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2/9 주일설교,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 막 7:18-23

강대식 2020. 2. 9. 20:17

2020-02-09 주일설교

본문: 7:18-23

제목: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

 

1.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지 않는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 몇이 예루살렘에서 와서

예수님의 제자 중 몇 사람이 부정한 손 곧 씻지 아니한 손으로 떡 먹는 것을 보았다.

바리새인과 모든 유대인들은 장로들의 전통을 지키어, 손을 잘 씻지 않고서는 음식을 먹지 않았고 시장에서 돌아와서도 물을 뿌리지 않고서는 먹지 아니하였고, 잔과 주발과 놋그릇을 씻었다.

 

이들이 예수께 물었다.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장로들의 전통을 준행하지 아니하고 부정한 손으로 떡을 먹나이까?”

주님의 대답이시다.

이사야가 너희 외식하는 자에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기록하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여도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하였느니라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느니라 

너희가 너희 전통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잘 저버리는도다”(7:6-9)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면 하나님을 헛되이 경배하게 된다.

입술로는 하나님을 공경하면서도 마음은 하나님에게서 멀게 된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계명보다 장로의 전통, 사람의 전통이 더 중요하였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이다.

나를 사랑하고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20:6)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14:15)

나희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14:21)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요일5:3)

 

계명은 십계명은 물론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하나님의 모든 말씀이다.

떡으로만 살지 않고 이 말씀으로 살 때 계명을 지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 곧 계명을 지키는 자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복을 받는다.

 

음식이 사람을 더럽게 할 수 없다.

이는 마음으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배로 들어가 뒤로 나가기 때문이다.

이러므로 모든 음식물은 깨끗하다 하신다.

 

음식을 금한다고 사람(속사람)이 깨끗해지지 않는다.

잘못된 신령을 구하는 자들이 금식함으로 깨끗해진다고 착각하고 속고 있다.

음식을 금하고 결혼을 금하고 하는 것들은 외식이요, 탐심이요, 거짓의 위장이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딤전4:4-5)

 

외식하는 종교인들은 씻지 아니한 부정한 손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고

하나님의 계명보다 장로의 전통을 더 지킬려고 하였다.

위생을 위해서 하는 것이지, 그것이 사람을 깨끗하는 것과는 상관이 없다.

 

그들의 눈에는 장로의 전통을 지키지 않는 부정한 손만이 보이고

주님의 눈에는 그들이 그렇게 외식하면서 하나님의 계명을 더럽히는 것이 보였다.

장로의 전통은 지키면서 하나님의 계명을 왜곡하고 버리는 것이 보였다.

 

오늘날에도 제도화된 종교 안에서 사람이 만든 전통은 지키면서

하나님의 계명은 무시하고 지키지 않고 있다.

사람의 계명 곧 사람의 지혜와 세상의 초등학문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면,

그 사람의 지혜와 전통으로 성경을 해석하고 가르치면,

그것은 하나님의 계명을 더럽히고 하나님을 헛되이 경배하게 된다.

입술로만 하나님을 공경하고 마음은 하나님에게서 먼 것이 된다.

 

손은 물로 씻으면서도, 마음은 거룩한 계명을 더럽힐 수 있다.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면서도 마음은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차게 할 수 있다.

겉으로는 깨끗하게 보이면서도 율법의 중한 바 의와 인과 신은 버릴 수 있다


계명을 사람의 전통이나 지혜로 더럽히면 그것이 저주를 불러오게 된다.

계명의 뜻을 바로 알고 지키면 복이요, 지키지 않으면 저주가 있을 뿐이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을 멸시하고 있다.

 

수도원에 들어가 금식하고 고행하는 것이 사람을 깨끗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깨끗한 손도, 금식도, 고행수련도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를 깨끗하게 하지 못했다.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다는 말씀과 성령의 역사가 그를 깨끗하게 하였다.

