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도 아카데미

로이드 존스, '빌립보서 강해', 8장 오직 한 일 (김영희)

강대식 2020. 2. 13. 12:27

8 장 오직 한 일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형제들아 난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3:12-14)

 

- 앞장에서는 일반적인 관점에서 바울이 그리스도인의 입장에서 하는 말을 살펴보았다. 이번에는 좀더 실제적인 차원에서 그리스도인의 입장을 살펴보겠다. 다른 어떤 서신보다 여기서 바울의 영적인 삶과 생활훈련이 상세히 나온다. 이 점에서 이 세 구절은 최고의 가치를 갖는다. 현 위치에 만족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사는지, 자신이 바라보는 최종목표를 향해 어떻게 달려가는지 알려 준다.

 

우리는 대부분 이 위대한 사도를 오해하는 경향이 있다. 사도의 특이한 경험 때문에 그와 관련된 말씀을 읽을 때 자칫 그를 기적 같은 삶을 살았던 독보적이고 경이로운 인물로 간주해 버리기 쉬운 것이다. 어떤 이들은 사도의 삶을 너무 이상화하는 바람에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가는데 본보기나 실례로 삼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의 삶은 기적적인 사건의 연속이 아니었다. 바울이 이런 인물이 된 것은 기본적인 원리를 잘 따랐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그의 사례는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된다.

 

실제적으로 바울이 경험했던 것을 똑같이 경험하고 싶은가? 옥에 갇히든 죽임을 당하든 중요치 않다고,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다고 말하고 싶은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말하고 싶은가? 바울은 그것을 경험했다. 자신에게 물어보라. 사도가 경험했던 것을 똑같이 경험하려면 그가 살았던 삶을 똑같이 살아야 한다.

성도들의 전기에 나오는 놀라운 일들을 똑같이 경험하려면 그들이 살았던 삶을 똑같이 살아야 한다. 1세기 성도의 전기를 읽든 20세기 성도의 전기를 읽든 그들의 삶에는 항상 몇 가지 핵심적인 특징이 나타난다. 바로 그 삶의 방식이 이 세 구절에 완벽하게 나와 있다.

 

- 바울의 삶을 지배했던 두 가지 원리

1. 자기 경험에 의존해서 살지 않는다는 것이다. 성경에는 그가 회심한 이야기,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가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보고 들은 이야기가 나온다. 그런데 이 사람의 삶에 나타나는 분명한 특징은 그러한 경험들에 의존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고린도후서 12장을 보면, 이런 것들을 자랑할 수 있지만 자랑하지 않노라고 밝히고 있다. 오히려 그는 자신의 병약함과 연약함, 눈에 보이는 삶의 어려움들을 자랑했다. 그는 육체의 가시를 지니고 살았으며 그 가시를 없애 달라고 세 번이나 구했는데도 없애 주시지 않았다. 그가 깨달은 원리는 이는 내가 약할 그때에 강함이라는 것이었다.(고후12:10) 과거의 경험에 의존해서 살려 하다가 혼란에 빠지는 그리스도인이 많다. 바울은 그런 태도를 비판한다. 그는 적극적으로 미래를 향해 달려갔다.

 

2. 그리스도인은 수동적으로 살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억해야 할 점은 그가 무릎을 꿇고 깊이 묵상하면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것이다. 사도의 삶에서 그런 요소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실제로 그는 정반대되는 삶을 살았다.

 

- 어떤 의미에서 바울의 삶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려주었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너희 안에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2;12-13) 이것이 그의 방식이다. 그리스도인의 삶에는 명백한 역설이 존재한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이지만,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행하시지 않으면 우리도 행할 수 없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지만, 새 생명을 받은 우리는 또 우리대로 감당해야 할 몫이 있다. 너희 구원을 이루라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또 그는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확신한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라고 밝힌다.

결국 구원받는다는 사실과 하나님이 지금 행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확신시킨 다음, 그들 또한 행하고 일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 그리스도인의 삶에 나타나는 특징은 무엇인가?

