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도 아카데미

로이드 존스, '히브리서 강해', 2장 유일한 피할 길 (김영희)

강대식 2020. 5. 28. 17:21

2 장 유일한 피할 길

 

그러므로 우리는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함으로 우리가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함이 마땅하니라. 천사들을 통하여 하신 말씀이 견고하게 되어 모든 범죄함과 순종하지 아니함이 공정한 보응을 받았거든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그 보응을 피하리요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하나님도 표적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과 및 자기의 뜻을 따라 성령이 나누어 주신 것으로써 그들과 함께 증언하셨느니라”(2:1-4)

 

- 우리는 함께 모여 복음을 고찰하는 것이 조금은 특이한 일이 된 시대에 살고 있다. 요즘은 교회에 오는 사람들의 수도 상대적으로 적지만, 그나마 일부는 자신들이 왜 교회에 오는지 한 번도 살펴보지 않은 채 잘못된 이유로 오는 것 같다. 삶이 너무 풍족하고 매력적이고 유혹적이어서, 할 일이 너무 많아서, 일정표가 꽉 차서 복음의 사실들을 생각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

 

이미 살펴보았듯이 진짜 복음인지, 아닌지 먼저 확인해보고, 우리는 들은 것 즉 처음부터 전파된 복음의 사실들에 유념해야 한다. 모든 사람들이 이 복음을 들어야 하는 첫 번째 이유는 이 복음의 원천, 즉 배후의 권위에 있다. 자기 문제보다 앞서 인간이 처한 곤경과 처지부터 직시하고, 복음이 무엇인지를 역사적 사건의 기록을 통하여 고찰해야 한다. 복음은 하나님이 주신 메시지로서, 주 예수 그리스도라는 분과 관련하여 세상에 일어난 역사적 사건을 직시할 것을 요구한다.

 

- 두 번째, 이 복음을 들어야 하는 이유는, 복음을 믿지 않는 모든 사람의 위험한 처 지에 있다. -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그 보응을 피하리요

 

1. 하나님을 모르는 비그리스도인들의 처지가 얼마나 위험한지 강조하는 것은 성경에 늘 나타나는 큰 특징이다.

 

그들은 복음을 고상하고 훌륭한 인생관에 대한 가르침으로 여기고 다른 가르침들처럼 생각하며 실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직접 자신들에게 말을 걸어오는 메시지인 복음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전혀 없다. 큰 결핍감과 절박감도 느껴 본 적이 없다.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라고 복음이 경고해야만 했던 문제가 자신들에게 있다고 느껴 본 적이 없다.(3:7, 3:7) 복음을 정신을 고양시키는 아주 고상한 인생의 가르침, 점잖은 사람이 채택하여 실천할 만한 가르침으로만 여길 뿐이다.

 

그런 자들의 진정한 문제는 자기 자신과 자신의 삶을 한 번도 제대로 바라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본인은 안다고 말하지만 실상은 모른다. 그런 자들은 하나님과 자신의 관계라는 측면에서 자신을 바라본 적이 한 번도 없다.

 

1) 어떤 이들은 이런 종류의 가르침과 설교에 적극적으로 반발하기도 한다.

“‘어찌 그 보응을 피하리요라는 건 모욕적이고 이기적인 개념이다. 그런 걸 강조하는 복음은 필요 없다. 자기 영혼의 구원을 확인하라는 건 너무 자기중심적인 말이다. 스스로 지옥이 아닌 천국에 갈 거라고 자부하다니, 참 교만하다라고 한다. 구원에는 이처럼 반발하면서도 자신들이 먹고 마시는 일이나 미래의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일에는 반발하지 않는다. 이런 자들의 생각대로라면 몸의 구원을 위해서는 신경을 쓰는 것이 당연해도 불멸하는 영혼이 영원한 운명 때문에 신경을 쓰는 것은 심히 이기적인 행동이 되는 셈이다. 영원한 운명과 관련하여 자신들이 어떤 곤경에 처해 있는지 안다면 이런 어리석은 말은 하지 못할 것이다.

 

또 다른 반론은 두려움과 경고라는 개념 자체가 현대인과 현대의 정신에 모욕이 된다고 느끼는 자들이 있다. 그들은 지옥과 심판과 형벌을 설교하지 않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 우리는 이전 세대보다 낫고, 그만큼 발전했고 우월하다고 말한다. 현대인이 이런 이상한 우월감을 표현하는 방식 중 한 가지가 바로 지옥과 하나님의 진노 및 심판의 무서움을 더 이상 설교하지 않는 것이다. 현대인은 그런 질문에서 벗어날 만큼 성장했다는 것이다.

