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도 아카데미

로이드 존스, '빌립보서 강해', 2부 평안의 삶, 1장 참된 기쁨 (깁영희)

강대식 2019. 12. 16. 17:22

2 부 평안의 삶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4:7)

 

1 장 참된 기쁨

 

끝으로 나의 형제들아 주안에서 기뻐하라”(3:1)

 

바울은 우리가 첫 설교에서 서신 전체를 개관하며 지적하고자 했던 주제를 여기에서 다시 요약하고 있다. 바울은 주 안에서 기뻐하는 법을 빌립보 교인들에게 가르치기 위해 이 편지를 썼다. 이것이 빌립보서의 주제요 메시지이다.

1장에서 자신의 상황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면서 그들의 시각을 바로잡아 주었다. 내게 산다는 것은 곧 그리스도를 의미하기 때문에 죽어도 유익하다라고 했다. 사느냐 죽느냐는 자신에게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2장 서두에서 이 문제를 다루면서, 성육신에 대한 뛰어난 서술을 통해 놀라운 대책을 내놓는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그러면 기쁨을 지킬 수 있다. 그리고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며 그가 친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기 때문에 자신이 없어도 구원의 역사는 계속될 것이라고 말한다.

 

바울은 3:1에서 일단락을 짓는다. 끝으로(그 밖에)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 뛰어난 선생이자 심오한 심리학자로서, 다루는 김에 한 번 더 기쁨의 주제를 상기시키는 것이다. 위대한 주제로 돌아가 이것은 그만큼 중대한 문제다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러면서 교회에 풍파를 몰고 올 수 있는 문제, 즉 유대교인들과 거짓 선생들이 자신을 따라다니며 어린 교회들 안에 지적, 신학적 혼동을 일으키고 있는 문제를 언급한다.

 

- “끝으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 - 이것은 권면이자 명령이다.

1. 주 안에서 기뻐한다는 것이 무엇인가?

1) 우리의 상태에 대한 묘사가 아니라 행동을 촉구하는 권면이다. 우리는 기쁨을 주관적인 상태나 기분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기쁨이 순전히 수동적으로나 주관적으로 경험하는 상태만 아니며, 그래서 문득 기쁨이 생기기를 믿고 기다리기만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기뻐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해야 한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기쁨을 누리지 못하고 불행하게 살고 있다. 그들은 기쁜 일이 생겨야 기쁜 것이 아니냐고 생각한다. 그 결과에 따라 자신의 행불행이 좌우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기뻐해야 하며, 기뻐할 수 있다.

 

2) 여기서 즉시 발생하는 두 가지 위험이 있다. 첫 번째 위험은 감정을 직접 공략해서 인위적으로 기쁜 상태를 만들려 하는 것이다. 공적 집회나 예배에서 얼마나 자주 이런 시도를 하는지 생각해 보라. 밝고 신나는 찬송으로 마음을 즐겁게 하려 든다. 감정을 직접 공략하려는 것이다. 자꾸 이런 시도를 하다 보면 반드시 잘못된 가르침이나 이런 저런 사교에 빠지게 되어 있다. 우리가 지켜야 할 철칙은 행복감이나 기쁨을 얻기 위해 감정적인 본성을 직접적이고 즉각적으로 자극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두 번째 위험은 밝고 행복하고 유쾌하게 보이고자 애쓰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멋진 일이라는 인상을 주기 위해 항상 노력한다. 정말 행복한 사람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절로 알 수 있다. 일부러 노력하는 사람은 연기하고 있다는 느낌, 의무감으로 노력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고 속이 다 들여다보인다. 그들이 보여 주는 기쁨이 생생하거나 본질적이지 않다는 것, 얄팍하다는 것을 금세 알 수 있다.

