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장 천국 시민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의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빌3:20-21)
- 3장은 그리스도인에 대한 명쾌하고도 분명한 정의가 여러 번 나온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관통하는 최고의 특징은 그리스도인의 삶과 신분에 대해 가슴 벅찰 만큼 엄청난 개념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바울은 본문에서 이 모든 내용을 아우르며 영광스럽고 장엄한 절정을 만들어 내고 있다.
따라서 이 두 구절은 바울이 3장에서 전개해 온 위대한 논증의 요약으로 보아야 한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말의 의미를 다시금 일깨워 주는 본문이다. 앞서 보았듯이 사도는 빌립보 교인들에게 자신을 본받으라고 권한다. 그리고 부정적인 예를 들어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한다고 말한다. 결국 그가 내리는 결론은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라는 것이다. 그는 빌립보 교인들에게 그리스도인의 신분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특별히 더 영광스러운 정의를 알려 주면서, 계속해서 거룩하게 살 것과 성화의 길을 달려갈 것을 마지막으로 호소하고 있다.
본문을 자세히 살펴보기 전에 이 중대한 원리인 우리의 시민권이 하늘에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이것은 신약성경이 거룩하게 살 것을 호소할 때 전형적으로 제시하는 근거이다. 자신이 누구인지 알라는 것이다. 신약성경이 말하는 거룩함과 일반적인 도덕이 서로 갈라지는 지점이 여기이다. 도덕이 늘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행동 그 자체이다. 도덕이 하는 일은 그 행동을 했을 때 불리한 점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것뿐이다. 기독교 가르침은 “너희는 천국 시민이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안 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기독교는 더 높은 차원의 근거를 제시한다.
기독교는 유대교와 다르다. 유대교의 관심은 율법의 세부항목들에 있지만, 기독교의 관심은 율법 그 자체에 있으며 그리스도인의 지위와 신분 그 자체에 있다.
- 그리스도인은 여기에 나오는 이런 삶, 바울과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고 있는 자들의 삶을 본받아야 한다.
첫째는 우리의 신분 때문이며, 둘째는 장차 우리가 소망하는 모습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해야 한다.
1. 우리의 현재 신분 때문이다.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강조해야 할 중요한 단어는 “있는지라”이다. 우리는 이미 시민권을 얻었다. 장차 시민권을 얻을 것이 아니라 이미 시민권을 얻었다. 여기에서 신약의 주요 교리인 중생과 거듭남의 교리와 마주치게 된다. 그리스도인은 천국 시민이다. 그리스도인의 삶을 고작 선량한 삶이나 평범한 사람들보다 약간 나은 삶 정도로 여기는 것을 보면 울고 싶다. 그리스도인은 이미 소속이 바뀌고 신분이 격상된 사람들이다.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엡2:4-6) 그리스도인은 영적인 의미에서 이미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하늘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다.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 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골1:13)
이것은 인간의 이해를 뛰어넘는 엄청난 개념이며, 이것은 우리가 무엇보다 먼저 붙잡아야하는 개념이다. 우리는 다시 태어남으로써 천국 시민이 된다. 돈을 내고 시민권을 얻는 것이 아니다. 법적인 절차를 밟아 시민이 되는 것이 아니다. 시민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우리는 새로운 혈통으로 다시 태어남으로써, 오직 이 한 가지 방법으로만 하나님의 나라 시민이 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은 본질적으로 다른 존재라는 것이 바울의 주장이다.
그들보다 조금 나아지거나 겉모습만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존재로 다시 태어난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와 함께 하늘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다. 최종적으로 그곳에 도착할 때까지 이런저런 일들을 겪겠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는 변함없는 천국 시민이다.
2. 시민권이라는 말의 의미는 무엇인가?
신약의 가르침에 따르면, 모든 살아 있는 인간은 두 나라 중 한 곳에 속해 있다. 하늘의 나라와 세상 나라, 하나님의 나라와 사탄의 나라, 둘 중 한 곳에 속해 있는 것이다. 두 나라 사이에 중간지대나 중립지대는 없다. 바울은 우리의 시민권이 하늘에 있다는 사실을 강조함으로써 우리가 다른 나라에 충성을 맹세하는 시민임을 밝히고 있다.