주님이 보여 주신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계속 싸우고 분투하며 애쓰고 노력하는 것이다.

1. “달려가노라 - 사도행전 9장의 회심사건을 읽어보면 그가 얼마나 열심히, 또 열정적으로 교회를 핍박했는지 분명히 알 수 있다. 바울보다 더 이 일에 열의를 보이며 열심을 낸 사람이 없다. 한때 그리스도인들을 잡기 위해 그토록 쫓아다니고 추격하며 샅샅이 뒤졌던 사람이 이제는 그리스도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기 위해 달려가기 시작한 것이다. 이처럼 달려가노라”, “박해하고---”라는 말은 그리스도인으로서 바울이 어떻게 살았는지 그 삶의 모습을 보여 준다.

 

2. “잡으려고 - “잡으려고달려가노라보다 훨씬 더 강한 표현이다. 그는 달리기 선수의 모습을 묘사한다. 결승선을 향해 손을 내뻗는 선수의 모습이 눈에 선히 보이는 듯하다. 달리기 선수의 염원이 무엇인지 여러분도 알 것이다. 그만큼 간절히 이기고 싶은 것이다. 그는 결승선을 향해 손을 내뻗으며 달리고 또 달린다. 이것이 잡으려고라는 말에 담긴 의미이다. 바울은 달리기 선수 같은 그리스도인이었다. 그는 무언가를, 영광스러운 가능성을, 상을 보았고, 그것을 얻고 싶어 했다. 그래서 달리고 또 달렸다. 그는 자기 앞에 있는 영광스럽고 굉장한 것을 얻기 위해 전력을 다해 질주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에 나타나는 특징이자 본질이다.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이러해야 한다고 사도는 말한다.

우리에게도 이런 모습이 있는가? 다들 무언가에 열광해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열의가 그리스도인의 최종목표를 향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이다. 바울은 그랬기에 확신 있게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라고 말할 수 있었다. 그리스도가 모든 것이었기에 확신과 자신감을 가지고 단언할 수 있었다.

 

- 우리는 어떻게 그 목표에 도달할 수 있는가?

1. 자기 검토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 아니하고 이것은 자기를 검토해 보았다는 뜻이다. 자기 검토는 오해하기 쉬운 주제이다. 바울이 자기 검토를 해봤다는 것은 그가 병적으로 자기 내면을 들이팠다는 뜻이 아니며, 자신에 대해 몇 가지 가정을 해 놓고 그에 근거해서 살았다는 뜻도 아니다. 그는 항상 기준을 바라보았고 그 기준으로 자신을 재 보았다는 뜻이다. 자기만족이야말로 가장 큰 위험이다. 그리스도인들이 당면한 큰 위험은 몇 가지 죄를 짓지 않았으니 아무 문제가 없다고 더 이상 자신을 검토하려 들지 않는다. 자기만족이야말로 가장 큰 위험 아닌가? 바울은 항상 자신을 살펴보고, 검토하면서, 목표를 향해 잘 달려가고 있는지 확인했다. 이렇게 늘 자기를 검토했기 때문에 만족감에 빠지지 않았다.

 

저는 설교의 사명이 질문을 던지는 데 있다고 생각하는데, 설교자가 제일 먼저 던져야 할 질문이 바로 자기를 얼마나 자주 검토하는가?”이다. 성령께 우리를 감찰해 주시기를 구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자신의 분명한 약점들도 적어 보아야 한다. 자유케 하는 온전한 율법의 거울 앞에서 솔직하고 정직하게 자기 자신과 대면해야 한다. 바울은 자기를 검토하면서 나는 아직 내가 잡을 줄로 여기지 않는다고 했다.

 

2. 집중력

오직 한 일 이라는 말이 바울의 집중력을 보여주고 있다. 달리기 선수는 주변 경치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 선수는 오직 한 일(한 가지 일)에만 집중해야 한다. 세상에 우리를 산만하게 만드는 흥밋거리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그러나 사도 바울처럼 되려면 그런 것들을 거들떠보지 말아야 한다.

