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0-27 주일설교
본문: 시 119:1-8
제목: 전심으로 여호와를 구하는 자
시 119편은 176절에 이르는 긴 시편이다.
특징은 거의 모든 절에서 여호와의 말씀인 율법을 언급하고 있다는 것이다.
각기 다른 표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다.
여호와의 증거, 주의 도, 주의 법도, 주의 계명, 주의 의로운 판단, 주의 율례---
진리의 말씀인 율법을 사랑하고 지켜 행하는 것의 복을 내내 강조하고 있다.
오늘날 성경을 멀리하고 주의 법도를 모르고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만 행하는
현대판 이스라엘들에게 경고와 책망과 바른 교훈과 의를 교육한다.
현대 교회는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과 똑 같고 더 악한데도 모르고 있다.
그들이 평안하다 평안하다 하면서 멸망에 이른 것 같이
현대 교인들도 평안하다 평안하다 하면서 멸망의 길로 가고 있다.
주님의 말씀을 귀담아 들어야 한다.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길이 넓어 그리로 가는 자들이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다.
이는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양의 옷을 입고 나아오지만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가 들어 있다.
열매를 보면 그들을 알 수 있건만, 화려한 겉만, 외양만, 외식만, 보고 속는 것이 문제이다.
나쁘고 악한 열매를 맺고 있는데도, 아랑곳 없이 큰문 넓은 길로만 가고 있다.
주의 증거들에게는 마음이 향하지 않고 탐욕으로만 향해 가고 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인 것을 모르고 있다.
주의 입의 법이 천천 금은보다 더 좋은 것을 모르고 있다.
세상의 천천 금은은 날아가 버리고 좀과 동록이 해하고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해 간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면 모든 것을 더해주시는 복을 모른다.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을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것을 모른다.
종교는 악세사리에 불과하고 야곱처럼 ‘엘엘로헤이스라엘’ 예배로 만족하고 있다.
하나님이 만나주시는 ‘엘벧엘’의 예배를 모른다.
우상을 버리고 정결하게 하고 옛 사람을 버리고 드리는 예배를 모른다.
영과 진리로 드리는 참된 예배를 모르고,
크고 화려한 산당, 예배당에서 드리는 예배들이 ‘엘엘로헤이스라엘’ 예배인 것을 모른다.
흑암과 사망에 이르고, 곤고와 쇠사슬에 매이게 해도 깨닫지 못한다.
내가 지금 멸망으로 인도하는 큰 문, 넓은 길로 가고 있는 것을 모르고 있다.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들에게, 그 심판으로,
미혹의 역사를 보내어 거짓 것을 믿게 하는 줄을 모르고 있다.
사람의 계명을 교훈으로 삼아 가르치니 하나님을 헛되이 경배하고 있다.
사람의 지혜와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르니 그리스도를 따르지 않고 있다.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사로잡혀 있는 것을 모르고 있다.
모든 이론과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지 않고 있다.
각기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살면 가나안 땅도 사사시대 암흑시대가 되고 만다.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고 곤고와 쇠사슬에 매임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지존자의 뜻을 멸시하기 때문인 것을 모르고 있다.
1. 여호와를 전심으로 구하는 자는 율법을 따라 행하는 자이다.
“행위가 온전하여 여호와의 율법을 따라 행하는 자들은 복이 있음이여
여호와의 증거들을 지키고 전심으로 여호와를 구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행위의 온전은 세상이 말하는 도덕적인 온전이 아니고,
거룩함에 이르는 것이요, 성숙에 이르고, 성화에 이르는 것이다.
율법을 따라 행해야 되는 것이지, 사람의 지혜와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라서는 될 수 없다.
여호와의 증거들을 지키는 자가 전심으로 여호와를 구하는 자이다.
율법을 따라 행하여 행위가 온전하기를 힘쓰는 자가 여호와를 전심으로 구하는 자이다.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신다.(출20:6,신5:10)
전심으로 여호와를 구하는 자가 복이 있다.
하나님께 복 받기를 그렇게 원하면서도
하나님이 말씀하는 그 조건에 귀를 기울이고 마음을 향하는 자가 너무도 적다.
복 있는 사람은 율법 곧 성경을 즐거워하여 주야로 묵상하여 지켜 행하는 자이다.(시1편)
사람은 생각하는 것을 행위로 옮긴다.