 

과학 지식이 늘었다고 해서 과연 달라진 점이 있는가? 지금 우리가 논하는 대상은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현대인이어서 이런 교리를 믿을 수 없다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이다. 사람을 겁주거나 두렵게 하는 일에 전혀 관심이 없다. 그런데 환자의 치료를 위해서 의사가 어느 정도 겁을 주어야 하는 경우가 있다. 환자를 두렵게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환자의 안녕을 염려하기 때문이다. 스펄전이나 조나단 에드워즈를 비롯한 과거의 거인들이 그런 설교를 했던 것은 진리를 알았기 때문이며, 영혼을 염려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설교자들이 사람들에게 실제로 닥칠 일을 한 번도 전하지 않은 것 때문에 정죄를 받을 것을 생각하면 두렵다. 그들은 불쾌하다거나 시대에 뒤떨어졌다거나 겁주려 한다는 비난을 받을 것이 두려워 진리를 전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도 바울의 말대로 주의 두려우심을안다면 권면해야 한다.(고후5:11)

 

2) 이 가르침이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교리와 완전히 상반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

영벌 및 하나님의 진노라는 개념과 하나님의 사랑은 서로 어울릴 수 없다는 것이다. 한쪽은 모든 사람이 죽을 때 보편적인 구원(누구에게나)이 이루어진다고 믿는다. 감히 그렇게 말하지 못하는 또 다른 이들은 하나님은 사랑이시기에 결국 모든 사람에게 두 번째 기회를 주실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회개치 않고 죽은 자들에게도 기회를 주실 것이라고, 결국에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모든 사람을 구원하실 것이라고 믿는다.

 

2. 성경의 가르침은 무엇인가?

 

내 주장의 근거는 무엇인가? 이 부분에 동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토론해 봐야 소용이 없다. 요점은 성경을 믿을 것이냐? 사람의 생각을 믿을 것이냐?’ 하는 것이다. 다른 선택은 없다. 둘 중에 하나이다. 어찌 그 보응을 피하리요 성경은 경고의 책이다.

 

1) 우리가 출발점으로 삼아야 할 것은 인간관이다. 인간은 책임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자신에게 속한 특징을 인간 안에 두심으로 나머지 피조물과 크게 구별하셨다. 자신과 대화를 나누시며 교류하실 수 있는 존재로 남자와 여자를 만드셨다. 남자와 여자는 하나님 앞에 책임 있는 존재로서, 그의 다스림을 받으며 그를 위해 살도록 지어졌다. 이것이 성경의 인간관이다.

 

오늘에 펴져 있는 관점은 인간이 원시 점액질로부터 발전해 왔다. 인간은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 다른 동물보다 좀 더 진화한 동물일 뿐이라는 것이다. 식물이나 동물이 죽듯이 인간도 잠깐 살다가 죽는다. 어떤 점에서 더 진화했기 때문에 일정한 책임은 져야 하지만, 그 책임은 세상에 사는 동안의 삶과 사회에 한정된다. 영원한 의미에서 책임을 지는 것이 아니다. 마지막 심판대 앞에서 설명할 필요가 없다.

 

성경에 따르면 인간은 동물과 완전히 다른 중대한 인격체, 중대한 피조물이다. 인간은 피조세계의 주관자라는 점에서 다른 피조물보다 우월하다. 인간은 일종의 진화된 짐승으로 인생의 무대에서 어슬렁거리다가 퇴장하는 존재가 아니다. 인간에게는 운명이 있다. 인간은 하나님의 손에서 나왔고, 하나님께로 돌아갈 것이다.

 

2) 여러분은 자기 자신과 세상의 삶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성경은 우리에 관한 진실을 깨달을 것을 요구한다. 현대인들은 한편으로는 인간의 우월성을 자랑하며 거의 신으로까지 격상시키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살다 죽으면 그만인 짐승으로 묘사하는지! 인간은 설명할 의무와 책임을 가진 존재이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세상에 살면서 행한 모든 일을 아시며 기록하신다고, 여러분은 그 모든 행동에 대해 설명해야 한다고, 성경은 말한다.

 

그뿐 아니라 성경은 인간뿐 아니라 하나님에 대해서도 알려준다. 하나님의 성품과 본질은 전부 이 책에 기록되어 있다. 여러분은 하나님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는가? 하나님은 오직 성경의 계시를 통해서만 알 수 있다. 구약성경을 보라. 하나님은 자신이 거룩한 분임을 알려 주셨다. 자신에게 복종하며 살 것을 인간에게 명하셨고, 계명을 주시면서 순종치 않으면 형벌이 따름을 알려 주셨다. 그런데 어리석은 인간은 순종치 않았고, 하나님은 정말로 인간을 벌하신 것이다. 죽음이 인간과 인류 전체를 찾아왔고 인간은 동산에서 쫓겨났다. 땅은 저주를 받았으며, 삶은 우리가 아는 이런 모습이 되었다. 이것은 하나님의 행동인 동시에 계시였다.

