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11/10 주일설교, '온전하게 되는 고난', 히 5:8-9

강대식 2019. 11. 10. 23:31

2019-11-10 주일설교

본문: 5:8-9

제목: 온전하게 되는 고난

 

1. 아들이시라도 고난을 받으셨다.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5:8)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삼위일체 하나님이시다.

세 위격으로 계시면서 세 하나님이 아니시고 오직 한분 하나님이시다.

그 진리를 사람의 지혜로는 알 수 없고,

오직 성령을 받아야, 성경이 믿어지면서, 삼위일체 교리를 믿을 수 있다.

 

성경은 아들 하나님을 아버지 하나님이 낳으셨다고 한다.

피조물이 아니라 영원한 아들 하나님으로 낳으셨다.

너는 내 아들이니 내가 오늘 너를 낳았다”(5:5,2:7)

 

성령은 아버지와 아들에게서 나오셨다고 한다.

그래서 아버지의 영이요 아들의 영이시다.

우리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축도를 한다.

세 위격은 한 하나님을 이루시는 동격이요 동등하시다.

 

그 아들 하나님이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

우리가 받을 죄의 형벌을 대신하여 죄 없으신 분이 받으셨다.

그 결과, 우리는 아무 공로 없이 은혜로 선물로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직접 낳으신 아들이요,

우리는 그리스도의 고난을 통하여 그를 믿고 영접하여 아들들이 되었다.

이 아들들이 하나님의 자녀 또한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다.

 

영접하는 자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1:12-13)

 

오늘날 교회의 문제는 사람들이 오직 혈통으로, 육정으로, 사람의 뜻으로,

하나님의 자녀를 양산하고 있다는 것이다. 영접기도만 따라서 해도 자녀가 되고 있다.

성경은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고는 하나님께로부터 날 수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2:8-9)

 

성자 예수 그리스도도 우리도 한 근원 하나님에게서 낳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거룩하게 하시는 이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한 근원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2:11)

 

내가 주의 이름을 내 형제들에게 선포하고 내가 주를 교회 중에서 찬송하리라

볼지어다 나와 및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자녀라”(2:12,13)

 

우리 주님은 그리스도인들을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시고

친구라 부르시기를 기뻐하셨다.

이 존귀와 영광이 어떠한 것인지는 이제 하늘나라에 가서야 놀라고 알게 될 것이다.

 

이 땅에서 그 존귀와 영광을 알고 맛보는 길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요, 성령의 조명을 통해서이다.

이를 분명히 알면, 이 땅에서 땅의 것들을 향해 그렇게 노심초사하지 않을 것이다.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고난을 받으신 것은 오직 우리의 죄를 속량하고

믿음으로 의롭게 되고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자녀는 어린아이에서 어른으로 성장하고 성숙하고 성화되어야만 한다.

 

2. 받으신 고난으로 온전하게 되셨다.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은즉”(2:8-9)

 

히브리서는 고난 받는 주의 백성을을 위로하고 성숙하게 하기 위해 쓰여졌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은 단지 죄사함을 위한 속죄제물만이 아니고

우리를 온전하게 하기 위한 희생제물이요 화목제물이었다.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가 온전하게 되는 법을

십자가에서 본을 보이시고 친히 가르쳐 주셨다.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그러나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벧전2:20-21)

 

고난을 받았다고 다 온전하게 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익히 아는 바이다. 고난을 받으며 더 완악하게 되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119:67, 71)

 

고난을 받으며 우리가 배울 것은 하나님과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다.

우리 주님이 그 본을 보이시고 우리로 하여금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셨다.

우리 주님은 자기를 낮추시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순종하셨다.

 

이러므로 하나님은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고,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셨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게 하셨다.

 

죽음의 고난을 받으심으로 말미암아 영광과 존귀로 관을 씌우신 것이다.

그의 죽음의 고난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었다.

그것은 그들의 구원의 창시자를 고난을 통하여 온전하게 하신 것이었다.

 

죽음의 고난 받으심으로 말미암아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만물이 그를 위하여 또한 그로 말미암은 이가 많은 아들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그들의 구원의 창시자를 고난을 통하여 온전하게 하심이 합당하도다”(2:9-10)

 

구원의 창시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고난을 통하여 온전하게 하셨는데,

그것은 우리가 가야 할 길의 본을 보이신 것이다.

그런데도, 고난 없는 형통을 말하는 자들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 줄 알아야 한다.

 

우리가 은혜로 선물로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지만,

그것은 출발이요 시작일 뿐이다.

우리가 온전하게 되는 길은 고난을 통해서 순종함을 배워 온전하게 되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고난만 오면 순종하며 말씀을 배우며 온전한 길로 가지 않고,

원망하며 불평하며 그저 애굽의 부추와 파와 마늘만을 그리워하며 돌아갈려고 하였다.

모세가 가르치고 또 가르쳐도 소용이 없었고 결국은 그들 다수가 멸망을 당하고 말았다.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고난을 통해서 고난이 유익이 되어 말씀을 배우고 순종함을 배우지 못하면

온전하게 되지 못하고 벌써 선생이 되었어야 할 때에 여전히 초보에만 머물게 된다.

그 끝은 사망과 멸망임을 성경은 이스라엘 역사를 통해 가르쳐 주고 있다.

 

받은 고난에서 순종함을 배우지 못하면 온전에 이를 수 없다.