① 이 나라의 첫 번째 특징은 여러분이 충성을 바치는 왕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세상 나라 시민들의 신은 “배”이다. 그들은 본능과 탐욕과 정욕을 좇아 산다는 뜻이다. 그들은 이런 것들의 다스림과 통제를 받으며, 이런 것들에 충성을 바친다. 사람이 자신의 시간과 돈과 힘을 어디에 쓰는지 살펴보면 그가 무엇에 충성하는지 알 수 있다. 주님은 산상설교에서 마음이 있는 곳에 보물이 있고 보물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를 왕으로 섬기는 자들이다. 그분 외에는 그 무엇도, 그 누구도 섬기지 않는 사람들이다. 하나님이 자기 삶을 지배하고 계심을 인식하는 것,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과 그의 뜻을 첫 번째 관심사로 삼는 것이 그들의 변함없는 특징이다.
도덕적인 관점에서도 두 부류는 완전히 다르다.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도 도덕적으로 흠 없는 삶을 살 수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이다.
② 두 번째 특징은 세상의 법과 완전히 다른 법을 지키면서 산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비그리스도인과 다른 체제 하에서 다른 종류의 삶을 산다, 그리스도인이 되기 전에는 죄와 사탄의 지배를 받았으나 그리스도인이 된 후에는 더 이상 그 지배를 받지 않는다. 인간의 자유의지를 운운하는 것보다 우스운 짓은 없다. 인간은 죄 가운데 태어나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죄의 종이다. 작금의 정치세계를 보면 독재하면서도 국민들에게 “너희는 자유롭다”라고 하는 나라가 있다. 사탄은 사람들을 자신의 지배 아래 묶어 놓고서도 “너희는 자유롭다”라고 설득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사탄의 지배에 매여있지 않는다. 하나님이 옛 나라에서 끌어내 새 나라로 옮겨 놓으셨다. 새 나라 시민으로 완전히 새로운 규범을 배우게 하셨다. 나라가 달라지면 관습이나 규칙도 달라지게 마련이다. 하나님의 나라 시민이 된 자들은 상황을 보는 눈도 달라지고 완전히 새로운 눈으로 삶을 바라보게 된다.
③ 세 번째 특징은 이 시민권을 가진 자들에게는 세상 사람들과 다른 권리와 특권이 주어진다. 한 나라의 시민은 시민이 아닌 자들이 할 수 없는 것을 한다. 우리는 천국 시민으로서 보좌 앞에 나아가 왕을 뵙고 직접 간구하며 요청할 수 있는 자격을 얻었다. 성경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특별한 관심을 쏟으신다고 말한다.(암3:2)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특별히 염려하시고 생각하시며, 그들과 유일무이한 관계를 맺으신다. 주님도 친히 그리스도인에게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다고 하셨다.(마10:30) 우리가 겪는 일 중에 하나님이 모르시는 일은 없다. 언제 어디서나 상상할 수 없는 최악의 상황에 몰렸을 때에도 변함없이 왕께 나아갈 권리가 여러분에게 있다.
하늘에 우리의 시민권이 있다는 바울의 말은 이 세상과 세상사에 아무 관심도 갖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우리는 이 세상과 세상의 삶에 마땅히 관심을 가지되,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관심을 가지라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살지만 세상에 속해 있지는 않은 사람들이다. 이 세상은 우리 집이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적으로 살면 안 된다. 오직 이 세상이 하나님의 것임을 믿으며, 인간이 세상을 엉망으로 만드는 것을 보고 탄식한다는 점에서만 세상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또한 세상의 삶 속에 도사리고 있는 위험, 세상의 허물과 죄의 교만과 더러움을 알아야 한다. 세상의 삶을 어떻게 바라보느냐 하는 것이야말로 참된 그리스도인인지 아닌지 알아보는 가장 온전한 시금석이다. 그리스도인은 세상 사람과 다르게 “생각”하고 다른 데 관심을 쏟는다.