 

홍수 때도 하나님은 자기 성품을 계시해 주셨으며, 인간이 의무와 책임을 가진 존재임을 보여주셨다. 또한 그는 율법을 주셨다. 율법에는 하나님이 최고로 잘 계시되어 있다.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20:3) 그리고 이스라엘 민족이 거듭 불순종할 때 어떤 형벌이 따를지 알려 주셨다. 구약성경은 말씀의 계시일 뿐 아니라 행동의 계시이기도 하다.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을 입은 자요,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끌어내고 홍해를 건너게 했던 모세조차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거역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백성 개개인이 받은 형벌뿐 아니라 택함 받은 민족이었던 이스라엘 전체가 받은 무서운 형벌도 보라. 하나님이 친히 택하신 백성이었는데도 포로가 되어 앗수르와 바벨론에 잡혀갔다.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이 거룩하시고 공평하시며 의로우신 분으로서, 설사 자기 백성이라도 그 죄와 허물을 벌하신다는 진리를 선포하는 영원한 기념물이다.

 

주님이 가장 먼저 전하신 메시지 또한 회개에 관한 것이었다. 주님만큼 하나님의 사랑을 잘 아는 사람이 있는가? 그런데 그런 분이 회개를 전하셨다. 이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4:17) 주님은 또한 율법을 설명하시면서 기계적인 율법관을 폐기하셨다. 율법은 영적인 법이다. 음욕을 품고 여자를 쳐다보기만 해도 마음으로 이미 간음했다고 간주한다. 이것이 주님께서 율법을 해석하신 방식이다.

 

요한복음 3:16은 모두가 좋아하는 구절이다.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해서 독생자를 주셨다. 그러나 그 목적은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하시려는 데 있었다.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3:18),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3:36) 성경을 믿는 자라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라면, 그가 이렇게 가르치신 것을 알고 믿어야 한다.

 

온 인류가 하나님 앞에 서게 될 마지막 때, 모든 사람이 양과 염소로 분류될 마지막 심판의 때에 대해 주님이 하신 말씀도 읽어보라. 부자와 나사로 이야기를 통해 지옥의 영원한 고통의 불꽃에 대해 알려주셨고, 음부의 부자와 아브라함의 품에 안긴 나사로 사이에 큰 구렁텅이가 있어 서로 왕래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16:26)

 

하늘 구름을 타고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세상에 다시 오셔서 추수하시고 심판하신다는 말씀도 보라. 무엇보다 자신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밝히신 말씀, 자신의 죽음에 대해 가르치신 말씀을 보라. 인자기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라”(10:45),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3:14) 주님은 이것만이 유일한 길이라고 하셨다. 이런 사실들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처음부터 친히 전하신 복음이다.

 

주님의 말씀을 직접 듣고 그와 함께 지냈던 사도들의 글을 보아도 전부 다가올 심판에 대해 경고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모든 사도들은 하늘의 진노를 피하라고 권면했고, 유일한 피할 길을 알려 주었다. 하나님은 표적과 기사와 이적으로 그들의 메시지를 입증하셨다. 심판의 메시지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가는 것이 무서울진저”(10:31),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라”(12:28-29) 살아계신 하나님, 온전히 거룩하시고 공평하시며 의로우시고 능하신 하나님, 자신을 이렇게 계시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저와 여러분은 대답을 해야 한다. 계시록도 읽어 보라. 이 모든 경고와 마지막 심판이 다가오고 있다는 선포가 아주 비상한 방식으로 기록된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이 모든 것에서 구원받을 길 또한 영광스럽게 계시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라. 그는 우리를 진노와 심판에서 구하기 구해 독생자를 보내 주셨다. 우리는 다 하나님을 잊었고, 모욕했으며,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더 앞세웠다. 우리는 다 정죄아래 놓여 있다. 이런 상태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는가?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전부 해주셨다. 아들을 보내 주셨다. 이제 감사하게도 그리스도의 피만 있으면 충분하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10:19) 이 피야말로 하나님이 마련해 주신 피할 길이요 유일한 속죄제물이다. 하나님은 아들을 보내셨고, 아들은 우리 죄를 지고 형벌을 받으셨다. 이 제사를 거부하면 다시 죄를 속하는 제사가 없.(10:26) 그리스도의 피를 외면할 때 남는 것은 장래의 고통과 번민뿐이다. 이것이 불신자의 영원한 운명이다.

 

여러분, 결론은 간단하다. 성경이 이 문제에 대해 처음부터 끝까지 하는 말을 믿든지 믿지 않든지 둘 중에 하나이다. 이 책은 이것만이 유일한 피할 길이라고 가르친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 사실을 알았기에 이같이 큰 구원을 우리가 등한히 여기면 어찌 그 보응을 피하리요라고 했다. 피할 수 없다. 그 길을 거부하면 다른 길은 없다는 사실을 성령으로 깨우쳐 주시길 원한다.