그 거룩한 온전이 축복을 가져오고 영광을 가져온다.

고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이 소망을 이루게 한다.

 

받은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 온전케 되면 주님처럼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게 하신다.

우리가 잠시 받은 고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이루게 하신다.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다고 하신다.

 

아브라함 요셉 모세 다윗 욥, 이들은 다 받은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케 된 사람들이고,

그 결과,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을 이땅에서 보여준 맛보기들이요 본보기들이다.

그들은 지금 하늘나라에서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을 누리고 있을 것이다


고난을 받으면서 말씀을 배우고 순종함을 배워야 유익을 얻을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온전하게 되는 길이고, 그것이 바로 축복과 영광을 가져온다.

성경이 가르쳐주는 진리요 복음이요 생명의 길이다.

 

주의 말씀들이 우리의 발에 등이요 우리의 길에 빛이 되도록 해야 한다.

우리를 주리게도 하시고 낮추기도 하시는 것은 오직 한 가지 목적,

우리가 떡으로만 살지 않고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게 하기 위한 것이다.

 

아무 승산도 소망도 없는 땅의 계산법으로 그만 살고, 그것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다.

말씀이 가르쳐 주는 하늘의 계산법으로 사시기 바란다. 우선 순위가 바뀌어야 한다.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면 모든 것을 더해 주신다.

 

하나님의 성실을 먹을 거리로 삼고,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아시기 바란다.

인간이 세우는 바벨탑은 허물고, 말씀탑, 순종탑을 세워가야 한다.

 

여호와의 말씀이 꿀보다 송이꿀보다 더 달고 천천 금은보다 더 좋은 것이 되도록

말씀을 사모하고 뜨겁게 공부하고 주야로 묵상하고 지켜 행하는 길로 가야 한다.

말씀은 우리를 원수보다 스승보다 노인보다 지혜롭게 명철하게 해준다.

 

모세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고난)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다.

그것은 상 주심을 바라보았기 때문이었다.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갔다.

 

3.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다.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5:9)

 

받으신 고난으로 온전하게 되셨기에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다.

고난을 받으며 죽기까지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시는 길을 우리 주님이 친히 걸으셨다.

 

우리도 주님의 본을 받아 그 자취를 따르며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 온전하게 되어야 한다.

주님께 이렇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을 주시고 주님은 그 근원이 되신다.

우리의 영원한 구원도 주님이 친히 그 근원이 되셨기에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그 근원을 버려 멸망 당했다.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니라”(2:13)

 

생수의 근원, 즉 생명의 근원이요 은혜의 근원인 하나님을 버렸다는 것이다.

그리고서는 스스로 웅덩이를 파서 우상을 섬겼는데, 생명의 물이 없는 터진 웅덩이었다.

하나님은 마음에서 버리고 스스로 터진 웅덩이를 파고서 만족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나님은 입술로만 섬기고 마음에서는 멀리 떠나보내고 우상들로 마음을 가득채우고 있다.

야곱처럼 숙곳에서 엘엘로헤이스라엘 제단만 쌓으며 평안을 구가하고 있다.

사람의 지혜와 세상의 초등학문으로 교훈을 삼으니 하나님을 헛되이 경배하고 있다.

 

우리는 생명의 근원이 되는 마음을 지켜야 한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우상을 마음에 채움으로 거역하지 말아야 한다.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4:23)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야,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말씀을 통해 분별할 수 있다.

 

생수의 근원이시요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 근원이 되셨기에,

우리가 받는 고난을 친히 몸으로 겪으셨기에,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시고 함께 하신다.

 

우리는 하나님의 상속자로서,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상속자로서,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해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을 받고 있다.

고난은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는 것이기도 하다.

 

고난 끝에, 순종함 끝에, 온전함 끝에, 거룩함 끝에, 축복과 영광이 기다리고 있다.

주님이 받으신 고난의 과정은 우리의 과정이요, 그 결말은 우리의 결말임을 믿으라.

주리게도 하시고 낮추기도 하시지만, 영원한 구원의 근원으로 인도하시기 위해서 이다.

그들이 주리거나 목마르지 아니할 것이며 더위와 볕이 그들을 상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을 긍휼히 여기는 이가 그들을 이끌되 샘물 근원으로 인도할 것이니라”(49:10)

 

우리가 고난을 받는 시절은 헐벗은 산이요 사망의 골짜기요 광야요, 마른 땅이다.

그 끝에, 그곳에, 하나님은 강을 내고 샘을 내며 못을 내며 샘 근원이 되게 하신다.

내가 헐벗은 산에 강을 내며 골짜기 가운데에 샘이 나게 하며 광야가 못이 되게 하며

마른 땅이 샘 근원이 되게 할 것이며”(41:18)

 

샘의 근원이 된다는 것은 복의 근원이 된다는 것이기도 하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라 하시면서 이렇게 축복하셨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의 근원)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12:2-3)

 

개정번역은 복이 될지라했지만, 내용을 보면 복의 근원이 될지라한 개역번역이 더 낫다.

복의 근원이니까, 축복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이 복을 내려 주시고

저주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이 저주를 내려주시는 것이지요,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으니까 복의 근원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받은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 온전하게 되면

우리를 복의 근원, 생명의 근원으로 만들어 주심을 믿으라.

아브라함의 복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곧 우리의 복이라 하셨다.(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