신약의 그리스도인들 –위대한 부흥과 각성의 시대에 살던 모든 그리스도인- 은 땅의 것이 아니라 위의 것을 생각하고 사모했다. 그들의 마음이 하늘에 고정되어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본다는 뜻이다. 더 나아가 하늘의 시민권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낀다. 진정한 시민은 자신이 그 나라의 시민이라는 사실을 자랑스러워한다.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목숨이든 무엇이든 내놓을 각오를 한다.
그리스도인들이여, 세상 사람들이 자신의 시민권을 위해 목숨을 바치듯이 하늘의 시민권을 위해 목숨을 바칠 각오가 되어 있는가? 이 두 가지가 반대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지상의 어떤 신분보다 하늘의 시민권에 무한히 더 큰 자부심을 느껴야 된다는 것이다. 우리의 신분에 합당하게 살 수 있기를 무엇보다 열망해야 한다. 바울은 자신이 누구인지 기억하고 이 높은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라고 말한다.
3. 그리스도인이 거룩하게 사는 것은 소망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크고 영광스러운 위로이자 격려이다. 우리는 심히 적대적인 세상에서 살고 있다. 더구나 우리 자신도 완벽하지 못하며, 약점과 연약함과 결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런 처지에 과연 앞으로 달려갈 수 있으며, 천국 시민임을 강조하는 것이 도움이 되겠는가? 나 같은 사람이 어떻게 그런 영광스러운 곳에 거할 수 있을까?
그러나 바울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 이 말이야말로 우리의 궁극적인 위로이다. 우리는 고대하는 바가 있다. 그가 다시 오실 것이다. 오셔서 흑암의 나라에 속한 모든 것을 최종적으로 물리치시고 완전히 멸하실 것이다.
우리는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사람들이다. 상황이 더 나빠지고 모든 일을 겪을 수 있다. 그러나 지옥이 아무리 사납게 날뛰고 세상이 맹위를 떨치며 온갖 짓을 다할지라도, 우리는 구원하는 자 곧 예수 그리스도가 오실 것을 알고 있다. 그 모든 것을 최종적으로 이기시고 가장 높은 자리에서 통치하실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가 오시면 훨씬 더 놀라운 일을 해 주실 것이다. 주님이 우리의 낮은 몸 –부끄러운 몸-을 변하게 해 주신다고 말한다. 나는 모든 부끄러운 것을 벗어 던지고 새로운 몸을 입을 것이다. 변화산에서 주님께 나타났던 영광이 우리에게도 나타날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영원히 지내도 될 만큼 영화로워질 것이다. 우리는 그 일을 고대하는 사람들이다.
지금은 약할 수도 있고, 지쳐 있을 수도 있고, 자신의 불완전함을 절감할 수도 있다. 그러나 달려가라고, 우리 힘으로 이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고, 주님이 오셔서 친히 해 주신다고 사도는 말한다. 이것이 그의 마지막 호소이다. “달려가라, 저 먼 곳에 눈을 떼지 말고 앞으로 달려가라. 영광을 고대하라. 주를 기다려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바라보노니)” “기다리노니”는 다른 것은 일절 돌아보지 않고 끈기 있게 간절히 기대하고 고대한다는 뜻이다.
바울은 이것을 근거로 거룩하고 성별된 삶을 살 것을 호소한다. 그리스도인은 천국에 속한 자들이다. 우리 왕이 돌아오실 날이 다가오고 있다. 그날이 오면 우리는 기업을 얻을 것이며 완전히 변화될 것이다. 완전하고 영광스러운 몸으로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영광 중에 거할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다시 태어나서 얻은 권리이자 신분이다.
더 호소하지 않아도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 안에 있는 영광 및 높은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고 싶지 않는가? 오직 그리스도를 위해 살고 싶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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