자비에 의지해 살아왔다. 값없이 주신 은혜의 저장품을 파먹으며 지냈다. 하지만 하나님께 돌려드리는 사랑은 어디 있는가?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배은망덕을 고발하지 않겠는가?

 

여러분의 속됨을 회개하라. 사람들 앞에서 하는 고백으로 보자면 여러분은 하늘 높이 올라 천상의 이슬만 먹고 사는 낙원의 새를 닮은 듯하지만, 여러분은 뱀처럼 흙을 핥고 있다. 바룩은 선한 인간이었지만 이와 같이 비난받았다. “네가 이제 큰 일을 찾고 있느냐?”(45:5)

 

여러분의 분열을 회개하라. 이는 여러분이 착용한 거룩한 문장의 얼룩이요, 믿지 않는 이들을 신앙에서 멀어지게 하는 요인이다. 우리가 악한 자들과 갈라선다는 것은 죄인들과 구별되시는 그리스도와 닮는 일이지만, 신실한 자들과의 갈라서는 분란은 교회의 아름다움을 가리고 그 능력을 약화시키는 것이다. 이는 분명 소나기 같은 눈물을 쏟아 내야 할 일이다.

 

여러분의 거룩한 일들을 더럽혔으니 회개하라.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형식주의로 얼어붙고 거만으로 식어빠질 때가 얼마나 많았는가? 거룩한 의무가 허영의 무대로 전략한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여러분이 행하는 의무는 너무도 딱딱하게 굳어서 하나님께서 잡수실 것이 거의 없음을 걱정해야 할 정도이다.

하나님께서는 다른 이들의 죄보다 신실한 자들의 죄를 더 노여워하신다는 점을 생각하며(32:19), 우리의 슬픔의 수위를 높여야 한다. 악한 자의 죄는 그리스도의 옆구리를 찌르고, 신실한 자의 죄는 그분의 가슴으로 향한다.

 

3. 모든 죄에 회개가 필요하다.

우리의 본성은 타락으로 훼손되었다. 지옥에도 우리의 본성보다 악한 것은 없다. 가장 선한 마음이라고 해야 베드로의 보자기와 같으니, 그 안에는 기어 다니는 부정한 것들이 가득하다.(10:12) 그것은 지하수 같아서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땅 밑에서 여전히 흐르고 있다. 죄의 충동을 멈추려는 것은 스스로 맥박을 멈추려는 시도와 다를 바 없다.

 

이 선천적인 타락으로 우리의 영적인 진보가 늦어지고 방해를 받는다. 나는 내가 원하는 선한 일은 하지 않고 도리어 원하지 않는 악한 일을 한다”(7:19) 죄는 추와 같이 우리에게 매달려서 천국으로 향하는 우리의 발걸음을 될 수 있는 한 늦춘다.

 

1) 원죄는 아무리 써도 없어지지 않고, 재고가 줄어들지 않는다. 오히려 죄를 지을수록 우리에게 죄는 더 많아진다.

 

2) 우리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 또 하나의 쐐기는 원죄가 바로 우리의 은혜로운 습관에 섞여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선량한 행위들이 그토록 단조롭고 무기력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의 감각()으로 막혔기 때문이 아니라면, 믿음이 더욱 강하게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우리의 욕망으로 차단당했기 때문이 아니라면,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순수하게 타오르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원죄가 우리의 은혜에 섞여 들어왔다. 폐가 나쁘면 천식이 생기고 숨이 가빠지듯, 원죄가 우리의 흉부에 침입했으므로 우리의 은혜는 지금 숨이 가빠 헐떡인다.

 

우리의 의지의 타락을 애통해하자. 의지는 하나님을 싫어하는데, 그분이 선해서가 아니라 거룩하시므로 싫어한다. 가장 심각하게 상처를 입은 것이 바로 우리의 의지이다.

 

우리의 감정의 타락을 탄식하자. 감정은 애초의 올바른 대상에서 이탈했다. 태초에 우리의 감정은 하나님께로 날아가는 날개였다. 지금 우리의 감정은 그분에게서 우리를 끌어내리는 쇳덩이 추이다. 우리의 사랑은 죄로 향하고 우리의 기쁨은 피조물로 향한다. 이 병든 감정은 어찌 정당하게 우리의 슬픔의 무대로 올라올 수 있겠는가? 안 그래도 지옥으로 떨어지고 있는 판에 감정이 우리를 그쪽으로 거세게 밀어붙이려 한다.

 

각별히 유념해야 할 것이 바로 자범죄이다. 어느 누가 자기 잘못을 낱낱이 알겠는가?”(19:12) 이러한 죄들은 태양의 원소들과 같고 용광로의 불꽃과 같다. 우리는 눈으로 죄를 지었으니, 눈은 허영이 들어오는 창이었다. 우리의 혀로 죄를 지었으니, 혀는 분노로 격하게 타올랐다. 우리의 행위 중에서 과연 죄 하나 섞이지 않은 깨끗한 행위가 있겠는가? 이 모든 죄들을 계산하느니 바다로 가서 물방울을 세는 편이 낫다. 부디 주님 앞에서 우리의 자범죄를 엄숙히 회개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