 

살가죽을 베는 할례가 사람을 깨끗하게 하는 것이 아니요

영으로 마음가죽을 베는 것이 사람을 깨끗하게 한다.

물로 하는 세례가 사람을 깨끗하게 하는 것이 아니요 성령의 세례가 마음을 깨끗하게 한다.

 

2.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

 

사람에게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둑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질투와 비방과 교만과 우매함이니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7:20-23)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은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다.

주님은 마음에서 나오는 악한 생각을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셨다.

음란 간음 음탕 질투도 마음의 악한 생각에서 나온다.

도둑질 살인 악독 비방 속임도 마음의 악한 생각에서 나온다.

탐욕 교만 우매함도 다 마음 속에서 나오는 악한 생각의 산물이다.

 

마음에서 악한 생각이 나와서 악한 행동을 하게 한다.

그것이 습관이 되고 옛 사람을 형성해서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다.

그것들이 그 사람의 패러다임을 형성해서 사고방식과 가치관을 낳고 개성을 형성한다.

문제는, 각기 소견에 옳은 대로 살아서 흑암이 깊은 인생, 사사시대 암흑시대를 낳는다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 곧 본성은 인류의 조상 아담이 범죄한 이래 원죄를 물려 받아 죄성으로 가득차 있다.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5:12)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고 있다.

선한 사람은 마음에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낸다고 하셨다.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한다고도 하셨다.

 

못된 열매 맺는 좋은 나무가 없고 또 좋은 열매 맺는 못된 나무가 없다.(6:43)

나무는 각각 그 열매로 안다.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또는 찔레에서 포도를 따지 못한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좋은 열매 맺는 좋은 나무가 되기 보다는

외모 학벌 출생성분 출신지역, 소유와 소속의 크기만을 추구하고 그것으로 사람을 평가한다.

사람은 외모를 보아도 하나님은 그 중심을 보신다.

 

외모 지상주의 돈 제일주의가 세상을 흑암과 혼돈과 공허로 몰아넣고 있다.

티비와 언론 매체가 사람들에게 편견과 선입견과 우매한 생각들을 주입하고 조장하고 있다.

정신적으로 좋은 영향을 주는 책들은 아예 보지도 않고 탐욕과 방탕에 급급한다.


사람들은 살게 해줄 진리를 찾지 않고 오감의 만족만을 추구하고 있다.

그것들이 마음 속을 더럽히고, 그 더럽혀진 마음에서 나오는 악한 생각들이 나오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세상을 거룩과 공의로 통치하시는 하나님은 그 생각과 행동에 대해 보응을 하신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따르지 아니하고 불의를 따르는 자에게는 진노와 분노로 하시리라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는 환난과 곤고가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며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라 

이는 하나님께서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심이라”(2:6-11)

 

하나님의 심판과 보응은 진리대로 말씀대로 이루어진다.

이 땅에서는 길이 참으심과 용남하심이 있지만 최후 심판 때는 공정한 보응이 있을 뿐이다.

이 땅에서도 심판과 보응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사람들은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다.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신다.

영생은 죽은 후만이 아니라 지금의 생도 포함한 영생이다.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따르지 않고 불의를 따르는 자에게는 진노와 분노로 하신다.

지금도 그렇게 하고 계심을 알고 믿어야 한다.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는 환난과 곤고가 있다.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다.

지금도 그러하다.

 

왜 지금 나는 환난과 곤고가 있는지, 영광과 존귀와 평강은 없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무엇을 추구했느냐의 결과이다.

보응과 심판의 결과를 바꿀려면 원인을 찾아가야 하고 추구하는 것이 달라져야 한다.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 적용하지만

하나님께서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않기 때문에 차별이 없다.

주님은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된 자가 먼저 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셨다.

 

욕심과 악한 생각을 물리치고 죄를 죽이는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하나님의 축복은 원함으로 말미암지도 않고 달음질로 말미암지도 않다.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말씀으로 살고 계명을 지키는 데 달려 있다.