집중력이라는 관점에서 과연 우리의 모습이 어떠한지 하나님은 아실 것이다. 결심은 줄기차게 하지만 실천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 아닌가? 출발은 하지만 결국 도중에 주저앉는다는 것을 우리는 다 안다.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다 말다 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도는 오직 한 일에 집중한다고 말한다. 아무 훈련 없이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 수는 없다. 자신을 조절해야 하고, 시간을 잘 분배해야 한다.

 

3.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린다는 것이다.

이것은 고의적으로 과거의 경험을 잊으라는 말이 아니다. 과거의 경험에 의존하지 말라는 것이다. 자기만족에 빠져 계속 뒤를 돌아보면서 자랑하고 뿌듯해 하지 말라는 것이다. 달리기 선수의 임무는 출발선에서 얼마나 멀리 달려왔는지 돌아보는 것이 아니라 저 앞의 결승선이 얼마나 남았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물론 뒤를 돌아보는 일이 꼭 필요한 경우도 있다. 많이 올라왔다고 감탄하면서 걸음만 멈추지 않는다면 뒤를 돌아보아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집회에 다니면서 자신의 회심 이야기를 반복해서 간증하는 것이 듣는 이들에게는 좋을지 몰라도 본인에게는 몹시 해로운 이유가 여기 있다. 설사 옳은 일이라 해도 자기만족에 빠져 뒤를 돌아보지 말라. 설사 그리스도를 위해 큰 희생을 했더라도 잊어버리라. 자신을 대견해 하는 마음으로 뒤를 돌아보게 만드는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영적인 진보를 막는 장애물이다.

 

4. 최고의 원리는 당연히 목표와 상에 시선을 집중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나머지 원리들은 다 여기에 절로 따라오는 것이다. 바울의 가장 큰 비결은 바로 이것이었다.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사도는 항상 그것을 보았다. 그의 성취는 놀라운 것들이었다. 그러나 앞에 있는 목표와 비교하면 초라하고 하찮기 그지 없었다! 목표를 바라보는 사람은 우월감을 느끼려고 남들과 비교하지 않는다. 자신이 얼마나 부족한 사람인지 안다. 사도는 그 목표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의인의 마지막 부활에 참여하여 영광 가운데 들어가는 것, 이것이 바울의 목표이자 그가 중요하게 여긴 오직 한 일이었다. 한 구절로 요약해 보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이것이 바로 마지막 비결이다.

 

세상과 자신을 비교하면 안 된다. 경주에서 자신보다 뒤처져 있는 것이 분명한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비교해서도 안 된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알고, 그와 같이 되며, 그와 영원히 함께 하도록 부름 받고 사로 잡힌 바 되고 붙잡힌 바 된 사람들이다. 그리스도인은 이 목표만 바라보며, 이 목표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 이 목표에 도달하는 것 외에 중요한 일은 아무것도 없기에 항상 손을 앞으로 내뻗으며 달려간다. 자기 자신과 자신의 성취를 검토하고 목표에 최대한 집중하면서 이제까지 있었던 일들을 다 잊고 앞으로 달려간다.

사도가 이런 방식으로 그리스도인의 삶을 훈련했다고 생각한다. 그 훈련의 결과가 그의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다. 이 목표를 의도적으로 진지하게 상기하지 않고 넘어가는 날이 하루도 없어야 한다.

 

- 그리스도를 알고 있는가? 그와 같이 되고 있으며 그를 닮아가고 있는가? 그의 죽음을 본받고 있는가? 바로 이 목표를 위해 그리스도가 나를 붙잡으셨다. 마땅히 이것을 내 삶의 중심이자 내 모든 열망의 과녁으로 삼아야 한다.

 

우리 모두 이 목표를 보게 해 주시기를, 이 목표에 매료되고 사로잡히게 해 주시기를, 오직 이 목표만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 바라보게 해 주시기를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