바울은 세상 사람들이 누리는 그 어떤 기쁨보다 큰 기쁨을 알았고, 동시에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진 것같이 탄식한다고 고백하던 사람이었다.(고후5:4) 그리스도인에게는 이 요소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3)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기쁨은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이 어떤 자리에 있는지 알 때 생겨난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나의 관계에 집중할 때 그 산물로 생겨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 외에는 아무도 참으로 기뻐할 수 없다는 것, 따라서 우리야말로 이 시대에 가장 확실한 기쁨의 증언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세상에서 너희가 환란을 당하나 담대하라!(기뻐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16:33) 주님은 실제 삶을 통해 보여 주며, 세상을 이길 것을 요구하신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8:38-39) 이것이 우리의 자리이다. 우리가 부름받은 자리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특권은 모든 상황과 상관없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여 줌으로써 세상에 충격을 주고 그들의 죄를 드러내며 그들을 그리스도께로 이끄는 것이다.

우리는 기뻐하고 있는가? 기뻐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이 된 후에 나타나는 결과인 동시에 그리스도인이 반드시 따라야 할 권면이다.

 

2. 우리는 왜 주 안에서 기뻐해야 하는가?

1) 기뻐하라는 명령을 받았기 때문에 기뻐해야 한다.

2) 우리는 주님을 위해, 주 안에서 기뻐해야 한다. 세상에 오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큰 구원은 하나님이 친히 계획하시고 이루신 것이다. 이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 있는 통치자들과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라”(3:10) 하늘에 있는 통치자들이 교회를 보면서 각종 지혜를 알게 된다는 것이다. 구원은 하나님의 작품이다. 하나님이 친히 구원과 기독교 복음을 세상에 보내주셨고 우리 삶 속에 보내주셨다. 이처럼 구원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라는 것이 우리가 기뻐해야 할 가장 큰 이유이다. 베드로는 하나님이 우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것은 그의 아름다운 덕과 영광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다.(벧전2:9) 이것이 구원의 목적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최고의 방법은 바로 그리스도인으로서 세상을 이기는 삶, 환난 속에서도 기뻐하는 삶을 보여 주는 것이다.

 

3)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 기뻐해야 한다. 인생 속에서 패배하고 좌절한 사람들 한 가운데 우뚝 서서, 기쁨을 촉구하는 새로운 삶, 다른 삶의 빛을 발하는 것, 사람들이 그 삶을 바라보고 내가 바라던 삶이 바로 저기 있구나하게 만드는 것이 우리의 할 일이다.

 

4) 우리 자신을 위해서도 주 안에서 기뻐해야 한다. 주 안에서 기뻐해야할 이유는 주 안에서 기뻐하는 것이야말로 우리 앞에 있는 대다수의 위험에 대한 가장 큰 방어막임을 아는가? 느헤미야는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라고 말한다.(8:10) 우리는 행복할수록 일이 더 수월해진다. 중심이 흔들리는 사람은 남들과 부딪치기 전에 이미 문제를 떠안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리스도인의 삶을 순탄하고 자유롭게 사는 방법은 기초부터 바로잡는 것이다.

그릇된 동기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형제들에 대한 가장 큰 방어막이라고 말한다. 바울은 자신과 자신의 설교 때문에 기뻐했다면, 사람들의 공격에 큰 상처를 입었을 것이다. 그러나 주님을 위해, 주 안에서 기뻐했기 때문에 그런 공격이 먹히지 않은 것이다. 우리가 그토록 상처를 받고 예민한 것은 자의식과 자존심 때문이 아닌가? 우리에게 필요한 대책은 자기 자신을 생각지 말고 주 안에서 기뻐하는 것이다. 우리는 주님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다. 스스로 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모든 것을 잃어도 낙망치 않는다. 전부 주님을 위해 맡은 것이지 자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처럼 참된 기쁨은 사면의 온갖 공격에 방어막 역할을 한다.