주야로 말씀을 묵상하지 않으면 말씀대로 살 수가 없다.
나의 계명을 지키고 행하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라고 하신다.
말씀은 어느 시대에나 있었다. 사사시대에도, 왕국 멸망시대에도, 중세 암흑시대에도.
문제는, 말씀에 대한 바른 해석이고, 바른 적용이다.
성령의 지혜로 가르침을 받고 성령의 능력으로 사는 것이 중요하다.
사람의 계명과 철학으로 가르치고 배우는 것이 문제이다.
사람의 지혜와 세상의 초등학문으로 가르치고 배우는 것이 문제이다.
모든 이론과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복종시키지 않는 것이 문제이다.
사도 바울은 사람의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하지 않았다.
오직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말씀을 전하였다.
하나님께 순전한 말씀을 받아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앞에서 전하였다.
우리의 믿음이 사람에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하나님이 우리를 거의 일생 동안 광야길을 걷게 하시는 것은,
오직 떡으로만 살지 않고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게 하기 위해서이다.
주리게도 하시고 낮추기도 하심으로 오직 말씀으로 살게 하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그의 종들과 백성들은 주리게 하신 줄도, 낮추게 하신 줄도 모르고 있다.
오직 생활에만 허덕이며 사는 것이 바로 주리게 하신 것이다.
별 볼일 없는 인생을 사는 사람이 바로 낮추게 하신 것이다.
말씀으로 삶으로써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고 복 있는 자가 되게 하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그 길로 돌이키는 자를 찾아보기가 매우 힘든다.
왜?를 묻지 않고 성경에서 그 답을 찾지 아니한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좁은 문, 협착한 길은 찾는 이조차 적음이라.
2. 내 길을 굳게 정하사 주의 율례를 지키게 하소서
“내 길을 굳게 정하사 주의 율례를 지키게 하소서
내가 주의 모든 계명에 주의할 때에는 부끄럽지 아니하리이다”(5-6)
나도 내 몸을 쳐서 복종시켜 내 길을 굳게 정해야 한다.
주의 율례들을 지키기로 말이다.
떡으로 살지 않고 말씀을 사랑하고 살기로 확정하고 또 확정해야 한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기로 확정하고 또 확정해야 한다.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하리이다 내 영광아 깰지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시57;7-8)
내가 새벽을 깨우고 내 영광을 깨워야 한다. 비파와 수금으로도 깨워야 한다.
나도 힘을 다해 수고하기로 굳게 정해야 한다.
내가 주의 모든 계명에 주의할 때에는 내 인생이 결코 부끄럽지 않을 것을 믿어야 한다.
아브라함은 바랄 수 없는 중에 믿었다.
하나님은 그 믿음을 의로 여기고 자기로 맹세하시고 그 축복을 이루어주셨다.
모세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다.
그것은 상 주심을 바라보았기 때문이었다.
“참으로 그들은 불의를 행하지 아니하고 주의 도를 행하는도다
주께서 명령하사 주의 법도를 잘 지키게 하셨나이다.”(시119:3-4)
참으로 그들은 고난 중에도 불의를 행하지 아니하고 주의 도를 행했다.
내가 하나님 앞에서 이 큰 악을 범하리요 하면서 유혹을 물리쳤다.
하나님은 명령하시고 은혜를 주셔서 주의 법도를 잘 지키게 도와주셨다.
고난을 주신 분도 하나님이시요
그 고난 중에 위로하시고 법도를 지키게 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다.
3. 내가 주의 의로운 판단을 배우리이다.
“내가 주의 의로운 판단을 배울 때에는 정직한 마음으로 주께 감사하리이다
내가 주의 율례들을 지키오리니 나를 아주 버리지 마옵소서”(7-8)
주의 의로운 판단은 율법이고 성경이다.
지존자의 의로운 뜻과 판단과 지혜가 성경에 말씀으로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지 않으면,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 수도 없다.
성령으로 거듭나고 회심한 후에는,
성령의 지헤로 가르친 전통을 따라 말씀을 새롭게 배워야 한다.
배우지 않고 되는 것은 없다.
더욱이나 영적인 것은 영적으로 분별하는 데,
영적인 배움이 없이는 영적인 것을 분별을 할 수 없고 영적으로 살 수 없다.
