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도 아카데미

로이드 존스, '빌립보서 강해', 2장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성도 (김영희)

강대식 2019. 9. 19. 17:03

2 장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성도

 

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과 디모데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와 또한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강구함은, 너희가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라.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내가 너희 무리를 위하여 이와 같이 생각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너희가 내 마음에 있음이며 나의 매임과 복음을 변명함과 확정함에 너희가 다 나와 함께 은혜에 참여한 자가 됨이라”(1:1-7)

 

이 편지의 큰 주제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기쁨이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사도가 여기에서 말하는 삶을 세상에 보여 주어야 할 특별한 부르심이 있다. 이것이 왕도의 첫 걸음이라고 생각한다. 오늘날 세상은 우리의 말이나 설교를 들으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승리하는 삶의 모습이 보이며 확실히 극복하고 기뻐하는 사람의 모습이 보이면 주목하기 시작한다. 최초의 그리스도인들은 단순히 그리스도인답게 삶으로써 고대세계를 정복했다. 우리 모두 이런 삶을 살도록 부르심을 받았으며, 실제로도 능히 이런 삶을 살 수 있다.

 

사도는 1:12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이 주제에 손을 댄다. 왜 처음부터 다루지 않았는지, 그리고 왜 은혜와 평강의 인사부터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사도가 여기에서 제안하는 내용은 몇 가지 전제가 갖추어져야만 가능한 것이다. 사도 자신과 빌립보 교인들이 경험한 일,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해당되며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가능한 이 일은 앞의 열한 절에 전적으로 동의할 때에만 일어난다. 이것은 온 세상에 해당되는 보편적인 진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여기 사도의 말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일부에 불과하다.

 

과거의 그리스도인과 우리를 비교해 보자. 과거의 성도들을 살펴볼 때마다 발견되는 것은, 이 편지에 나오는 것과 같은 서정적인 분위기. 승리의 기쁨의 분위기이다. 우리와 얼마나 큰 격차가 있는지 알 수 있다. 교회는 무엇을 잃어버린 것인가? 왜 이렇게 확신도 없고 기쁨도 없고 승리의 영도 없는 것인가? 그 유일한 대답은 교리를 잊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복음의 축복을 받는 그 조건을 갖추는 일에는 주의하지 않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문제점이다. 우리는 위로와 행복을 얻되 우리의 기준에 따라 쉽고 간단하게 얻으려 한다. 아무 조건 없이 그것만 얻으려 한다. 성경의 모든 약속에 따르는 조건을 갖추지 않은 사람은 그 약속의 축복을 절대 경험할 수 없다. 그래서 바울은 부득이하게 열한 절에 걸쳐 토대를 이야기 한 후에야 비로소 구체적인 상황을 다루는 것이다.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와 또한 감독들과 집사들 - 신약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세상에 어떤 위로도, 위안도, 격려도 주지 않는다. 신약성경은 언제나 복음에서 출발한다. 이 편지의 대상은 그리스도인들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요건을 정확하고 분명하게 알지 못하면, 이 위대한 서신을 아무리 살펴도 유익을 얻을 수 없다. 행복해지려면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낮이 지나면 밤이 오듯이 그리스도인이 되면 나머지 것들은 다 따라오게 되어 있다.

- 참된 그리스도인의 특징은 무엇인가?

첫째, 함께 하나님의 은혜에 참여한 자라는 것이다. 너희가 다 나와 함께 은혜에 참여한 자가 됨이라”(7)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은총을 입은 사람이다. 은혜는 아무 공로나 자격 없이 받은 은총이라고 할 수 있다.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너희는 하나님이 주신 이 은혜, 이 은총을 나와 함께 나눈 자들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이 이 땅의 죄악 중에 태어난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이 사람들을 특별한 은총의 눈길로 바라보신다는 것이다. 내가 땅의 모든 족속 가운데 너희만 알았나니”(3:2) 하나님이 이스라엘 나라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셨고, 그들에게 비상한 은총을 내리셨으며, 그들과 그들의 안녕을 염려하셨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아무 공로나 자격이 없는데도 이 특별한 하나님의 은총과 선의를 나누어 가진 자며 거기 참여한 자라고 바울은 말한다.