 

5) 오직 이 기쁨만이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다른 기쁨의 토대는 그것이 무엇이든 결국 다 사라지고 혼자 덩그러니 남게 된다. 벌거벗은 영혼만 빈손으로 남아, 그동안 죽음의 강 너머 가져갈 수 없는 것들을 의지하며 살아왔음을 깨닫게 된다. 죽음의 고독이 밀어닥친다.

보라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16:32) 우리도 이런 순간을 맞이할 것이다. 이 기쁨만이 우리를 저버리거나 떠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할 것이다. 내 기쁨이 주 안에 있는 것이라면, 그 무엇도 나를 해칠 수 없다. 참된 기쁨은 인간이 결코 손댈 수 없는 것, 인간과 인간의 온갖 음모 및 해치려는 시도 너머에 있는 것이다.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다.

 

3. 어떻게 주 안에서 기뻐하는가?

1) 주 안에서 기뻐하는 길은 먼저 다른 기쁨의 원천을 배제하는 것이다. 이것은 소극적이지만 본질적인 명제이다. 빼앗길 수 있는 것에 기쁨의 원천을 두고 있다면, 얼른 바로 잡아야 한다. 세상에 소속되지 말아야 한다. 세상과 세상에 주는 것들에 얽매이지 말아야 한다. 그 자체로서는 합당하고 대부분 하나님이 주신 것들이지만, 그럼에도 내 기쁨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야 한다. 안전하지 않은 토대에 온 에너지를 쏟는 일이 없게 해야 한다.

 

2) 주를 묵상해야 한다. 적극적인 명제로서, 주를 깊이 생각해야 한다. 주를 생각하지도 않으면서 주 안에서 기뻐할 수 없다.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12:1-2) 주를 바라보아야만 주 안에서 기뻐할 수 있다.

 

3) 우리는 우리를 위해 하신 일, 크고 놀랍고 영광스러운 일을 살펴보고 묵상해야 한다. 십자가를 바라보아야 한다. 주님이 겪으신 모든 고난을 살펴보아야 하며 십자가가 주님께 무슨 의미가 있는지 상고해야 한다. 그가 감내하신 모든 일을 살펴보면서 이 모든 일을 날 위해 하셨다라고 고백해야 한다. 다음에는 그가 지금 우리를 위해 하고 계시는 일도 기억해야 한다.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1:6)

 

사랑하는 여러분, 그가 어떻게 여러분의 삶에 들어오셔서 상황을 바꾸시고 소망과 확신을 주셨는지 생각하면 참으로 놀랍고 신기하지 않는가? 그는 이러한 방법들로 성령을 통해 일하고 계시며 앞으로도 계속 일하실 것이다. 이 사실을 깊이 알면 알수록 더욱 기뻐하게 된다. 그리스도가 다시 오셔서 모든 원수를 물리치시고 그 나라를 세우시는 마지막 완성의 때가 오고 있다. 마지막 때를 고대하며 모든 것이 완성될 날을 기다리게 된다. 그때 주를 믿고 주 안에서 기뻐하던 자들이 그와 함께 영원토록 다스릴 것이다.

 

바로 이것이 주 안에서 기뻐하라는 권면의 의미이다. 가만히 앉아서 절로 기쁜 마음이 생기길 바라서는 안 된다. 인위적인 기쁜 감정을 만들어 내서도 안 된다. 주 안에서 기뻐하는 길은 주와 그의 구원을 묵상하는 것이며, 그가 하신 일과 지금하고 계시는 일, 장차 하실 일을 바라보는 것이다. 이것을 참으로 아는 사람은 기뻐하지 않을 수 없다. 그가 여러분을 일으켜 주셔서, 세상과 세상의 온갖 괴로움 앞에서도 웃게 해주실 것이다. 죽음 앞에서도 웃게 해주실 것이다. 죽음은 사랑하는 주님이 계신 곳과 그 영광으로 들어가는 작은 문에 지나지 않는다.

 

끝으로 나의 형제들아 주안에서 기뻐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