초대교회가 세워질 때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이었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헌부대에 부으면 부대도 찢기고 포도주도 쏟아버리게 된다.
헌부대는 거듭나기 전의, 사람(세상)의 사고방식과 가치관이다.
이 옛사람의 사고방식, 가치관을 벗어버릴려면,
우리 몸에 어릴 적부터 배어 있고 모든 생각과 행위를 결정하고 있는 패러다임을 전환할려면,
적어도 3년은 전심으로 말씀으로 공부하는 기간이 필요함을 절감한다.
주님도 제자들을 3년 가르치셨다.
다니엘과 친구들도 3년을 공부하게 했다.
서당개도 풍월을 읊을려면 서당에서 3년을 살아야 한다.
청교도 아카데미는 이 목적을 위해서 세워졌다.
말씀의 사람, 성령의 사람의 절정인 청교도들의 신앙과 신학만을 가르치고 배운다.
청교도들은 행위가 온전하여 여호와의 율법을 따라 행한 성숙의 모범이었다.
여호와의 증거들을 지키고 전심으로 여호와를 구한 성경적인 사람의 모범이었다.
이 청교도들의 성숙과 전심으로 인하여 하나님은 복을 주셨다.
교회에는 참된 부흥을 주셨고, 나라에는 참된 부강을 주셨다.
영국을, 200년동안 세계를 지패하는 강대국이 되게 하셨고,
청교도들이 세운 미국을, 200년 동안 세계를 재패하는 강대국이 되게 하셨다.
잘못되고 허황된 교리의 개혁 없이, 참된 부흥 없고, 참된 부강 없다.
개인도, 가정도, 교회도, 나라도 마찬가지로 동일하다.
인위적인 부흥주의는 교리를 거역하고 지존자의 뜻을 멸시함으로 이루어진다.
인간적인 지혜와 방법으로 세운 바벨탑은 무너지게 되어 있다.
겨자씨 한 알이라도 하나님의 방법으로 세우면, 공중의 새들이 깃드는 큰 나무가 되게 하신다.
적은 누룩이라도 하나님의 지혜로 세우면 가루 서말을 전부 부풀게 하신다.
때가 되면 하나님은 그 작은 자를 천명을 이루게 하고 그 약한 자를 강국이 되게 하신다.
종려나무 같이 번성하게 하시고, 레바논의 백향목 같이 성장하게 하신다.
거름더미에서, 진토에서 일으켜 세워 영광의 자리에 앉게 하신다.
밭에 먹을 것이 없고, 우리에 양이 없고,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고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면,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신다.
주의 의로운 판단을 배울 때에만 정직한 마음으로 주께 감사할 수 있다.
하나님을 제대로 모르고, 하나님의 의로운 판단을 모르고서는, 배우지 않고서는,
정직한 마음으로 주께 감사할 수가 없는 것이지요,
내가 주의 율례들을 지키면 하나님은 나를 아주 버릴 리가 없다.
고난이 길고, 앞길이 어둡게만 보일지라도,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가 길지라도,
그 끝에 잔치상과 연회가 기다리고 있고, 기름을 머리에 붓고 잔이 넘칠 날이 기다리고 있다.
노예로 팔리고 억울한 감옥살이의 끝에 대제국 총리의 영광이 기다리고 있었고,
왕의 군대 3천명에게 쫓기고 적국에 망명을 하고 시글락의 위기를 겪었지만,
그 끝에 헤브론이 기다리고 있었고 왕으로의 기름부음이 기다리고 있었다.
40년 동안 하나님은 나타나지 않으시고 장인 양떼를 거느리고 호렙 산에만 오르던 끝에,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 천사가 나타나고, 놀라운 기적의 연속인 출애굽의 역사를
진두지휘하는 위대한 능력의 지도자 40년의 영광이 기다리고 있었다.
하나님은 어제와 오늘이 동일하시다.
어제 인생들에게 인자하심으로 기적을 행하셨다면,
그 하나님은 오늘 나의 인생에게도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여호와를 찬송하게 하신다.
오늘 내게 주어진 소유와 환경에만 매달려 쪼그라들고 찌들어진 믿음으로 살지 마시고
기적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전심으로 구하고,
그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말씀을 공부하고 말씀으로 사는 일에 힘쓰시기 바란다.
하나님은 우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물로 드릴 때 영적 예배로 받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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