 

이것은 너무나 엄청난 말씀이라 인간의 머리로 가늠하거나 상상할 수가 없다. 시편 기자는 여호와의 천사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친다고 했다(34:7).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18:10), “모든 천사들은 섬기는 영으로서 구원받을 상속자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을 받았느니라”(1:14) 실로 놀랍고도 경이로운 교리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주님은 이 점을 또 다른 방식으로 설명해 주셨다. 제자들을 위로하시면서, 하나님이 그들의 머리털까지 세신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니 근심하지도 말고 당황하지도 말라는 것이다. 그만큼 그들을 가깝게 아신다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을 입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여러분은 하나님이 자신에게 이런 은혜와 은총을 주셨음을 알고 있는가? 특별한 지위 특권적인 지위를 주셨음을 깨닫고 있는가? ‘여호와의 눈이 온 땅을 두루 감찰하며 그 백성에게 복 줄 기회를 찾고 있음을 인식하고 있는가? 이 사실을 모르면 이어지는 사도의 구체적인 논증을 따라갈 수 없다. 지금까지 살펴본 내용이 전부 사실이라면, 유일한 결론은 무슨 일이 생기든, 어떤 상황에 처하든, 안전하다는 것이다.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8:31)

 

둘째, 그리스도인은 성도라고 말한다. 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과 디모데는 그리스도 안에서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와 또한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편지하노니사도는 모두가 성도요 함께 은혜에 참여한 자라고 말한다. 바울은 감독을 비롯한 중직자들부터 언급하지 않는다. 성도부터 언급한 다음, ‘감독들과 집사들과 윗사람들을 덧붙인다. 이처럼 성도의 소극적 개념은 모든 평범한 그리스도인을 가리키는 말이다.

성도의 적극적인 개념, ‘따로 불러 낸 사람들, 구별해 낸 사람들, 떼어낸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하나님이 친히 쓰시려고 따로 취하시는 물건이나 사람은 다 거룩하다. 성도는 하나님의 성령이 세상에서 따로 취하여 하나님이 친히 구별하시고 차별화하신 사람들이다. 세상에 살지만 여느 사람들과 다른 사람들,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와 은총을 입는 특별한 무리에 속한 사람들이다. 성도라는 말의 핵심은 하나님이 그들을 불러내시고 구별하셨다는 사실에 있다. 이 사실을 안다면, 세상 사람들과 구별되어 그들의 행동이나 습관을 쫒지 않아야 한다는 것 또한 알아야 마땅하다. 빌립보서는 자신이 구별된 사람인을 아는 자, 그래서 더 구별되게 살고자 애쓰는 자를 위한 것이다. 오직 거룩한 자들을 위한 것이다.

 

셋째, 그리스도의 지체가 된 사람들이다. 바울의 모든 교리는 그리스도 안에서또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라는 말에 기초한다. 바울서신에 그리스도 안이라는 말은 48, “그리스도 예수 안이라는 말은 34, “주 안이라는 말이 50회 나온다. 예수 그리스도가 없으면 바울의 복음도 없다. 복음은 모호하고 일반적인 제안이 아니며, 단순히 선하게 살라는 권고도 아니다. 복음은 그리스도 안에서 일어난 일들을 이야기한다. 그리스도가 없으면 구원도 없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가 절대적인 중심과 핵심에 계시지 않다면, 다른 것은 몰라도 기독교는 될 수 없다.

성도라는 또 다른 의미는, 성약(聖約)의 원리, 대표의 원리에 따라 예수 안에 있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인류를 대표한 사람 아담은 타락하여 인류 전체가 사탄의 권세와 지배 아래 들어갔다. 또 다른 측면은 그리스도도 우리의 대표가 되신다. 그리스도인이란 그가 십자가에서 자신을 대표하여 자신의 죄를 지고 형벌을 받으셨다는 사실을 확실히 아는 사람이다. 자신을 대표하는 분이 죽으셨기 때문에 나도 죽은 것이다. 그리고 그가 살아나셨을 때 함께 새로운 생명을 받았고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 나는 그리스도 안에 있다. 그가 나의 대표시다. 그와 나는 대표의 원리에 따라 연합되어 있다.

 

그뿐만 아니라 성도라는 말에는 그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생명의 연합도 일어난다는 뜻이다. 요한복음 15장이 이 점을 분명히 보여 주고 있다. 그리스도와 나 사이에 신비한 연합이 일어난다. 그리스도의 생명이 내 안에, 내가 그리스도 안에 거하게 된다. 사도는 교회란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고 말한다.(고전12:27) 그리스도가 머리시고 우리는 몸이다. 살아 있는 유기체 연합체 안에 한 피가 흐른다. 또한 우리는 포도나무의 가지이다. 원 나무의 생명력이 우리에게로 흘러 들어온다. 이처럼 그리스도와 신비한 생명의 연합을 이루는 자가 바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성도이다.

우리가 과연 이런 의미에서 스스로 성도라고 생각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자신이 놀라운 하나님의 은총 안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는가? 자신이 성도임을 알고 있는가? 자신이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사실을 아는가? 자신이 그와 함께 죽었다는 것, 또한 그와 함께 살았다는 것을 아는가? 이 지위를 얻은 자, 이 지위를 알고 주장하는 자에게는 바울이 빌립보 교인들에게 말한 일이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