 

죄는 반드시 환난과 곤고를 낳고 사망을 낳게 되어 있다.

사망은 죽음 뿐 아니라 죽은 거나 다름 없는 인생을 사는 것을 포함한다.

죄를 지어 매를 맞고 참는 것과 순금을 만드시는 하나님의 연단의 참음은 질이 다르다.

 

3. 사람을 깨끗하게 하는 것은 거듭남과 회심과 칭의와 성화로 말미암는다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그 성령을 풍성히 부어 주사 -- 영생의 소망을 따라 상속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3:5-7)

 

구원은,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고, 죄에서 깨끗하게 되는 것이다.

구원 받지 못한 사람들이 거룩과 깨끗함을 말하는 것처럼 어불성설이 없다.

겉만 깨끗해 보일 뿐이요 잔과 대접의 겉만 깨끗이 하는 것으로 사람을 잡고 있다.

 

사람이 행하는 의와 선은 하나님 보시기에 더러운 넝마와 같다.

이스라엘이 멸망한 것은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은 있었으나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남들보다 의로운 행위를 해서가 아니다.

오직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따라 되는 것이다.

그리고 믿음을 은혜로 선물로 주셔서 구원을 받게 하신다.

 

이 모든 영적인 역사는 성령께서 우리 마음에 오셔서 이루시는 일들이다.

우리가 결단하고 우리가 만들어 내는 것이 결코 아니다.

성령은 우리 마음 가운데 오셔서 빛을 비추시고 거듭나게 하시고 씻어주신다.

성령은 오셔서 우리 마음 가운데 거하시면서 생각도 주시고 느끼게도 하시고 인도도 하신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은 성령의 중생의 씻음을 가리킨다.

 

성령으로 거듭남의 표지는 회심이다.

죄를 회개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회심이다.

죄를 씻고 회개하여 새로운 사람이 되는 혁명적인 변화(코페르니쿠스적 전환)가 일어난다.

이런 변화가 없다면 회심한 것이 아니고 더 나아가 중생한 것이 아니다.

 

중생의 씻음 다음에 성령은 계속해서 우리를 새롭게 하신다. 깨끗하게 하신다.

이것을 성화라고 한다.

거듭남은 오직 성령 홀로 하시지만, 성화는 성령의 새롭게 하시는 역사를 따라

나도 힘을 다해 수고를 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과 삶을 닮아간다.

 

성화의 과정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그 사람의 칭의도 거듭남도 의심스러운 것일 수 밖에 없다.

놀라운 영적 체험과 은사들과 간증들도 다 거짓 되고 사탄의 장난에 놀아난 것일 뿐이다.

참 그리스도인은 신앙고백이 분명해야 할뿐 아니라 그에 따른 거룩한 삶이 있어야 한다.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한다.

입술만 생기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의 삶에 생기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구원을 위한 거룩한 삶이 아니라, 구원 받았기에 따르는 거룩한 삶이다.

거룩한 삶이야말로 거듭나고 회심한 사람의 표지들 중 으뜸 표지이고 증거들 중 증거이다.

표면적 그리스도인이 아닌 이면적 그리스도인의 참된 표지가 거룩한 삶이고 거룩한 성품이다.

 

성화는 하루 아침에 불 받아 되는 것이 아니다.

어린 아이에서 청년으로 성장하고 청년에서 장년으로 성장해 가는 것이다.

때로는 넘어지기도 하고 침체되기도 하면서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가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이다.

아들의 형상을 닮게 하기 위해 우리를 부르시고 구원하셨다.

 

성화의 끝은 영화이다.

그리스도의 형상과 같이 변화되어 영화롭게 되고 그 영광으로 영원히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앞에서 기쁨과 행복으로 사는 것이다.

 

물로 손을 씻지 않는다고 사람이 더럽게 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은 사람 속에서 마음에서 나오는 악한 생각들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만이 우리를 깨끗하게 하고 영화에 이를 수 있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